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 2012)

울분을 통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언제나 유머와 수다, 그리고 반골 기질이 돋보이는데 그의 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역시 그랬다. '장고'라는 이름에서 부터 전통적인 서부 극의 이미지가 짙게 풍기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서부 극은 배경으로만 차용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냥 또 다른 타란티노의 영화다. 오히려 타란티노는 '장고'라는 서부 극을 통해 서부 극과 미국 영화의 전통적인 요소 더 나아가 미국 역사에서 묵과되어 왔던 흑인 노예 (인종 차별)에 대한 부분을 대놓고 뒤집는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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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전통적인 서부 극의 주인공이 노예 출신의 흑인이라는 것 정도로 뒤집기인가 생각할 수 있는데, '장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장고 (제이미 폭스)가 흑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시선과 차별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가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백인들의 모습은, 아니 흑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를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씁쓸한 농담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장고가 본인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 여기에 불합리함을 평소 느껴왔다는 것, 그래서 자유 인이 되었을 때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시선을 받고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에서도 느껴지는 일반적인 측면이었다.


'장고'가 흥미롭고 인상적인 건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장고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단 그가 백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었다. 흔히 들 이런 뒤집는 영화 라거나 아니면 어두운 역사를 재평가하는 영화들을 보면, 그 가운데도 깨어 있는 이가 있었다라는 식의 면죄부 적인 설정이 등장하곤 하는데 타란티노의 영화엔 당연히 그런 자비로움은 없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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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사실 장고를 저렇게 도와야 할 만한 이유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오직 슐츠 만이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도 된다. 즉, 그가 장고를 돕게 되는 과정들을 인정이나 도움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의 연결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포인트일 것이다. 슐츠가 처음 장고를 만나게 된 것도 현상금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이유 때문이었고, 이후 그와 파트너가 되고자 했던 것도 장고의 능력을 본 뒤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나중에 목숨까지 버려가며 장고의 아내를 구하려고 한 것도 쉽게 말해 배알이 꼬여서 였기 때문이다.


타란티노가 '장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슐츠를 설명하는 동시에, 이 영화 전반에 깔린 그 근본 없는 자존심에 대한 비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칼빈 캔디와 슐츠와의 마지막 대화 장면이다. 이미 벌어질 일은 다 벌어졌고 다 종료되었으나, 캔디와 슐츠는 각각의 이유로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캔디는 돈을 벌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무언가 자신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 시켜야만 성이 찼을 터이고 (그것이 고작 악수하는 것이라도), 그 악수 정도 그냥 해주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이 말도 안되는 캔디가 계속 마음에 안 들었던 슐츠 역시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캔디를 결국 죽여야 했던 것이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가끔 흥분되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참지 않고 화끈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설사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이래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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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로 '장고'는 전작 '바스터즈'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전 편에서도 그냥 뒤집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 만의 과한 방식으로 해소 했듯이, 이번 작품에서 역시 후반부의 총격씬은 '킬 빌'의 총기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피와 살점이 낭 자하는 과함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땐 보여지는 측면의 재미나 영상미 적인 측면을 주목했었는데, '장고'에서부터는 더욱 확연히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재미나 영상미가 포인트라기 보다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혹은 포효처럼 보였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지하게 풀어내기 보다는 유머와 조소를 섞은 뒤에 마지막에 가서는 피와 살육으로 피해자 혹은 고통 받던 이들의 울분을 토해내는 듯 했다. 그래서 '장고'의 마지막 총격전은 잔인한 장면이 많았음에도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다.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았던 것을 해소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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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미처 다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타란티노 영화 답게 깨알 같은 재미 들도 여전해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아, 그리고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바스터즈' 만큼이나 혹은 더 크리스토프 왈츠가 매력적이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1. 타란티노 영화 답게 사운드트랙도 정말 좋습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OST를 질렀는데 역시나 만족. 뭔가 비장하면서도 신나게 출근하고 싶은 날엔 장고 OST를 BGM으로 사용하곤 하죠 ㅋ


2. 디카프리오는 워낙에 매력적인 크리스토프 왈츠에 비해 좀 가려지기는 했지만, 이런 조연으로서의 매력도 보여준 것 같아 신선하더군요. 진짜 더 나이 먹으면 잭 니콜슨 처럼 될 것 같아요 (이건 칭찬)


3. 캔디의 일당 가운데 복면을 한 유일한 여자 멤버가 있는데, 조이 벨이더군요. 눈빛만 봐도 이제는 알아볼 정도 ㅎ 아, 그리고 조나 힐도 나와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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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 (Jiseul, 2012)

