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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Buda As Sharm Foru Rikht, 2007)
남겨진 그들의 참혹한 현실


이 작품은 <칸다하르>를 통해 2001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딸인 하나 마흐말바프의 작품이다. 일단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 마흐말바프의 나이가 겨우 18세라는
점인데, 10살도 안된 아주 어린 나이때 부터 영화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십대 소녀가 만든 작품이라고
믿기에는, 은유의 표현과 방식이 아주 매끄럽고 만족스러운 편이다.
국내에 개봉한 제목은 '학교 가는 길'이지만 본래 제목은 <부처상은 수치심으로 붕괴되었다 Buddha Collapsed out of Shame>인데, 영화의 표면적인 내용 상이나 <천국의 아이들>의 대중성에 기댄 홍보전략으로 보았을
때에 '학교 가는 길'이란 제목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영화가 직접적이지 않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어쩌면 이런 방식이 가장 직접적일지도 모르겠다) 은유의 화법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제인 '부처상은 수치심으로 붕괴되었다'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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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굴집에서 살고 있는 박타이는 학교에 가고 싶지만, 집에는 돌봐야하는
갓난 동생이 있고, 공책과 연필도 없어서 남들 다 가는 학교가기가 쉽지가 않다. 공책이 있으면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에 박타이는 돈을 얻기 위해 엄마를 찾아나선다. 갈라지듯 절벽에 가까운 구멍들이 많은 바위산 위에서
'엄마 어디있어요?' '엄마 나 무서워요'라고 애타게 찾아보지만 엄마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달걀을 팔면 공책을 살 돈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박타이는 달걀 네 알을 작은 손에 꼭 쥐고서,
집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공책을 사서 학교에 가게 되지만, 그렇게 고대하던 학교에 가게 되었음에도
박타이가 꿈꾸던 학교의 모습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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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건 아이들의 눈과 그네들의 상황으로 본 현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이었다.
탈레반이 폭파한 석불이 있는 동굴 집 주변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단순히 한 편에 대해 적대적이 되었다기 보다는, 미군에게도 탈레반에게도 똑같이 적대적이 되어버린
아이스럽지 않은 이른바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탈레반이 납치한 사람들에게 씌우던 종이 봉투 가면은,
그들의 전쟁놀이에서도 그대로 등장하며, 비록 나무로 만든 가짜 총이고 입으로 소리내는 총일 뿐이지만,
어린 소년들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는 그야말로 살벌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전쟁놀이'를 하고 있지만, 납치하고, 돌로 쳐죽여 처형하자라는 말이 나오고,
함정을 파놓고 상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놀이가 아이의 순수함이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이미 너무 골이 깊어져버린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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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선 어른의 존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공책 사려고 그렇게 엄마를 찾았건만 엄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남자아이들만을 가르치던 선생님도 박타이의 간절한 바램을 끝내 거부하였으며, 달걀을 팔기 위해
나선 거리의 어른들도 어린 소녀의 사연에 별 다른 관심없이 저마다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만을 따지고 있으며,
마침내 가게 된 학교에서의 선생님도 박타이의 존재를 한참동안이나 알아채지 못한데다가, 알게 된 뒤엔
매몰차게 박타이를 내쫓고야 만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러간 경찰 조차 자신은 치안담당이 아니라 교통담당이라며
어린 소녀의 도움을 역시 무시하고 만다(이 장면은 공권력, 혹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비꼬고 있다).

전쟁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탈레반이라며 미국에 적대적인 듯 하지만,
나중에는 테러범을 처단한다며 박타이를 쫓는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느 한 편의 복수에 대한
적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와는 무관하게 적대감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프카니스탄의 역사와 지금 남겨진 현실에 대한 섬뜩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탈레반도 미국도 처음에는 서로 자신들의 구실을 위해 이들을 구해준다는 명목으로 찾아왔지만,
결국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거나 구실이 될만한 것들이 사라진 뒤에는 아무도 이들을 신경쓰지 않는,
즉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에게 도와준답시고 더 큰 상처만을 남기고 떠나버린
냉혹한 그들의 남겨진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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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인 어린 소녀 박타이는 어떻게보면 아주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전쟁으로 희망이 사라지다시피한 그곳에서도 전쟁에 상처를 거의 받지 않은(직접적으로, 혹은 가치관
형성에 있어서)존재로서 의미가 있는데, 박타이가 처음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과
학교에 가려는 목적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였고, 그 이야기가 나무 아래서 자는 남자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 하다. 나무 아래서 잠자던 남자위로 호두가 떨어졌는데, 그 남자가
만약에 호박이 떨어졌으면 큰일날 뻔했다면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는 이 이야기는, 어쩌면 긍정적인 마인드에
관한 아주 희망적인 대표적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긍정적인 이야기를 더 배우기위해,
학교를 가고 싶어하던 박타이가, 남자아이들의 전쟁놀이에 의해 쫓기고 공격 당하면서도 그저
'난 장난 같이 하기 싫어'라며 끝내 장난으로만 여겼던 박타이가 결국에 마지막에 가서는 이 아이들에
전쟁놀이 장단에 맞춰 죽은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희망 자체가 사라져버린 참혹한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무섭게 은유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영화의 원제인 '부처상은 수치심으로 붕괴되었다'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그 전에는 아무도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고통받는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가,
탈레반의 불상 폭파라는 사건만, 그것도 오랜 문화유산이 폭파된다는 그 사실 자체에만 세상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비춰보면, '부처상은 수치심으로 붕괴되었다'라는 말이 얼마나 참혹한 그들의 현실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척 해야만 널 놔줄거야'라는 압바스의 말은 그래서 더욱 더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다.




*. 박타이 역할을 맡은 소녀가 bjork 어린시절 모습과 많이 닮아서 겹쳐보이기도 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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