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

사실 처음에는 <라디오 스타>라는 작품이 <왕의 남자>의 엄청난 성공에 힙입은
이준익 감독의 거품 가득한 영화일 줄로 생각했다.
사실 국내영화는 이런 경우가 많았고 특히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관객들의 기대치가 워낙에 높다보니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사실 이준익 감독이 단순히 <왕의 남자> 한 작품 만으로 얘기할 수 있는 감독은 물론 아니지만,
그의 이번 작품은 <왕의 남자>라는 타이틀을 태생적으로 거론할 수 밖에는 없을 영화였으리라.
 
하지만 감독 이준익은 이러한 기대를 자연스레 즐겨가면서 부담감을 떨쳐내며
전혀 다른 소박한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내놓았다.
 
줄거리도 사실상 특별할 것이 없는 잔잔한 드라마.
왕년에 대스타가 시골 촌 지역 방송국 라디오 DJ를 맡아
전혀 잘 될 것 같지 않았던 방송도 대박이 나고 대스타도 그 동안 미처 해보지 못했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다는 큰 줄거리.
 
뭐 요즘 한국 관객들이 특히나 기대하는 반전도 없고 엄청난 코미디도 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에는 부족했던 여운이 있었다.
 
말 그대로 여운.
<라디오 스타>로 인해 무언가 굉장한 화두에 대해 고민하거나 되새기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극장을 나오고 가끔 영화 포스터를 보게 될 때, 무언가 쓴 웃음 내지는
말 없이 살짝 미소짓게 되는 정도의 무엇.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후반부 박민수 역의 안성기가 짠 하고 최곤 앞에
나타났을 때 울컥하거나 감동이 북받치는 듯한 것은 없었지만,
그 전에 버스안에서 최곤에 돌아오라는 눈물의 방송을 들으며 아내의 돌아가라는 말에
입안 가득 든 김밥을 웅얼거리며 '나 김밥 장사할거야('팔거야'였나 --;)' 하는
대사가 백만배 더 슬프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 가장 큰 불안요소는 어쩌면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이긴 하지만, 사실 박중훈은 <투캅스>이후 비슷한 류의 코미디 연기가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될 만큼 <세이 예스>의 어색한 사이코 범죄자나
코믹사이에서 괜히 진지함까지 담으려 했던 <천군>에 이르기까지 점점 작품에서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잃어가고 있는 중이였고,
안성기 역시 연예인들의 성대모사에 주 소재가 될 뿐,
배우로서 연기가 뛰어났다고 생각되었던 최근의 영화는 사실 없었다.

그래서 두 배우의 연기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한간에서 <칠수와 만수>의 얘기가 다시 끄집어나오는 것 처럼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연기력에 상당한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영화이다.
앞서 언급했던 성대모사 투의 대사톤을 버리고 조금은 가볍고 오바스런 투의
캐릭터의 안성기와 왕년에 대스타로 거만한 최곤 역의 박중훈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자신들의 현 위치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된다.
 
특히 안성기 같은 배우가 갑자기 그간의 이미지를 벗고 확 다른 가벼운
캐릭터를 맡게 되면 몰입도에 있어서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인데, <라디오 스타>역시 초반에는 조금 적응안되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결국엔 동화되고 말 정도의 연기였다.
박중훈 역시, 첫 장면 무대 위에서 록 스타로서 열창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그간
그가 버라이어티 쇼에서 보여주었던 분장 립싱크 쇼가 떠올라 우스운 생각이 먼저
들었었지만, 나중엔 긴 머리나 록 스타로서의 복장이 그리 우습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사실 까메오 정도일줄 알았던 노브레인의 활약상은 단연 발군.
이스트 리버(동강)라는 밴드로 출연한 노브레인은 보컬 이상욱은 물론이요
다른 멤버들도 첫 출연치고는 상당히 물오른 연기를 선보이며 극의 재미를 선사했다.
사실 '넌 내게 반했어~'가 나올땐 사람들이 '아 저 노래..'하며 알아들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직도 그들을 모르고, 그저 재미있는 신인 연기자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좀 아쉽기도 했다 ㅋ
 
그리고 중국집 주방장으로 까메오 등장한 이준익 감독은
역시 <왕의 남자>로 매스컴을 많이 탄 탓인지 제법 많은 관객들이 알아보기도 ㅋ
 
<왕의 남자>처럼 엄청난 관심을 모으게 된 작품의 다음 작품으로서는
이 정도의 영화가 괜찮았다는 생각이다.
극 중 최곤 이라는 캐릭터 처럼, 왕년에 대스타였던 안성기, 박중훈 이라는
두 배우에게도 다시 한번 더 많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 / ashitaka

p.s/1. 김장훈의 연기는 사실상 홍경민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긴급조치19호>보다는
나아졌으나,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자연스럽지 못했던 대사처리로 아쉬움을 ㅋ
홍경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김국장 실에서 김국장에게 자신들 프로도 짤릴 판이라며
얘기를 건네던 직원은 홍경민의 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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