제주 4.3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오멸 감독의 신작이자 최근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를 보았다. '지슬'은 이미 개봉 전부터, 선댄스에서 주목을 받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다. 제주 4.3에 관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최근, 그 가운 데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인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기대가 되는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국내 독립 영화들은 단순히 메시지가 강한 것 만이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상업 영화와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투자 비용에 대비하자면 말할 것도 없고) 완성도와 미 적으로 풍부한 만족감을 주고 있는데, 그런 연장선에서 또 하나의 잘 빠진 작품이 바로 '지슬'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멸 감독의 '지슬'은 그러한 기대를 그대로 충족 시켜주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지슬'은 많은 이들이 아직 잘 알 지조차 못하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환기는 물론, 미 적으로도 아름다운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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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멸 감독의 '지슬'은 아슬아슬한 영화다. 그 아슬아슬함이 이 영화의 매력이자 한 편으론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제주 4.3을 인지하고 있는 관객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슬'은 제주 4.3을 다루면서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을 교차하여 사용하고 있다. 마을에서 군인들을 통해 벌어지는 일들은 직접적인 방법에 가깝지만, 이 사건을 일찌감치 피해 동굴로 피난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거리를 두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거리 두기는 관객에게 두 가지 다른 측면으로 받아 들여지게 되는데, 하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제주 4.3에 관한 충격적이고 아픈 역사를 좀 더 순차적으로 전달하는 순기능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본말이 전도되어 오해로 시작할 수 있다는 역기능일 것이다. '지슬'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종일관 교차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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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슬'은 굉장히 영리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정적인 구조를 120% 활용하여 오히려 제한적인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웨스 앤더슨이 떠올랐던 건 바로 캐릭터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은 특유의 제주 사투리가 더해져서 마치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캐릭터들과 같은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어쩌면 이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이 귀여움을 4.3의 무게를 흐리지 않을 정도로 잘 다루고 있는 듯 했다. 즉, 본말이 전도 될 정도의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사건의 무게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직접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군인들의 이야기와의 균형이나 이어짐도 자연스러운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이 거리가 좁혀져 마을 사람들이 군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에도 전혀 다른 두 이야기나 정서가 만나는 듯한 이질감은 없었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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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웠으나 집으로 돌아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우려되는 부분이 좀 있었다. 그것은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군인들에 대한 묘사였는데, 바로 군인 가운데 서도 이 사건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고 결국 배신 혹은 반역을 일으키게 되는 인물들의 묘사 부분이었다. '지슬'이 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몇몇 군인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듯 보일 정도로 짐승 혹은 악마처럼 묘사되지만, 몇몇 군인들은 깨어 있어서 또 다른 피해자로 묘사된 다던지 혹은 러닝 타임 내내 관찰자 혹은 관조자로 남아있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깨어나는 인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 점이 조금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 하겠다.


이 지점은 양날의 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골똘히 생각해보면 아직은 시기상조 혹은 위험한 묘사가 아니었나 싶다. 즉, 아직은 군인들도 피해자였다 거나 혹은 아픈 시대의 산물이다 라고 표현해 버리기에는 제주 4.3의 상처가 너무 깊고 사회적 인식이나 위로도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극 중에 등장한 대사처럼 '군인들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네'라는 말은 자칫하면 이 사건을 처음 받아들이는 사람일 수록 오해하기 쉬운 말이라는 얘기다. 정말로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잔혹하게 목숨을 잃어간 사건의 참혹함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도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은 이러한 균형적 혹은 냉정한 시선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홀로코스트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되고 영화화 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근래에 와서 당시의 독일인의 시점에서 묘사한 작품이라 거나 그 가운데서 또 다른 의미의 고통과 상처를 받았던 이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시간이 흘렀지만, 제주 4.3의 상처와 이를 대한민국 사회가 인지하고 있는 정도를 떠올려본다면 확실히 그 정도 성숙의 시점이 가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군다나 아직 까지도 이 역사에 대한 명확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가해자의 입장을 살피기엔 아직 상처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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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위험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슬'은 충분히 의미 있고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본말이 전도될 정도로 비껴가지는 않았고, 제주 4.3의 역사를 환기 시키는 데에는 이미 충분히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은 4.3에 관한 영화가 나올 것이다. 그래야만 하고.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제주와 4.3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1. 본문에도 썼지만 보는 중간 중간 웨스 앤더슨이 떠올랐어요. 전혀 쌩뚱 맞게도 말이죠.


2. 이 작품의 발단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도 꼭 보고 싶네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0913


3. 제주 4.3에 관한 또 다른 작품인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도 곧 개봉합니다. '지슬'을 인상 깊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도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7091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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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에이브람스의 최초의 IMAX 3D 영화이자 전작 '스타트렉'의 속편인 '스타트렉 다크니스' (국내 제목 확정)의 메인 예고편이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사실 기존 TV시리즈와 극장판 '스타트렉'의 팬이 아니었음에도, J.J의 '스타트렉'은 영화적 재미는 물론 기존 TV시리즈까지 다시 보게 끔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는데요, 오랫동안 기다린 만큼 더 두근거리는 속편이 나올 것 만 같습니다!


