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따뚜이 (Ratatouille, 2007)


'픽사'라는 한 회사의 이름은, 어쩌면 모든 종류의 브랜드를 통틀어봐도
가장 신뢰가 가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난 개인적으로 픽사의 화려한 성공을 알렸던 <벅스 라이프>나 <토이 스토리> 등은
기술적인 면외에는 그리 놀라거나 감동받지 못했으나,
굳이 기술적인 면모만 따지더라도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그 몬스터들의 털의 표현은
그야말로 애니메이션 역사의 획을 그을 정도의 혁신적인 기술의 향상을 보여준 것이었으며,
<니모를 찾아서>의 경우도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어른 들도 흐뭇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 후 <카 (Cars)>가 so so였다고 보았을 때
최근 개봉한 <라따뚜이>는
단연코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픽사 애니메이션 가운데
기술적이나 작품적이나 가장 뛰어난 작품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들 외에 괴물, 장난감, 벌레, 물고기(혹자가 니모 얘기를 할 때, '아 그 생선나오는거'했을 때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던 적이 있다.... 니모보고 생선이라니!!!! -_-), 자동차 등 다양한 캐릭터로 이야기를 이끌었던 픽사는 이번에는 쥐를 주인공을 내세웠다.

쥐와 요리.

여기서 대충 분위기는 감잡을 수 있었다.
쥐가 요리를 하는데 인간이 탐탁치 않게 여길 것은 물론일 것이고,
하지만 그래도 그 역경을 이기고 인정받는 다는 것 정도가 되겠구나 했던 것이 기본적인 생각.

기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맞았던 것들도 있지만,
<라따뚜이>는 역시 스토리 텔링의 귀재들이 모인 집단답게(많은 이들이 픽사를 얘기할 때 기술적인 면을
강조해서 이야기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픽사가 여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보다
뛰어난 점은 바로 이 스토리텔링 능력, 즉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에 있다고 하겠다),

이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변주와 확장을 한 번에 성공시키며
어른들로 하여금 감동과 교훈까지 전달받게 만들고 있다.



영화가 처음 부터 강조하는 점은,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 라는 것.
즉 신분과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꿈은 꿀 수 있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인데.
이보다 더 뻔한 주제가 어디있으랴.

누구나 이 영화를 처음보면 시골 어느 외딴 집에서 음식이나 흠쳐먹곤 하지만,
제법 똑똑하고 후각에 능한 생쥐(레미)가 결국엔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끝나겠구나 싶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만, 2시간의 러닝 타임 동안 단 한시도 눈을 땔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구조와, 패러디, 너무나도 애니메이션 적인 장면들과 너무나도 영화적인 장면들을 동시에 만나게 되면서
과정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고, 더 나아가 결국에는 뻔한 진리를 다시금 새기게 되는 효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영화 속 생쥐인 레미는 얼핏 보면 그저 불가능을 꿈꾸는 하나의 캐릭터로 그려지기 쉽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에 놓여져있다.
단순히 자신이 생쥐라서 인간들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다기보단, 인간과 쥐의 관계가 얼마나
안좋은 관계인지를 미리 생각해봐야 한다.
레미의 아버지와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대로, 레미가 인간의 말을 듣고, 그들을 동경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일종의 '배신'의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못하니까 꿈꾸지마'가 아니라 '그건 꿈을 꾸워서도 안돼'상황인 것이다.
이건 기존의 영화에서 대부분 주인공이 처한 불리한 상황보다도
레미가 처한 상황이 훨씬 어려운 상황이라는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따뚜이>가 평범한 것을 벗어나 변주를 보여주는 순간에는 생쥐인 레미 말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표현된 '링귀니' 캐릭터에도 있는데, 실력도 없고
구스토의 친자식이라는 것 외에는 별로 내새울 것이 없던 그가, 천재 요리쥐(?)인 레미를 만나게 되어
갑자기 큰 관심과 인기를 끌게 되고, 대부분이 그러하듯 초심을 잃고 건방져 지게 된다.
일단 러닝타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링귀니가 타락한 뒤에 다시금 레미를 진심으로 찾게 되는
타이밍이 타 캐릭터들보다 훨씬 빠르다 --;

그리고 다른 영화 같았다면 이런 경우 계속해서 링귀니와 레미가 파트너쉽을 발휘해
기존 방식으로 승승장구 해갔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 케이스가 되었을 것이나
(즉 링귀니가 초심을 잃고 자신만만해져 잘못을 저지르는 일들의 분량이 길어졌을 것이고,
어떤 계기로 인해 링귀니가 정신을 차려서 레미에게 미안하다며 진심을 고백하는 것이
클라이맥스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 <라따뚜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다.

