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은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흔치 않은 스웨덴 영화였습니다.
시사회를 통한 평론가들의 별점 평가에서 대부분 만점에 가까운 찬사를 받기도 했고, 많은 영화팬들이 평점을 비교할 때
많이 찾는 사이트 중 하나인 로튼토마토에서 100점 만점을 기록했다는 말들은, 이 영화가 헐리웃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평가들이었습니다. 특히나 로튼토마토 100점 만점이라는 것은 그 '신선도'가 신선하다 못해
생소하다는 것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평가들이 결코 크게 오버된 것들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더군요.
알려졌다시피 <렛 미 인>은 뱀파이어 소녀(여기엔 소녀라고 썼지만 이후에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와 따돌림 당하는
인간 소년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는데, 이 둘이 서로에게 표현하는 대사나 몸짓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이 둘을 둘러싸고 있는 스웨덴 북부 도시의 눈덮인 고요한 풍광이 또한 너무 아름답더군요.
앞으로는 스포일러가 가득 담긴 글이 될테니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서는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수작이었으며, 아마도 <판의 미로>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장면과 캐릭터의 표정들이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될 것 같네요.



(이 후로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과감히 맨 마지막 문단으로
이동해 주세요~)





12살 소년인 주인공 오스칼은 이혼한 엄마와 둘이 살고 있고, 아버지와는 가끔 만나며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이른바 '왕따' 소년입니다. 대부분의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의 특징처럼 오스칼 역시 계속 괴롭힘을
당하긴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앞에서는 반항하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집 앞 정글짐 앞에서나 나무에 대고 칼로 자신을 괴롭힌
친구를 상상하며 소심하게 욕구를 분출하는 외로운 소년이죠.
이 외로운 소년의 옆 집에 어느날 누군가 이사를 오게 됩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이사온 이엘리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눈이 깊게 덮힌 추운 날씨임에도 맨발과 반팔 차림으로 나타난 이엘리와 오스칼은 조금씩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따돌림 당하고 친구 하나 없이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던 오스칼은,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이엘리 이지만 처음으로 자신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서 받아들이고 빠르게 이엘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엘리 역시 뱀파이어로서
아버지로 보이는 (계속해서 '아버지로 보이는'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극중에서 이 인물에 대한 명확한 묘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원작을 보니 성도착자에 가깝게 그려졌다고 하는데, 영화에서 역시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약간
애정 관계에 있는 듯도 하고, 100% 명확하지는 않거든요;;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이 남자 역시 한 때는 오스칼 같은 소년이었고, 오스칼 역시 미래에는 이 남자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남자가 인간들을 죽이고
가져오는 피로 계속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외로운 삶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나눌 만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오스칼에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되구요. 이렇게 지금까지 외로운 삶 속에 놓여있던 이 두 존재는, 처음으로 서로를
나눌 만한 존재가 등장했다는 생각에 그 어느 친구들간의 우정이나, 그 어느 연인들 간의 애정보다도,
서로에게 헌신적인 존재가 되려합니다.




여기서 이엘리가 과연 남성인가 여성인가, 혹은 중성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아무래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일부 대사를
통해 '소녀'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는 이 둘의 관계를 단순히 남녀 간의
로맨스로만 본다면 영화를 반 밖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특히 오스칼이 이엘리는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단순히 '여자친구'로 의식했다기 보다는(물론 대사에는 '여자친구가 되어줄래?'가 있긴 하지만 말이죠),
단순한 우정이나 사랑을 초월한, 서로간의 존재로서 존재를 느끼고 의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됩니다.

이엘리 역시 처음에는 단순히 오스칼이 '여자친구'이기만을 원하는 것 같아 '여자친구'가 되려하지 않지만, 오스칼이 말하는
'여자친구'가 되어도 지금의 관계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다는 말을 듣고는 오스칼이 원하는 '여자친구'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죠.
사실 이엘리가 오스칼에게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들키게 된 이후에, 오스칼에 행동들은 약간은 클리셰에 가까운 행동들을
취하게 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스칼이 12세 소년이라는 점에서 아직 불완전한 소년의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뱀파이어라는 것 까지는 알지 못했던 오스칼은,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잠깐 놀라긴 하지만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무관심과 외로움을 느낀 다음에는 바로 이엘리에게 달려가게 되죠.
이 이후에 초대받지 못한채 오스칼에 방에 들어오게 된 이엘리가 온몸으로 피를 쏟아내는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걸
보게 되면서, 오스칼 역시 완전히 이엘리의 존재를(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더 이상 크게 중요하게 되지 않은거죠)
받아들이게 되죠. 이렇게 외롭게 지내던 두 아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형성해 가는 이야기를
영화는 참으로 아름답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해 냅니다. 여기에는 그들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약간에 몫을 한 것 같구요. 스웨덴어가 주는 발음의 느낌도 이 이야기를 더욱 동화스럽고 신비스럽게 만드는 것 같네요.