전편에 등장했던 배우들에 이어 이번 작품에는 무려 배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하고 있어서 더더욱 기대가!!! 올해 여름 국내 개봉 예정이라는데, 기다림이 쉽지는 않겠네요 ㅠ


긴 말 할 것 없이 예고편을 보시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Nobody's Daughter Haewon, 2012)

솔직할 수록 슬픈 홍상수 영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 느낀 바를 글로 옮기는 것이 점점 어려워 진다. 개인적인 역량 때문인 탓이 크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더 이상 설명하거나 글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 근래 몸집은 더 작아지고 이야기는 더 시공간을 오가는 방식으로 촬영된 작품들은 그나마 그 형식에 대해서라도 조금 글로 옮겨볼 여지가 있었는데, 이 작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그런 형식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더 감정적인 영화이기에 글로 표현할 여지가 현저히 제한적인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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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단순한 점이라면, 이전 그의 작품 속 인물들도 그러했지만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다른 영화 속 인물들 보다, 더 나아가 현실 속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솔직하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들을 꼽아보자면 대부분이 '정말 예뻐' '정말 맛있겠다' '정말 좋아' 등 감정을 표현하는 대사들이다. 그것도 '정말'이라는 표현이 더해진 강렬하고 극대화된 표현들이다. 글쎄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혹은 아직도 홍상수 영화 속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을 보고 단순히 '찌질하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나는 예전 영화들에서도 그렇고 특히 최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에게서 이러한 '찌질함'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순수에 가까운 솔직함을 엿볼 수 있었는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저렇듯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듯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들의 표현이 과장하듯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평소 현실에서 그리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속으로는 저렇듯 극대화된 감정을 느끼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서툴거나 자신을 숨기는 데에 더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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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요 근래 홍상수 영화를 보며 이런 인물들의 솔직함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현실 속에는 간혹 판타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솔직한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그 어떤 액션 영화의 클래이맥스보다도 통쾌하고 시원한 감정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전 영화들의 인물들이 비교적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 감정은 동일하나 그 감정으로 서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슬픔도 더 깊게 느껴졌다.


관객은 여전히 제 3자일 수 밖에는 없겠지만 홍상수 영화는 그 제 3자를 그들의 방식에 맞춰 이해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더 극중 인물의 심리를 (설령 그것이 제 3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이라도) 이기적이리만큼 더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는 듯 하다. 최근들어 홍상수 영화에는 꼭 홍상수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질문과 대답들이 등장하는데 (왜 영화를 만드세요? 같은), 이 작품 역시 영화 감독인 성준(이선균)이 술집에서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하던 중 비슷한 대화가 오간다. 이런 대화 시퀀스에서 느껴지는 것은 홍상수 감독의 일종의 짜증이랄까. 앞서 한 이야기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왜 자신을 이해 못하는지 그들의 방식으로 설득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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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이 영화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뭔가 쓸쓸함과 슬픔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아마 다른 감독의 영화였다면 '독립적인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덧 솔직함이 무기가 된 홍상수 영화에서 이러한 제목은, 결국 해원은 진짜 해원이 되지 못하겠구나 라는 예상을 하게 되었다. 다른 홍상수 영화처럼 중간 중간 키득이게 되는 장면들도 있었고, 같은 장소와 시간을 홍상수 식으로 활용하는 장면들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지만, 잘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솔직할 수록 더 슬픈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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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중 유준상과 예지원 커플은 '하하하'의 연속으로 느껴져서 묘한 느낌이.


2. 홍상수 영화는 언제부턴가 가보고 싶은 영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서촌과 남한산성이 자연스럽게 가고 싶어지더군요. 조만간 남한산성 한 번 가야겠네요 (좋은 날 말이죠 ㅎ)


3. 정은채는 참 매력적이더군요.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될 정도로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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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Oz: The Great and Powerful, 2013)

