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베이젼 (The Invasion, 2007)

(스포일러 있음)
이미 여러번 소개된 것과 같이 2007년작 <인베이젼>은 잭 피니의 고전 소설 <바디 스내처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잭 피니의 이 원작 소설은 이미 이 작품을 포함해 총 4번이나 리메이크가
되었는데, 돈 시겔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 (1956)>, 필립 카우프먼의 <우주의 침입자 (1978)>,
그리고 아벨 페라라의 <바디 에일리언 (1993)>이 그것이다. 잭 피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전의 3작품은
모두 각각 당시 미국의 사회적인 문제와 현상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작품인데, 이 작품 <인베이젼>역시
2007년 현재의 미국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전작들에 비해 깊이나 임팩트가 부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전작들과 비교해본다면 좀 더 깊은 성찰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좀 더 고어하고 액션을 강조한 작품이었으면 차라리 어땠을까 하는 바램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나쁘지는
않았던 괜찮은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정신과 의사인 캐롤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으로, 외계로 부터
온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점점 감염되어 감정을 잊게 되고 무리를 형성하면서, 그 속에서 바이러스와
감염자들로부터 벗어나 계속적으로 인간이기를 희망하는 캐롤의 고생담을 담고 있다.
이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의 직업인데, 주인공인 캐롤은 정신과 의사이고
남자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벤 (다니엘 크레이그)의 직업은 의사(혹은 연구원)이다.
이런 직업적 설정을 가지고 영화는 신체강탈의 소재를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세포에 관한 CG장면들이라던가 세포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이것이 어떻게 인간 DNA에 결합하여 반응하고,
면역이 있다는 등의 설정들은, 최근 관객들에 구미에 부합하는 설정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다. 시작부분에서는 상당히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이나, 특히 바이러스가 어떻게 퇴치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바이러스가 면역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방어체계가 아예 없는 바이러스다'라는 조금은 황당한 이론으로
단순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바이러스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시작부분에 바이러스 자체에 집중했던 비중을 감안한다면 좀 더 디테일한 설명과 해결이 있었으면 더 완성도가
높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이러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포'의 핵심은 무엇일까.
영화 속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 획일화가 되어진다.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 처럼 그들간에는
다툼이나 전쟁등도 없으며 시기나 질투 등 감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좋지 않는 결과들도 전혀 없는 세계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미스트>보다는 덜 하지만, 군중심리 또한 엿볼 수 있는데, 빠른 수로 다수가 되어 버린
감염자 무리들은 점점 소수가 되어 가는 정상적인 인간들에게 함께 하기를 강요 혹은 권유하며, 더 많은 수를
그들의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런 과정속에서 극 중 캐롤의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결국은 가장
믿었던 벤 마저 그들과 한 패가 되버린 후 코너에 몰린 캐롤에게 함께하자고 권유를 하게되자, 캐롤은 그러면
올리버(아들)는 어떻게 하냐며 되 묻는다. 극중에서 그녀의 아들인 올리버는 면역자로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필요가 없는 존재. 즉 캐롤의 저 대사는, 올리버만 함께 할 수 있다면
미친 다수 속에서 멀쩡한 소수로 공포를 느끼며 사느니, 차라리 다같이 함께 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심증을 갖게 한다. 특히나 영화 속 감염자들의 모습은 다른 영화의 좀비들처럼 인간을 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말대로 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집단이다. 그래서 캐롤은 아들도 함께 할 수 있거나
아들이 없었다면 이런 공포를 택하느니 차라리 그들 처럼 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공포의 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수 속에서 소수로 남는 공포.
부조리 속에서 홀로 정의를 외치느니, 그냥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나 하나쯤 변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계의 공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덭붙여 9.11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공포 영화는 이를 반영하지 않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9.11이후 미국 사회가 느끼는 공포.
즉 주변 인물들도 믿을 수 없게 되고, 잠들지 말라(Don't Sleep)는 영화 속 문구 처럼 항상 불안해 떨고 있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원작을 소재로한 다른 작품들이 그랬듯이 이 영화도 정치적인 느낌을 쉽게 받을 수가 있다.
바이러스의 감염된 자들이 원하는 세상과 가치관은 어찌보면 사회주의와 동일시 할 수 있다.
모두가 다 평등하고 다툼이 없고 '하나'가 되는 세계. 민주주의를 어느 나라들 보다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인들에게 사회주의의 강요는 공포가 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캐롤의 대사 외에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사가 또 등장하는데, 마지막에 바이러스가 다 퇴치되었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스티븐(제프리 라이트)은 '좋든 싫든 이제 다시 인간이 되었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이 대사는 매우 중요한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 이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되는 가치관으로
보기가 쉽지 않으며,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체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음으로, 스스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여기는 미국에게 '과연 미국이 얘기하는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그들이 악이라 일컫는 사회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절리 늘어놓았지만, 영화에서는 이렇게 생각해볼 만한 의문은 아주 살짝 제시했을 뿐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급작스러운 마무리와 더불어 스릴러나 액션면에서도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큼 임팩트를 주고 있지 못하다. 감염자들이 차에 달라 붙어 위협하는 장면은
무섭기는 하지만, 최근 공포 영화들이 주는 공포에 비하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무언가 생각할 만한 거리를 제공하는 면에서도 더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에서 유난히도 미모가 돋보이는데, 조디 포스터가 최근 영화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톱으로 나서서 어려움을 해쳐나가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극적인 면이 조금 부족한 편이라 오히려 미모가
더욱 빛나지 않았나 싶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확실히 분위기만은 확실히 잡아주고 있지만,
나중엔 그도 변할 것이라는 너무 자명한 스토리 탓에 그가 변했을 때 놀라거나 할 수는 없었으며,
캐릭터 자체가 너무 밋밋한 분위기라 그의 재능을 맘껏 펼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인베이젼>은 태생적으로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실망감을 안긴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자체로서도 조금은 밋밋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며
니콜 키드먼, 다니엘 크레이그의 이름을 기대하고 영화를 관람한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둘이 또 한번 주연을 맡은 <황금 나침반>역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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