이 영화는 뱀파이어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뱀파이어 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도 제법 여러 번 등장합니다. 특히 병원 벽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이라던가, 이엘리에게 물린
여자가 결국엔 햇빛에 노출되어 불에 타 죽고 마는 장면, 그리고 높은 곳에서 뚝뚝 떨어져서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는
장면 등도 뱀파이어라는 인물에 특성에 맞는, 즉 과도하지 않으면서도(이 영화가 본격적인 뱀파이어 영화로 보기는 조금
힘들테니 말이죠. 그래서 더 좋았지만요;), 뱀파이어의 특성은 잘 살리고 있는 정도로 장면의 묘사들이 이루어진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더욱 슬픈 분위기로 흐르거나, 가끔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이끌어가도록 만드는 것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영화는 음악이 전혀 없다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멋진 풍광과 절제된
대사 만으로도 분위기를 구성할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확실히 음악이 좀 더 극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긴 합니다.
특히 공포스러운 부분에서는 음악이 상당히 공포스러운 장면이 곧 나올것이다 라는 암시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15세 관람가여서 그런것인지, 관객들에게 미리 준비하라는 사인을 계속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이나 마지막에도 흐르던 그 음악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판의 미로>에서 등장했던 그 테마 음악처럼
그 음악을 듣게 되면 오스칼과 이엘리를 자연스레 떠올릴 만큼, 시종일관 슬픈 사랑이야기를 잔잔하게 강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렛 미 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단 한번 만이라도 내가 되어봐'라는 대사처럼,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영화가 진행,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마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소년.소녀가 아니라 어른들이었다면 아마도 뱀파이어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인간이 되려하고,
인간은 사랑하는 뱀파이어를 위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려고 했었겠지만,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오스칼과
이엘리에게는 이런 복잡한 계산이 아예 없었던 것이죠.
이엘리는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뱀파이어로서의 모습을 오스칼이 바로 보는 앞에서 노출하기도 했고,
오스칼 역시 이런 이엘리에 모습에 어른만큼 크게 놀라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는 거죠. 아마도 어른들이었다면
내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 나를 더이상 만나지 않으려 하겠지 라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상당한 시간과 고민이 수반되었겠지만, 이엘리는 아주 순수하게 '그래, 오스칼을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나의 진정한 모습도
다 이해해주겠지'하는 단순하지만 '올바른'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런 마음이 결국은 오스칼에게도 진심으로 통하게 된 것이구요.
어느 한 편만 이런 순수함을 갖고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로 끝이 나버렸겠지만, 둘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렛 미 인>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말들이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분위기 상으로는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슬프다'라고 생각하는 건 제 3자의 시각일 뿐, 오스칼과 이엘리는 계속 함께 하게 되었으니
'행복한'이야기라고 해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라는게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여기에 '그렇다면 이엘리의 생존을 위해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 그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고
묻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는 끝이 없어요 --; <렛 미 인>은 여기에 포인트를 준 영화는 아니니깐요;;;).




벌써부터 <렛 미 인>의 헐리웃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오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아마도 헐리웃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더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감수성은 절대 다 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더 많은 관객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언정,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이 남긴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죠.

스웨덴의 눈 덮인 밤의 정취는 공포스럽기 보다는 참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느껴지더군요(물론 이 영화가 본격적인 공포
영화였다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수영장 씬과 검은 밤하늘에 눈발이 휘날리는 장면들은
영화적으로도 매우 멋진 장면이었던 것 같구요(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상당히 멋진 장면과 구도가 등장합니다).

개봉관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더 많은 분들이 이 신선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스웨덴 학교는 참 부럽더군요. 수업시간에 톨킨을 읽어주다니(빌보가 탈출했다고 한걸로 봐서는 '반지의 제왕'보다는
   '호빗'인 것 같더군요).

2. 고양이들의 성내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CG가 사용된 것 같더군요. 좀 티가 나긴 하더라는;

3. 오스칼에 그 표정과 빛나는 금발 때문에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가 연상되기도.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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