마법같은 '영화'로의 초대



너무도 익숙한 '오즈의 마법사'를 가지고,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오즈에 오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 샘 레이미의 '오즈 :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은 하지만 기존 '오즈의 마법사'나 이와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는 뮤지컬 '위키드'를 전혀 무시해도 될 만큼 스토리나 캐릭터에 치중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디즈니 영화 답게 마냥 행복하고 순진하기만 한 어린이용 영화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봐도 무방하다). 처음 포스터와 스틸컷만 보고는 왜 샘 레이미가 이 영화, 이 시나리오에 끌렸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디즈니라는 스튜디오가 그랬고 전체관람가의 너무 착하기만한 영화가 그랬다. 하지만 극중 오즈(제임스 프랭코)가 켄터키를 떠나 오즈에 도착하기 전까지 풀스크린의 흑백으로 펼쳐지는 영화 장면을 보고선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비로소 수긍할 수 있었다. 샘 레이미는 마치 마틴 스콜세지가 '휴고'를 통해 그러했듯, 이 작품 '오즈 : 그레이드 앤드 파워풀'을 통해 '영화'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굳이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더라도 몹시 단순한 편이다. 주인공 오즈가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은 물론 그 주변의 캐릭터들과 선과 악으로 나뉘어진 캐릭터들의 묘사도 디즈니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펼쳐지는 오색 찬란한 오즈의 모습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놀라운 장관을 만나게 되는 편도 아니다. 오히려 CG수준은 이전 작품들 보다 좀 못해서 마치 예전 영화들에서 배경을 그림으로 활용했던 것에서 느꼈던 이질감과 같은, 블루스크린을 통해 표현된 배경과 인물들 간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혹시 일부러??).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샘 레이미 감독보다도 미셸 윌리엄스, 제임스 프랭코, 레이첼 와이즈, 밀라 쿠니스 등의 화려한 출연진 때문이었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배우들의 매력 측면에서도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못한 작품이었다 (특히 밀라 쿠니스의 팬들이라면 실망할 만하다).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여기까지만 설명을 들어보자면 샘 레이미의 '오즈'는 볼 이유가 하나도 없는 작품이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사실 영화가 종반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가장 매력적인 장면이 오즈가 켄터키에서 마술하던 흑백 시절이었을까. 하지만 그래서인지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가서 바로 그 흑백 장면에서 보여주었던 매력을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영화 속 오즈가 그러했듯 이 가짜 아닌 가짜 마술이 갖는 매력 즉, 영화라는 것에 대한 매력에 대한 표현이 그것이었다. 오즈에 도착한 이후 시골의 마법사이던 오즈의 모습은 마치 한 명의 영화 감독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스스로도 만족이나 자신감을 갖지 못해 영화를 만드는 일을 포기하려고까지 마음 먹은 영화 감독. 어쩌면 이 영화는 영화 팬들은 물론 아직까지 빛을 발하지 못한 수 많은 영화 감독들에게 '너는 이미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 감독이야'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극 중 오즈의 모습은 분명 그렇게 보였다. 결국 이렇다할 개봉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영화 감독 오즈는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조력자들과 함께 자신 만의 영화를 완성해 내고,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비로소 용기를 얻게 된다.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잠깐 영화 감독 오즈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지만, 서두에 말했듯이 이 영화는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마법 같은 경험에 대한 샘 레이미의 환기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오즈가 펼치는 마법은 은유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지칭하고 있다. 즉,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마법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샘 레이미는 다시 한 번 '오즈의 마법사'라는 판타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영화 내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 '오즈'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뒤 제법 매력적인 이야기로 느껴졌다. 물론 그렇게보아도 아쉬운 점이 여럿 발견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했던 그 메시지와 방식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1. 본문에도 있지만 레이첼 와이즈와 밀라 쿠니스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아쉬운 점이 특히 많은 영화였네요. 디즈니라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죠. 전 미셸 윌리엄스의 광팬인데 물론 이 측면에서 봐도 아쉽기는 했어요.


2. 마지막은 미셸 윌리엄스의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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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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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2013)

누구나 신세계로의 구원을 꿈꾼다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배우의 출연 만으로 두근거리게 만드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배우들의 이름과 분위기에 끌려 보게 된 영화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박훈정 감독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썼던 이더라. 조직 폭력, 거대한 범죄 조직내 세력 다툼, 그리고 경찰과의 관계에 스파이라는 설정까지. '신세계'는 얼핏 봐도 '무간도'나 '대부' 시리즈를 직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영화들이 갖는 방향성 혹은 평가는 둘 중 하나일텐데, 결국 그 틀 안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이 반복하는 영화이거나 그 틀을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간 영화이거나 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 '신세계'는 그 두 가지 경우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 말하자면 그 틀 안에 있지만 새로울 것 없는 반복이 매력적이었고 조금의 나아감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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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세계'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바로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무게감이다. 그 무게감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오는데, 어쩌면 뻔한 조직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는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물론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따지고보면 '신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 이야기보다도 더 전형적이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은 물론 더 이상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되는데, 그럼에도 조직에 심어진 경찰, 그 경찰을 관리하고 조종하는 또 다른 경찰, 그리고 범죄 조직 내의 인물까지 모두, 새롭지는 않지만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엔딩을 제외하면 사실 거의 기존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 자체를 보기 보다는, '신세계'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결국 누구나 현실에서 신세계를 꿈꾼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그런 꿈을 꿀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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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크게 공감되었던 것은 그저 현실에 불만이 있어서 신세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에 빠져버려서 탈출이라는 선택조차 사실상 할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에 놓인 이들이 신세계를 꿈꾼다는 점이었다. 즉, 이들이 꿈꾸는 결과로서의 신세계보다 그들이 현재 처해진 현실(굴레)에 더 공감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자성(이정재)이 놓인 현실은 정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 그 자체다. 그리고 강과장(최민식)과 경찰은 바로 이 점을 볼모로 이자성을 철저히 이용한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었던 간에 이자성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정말로 답답함 그 자체일 것이다. 다른 인물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강과장 역시 조직 내에서 이런 명령을 할 수 밖에는 없는 위치와 상황에 놓인 인물이고, 강과장으로 부터 제안 아닌 제안을 받게 된 정청(황정민)의 현실이나, 역시 유사한 제안을 받게 되는 이중구(박성웅)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미 벌여놓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는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시절의 선택 때문에 이러한 진퇴양난의 현실에 놓이게 되는데, 영화는 기본적으로 주요 인물들을 이렇듯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 각자가 신세계로 향하는 방식 혹은 선택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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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세계'가 조금 더 흥미로웠던 점은 이 영화가 취한 마지막 때문이었다. 영화는 결국 신세계를 꿈꾸던 여러 인물들 가운데 이자성에게만 신세계를 허락하는 듯 보이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자유를 허락했으나 이자성에게만 그렇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자성은 자신이 결국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모든 이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식으로 골드문의 보스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이 엔딩에 대해 무척이나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신세계'를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여러 나쁜 이들이 결국 단 한 명의 선한 이를 나쁜 이로 만들어버리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심판의 측면에서 차라리 통쾌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신세계로 가지 못한 것은 이자성 뿐인 것만 같았다. 즉, 나쁜 이들은 모두 속죄 받기를 내심 원했으나 그 기회를 갖을 수 없던 이들이었다면, 이자성은 기회를 갖을 자격조차 없던 이들을 구원하는 동시에 본인 스스로는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어버린 듯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드문 회장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이자성의 모습에서는 단순한 씁쓸함이 아니라, 더 큰 한숨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초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라며 몇 번이나 애를 쓰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에필로그 속 6년 전 이야기를 통해 이자성이 벌써 예전에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거나 혹은 그 만의 신세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일말의 동정심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 영화의 건조함이 오히려 더 아픈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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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간도'의 뜻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왔듯이, 이 영화 '신세계' 역시 무간지옥에 갇혀 버린 이들의 이야기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세계 (新世界)'라는 제목은 이 영화에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나 싶다.



