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 (Bolt, 2008)
트루먼 쇼의 후속편 혹은 진행형?

월트디즈니의 신작인 <볼트>는 애초부터 경쟁사인 픽사와 드림웍스의 작품들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픽사는 <월-E>로, 드림웍스는 <쿵푸팬더>로 각각 최고의 히트작을 근래 선보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월트디즈니의 신작에 거는 기대는 클 수 밖에는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론 같은 이유로 기대가 적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픽사의 존 라세터가 총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나, 스틸컷들로 엿볼 수 있었던 3D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교 대상들을 제외하고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디즈니스러운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 여기서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를 가지고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를 논하려고 하면 너무 얘기가 길어질 듯 하니 간단하게만 얘기해보자면, 월트디즈니는 픽사나 드림웍스의 성공을
부러워해 그들처럼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 만의 장점을(그게 혹자들에게는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더라도)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편이 월트디즈니의 옛 명성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이런 좋은 예로 지난해 초 개봉했었던 <마법에 걸린 사랑>을
들 수 있겠다. 자신들 만이 가진 히스토리와 장점을 부각시켜 기존의 스토리텔링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던가,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조금씩 가미하는 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는 것이, 자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좋은 옷을 애써 입는 것 보다는
훨씬 낳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볼트>는 약간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작품일 듯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3D 기술력은
경쟁사들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놀랍게 성장했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아주 고전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부터 두 단락에는 영화 본편에 대한 내용과 영화 <트루먼 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볼트>의 이야기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를 바로 연상시킨다.TV드라마 속 슈퍼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개 '볼트'는
촬영장 내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TV 속 슈퍼독 캐릭터를 보이는 그대로 믿고 있는 또 다른 '트루먼'이다.
악당인 '녹색눈'으로부터 주인이자 친구인 '페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밖에는 없는 볼트는, TV드라마의 내용상 페니가
녹색눈에게 납치되게 되자 세트장내 컨테이너를 박차고 페니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 속에서 볼트는 우연히 촬영장
밖은 물론 이곳이 위치한 헐리우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동부로 옮겨지게 되고, 처음으로 가상 현실 공간을 벗어나 현실 공간에
놓여진 볼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TV쇼라는 가상현실에 이것이 가상현실인 줄 홀로 모르는 주인공이 놓여있다는 점은 <트루먼 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트루먼은 가상현실 속에서 이를 깨닫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볼트는 우연한 기회에 가상현실을 벗어나게되,
현실 속에서 자신이 그 동안 겪었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겠다.
그러니까 한편으론 촬영장 문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트루먼 쇼>의 후속편 격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중에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음으로 여전히 <트루먼 쇼>와 동일선상에 놓여진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렇게 보면 두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잘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루먼 쇼>의 경우 평생을 가상현실 속에서 살았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극적으로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고 결국 세트장 문을
박차고 나서면서 '사람들의 트루먼'이 아닌 '나 스스로의 트루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볼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볼트에게는 자신의 지나온 삶이 가상현실 임을 알아차린 뒤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없다.
볼트에겐 바로 '페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페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페니만은 진짜 '현실'일 것이라는 강한 믿음만이 볼트가 힘든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주원동력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와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지만, <볼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디즈니다웠다고 생각된다.
가상현실=악당 이라는 설정 속에서도 희망과 빛을 대변하는 페니의 존재는, 이 영화를 이야기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만약 정말로 가상현실=악당 이었다면 <트루먼 쇼>의 경우처럼 탈출 하는 것이 곧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도 그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는 트루먼을 안타깝게 여긴 실비아라는 캐릭터가 존재하긴
한다) 페니가 있었기에 <볼트>의 엔딩은 <트루먼 쇼>와는 다른 방향으로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볼트가 여정 중에 그 동안 자신의 삶이 가상현실임을 깨닫고 고양이 친구인 '미튼스'에게 평범한
강아지들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는 부분이데, 얼핏보면 이 부분이 마치 <월-E>에서 이브가 자신이 정지되어 있을 동안
월-E가 했던 일들을 영상 자료로 후에 보게 되면서 애틋해 하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이 보통 강아지들의 삶으로 일컬어진 일련의 이들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디즈니의
스토리텔링에 비판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겠다.

