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홍상수 감독의 작품 '하하하'를 보았다. 이 영화는 보기 전 부터 예고편을 보고서는 확 끌리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극중 조문경(김상경)이 왕성옥(문소리)에게 건내었던 '전 좋은 것만 봅니다 (보려 합니다)' 라는 한 마디였다. 이 대사는 예고편에 등장한 또 하나의 명대사, '십니다'와 더불어 볼 때 절로 웃게 되는 한 마디 였는데, 영화를 볼 때부터 무언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이 대사는 결국, '우리 사람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이 되진 말자' 라는 '생활의 발견'의 대사처럼, 보고나서 한참이나 뇌리를 맴도는 대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과연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홍상수의 '하하하' 속 인물들을 보면 허무맹랑할 정도로 순수하고 정직한 편이다. 리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마치 내가 너고, 너가 내가 된양 자신의 속 마음을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 중 핵심의 대사는 역시 '좋은 것만 봅니다' 다. 누구는 좋은 것만 보고 싶지 않겠느냐만, 이걸 대놓고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리 흔한 일, 흔한 관계에서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좋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나쁜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영화를 보고 난 가르침에 따르자면, 이것조차 좋은 것만 보지 못한 부족함의 산물이다), 일반적인 경우는 이 나쁜 것 때문에 좋은 것에 대해 그 어떠한 자신도, 확신도 갖기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내가 '나는 앞으로 좋은 것만 보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해도, 이 말을 뱉기전에는 '과연 이 사람이 이 말을 곡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줄까' 혹은 '좋은 것만 보는 것은 좋지만, 굳이 내가 앞서서 주창하고 나서서 상처투성이가 되어야 할까'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극중 김상경이 저 대사를 읊었을 때 겉으로는 웃을 지언정, 속으로는 '저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새삼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하니, 누군가가 '난 앞으로 좋은 것만 볼꺼에요' 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래 너는 그래라'라고 믿지 못한다던지, 이런 걸 나쁜 쪽으로 이용하려 드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왠만한 용기없이는 이런 순수한 주장을 펼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전 좋은 것만 봅니다'라는 주장에 조건으로는 반드시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에게서는 이런 조건이 성립한다. 그래서 모두들 주저 없이 나와 너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뒤끝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하하하'를 보고 있으면 마냥 'hahaha' 웃기는 어렵다. 저럴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현실한탄만 하고 있다면 '하하하'를 보고 난 보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세계와 인물, 인물들의 관계는 그저 웃으라고 재미있으라고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터. 그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좋은 것만 봅니다'로 돌아온다. 잘 생각해보자. 좋은 것만 보겠다던 극중 조문경에게는 '좋은 것만 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거의 없어보인다. 여기서 가능성을 엿보자면 누군가가 저렇게 두려움 없이 확신에 서서 이야기한다면 그 이야기에 한번 쯤은 귀를 기울여보게 된다. 그리고 '나도 한번 용기를 내어볼까?'하는 결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저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저도 좋은 것만 봅니다!'라고 확신에 차 바로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저도 좋은 것만 보려구요'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정도는 형성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메시지 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겁에 질려 좋은 것만 보려는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면 결국 홍상수 월드와 같은 현실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있게 '나는 좋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당신도 함께 해요' 라고 얘기를 시작해야, 맘 속으론 그러고 싶었던 사람들도 하나씩 말을 꺼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홍상수의 '하하하'는 이런 세상에 던지는 용기의 북돋음인 것이다.

'자, 한번 봐봐. 이렇게 다들 천역덕스럽게 이야기해도 아무렇지 않잖아.'
'다 같이 좋은 것만 보는 거야. 이런 세상이 결코 판타지만은 아니라고'

라고 말이다.


2010.05.13 pm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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