1. 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연기력 측면만 보면 가장 볼거리가 화려한 작품이었어요.


2. 어디서보니까 본래 3부작으로 기획되었단 이야기가 있던데 (미공개 영상으로 공개된 마동석,류승범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도 그렇고), 전 이 한 편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기대는 되네요. 그런데 3부작으로 가게 되면 너무 '무간도'처럼 가게 될 것 같기도하고;


3. 확실히 이런 캐릭터를 국내에서 황정민 만큼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배우는 없는 듯. 역시 양면성으로 꼽자면 황정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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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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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니즈 조디악 (十二生肖 12, Chinese Zodiac Heads, 2012)

여전하면서도 애잔한 용형호제 3



개봉하면 무조건 보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팬심으로만 이야기하자면 단연 성룡 영화를 꼽을 수 있겠다. 즉, 반대로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영화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아도 무조건 보게 되는 영화라는 얘긴데, 최근 성룡 영화가 (아쉽지만) 그래왔다는 점에서 이 작품 '차이니즈 조디악'도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차이니즈 조디악'이라는 영어 제목으로 개봉한 이 작품은 '용형호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텐데, '용형호제' 시절에 보여주던 스펙터클과 아기자기한 액션 구성, 코미디까지 여전하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점점 약해져가는 성룡을 영화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기도 한 애잔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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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성룡 영화의 팬들이라면 다들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겠지만 '차이니즈 조디악'은 최대한 그 예전의 느낌, '용형호제' 시리즈로서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플롯과 배경 역시 거의 동일한데, 대 부분은 바로 그 동일함 혹은 그리움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일 터이니 이러한 점에 아쉬움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차이니즈 조디악'이 '용형호제'와 크게 달라진 점들이 있는데 바로 성룡 이라는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의 변화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전에 '취권'같이 술먹고 싸우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텐데 말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인터뷰 말고도 성룡은 전 세계의 형님으로 불릴 만큼 자선사업과 기부 등 좋은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다. 즉, 배우로서의 마인드 자체도 이러한 마인드를 기반으로 조금씩 변화해 왔다는 얘기다. 그런 마인드의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 '차이니즈 조디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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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대형 범죄조직 등에 맞서서 유물을 얻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그리는 것에만 매진했을 테지만, 현재의 성룡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런 전 세계의 유물들이 암거래 시장, 경매 시장의 영향 때문에 본국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예전 '용형호제' 시리즈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지만 후반부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성룡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자 다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적어도 '차이니즈 조디악'은 이러한 메시지와 재미의 측면을 분리하고 있어서 차라리 괜찮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만약 메시지가 전반부 부터 강렬한 작품이었다면 아마 예전의 '용형호제'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팬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작품이 되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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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차이니즈 조디악'으로 느껴지는 성룡의 변화라면, 세간에서 얘기하는 '늙었다' '이젠 성룡도...' 등등의 평가가 아닌 본인 스스로가 어느 정도 '성룡 영화'를 계속 한 편 한 편 이어간다는 것에 쉽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는 듯한 점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기존처럼 NG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이 장면들이 지나가고 난 뒤 삽입곡의 내레이션 형태로 성룡의 음성이 들려온다. 액션, 스턴트 장면들을 촬영할 때 마다 두렵다. 체력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성룡 영화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힘을 낸다. 라는 식의 내레이션이 두 번에 나뉘어 흐르는데, 이 장면에서 팬으로서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룡 영화'라는 장르를 이어가기 위한 고통이 그대로 묻어나는 동시에, 스스로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팬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함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애잔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더 찡했던 다른 이유, 다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등장한 그의 실제 부인의 출연 장면이었다. 정말 잠깐 출연하지만 마치 이 장면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실제 성룡의 인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찡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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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고 예전 홍콩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썰렁한 유머나 과도한 몸짓, 캐릭터 등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성룡 영화'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성룡 영화'로 만나뵙길 바라며.



