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1318 (If you were me 4, 2008)
청소년 영화, 그 이상의


<과속 스캔들>로 큰 인기를 얻은 박보영 양이 포스터에 큼지막히 자리잡고 있는 청소년 영화 <시선 1318>은, <여섯 개의 시선>에 이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또 하나의 옴니버스 영화이다.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더 나아가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도)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었다. 김태용, 방은진, 윤성호, 이현승, 전계수 감독 같은 믿을 만한 감독들의 작품들이 엮여 있음에도 이 작품을 섣불리 오해했던 것은 윤성호 감독의 작품 제목처럼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었는데, 흔히 '청소년 영화'라고 하면 어느 정도 그려지는 그림들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5편의 작품이 하나하나 막을 내리는 순간, 점점 움찔움찔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고, 결국 맨마지막 김태용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었을 땐 적잖은 소름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시선 1318>을 단순히 '청소년 영화'라는 범주로 남겨두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청소년 영화라기보단 '청소년의 영화'라고 보는 편이 오히려 더 맞을 듯 싶다. 어른의 시각에서 청소년을 바라본 영화가 아니라 그들의 시점에서 최대한 자신들의 얘기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 청소년이라면 더욱 공감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로서도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번갈아가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진주는 공부중
방은진 감독 작품


<시선 1318>에 담긴 다섯 가지 작품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한, 그래서 다른 한편으론 편안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박진주와 말썽꾸러기이자 꼴지로 대변되는 마진주, 즉 '진주'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사회에서 바라보았을 때 전혀 다른 아이인 이 두아이를 주인공으로 입시지옥에서 살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체적인 주제도 그렇고 이쁘고 공부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고 그리 이쁘지 않게 생긴 두 아이를 대치점으로 묘사한 방식은 굉장히 익숙한 방식이라 신선하지는 않지만, 이런 보편적인 구성을 뮤지컬이라는 방식으로 지루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이 두 아이를 완전히 가르기 보다는 그저 조금 '다른'(틀린이 아닌) 아이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고 또한 박진주의 이야기와 마진주의 이야기를 모두 다 비중있게 그려내면서 각각이 겪는 문제(물론 박진주에게 좀 더 포커스가 가 있긴 하다)를 동시에 풀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왜 하는지도 모르게 세뇌당하듯 해야하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그려냈고, 이를 탈출하는 방식으로 춤과 음악을 더했는데 여기에 아기자기한 컴퓨터 그래픽이 더해져 소녀들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을 더한다.





You and Me
전계수 감독 작품


<삼거리 극장>을 연출했던 전계수 감독의 작품은 개인적으로 다섯 작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취향에 가까운) 작품이기도 했다. 역도선수로 운동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소영과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호주로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철구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듯 하지만 맞닿아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보는 내내 <아모레스 페로스> <바벨> 등을 연출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전체적인 색감도 그렇고 한 장소나 각각의 인물이 무심한 듯 교차하는 방식이나 같은 인물이 각각 서로가 모르게 관계를 맺고 있는 구성, 그리고 인물들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클로즈업하는 장면이나 굉장히 길고 느리게 진행되는 호흡에서도 이냐리투 감독의 아우라가 느껴지기도 했다.

무언가 확실하진 않지만, 꼭 정답을 찾아야만 되는 가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 아니 불투명하다기 보다는 아직까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지 못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감성적인 화면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을 맡은 이 아이들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표정 하나하나가 흡입력이 대단했다. 영화 장면 가운데 갑자기 바닷가에서 소방수가 물을 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마치 프랑스 예술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기이한 판타지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자신의 미래마저 선택하지 못하는 불운한 청소년의 현실이 담겨있다. 아, 그리고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속으로 '참~ 잘 찍었다'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카메라의 앵글이나 색감이나 로케이션 모두 감탄을 불러 일으킬만한 멋진 작품이었다.





릴레이
이현승 감독 작품


박보영 양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릴레이>는 <그대 안의 블루> <시월애>등을 연출했던 이현승 감독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섯 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다루고 있고 다양한 까메오의 출연으로 지루하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청소년의 임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단순한 소동 정도로 보여지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가벼워보이지만 속으로는 뼈가 있는 장치들을 여럿 배치해 두었고, 배우들이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설정을 두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왜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는 없어?'라는 대사는 가볍게 웃고 지나칠만한 대사는 결코 아니었으며, 아이를 낳은 여학생의 학습권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 외에 학교에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어른들을 그린 방식도 인상적인데, 초반에는 각자 자신의 과목 스타일로 이 문제를 해결해버리려는, 쉽게 말해 어른의 이기적인 잣대로 그저 무마시켜버리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후반부에 가서는 어른들도 '이해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지 않느냐'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결국 제목인 '릴레이'처럼 청소년이 혼자서 혹은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까지 곁들여져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문성근, 정유미 씨의 출연은 전혀 몰랐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했으며, 문성근씨의 '그것이 알고 싶다' 연기는 또 하나의 흥미였다. 학교 내에 비추는 자연광으로 묘사한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윤성호 감독 작품


앞서서 이현승 감독의 작품을 이야기하며 '다섯 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머러스한 분위기'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좀 대중적인 코드의 유머를 뜻한 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역시 윤성호 감독의 작품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였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이 영화는 여러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챕터 제목들만 봐도 이 작품의 분위기를 반절은 느낄 수 있다. 비트박스와 화면 중간에 등장하는 자막으로 리듬감과 감성을 더했으며, 화면의 톤을 대사와 인물의 등장에 따라 다운시키고 돌리고 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이해와 실제'라는 제목처럼 윤성호 감독은 과장되거나 보기 좋은 드라마 보다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원했는데, 크래딧을 보니 실제 학생들이 자신의 출연 부분에 있어서는 대사를 직접 만들고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들은 하나 같이 주옥 같다. 뭐랄까 'You and Me'를 보면서 나중에 DVD가 출시되면 살까 말까 고민하던 심정이 이 작품을 통해 확정으로 굳어졌달까. 마을 어귀에서 두 아이가 나누는 대화는 윤성호 스타일이 가미되었으면서도 전혀 가공되지 않은 느낌의 신선함 그 자체의 순간이며,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어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투박하긴 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 담겨있다. 대사가 만들어내는 맛과 편집과 구성이 이끌어내는 리듬, 그리고 메시지마저 더해진 이 작품은 분명 윤성호 감독과 아이들이 직접 만든 또 하나의 '우주' 그 자체일 것이다.





달리는 차은
김태용 감독 작품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은 감성적으로는 대중적으로나 가장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전작 <가족의 탄생>과는 또 다른 '가족의 탄생'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청소년 기에 겪는 이성과 꿈과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잘 어루만지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야기 역시 인권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더이상 새롭지 만은 않은 이야기이지만, 김태용 감독은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같은 절제된 장면들과, 인물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주제를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이 들었던건, 앞서 'You and Me'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작품이 떠오르는 것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우라를 심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주인공 차은 역할을 맡은 전수영 양의 클로즈업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월드에서 지금 막 뛰쳐나온 캐릭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굉장히 인상적인 얼굴과 표정을 갖고 있었다. 전수영 양을 비롯해 엄마 역할을 맡은 아르세니아 씨 역시 비전문 배우라고 하는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그 오스카 위너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깜깜한 밤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장면도 뇌리에 남고, 무엇보다 차은이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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