'원래 개들은 이렇게 살아' 하면서 보여주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줄기차게 얘기했던 페니와 볼트 간의 '친구'관계를 떠올려
봤을 때(이 영화에서는 단 한번도 '주인'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친구'에 더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주인'과의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아지에게까지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줄기차게 '주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계속 '친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반려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들 중 <우리 개 이야기>의 경우를 비춰봤을 때 <볼트>에서 이야기하는
동물과 인간의 친구관계란 어차피 주종관계의 또 다른 이름밖에는 되지 않는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비판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했지만 반려동물로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모두 다 키워봤던,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다시 키우고 싶은 사람으로서 <볼트>가 주는 뻔한 감동적 장면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독인 바이론 하워드와 크리스 윌리엄스를 비롯해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
강아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기존 강아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들에서는 현실 속
강아지의 움직임들과는 사뭇 다른 '영화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영화 속 '볼트'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정말 실제 살아있는 강아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했다.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3D 애니메이션 기술력
보다도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더더욱 이 작품이 실감났던 것 같다. 굉장히 미세할 수 있지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던 강아지만의 작은 움직임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고, 관절의 움직임들도 상당히 오랜 시간 연구한
티가 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고양이 캐릭터인 '미튼스'와 햄스터 '라이노'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특히 '라이노'는 <볼트>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라이노가 보여주는 오타쿠적인 설정도 재미있었고, 볼을 이용한 움직임과 유머스런 장면들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튼스'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울컥했었는데, 볼트가 주인공이라 어쩔 수
없긴 했겠지만 미튼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다뤄줬어도 크게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튼스가 주인공
이었다면 주인의 무책임함, 그야말로 반려동물을 그저 '애완동물'로만 여기는 인간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볼트가 주인공이니 여기까지 다룰 수는 없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삶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미튼스의 표정에서는 얼마전 한국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보았던 한 작품 가운데 고양이와 강아지 한 마리가 바에 앉아 자신의 처지를 슬프게(정말 구슬프게!) 그들 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던 그 작품이 떠올랐다.

기술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볼트>는 얼핏 사전 정보없이 보면 이 영화가 디즈니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휼륭한
3D 그래픽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볼트의 털들은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고 있으며('털'이라는 것이 그래픽 수준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라는 점에서 <볼트>는 제법 우수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초반 영화 속 장면들 영상에서는
실사를 방불케 하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영상 측면에서 디즈니 작품으로 확 와닿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는데, 마치 <인크레더블>에서 뛰쳐나온듯한 인물들의 이목구비는 이 영화에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듯 하다.




존 트라볼타가 더빙한 볼트의 목소리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존 트라볼타의 목소리가 제법 익숙한 나로서도 영화 초반 이후부터는
그의 이미지를 지우고 극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이다. '페니'는 마일리 사일러스가 연기했는데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노래가 한 곡 흐르는데 더빙 연기를 맡은 두 배우가 직접 노래하고 있다.
오랜만에 존 트라볼타의 노래를 듣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3D 디지털 자막 버전을 보고 싶었으나 국내에서는 사실상 상영하는
곳이 없음으로 불가피하게 일반 자막 버전을 선택했는데, 3D 버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더빙 판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한데,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1. 사실 원래 제목은 '뻔한 감동, 그래도 감동' 이었다. 아....이 참을 수 없는 동심의 용솟음이란 -_-;;

2. 영화를 보고나니 다시 한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도 용솟음쳤다.

3. 엔딩 크래딧 디자인의 구성이 마치 <월-E>와 흡사함을 느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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