1. 일반 관객들에게 추천하기는 애매하지만 성룡 형님의 팬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일 것 같네요.

2. 유승준의 출연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더 안습인건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가 선글라스를 벗기 전까지 아무도 몰라봤다는 거죠. 여튼 이 작품에서는 카리스마도 없이 완전히 코믹 캐릭터로 등장하는 터라 더 아쉽더군요.

3. 서기도 깜짝 까메오로 등장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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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 (Stoker, 2012)

불안함으로 가득 찬 공간의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 '스토커 (Stoker, 2012)'를 보았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이미지, 분위기는 누가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밖에 없게끔 하고 있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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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 변화나 갈등을 많은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디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에 대해 이런 반응과 갈등을 겪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볼 수 있을 텐데, 이 심리를 박찬욱은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인디아의 입장에 조금 만 더 빠져들고자 하면 더 복잡하고 슬픈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하는 것들이 더 매력적이고 집중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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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동시에 영화적인 구도와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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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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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강렬함까지 더해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거침 없이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 지 기대된다.
아마도 많은 헐리웃 영화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1. 각본가가 배우로 너무 알려져 있다보니 각본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화제가 논의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전 이에 대해 특별한 의견은 없어요. 박찬욱 감독이 선택했고, 표현했고, 그 결과물을 본 거니까요.


2.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를 보았을 때도 그랬는데, '스토커' 역시 보는 순간 박찬욱 영화라는게 너무 확실해서 반갑더라구요. 과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역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3. 아, 미처 정정훈 촬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데, 이 영화는 박찬욱의 헐리웃 데뷔인 동시에 정정훈의 데뷔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인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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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2012)

내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



양영희 감독의 신작 '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Our Homeland, 2012)'를 보았다. 일본의 유수 영화제들을 비롯해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및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더 주목받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던 '디어 평양 (2006)'과 '굿바이, 평양 (2009)' 두 작품의 다큐멘터리 이후 극영화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녀가 만드는 극영화는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감으로 충만한 작품이었다. 그렇게 보게 된 '가족의 나라'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놓여 있었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또 한 번 다루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보편성을 갖고 있는 한 가족에 관한 영화였다. 아, 정말 '가족의 나라'라는 제목은 생각하면 할 수록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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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조국 북한에서 치료를 위해 일본 집으로 돌아온 오빠. 감시자와 함께 돌아온 그로 인해 이 가족은 잠시나마 기쁨과 변화를 겪는다. 정말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서로 많을 듯 하지만, 의외로 이 가족은 서로 말이 많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북의 명령으로 인해 계획되었던 일정보다 빨리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미처 서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 조차 없었던 이 가족은, 처절하면서도 고요하게 이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한다. 그러고는 막이 내린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이 남았는지는 결국 보는 이의 몫으로 남는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송과 남북, 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감독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 영화를 하고 싶었던 점이 아닐까 싶었다. 다큐멘터리, 특히 그녀가 선보였던 두 작품은 완전히 본인이 하고 싶었던, 개인적이면서도 역사를 관통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 '가족의 나라'는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감독 스스로가 과거 혹은 현실에서는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극 영화를 통해 표현해 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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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라는 것도 장르의 일종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전달한다기 보다는 감독을 통해 일정 부분 연출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양영희 감독은 다큐를 만들 때 절대 인물들에게 디렉션을 준다거나 어떠한 의도를 담지 말자라는 원칙으로 전작들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감독의 원칙은 극 영화인 '가족의 나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 영화로 표현된 장면들과 이 장면들이 만들어진 그 뒷 이야기를 듣고나서도 쉽사리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다른 의미로) 만들어졌다. 배우들에게 역시 어떠한 디렉션을 주기 보다는 그저 본인이 직접 겪었던 것에 근거해서 이럴 때 이 인물은 이런 심정이었다 라는 정도만 알려주는 것에 그쳤으며, 캐릭터에 더 깊게 동화되고자 한 배우들의 노력 탓에, 그리고 어쩌면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식처럼 컷을 나누지 않고 긴 호흡으로 촬영한 방식 속에서 이 영화는 극 영화인 동시에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용하기 힘든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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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는 일부러 감정을 극적으로 유도하지도 않고 실제로 그럴 수 있는 부분들 조차 절제하는 듯 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보다는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되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시작되는 순간, 그 동안 참고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보편성을 갖는다는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일부러 평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특별한 실제의 일화를 있는 그대로 그렸으나 그 안에서 보편적인 감정들을 이끌어 냈고, 그 감정들을 러닝 타임 내내 조심스럽게 유지시키는 것은 물론 영화가 끝난 뒤까지 오랜 여운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고나니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놓인 특수한 상황과 이야기에도 관심을 넘어선 몰입을 하게 되는데, 그 동안 이러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을 다룬 작품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었기에 오히려, 이야기의 표면적인 이슈 측면이 아닌 그 내면에 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즉, 북송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북한과 일본 정부 간의 정치적 이슈로 발생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또 다른 조국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남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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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은 그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책임을 느끼고 해결을 노력해야만 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이들의 이야기의 관심을 갖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라 아예 그 존재조차 모르고 안다해도 부정하기 바쁜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더 특별할 수 밖에는 없다.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우선 알기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 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북한과 일본 사이 뿐만 아니라 이런 비슷한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가족들이 다른 곳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 자체를 그저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북송된 이들의 문제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존재는 제 3자가 아니라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고, 관심을 갖고자 하는 마음 조차 열려있지 않은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아주 좋은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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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가족의 나라'가 여러 나라의 영화제에 초대받고 호평을 받은 이유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 때문 만이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 측면에 있어서도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완벽'이라는 표현 보다는 '놀랍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재일 교포 2세에 대한 이야기나 북송된 사람들에 대해 이전에는 알지 조차 못했던 일본 배우들과 우리 배우 양익준이 연기한 극 중 인물들은, 메소드 연기를 펼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놀라운 장면과 이야기를 완성해 낸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익숙한 양익준을 제외한 배우들은 재일 교포 출신의 일반인이거나 배우인줄로만 알았었다 (반대의 경우로 양익준을 이전에 몰랐더라면 똑같은 오해를 했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일찍 올해의 영화를 만났다.



