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 (葉問, 2009)
견자단이라면 신파여도 괜찮아


견자단은 무술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다른 남자 배우들에 비해 적어도 국외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라 개인적으로 매번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견자단을 이야기하자면 이연걸 얘기가 어느새 부터 자연적으로 등장하는 식이 되어버렸는데, 이연걸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측면에서 견자단을 그 보다 더 응원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견자단의 영화를 (단독 주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었는데 최근 개봉한 엽위신 감독의 <엽문>은 그런 의미에서 꼭 봐야만 했던 영화 중 한편이었다. 참고로 실존 인물이기도 한 엽문과 영춘권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dp의 은경사랑장고님의 글인 ' <엽문>의 사부는 누구일까? <찬선생과 조전화>' 를 참고하면 되겠다.




영춘권, 영춘권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했더니 이소룡 때문이었다. 국내에서는(아니 엔딩 크래딧을 보니 자국에서도 이런 측면이 있다하겠다) 견자단 만으로는 홍보효과가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소룡을 전면에 내세우다시피 하고 있는데 ('이소룡이 존경한 단 한 사람' 같은 문구), 알려진 것처럼 엽문의 제자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이소룡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엽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주연을 견자단이 맡았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견자단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이소룡이라는 점, 또한 이런 점을 반영하듯 <정무문>에서 '진진'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일단 견자단이 엽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어느 때는 안그랬겠느냐만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견자단은 오랜 시간 동안 영춘권을 더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특별한 수련과정을 가졌었고, 이런 수련은 영화 속 장면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굳게 다문 입과 움켜진 주먹처럼, <엽문>은 단순하고 거칠지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사실 본래 역사를 잘 몰랐던 나로서는 '엽문'이라는 인물이 실존 인물이라는 점을 알고 난 뒤, 그리고 이를 확증시켜주는 영화의 마지막 문구들을 접했을 때, '그렇다면 이 영화 속 이야기도 실제 그대로 역사인가?'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와 영화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고, 영화의 주된 정서 중 하나인 항일 움직임은 그야말로 '영화적' 장치로서 도입된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항일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물론 황비홍과 곽원갑에 이은 무인에 관한 이야기로서도 매우 좋았지만, 신파성이 강한 일본과의 대결구도와 이로 인해 감동을 주는 부분도 뻔하지만 유치하거나 가볍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물론 견자단이 연기한 '엽문'이라는 캐릭터가 워낙에 진정이 엿보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원칙적으로는 그 정서에 동의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엽문>과 가장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이연걸이 주연한 <무인 곽원갑>을 떠올릴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임달화가 연기한 '주청천'과 비슷한 캐릭터가 곽원갑에도 나온다는 점도 유사하다). 연출이나 다른 영화적 요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견자단의 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호문>과 <도화선>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엽위신 감독과 견자단의 조합은 점점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여기에 한 명 더 빼놓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으니 바로 무술감독을 맡은 홍금보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속 영춘권의 묘사도 그렇고 영화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실제 무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근본에 충실한 <엽문>의 무술연출은 엽위신-홍금보-견자단, 이 세사람이 함께 만든 멋진 조화물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동작이 매우 화려하거나 볼거리 위주가 아님에도 긴장감을 한시도 늦출 수 없었던 액션장면 연출은 우리가 이런 영화를 평할 때 흔히쓰는 '권격(擊)'영화로서도 만족스러웠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최근 무술영화들은 이런 권격에 기초한 영화들보다는 와이어 액션에 몸을 맡긴 영화들이 더 많다는 점에서, 올드 팬들에게는 향수와 아련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 이 영화를 완전히 스토리적인 측면으로만 본다면 항일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가장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는 대중영화로서 이 영화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좋은 요소이기도 하겠다). 무술의 고수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한 인물이 개인으로서는 막을 수 없는 국가적 재앙과 사회적 문제로 인해 한 가장의 아버지로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단 한번도 주저함이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진정한 무도인의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다. 신파(新派)에는 너무 뻔하디 뻔해서 결국 지루함을 견디기 힘든 경우가 있는 한편, 같은 이야기라도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엽문>은 그 후자에 가깝다. <엽문>은 견자단과 엽위신, 홍금보, 이 세사람의 진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파여도 충분히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니 <엽문>은 3부작으로 계획된 영화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영화 말미에 굳이 이소룡의 얘기를 삽입한 것이 마냥 홍보나 이야기 자체를 부각시키기 위한 측면만으로 볼 수는 없겠다(그런데 이 말미의 문구로 인해 리얼리티 측면이 더 강해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아마도 다음 작품 혹은 그 다음 작품에서는 이소룡과의 에피소드가 펼쳐질 듯 한데, 이것만으로도 팬들을 기대하게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겠다. 얼핏 듣기로 엽문과 이소룡 사이에 에피소드들 역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듯 한데, 이는 영화화 되지 않는다 해도 따로 정보수집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1. 견자단도 어느 덧 몸만이 아닌 얼굴로 이야기하는 배우가 되었군요.

2.

'무치림'역할을 맡은 석행우는 실제로도 무술의 고수로 알고 있는데, <쿵푸허슬>에 이어 다시 한번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 반갑더군요. 그는 예전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무술을 배워보는 코너에 직접 출연해 소림무술에 대해 시연한 적도 있었어요.

3. 일본 장군 '미우라'역할을 맡은 이케유치 히로유키는 시원하게 깍아내린 헤어스타일이나 얼굴 생김새가 자꾸 '석호필'로 더 유명한 앤트워스 밀러를 연상시키게 하더군요. 그래서 몰입이 잘 안되기도 ㅎ

4. 같은 이유로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 '웅대림'은 자꾸 주얼리 출신의 '이지현'씨가 생각나 몰입이 안되기도 -_-;;

5. 3부작으로 기획된 만큼 꼭 끝까지 시리즈가 완성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6. 영화보고 집에 오는 동안 얼마나 팔동작을 현란하게 하며 집에 왔는지 모르겠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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