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클래식한 B급 호러 무비의 그야말로 재미


비슷한 부류의 경쟁상대가 없다는 것은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끌리는 이유가 되곤 하는데, 최근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도 장르적으로보나 스타일로 보나 확연히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 영화 <드래그 미 투 헬>이었다. 이 영화에 맨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꼽으라면 역시 첫 째도 샘 레이미요, 둘 째도 샘 레이미 일 것이다. 호러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던가 블록버스터 영화에만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아마도 그를 기억할 때 <스파이더 맨>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겠지만, 그 반대의 이들은 누구라도 <이블 데드>를 떠올릴 것이다. 마치 피터 잭슨의 팬들이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에서 <고무인간의 최후>의 잔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이(혹은 그래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 같이), 샘 레이미의 팬들 역시 <스파이더 맨>에서 그런 장면들을 찾아내길 바랬었으나 피터 잭슨과 비교하자면 이렇게 본인만의 스타일(혹은 악취미)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샘 레이미에겐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래그 미 투 헬>은 기대작, 그것도 초기대작이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알려진 바와 같이 샘 레이미가 <이블 데드>를 통해 보여주었던 그 만의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는 호러 장르였기 때문이다. 결론은 마치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를 보았을 때처럼 B급 무비만의 재기 발랄함과 클래식함에 웃으며 볼 수 있는 호러 영화였고, 무섭기도 하거니와 무언가 생각해볼 만한 여지도 남겨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아래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물론 샘 레이미가 연출을 맡았다고 한 시점부터 그러려니 하긴 했었지만, <드래그 미 투 헬>은 매우 노골적으로 클래식함을 내세우고 있다. 영화의 시작 유니버설의 정말 오랜만에 보는 로고는 물론이요, 크리스토퍼 영이 맡은 음악 역시 고전 호러 영화들에서나 등장할 법한 악기들, 효과들로 가득채워져 있다(크리스토 영은 여러 작품에 참여하긴 했지만, 역시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았을 때 <나이트 메어 2> <헬레이저> <플라이 2>등 공포영화들이 단연 눈에 띈다). 물론 대문작만한 'DRAG ME TO HELL'이라는 타이틀도 빼놓을 수 없겠다.

주인공인 크리스틴 브라운은 은행직원으로 공석으로 남아있는 팀장 자리를 위해 다른 직원과 경쟁을 치루고 있기도 한 여성이다. 어느 날 남루해보이는 한 할머니가 주택 융자금 상환을 연장해 달라며 크리스틴을 찾게 되는데, 그녀는 처음에는 이 할머니의 사정이 딱해 연장을 지점장에게 요청하지만, 팀장 자리를 위해 결국 '본인 선택'에 따라 상환 연장을 거부하게 되고, 이 때부터 크리스틴의 악몽 같은 날들이 시작되게 된다.

이 부분은 단지 에피소드로 작용하기 위해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에서 생각해 볼만한 첫 번째 점인데, 주인공 크리스틴은 결국 영화 내내 자신의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한 번 정도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씩 언급될 만큼 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자주 등장하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연장을 해줄 수도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결국 승진을 위한 욕망 때문에 자신 스스로 연장을 거부하고 말았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큰 짐으로 오래 남게 된다.




그렇다고 노인을 냉정하게 뿌리친 크리스틴의 행동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올시다다. 관객들은 크리스틴이 처음에는 연장을 해주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 할머니의 행색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후에 조금씩 언급되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들을 통해, 승진을 위해 할머니를 뿌리친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크리스틴은 시골 출신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직업여성이지만 부잣집에다가 잘 나가는 남자친구에게 어울리기 위해 또 그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팀장(부지점장)'이라는 사회적 자리는 놓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가 과거에는 굉장히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도 자기관리도 얼마나 독하게 해와서 지금의 자리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게 되었는지는 어렴풋이 유추해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잘해보려던 그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며 반대로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이 망쳐지고 마는 그녀의 현실에 안타까움도 들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후반부에도 매우 중요한 지점에서 다시 들고 나오는데, 악마인 라미아에게 영혼을 빼았기지 않기 위해 저주를 받은 물건(단추)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된다는 말에 크리스틴은 아침이 오기 전에 이 단추를 전달할 사람을 찾게 된다. 관객은 앞선 이유들로 그녀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와 승진을 두고 다퉜던 남자에게 줘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크리스틴과 마찬가지로 하게 된다(단순히 경쟁상대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행동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 것은 당연하다). 크리스틴은 사람이 많은 식당에 앉아서 이 저주를 자신에게서 옮겨갈 사람들을 고르는데, 할머니의 어려운 상황을 들어주려했던 그녀 답게 쉽사리 사람을 고르지 못한다.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하고 자신의 일을 망쳐버렸던 경쟁직원인 스투를 불러내어 단추를 주려고 하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 마음 여린 그녀는 단추를 전달하지 못하고 만다. 결국 이런 엄청난 재앙이 그 시작도 자신의 선택이었고, 재앙을 끝낼 수 있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라는 설정은 의미있고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드래그 미 투 헬>은 B급 호러무비 답게 무섭고도 유머러스한 영화다. 앞서 <플래닛 테러>와 비교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정확히 두가지가 비교대상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플래닛 테러>가 B급 호러 무비의 감성을 가지고 '웃길려고 작정한' 영화였다면, <드래그 미 투 헬>은 '작정하고 B급 호러무비의 감성을 제대로 담으려고' 한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물론 여기서 '웃기다'라는 것은 다순히 웃껴서 웃는 것 외에 신나는 것 그리고 이해 대한 '환호'가 포함된 의미다). 포스터만 보면 단순히 무섭기만 할 것 같았던 이 영화는 은근히 아니 대놓고 웃겼던 재미있는 영화였다. 보통 공포 영화같으면 하나의 시퀀스가 휘몰아치고 나면 '한숨을 먼저 쉬며 숨을 돌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숨을 돌리는 동시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 직접적이고 만화같기까지 한 장면들이 한 편으론 징그럽고 더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시퀀스가 끝나고나면 그저 웃긴 장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보면 아는데 그냥 무서움과 더러움 그리고 웃음이 함께 터져나온다).