1. 이 날 상영은 기자 시사보다도 앞선 특별 상영이었는데 양영희 감독님과 양익준 배우의 GV까지 만나볼 수 있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하나 버릴 것 없이 유익했던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어요.


2. 극 중 등장하는 '하얀 그네'라는 곡 입니다. 영화를 보고 들으니 참...



3. 3월 7일 개봉예정입니다. 전 개봉하면 꼭 한 번 더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양영희 감독님과도 직접 뵙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더 많은 관객들이 '가족의 나라'를 보게 되기를 바라면서요.


4. 마지막은 GV에 참여한 양영희 감독과 양익준 배우 사진 몇 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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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 (The Last Stand, 2013)

김지운의 괜찮은 헐리웃 데뷔작



최근 국내 유명 감독들의 헐리웃 데뷔 소식들이 활발한데,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가운데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다. 사실 다른 두 감독에 비해 김지운 감독을 덜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한 액션 영화라기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사뭇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놀드만 알고 간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이거 배우들의 면면이 한 마디로 대단하더라. 라이온스게이트 제작에, 포레스트 휘태커, 로드리고 산토로, 제이미 알렉산더, 피터 스토메이어,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오픈 유어 아이즈), 루이즈 구즈만까지, 이 정도면 일단 준비 측면에 있어서는 부족할 것 없는 상차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냥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 작품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제법 규모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괜찮은 헐리웃 데뷔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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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라스트 스탠드'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헐리웃에 진출한 한국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점이었는데, 배경도 인물들도 헐리웃을 통해 표현되었지만 딱 보는 순간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첫 시퀀스 역시 그러했고, 특히 인물들을 스크린에 배치할 때 센터에 두고 펼쳐지도록 두는 카메라 앵글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던 구도라 익숙함이 느껴졌다 (참고로 대부분의 스텝들이 외국 스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촬영 감독만은 김지운 감독과 '달콤한 인생' '인류멸망보고서'를 함께한 김지용 감독이 맡고 있다).


