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란 시간은 참 길었다.
처음 회사를 관둘 때만 해도 이렇게 까지 오랫동안 백수로서의 삶을 영유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이 어렵다는 시기에 1년 동안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래도 회사를 관둘 때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간 8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
매일 출근하는 비직장인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조리 해보리라는 포부가 있었고,
아마도 내 인생에서 이런 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반 기대반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이 시간 동안, 그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라도 더 해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너무 해보고 싶었던 것들. 회사를 다닐때는 가끔 외근이나 점심시간에 외출을 하게 되면,
커피숍이나 거리를 다니는 젊은 또래의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 시간에
놀고 있을까? 전부 백수인가? 하며 의문과 동경을 동시에 했었던 때가 있었는데,
내가 바로 그 동경의 대상이 되어보았다.
대낮에 까페에가서 차를 마시며 책도 읽어보고(노트북이 없어서 까페에서 커피마시며 노트북 하는 미션을 결국
수행하지 못했다), 홍대나 광화문, 종로 거리를 대낮에 거닐어 보았으며, 한적한 시간대에 좋아하는 극장에 들러
작은 영화들을 많이도 관람했었고, 직장인은 도저히 갈 수 없는 시간대에 진행되는 행사나 상영회, GV 등에도
참가해 보았다. 그리고 오전시간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늦잠을 즐겼으며, 3시 반에나 시작하는
챔피언스 리그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이게 제일 아쉽다 ㅠㅠ).


이런 일이 한 편으론 그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더이상 이런 일들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터널을 지나 드디어 좋은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바로 내일(새벽이니 오늘이 되겠다) 아침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마치 소풍가는 어린이 처럼 들 떠있기도 하고, 한 편으론 아직 잘 실감이 나질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년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동안 애초에 의도했던 것처럼, 그 시간만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오며,
어찌보면 힘들기만 할 수도 있었던 시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잠자리에 들기전 마지막 걱정이라면, 과연 한동안 오전 시간에 살아있던 적이 없던 내가
이 생활 패턴을 단번에 뒤집고, 알람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가 하는 것.
그 뿐이다.

.
.
.

저, 취직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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