뻗어나간 주먹이 입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파리가 콧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고,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자 눈알이 마치 총알처럼 튀어나오고, 틀니가 빠진 할머니가 크리스틴의 턱을 마치 삼킬 듯이 물어대고, 호치키스가 박혀 눈을 뜨지 못하는 장면 등등은 묘사만 보면 호러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으나 막상 보면 뭐랄까 박장대소는 아니더라도 더럽거나 역겨운 장면을 보았을 때 내곤 하는 '으....'하는 소리와 함께 슬쩍 슬쩍 웃게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이 할머니와 크리스틴이 차 안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 역시 묘한 B급 호러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공포의 존재가 주인공을 계속 공격하는 무서운 장면이지만, 이 둘의 격투 가운데는 분명 우스운 부분이 존재하고 공격을 성공하고 나서는 스스로 대견함과 이겼다는 것에 만족하며 웃어대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만화같아서, 또 그냥 우스워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 처럼 공포와 웃음, 악마의 등장과 주술적인 이미지 그리고 쌩뚱맞으면서도 뻔뻔한 대사나 행동들이 절묘하게 결합한 분위기는 이 영화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단 적인 예로 마지막 라미아의 영이 씌워진 남자가 공중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이런 두 가지 요소가 극대화된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선택한다는 것과 맞물려 겉보기엔 약해만 보였던 크리스틴이 막판에 가서는 매우 능동적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기도 했다. 결국 이미 무덤에 묻혀있는 할머니를 찾아가 단추를 전해주고야 마는 장면에서 크리스틴의 모습은 어느 영화의 여전사 못지 않은 포스를 자랑하는데, 여기서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무력적으로 강인해서라기 보다는 심리적으로 분노에 차서 나타나는 행동들이기에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졌다(그런데 그러고나서는 갑자기 힘없이 버둥대는 모습도 재밌었다 ㅎ).

크리스틴 역을 맡은 알리슨 로먼은 개인적으로 <빅 피쉬>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이미지로 형상화되 남아있는 배우였는데, 적어도 한동안은 이 영화의 이미지로 남을 듯 하다. 잠시 그 빛나는 금발과 노란 드레스를 입었을 때는 슬쩍 <빅 피쉬>가 연상되기도 했을 정도.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가 결코 호락호락한 캐릭터가 아님이 분명할 텐데(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둘다) 알리슨 로먼은 관객이 그녀의 현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남자친구인 클레이 역의 저스틴 롱 역시 이 영화에 현실감을 주고 있는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으며, 짧지만 영매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 <바벨>의 아드리아나 바라자('바벨'에 비해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그 무서운 '가누시'부인 역할을 맡은(지금까지 리뷰에서 '할머니'라고 지칭했던;;;) 로나 라버의 연기는 그 무섭고 지저분한 분장들이 더해져 이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미지를 선사했다. 'You Shame Me'라는 대사가 얼마나 공포스럽게 들렸는지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며, 아마도 한 동안 틀니만 보면 그녀가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이블 데드>를 인상깊게 본 영화팬들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B급 호러영화의 수작이자, 샘 레이미의 호러를 오랜만에 만나볼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할 것이다. 아...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럽고 웃기기까지한 이 영화!


1. 극장에 외국인이 많아서 인지 제가 예전 <플래닛 테러>를 리뷰했을 때 썼던 것처럼 조금 소리내어 반응하고 환호하는 분위기가 펼쳐졌습니다. 이런 영화는 이런 분위기가 훨씬 어울리더군요 ㅎㅎ

2. 그 점보는 집에 들어갔을 때 TV에 고전 흑백영화가 나오고 있었는데 혹시 이 영화 아시는 분 계실지?

3. 은행에서 일하는 분 가운데 오늘 상환연장이나 대출 거절해준 분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요? ㄷㄷㄷ

4. 원래 imdb의 트리비아까지는 거의 살펴보는 편이 아닌데, 이 영화는 2번 내용이 있나 확인해보려 들어갔었는데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이 제법 있군요 (http://www.imdb.com/title/tt1127180/trivia)

5. 이 영화는 놀랍게도 (국내)15세 관람가입니다. 18세 관람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멋진 호러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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