링귀니가 레미에게 미안해하며 화해를 요청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어쩌면 미친짓으로 보일(실제로 그렇게들 생각한 것처럼, 결국 구스토의 다른 요리사들은
돌아오지 않지 않았나.)진실을 모두에게 공개하게 된다.
여기서가 또 틀린데, 보통 영화 같으면 링귀니가 '사실 난 요리를 하나도 못하고, 그동안 요리한건 이 생쥐야'했다면 '그랬었구나'하며 '우리가 편견을 가졌었어' 하며 모두가 인정하는 헤피엔딩으로 끝났을 테지만,
<라따뚜이>의 경우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한편으론 어른스럽게 모두가 이 황당한 사실을 믿지 못하며
떠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그동안 누구보다도 인간을 적으로,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이야기해왔던
레미의 아버지가 주동이 되어 다른 생쥐 무리들이 먼저 마음을 열게 된다.
그 동안 인간과 레미를 오해했었다며 '우리는 가족인데' '기술이 없어도 열심히는 한다'는 모토로
포기했던 레미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게 된다.
이 부분은 한 편으론 가족애를 중시하는 너무도 뻔한 감동이 들긴 했지만(사실 이것만으로도 감동받았었다 --;)

그간 레미의 아버지가 인간의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이해했다'라는 레미 아버지의 말은, 어떤 대사들보다도 감동적인 대사들 중에 하나로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동족들을 무참히 죽인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했다'라는 것은 어쩌면 무엇보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달리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우월하고, 일종의 가해자 입장이었던(물론 쥐들도 인간들의 음식을 흠쳐먹곤 했으니 피해자라고만은 할 수 없으나 --;)인간들보다, 힘 없고 나약한 존재인 쥐들이 먼저 이해하고 깨우쳤다는 것,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보는 어른들에게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교훈외에 또 다른 교훈을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욱 의미심장했다.

아마도 보통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이라면 더더욱, 이런 결말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늦게라도 미안함을 깨달은 구스토 식당의 다른 요리사 직원들이 모두 돌아와서 구스토 식당이 다시금
전성기의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을 것이다 (보통 얘기 참 많이 한다 --;)
하지만 <라따뚜이>의 결말은 어떠한가.

결국 구스토 식당의 다른 직원들은 연인 사이였던 꼴레뜨 외에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구스토 식당은 결국 쥐가 들끓는 다는 소문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링귀니와 꼴레뜨는 구스토 식당을 떠나 자신들만의 식당을 차렸으며
더 놀라운 것은 이제 아예 쥐들이 요리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즉 피오나 공주가 마법이 풀려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놀라운 결말처럼, 이 경우도 인간이 되고 싶은 쥐가(꼭 되고 싶다기보단 요리가 쥐로서는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인간이 되는 것이 헤피엔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쥐'로서 계속 해나간다는 결말 때문에 훨씬 더 교훈적이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에 '라따뚜이'의 맛에 감동받은 안톤 이고의 신문 평을 듣고는 남다른 교훈을 또 받을 수 있었는데,
'평론가는 참 편하다, 남이 열심히 정성껏 만들어 놓은 음식을 그저 즐기고, 마음껏 폄하하기도,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뭐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뜻 --;;)

개인적으론 싫어하거나 인상적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리뷰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 말이 왠지
가슴 깊이 와닿은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참 편하다'라는 말처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비해 너무 단편적으로만, 한순간에 평가되는 것이 종종 아쉬울 때가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워낙에 내용에 감동받아서인지 기술적인 이야기가 전혀 거론이 안되었는데,
초반 천에서 하수구로 연결되며 빠져나오는 장면에서의 물의 질감 표현이나 생쥐들이 때로 등장했을 때의
표현 수준은, 정말 놀라움을 넘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림체는 분명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느낌이 나는 것이었음에도 최첨단의 기술이 이리도 완벽하게 녹아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준 애니메이션이었다.

이상한건 분명 얼굴이 인간처럼 살아움직이는 쥐였는데,
어느 순간은 너무 실사 쥐처럼 느껴질 정도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적인 요소와 현실적인 느낌이
완전히 공유하는 수준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사실 언제부턴가 애니메이션 작품을 리뷰 할때 이런 말들이 꼭 쓰이곤 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 라던지,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등등.

<라따뚜이>는 어린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들은 감동받는 그런 작품같다.
근래의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브래드 버드, 당신은 천재야!



글 / ashitaka

*** / 피터 오툴의 목소리 연기는, 정말 목소리 연기만으로도
이렇게 멋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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