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관 (Chacun Son Cinema Ou Ce Petit Coup Au Coeur Quand La Lumiere S'Eteint Et Que Le Film Commence, 2007)
그들이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는 이유


미처 이름을 다 거론하기에도 벅찬(아마 이런 수식어를 썼던 가운데 가장 벅찬 경우가 이번이 아닐까 싶다),
무려 35명의 거장들이 만들어낸 깐느 영화제 60주년 기념작 <그들 각자의 영화관>.
지금까지도 가끔 여러 감독들이 하나의 주제에 관해 일종의 옴니버스나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내는
영화들은 제법 있어왔지만, 이번 영화처럼 각 에피소드마다 3분 내외의 분량과 호흡으로 여러 명의 감독의
작품을 한꺼번에 담아낸 경우는 흔치 않은 듯 하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알게 된 뒤로부터 상당한 기대작이었는데, 에피소드라는 한정된 시간과 호흡을 가지고
과연 얼마나 그들만의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하게 하는 점이었는데,
놀랍게도, 과연 명불허전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영화에 관해서는 장인이라고 불러도 좋은 서른 명이 넘는
감독들은, 짧은 시간 내에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물론, 자신 특유의 색깔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정말 놀라운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조금씩 스포일러 있음)

각 에피소드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벅차기도 하고, 기억하는데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인상깊었던 작품들에 대해 짧게 나마 정리해 보자면.

일단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 <어느 좋은 날>은 다케시 특유의 유쾌함과 따뜻함이 함께 묻어나는 에피소드 였다.
특히나 자신이 직접 출연하기도 해,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그의 모습을 보게 된 터라 더욱 반가웠다
(다케시 외에도 감독이 직접 출연하는 에피소드가 많다)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어둠 속의 그들>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을 바탕으로 이를 상영하는
극장에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는데, 마지막에 코카콜라 등 상업적인 광고판들과 펠리니의 <8 1/2>의 포스터가
공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난니 모레띠 감독의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일기>에서는 소박하면서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고, 그가 얘기하는 영화들에 대한 나의 추억도 되짚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으며,
허우 샤오시엔의 <전희 영화관>은, 딱 한 장면, 딱 한 장면 만으로도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추억을
전달할 수 있는지 그의 재능을 다시 한번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러 편의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노라면, 작품이 끝날 때마다 감독의 이름이 등장할 때, '맞아' '역시'해가며
속으로나마 환호를 보내게 되었었는데, 그 중 최고의 환호이자,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애나>를 꼽겠다. 사실 이냐리투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이야기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뻔한 신파에 가깝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이를 보고 뻔하다거나,
쉽게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냐리투의 놀라운 재능이라 하겠다. 이냐리투 감독은 애초에 이야기를
만들때 그 대상에 대해서, 그 입장에서 서서 치밀하게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화법은 결코 가볍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에피소드가 끝나고 그의 이름이 뜨자, 정말 더 감동이 몰려오더라.

앞서 말한 것 처럼, 짧은 러닝타임에도 워낙에 각 감독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잘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에,
장면이나 분위기만 봐도 '누구겠거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왕가위와 장예모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아니었나 싶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소박한 풍경을 담은 장예모와 자신 특유의 영상미를
대놓고 표현한(폰트마저 최근 개봉했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떠올리게 한다)왕가위 감독의 작품들도
인상적이었다. 올리비에 아싸야스 감독의 <아이러니>도 아주 짧은 에피소드였지만, 거리의 분위기나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에서, 바로 그 임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충격적이었던 라스 폰 트리에의 <그 남자의 직업>과 역시나 이름이 등장했을 때 '역시'했었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최후의 극장에서 자살한 마지막 유태인>.
갈색 곱슬 머리 미소년이 등장했을 때 부터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했던 구스 반 산트의 <첫 키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로만 폴란스키의 <에로틱 영화 보기>. 아마도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최고의 대사는 폴란스키의 작품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
월터 살레스의 <깐느에서 8,944km 떨어진 마을>은 브라질의 어느 극장 앞에서, 흥겹게 노래하며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분위기상 여기서 영화가 끝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

마지막은 켄 로치의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사실 각 에피소드가 너무도 짧기 때문에 자세하게 리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도 없고, 하기도 힘든 듯 하다.
거장들이 풀어놓은 자신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영화와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

왠지 애틋해지기도 하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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