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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버스 (Shortbus, 2006)
위로의 커뮤니케이션


예전에 영화제에서 볼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때도 여차저차하다가 보질 못했었는데,
이번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마침 존 카메론 미첼의 특별전을 하고 있어서, 졸린 눈을 비비고 마지막 날인 오늘에야 겨우 관람할 수 있었다. 일단 놀랐던 것은 평일 낮 1시 영화인데, 사실상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극장을 찾은 것만 봐도, 존 카메론 미첼의 최근 내한과 맞물려 국내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많은 수요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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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등급외로 분류된 이 영화는 볼거리(?) 때문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켰었는데, 이런 논란도 그저 논란이겠지 하고 별 생각없이 영화를 보게 된 나로서는, 사실상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이런 면에 있어서 어떠한 편견도 없는 편이지만, 여기서 문화적 충격이란 이런 수위의 영화가 어찌됐든간에 국내 극장에서 상영이 가능한 현재의 현실에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성기 노출 정도가 아니라 실제 성교 장면이라던가 동성애, 집단 성교 등 파격적인 장면들이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드윅>을 인상깊게 본 이들이라면 이러한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가 되어 있는 상태라 극장을 뛰쳐나갈 정도로 놀라지는 않겠지만, 정말 정보 없이 보게 된다면 큰 충격을 받을 만한 장면과 설정들이 가득했다.

근데 중요한건 예술이나 외설이냐를 논하기 이전에, 이 영화에서 위에 언급한 선정적인 요소들은 주제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저 '안경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처럼 약간의 옵션과 취향 정도로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롯해 성적으로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들을 이야기 할때, 단지 '그들'의 영화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많지만, 사실 이런 영화들을 자세히 보면 논란이 되는 그것을 말하기 위한 영화는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종의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감에 있어서 하나의 영화적 조건으로 작용할 뿐이며, 소수자의 입장으로 보여지지만 결국은 모든 조건을 초월한 인간 본연의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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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버스>역시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사실상 충격적인 장면들 때문에 살짝 어지러웠던 것도 있었지만, 점점 영화가 진행되면서 보이는 것보다는 하려고하는 메시지에 자연스레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자극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야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가 계속될 수록, 머리로는 '야하다'는 생각이 조금 남아있을 지언정, 가슴으로는 눈으로 보이는 장면에서 전혀 야하다거나 선정적인 느낌을 차차 잊게 되었다.

점점 인물들이 처한 상처받고 고단하고 힘겨운 삶에 본질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선정적인 장면들은 방식의 차이일 뿐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여겨질 수 밖에는 없었다. <헤드윅>도 그러하였지만, 이 영화 <숏버스>는 좀 더 인간 본연의 상처를 위로하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였다. 아마도 전작보다 훨씬 이른바 도를 넘어간 선정성으로 치장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부러 표면적으로는 선정적인 컨셉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본인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겉만 보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보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이른바 '포르노'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In the End' 시퀀스는 마치 <매그놀리아>이 'Wise Up'이 연상될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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