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奇跡, 2011)

크리스마스의 기적같은 영화



이 영화를 보기 전 나는 '2011년 올해의 영화'라는 타이틀로 올 한해 극장에서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 10작품을 선정하는 글을 완성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쓴지 겨우 이틀 만에 다시 수정해야만 할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나는 왜 잘 알만한 사람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올해가 가기 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성급하게 '올해의 영화'라는 타이틀의 글을 써버렸던 것일까. 지금와 생각하면 당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영화는 올해의 영화의 한 자리를 맡기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나를 울리고 떨리고 웃음짓고 들뜨게 만들었다.



ⓒ (주) 미로비젼. All rights reserved


'기적 (奇跡)'이라는 원제 답게 영화는 기적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접근방식으로 풀어간다. 부모로 인해 가고시마와 하카다에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와 살고 있는 형 코이치와 동생 류노스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코이치는 가족이 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가고시마의 화산이 폭발해 아무도 이곳에 살 수 없게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새로 개통한 신칸센 열차 '사쿠라'가 교차하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알게 되고 이 소원을 빌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친구들 소원의 이야기까지 영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동생이 류노스케와 그의 친구들 역시 형과의 만남을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역시 류노스케와 친구들의 소원도 이야기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영화의 초기 기획의도가 새로 개통한 신칸센의 홍보 영화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기적'을 통해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에 이은 자신의 세계관을 또 한 번 완벽하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전작들에 비해 희망적이며 더 따듯하고 더 풍성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여러가지 화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부모세대의 짐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고 오히려 어른들의 상처마저 아이들이 감싸안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를 느꼈고, 화산재가 날리는 마을과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모습을 연관지어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럴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겠다' 싶을 정도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기적'의 메시지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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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그의 대표작 '원더풀 라이프'의 인터뷰 형식을 다시금 가져왔다. 각자 돌아가며 자신의 소원을 얘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기적이라고 할 만큼 사적인 바램들이지만, 우리가 흔히 '어린 시절'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추억이자 감성이 더도 덜도 아닌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도 어린 시절 친한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멀리 여행을 다녀왔던 모험적인 기억이 있는데, 그 추억과 맞물려 그 때의 그 두근거림과 두려움 그리고 모험을 통해 조금 더 알게 된 '세계'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형제의 여정 가운데는 단순히 우연 만으로는 가장 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나는데, 보통 같았으면 너무 영화같아서 손발이 오그라들거나 너무 아이 같아서 유치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는 방식은 너무나 황홀했다. 아이에게 어른다운 성숙함을 무리하게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겪는 일과 고민들을 통해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 그리고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매일 돌아오는 집 앞 신호등과 횡단보도의 이미지, 두근거림을 안고 내려다본 지하철 역 아래의 풍경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코스모스들 그리고 열차와 열차가 교차되어 지나가던 그 아무렇지 않지만 기적과도 같았던 찰나의 순간까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쉽게 생각해보면 결국 기적이라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 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변에서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나는 코이치와 아이들이 '세계'를 깨닫기 전에 믿고 있던 신칸센 교차 순간 역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적'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장난스럽게도 국내 개봉 제목처럼 '진짜로 일어났을지도 모를' 기적에 대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기차길 건너편에 서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나, 영화의 마지막 죽은 강아지가 살아나기를 빌었던 아이의 걸음이 잠시 멈춘 뒤 다시 뛰어가는 장면 등을 통해서 말이다. 뭐랄까. 결국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진리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수하게 기적을 믿는 마음도 저버리고 싶지 않은 그의 넓은 마음이 느껴져 더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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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 먹었을 때는 더 다양한 주제들이 많았었다. 이렇게 저렇게 나름의 '썰'을 풀어가며 영화가 전해준 의미들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했었는데, 생각하면 할 수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가 담고 있는 감성이 전해준 인상이 깊었다. 극장을 나오며 느꼈던 그 행복감을 글로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에 비해 유머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절로 웃음짓게도 되지만, 역시나 그의 작품답게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진짜 왜인지 모르게 펑펑 울것만 같은 (사실상 운거나 다름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이 극장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 내내 들려오던 쿠루리의 음악 역시 이 행복함과 울컥함에 한 몫을 했다. 내가 이 작품에서 느꼈던 울컥함은 말로 표현하기는 좀 어려운데, 슬퍼서라기 보다는 행복해겨워서 에 더 가까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포착해 낸 기적같은 순간과 그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또 다른 기적은, 그 기적 속을 살아왔고 경험했던 관객으로서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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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만난 이 영화는 나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이 영화를 만들 때는 몰랐겠지만 그의 영화는 내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되었다.


1. 인디음악을 하는 아빠(오다기리 죠)의 음악 CD를 형에게 건네며 '인디 음악이라는게 뭐야?'라고 묻는 류노스케에게 코이치는 이렇게 답해요. '더 열심히 해야하는 음악이야'

2. 극중 형제로 나온 코이치와 류노스케는 실제로도 친형제더군요. 전문배우가 아닌 이 형제가 만들어내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기적같았어요. 코이치의 진지함과 누구나 행복하게 만드는 류노스케의 '밝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3. 쿠루리의 음악도 정말 좋았어요. 영화를 보고나서 계속 흥얼거렸고 지금도 계속 사운드트랙을 무한반복하는 중입니다 ㅠ (나는 왜 내한공연에 가지 못했나 ㅠㅠ)

4. 개인적으로는 일본여행 갔을 때 갔던 곳이 나와서 더 반가웠어요. 특히 영화 속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신칸센 '사쿠라'도 타봤기에 더 남달랐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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