'라스트 스탠드'에서 한국 영화의 느낌이 난다는 것은 대부분은 반갑고 기분 좋은 (기존 헐리웃 영화와는 조금은 다른 색깔이 느껴져서) 일이었지만, 간혹 그 점이 단점으로 느껴지는 점도 있었다. 조니 녹스빌이 연기한 '루이스 딩컴' 캐릭터의 활용이 그러한데, 전형적인 개그 캐릭터로서 전체적으로 극의 분위기를 심각하지 않도록 하는 양념 같은 캐릭터로 어색함과 적절함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몇 장면은 장면 전체를 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 오락영화에서 흔히 소비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본래 의도했던대로 전반적으로 시원시원한 액션영화인 이 영화를 너무 무겁지 않도록 하는 재미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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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의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도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너무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한가롭다 못해 지루한 시골 마을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FBI와 거대 범죄조직의 탈주범이 연관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아 두 가지가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게 되면서 숨겨왔던 주인공의 본색이 드러나게 되는. 사실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라고 보았을 때 초반에는 이 각각의 이야기에 조금은 과한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이런 각각의 비중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해서 인데, 바로 슈퍼카 ZR1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그러했다. ZR1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부분이 제법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잘못하면 이 능력 자체가 주인공이 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었는데, 사실 그렇게 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그 균형을 비교적 잘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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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동차 추격과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거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김지운 감독이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것을 헐리웃이라는 배경을 통해 이제야 시도해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만큼 이 자동차 액션은 매력적이었다. 후반부 옥수수 밭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액션 장면은 단순히 속도와 추격의 재미 뿐만 아니라, 마치 무협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긴장감과 구도 (자동차를 의인화에 가깝게 활용하는)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시퀀스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극장에서 볼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였고, 해외 팬들에게도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 시퀀스 만큼은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시퀀스 외에도 ZR1을 이용한 액션 장면들이 몇몇 있었는데, 이 역시도 무협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만한 합과 구도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자동차를 가지고 이러한 액션을 만들어 낸 것이 여러 모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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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가 좋았던 점은 별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때문이기도 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라는 점에서 볼 때 더더욱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작품인 듯 했다. 마치 '익스펜더블'의 아놀드 솔로 버전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상했던 순간에 '짜잔'하고 아놀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시시하다라기 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강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 의외성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기대하던 바가 어떻게 표현되는 냐가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지점을 비껴가지 않고 그대로 돌파한 점이 좋았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장면과 설정들도 좀 있지만 '라스트 스탠드'에서 그런 현실성을 잡기 보다는 이런 시원함을 선택한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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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손꼽히는 감독이지만 헐리웃에는 이제 데뷔작을 내놓다시피 한 신인으로서,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괜찮은 배우들과 함께한 제법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김지운 감독이 앞으로 헐리웃에서 차기작을 선보이고 그 작품이 좋은 평가를 얻을 경우 전작인 '라스트 스탠드'를 일컬어 '그래, 헐리웃 데뷔작인 '라스트 스탠드'도 나쁘지 않았었지'하는 연장선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다시 말하지만 배우들이 생각보다 좋아서 놀랬어요. 개인적으로는 포레스트 휘태커 보다도 피터 스톨메이어의 출연이 더 반갑더군요. 그의 활용이 생각보다는 한정적이어서 아쉽긴 했지만요.


2. 북미에서 기대보다는 못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헐리웃 첫 작품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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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2012)

한 줄기 빛나는 치유의 영화



데이비드 O. 러셀의 전작 '파이터'를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그의 다음 작품을 그 이름만으로 선택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주저없이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카데미 등 여러 시상식의 노미네이트 혹은 수상 등 때문도 있겠지만, 역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라는 나에게는 아직 뜨거운 두 배우 때문이었다. 브래들리 쿠퍼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제니퍼 가너 주연의 TV시리즈 '앨리어스'를 통해서 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그저 평범하게 생긴 남자 친구 역의 배우 정도로만 기억에 남았던 그가 이렇게 성장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좀 의외의 캐스팅이다 싶었었는데, '행 오버' 이후로 이제는 헐리웃을 대표하는 어엿한 배우 중 하나로 부각한 것 같아 왠지 뿌듯한 느낌마저 든다. 제니퍼 로렌스야 '윈터스 본'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준 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통해 역시 의외의 매력을 보여주어 앞으로가 기대되던 배우였기에, 이 둘의 주연이라는 점만으로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충분히 볼 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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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로맨스 인듯 보이지만 사실은 대놓고 상처와 치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즉, 팻과 티파니의 이루어지지 않을 듯, 이루어질 듯 한 관계는 로맨스 영화로서도 훌륭한 긴장감을 주지만 이 둘의 관계는 결국 서로를 향해 있다기 보다는 각자의 상처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치유의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팻은 그 상대에게 폭력을 가해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도 충동을 참지 못하는 일종의 비정상인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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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같으면 팻이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사회에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더 직접적으로 얘기해 정상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그렸었을 텐데 이 영화의 전개과정은 좀 다르다. 처음에는 팻의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보여주지만, 그 이후에는 그의 아버지, 친구, 주변 인물들 역시 한 두 가지씩 이상한 (비정상적이라고들 얘기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인가 팻이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뎌지게 되는데, 결국 데이비드 O.러셀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비정상이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물이 이런 조건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의 '그것'을 문제나 비정상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처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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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전반적으로 감싸고 있는 이 시선은 이 영화를 겉으로는 쿨해보이지만 속으로는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영화로 만들어냈다. 실제로 팻과 티파니는 물론 팻의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들 거칠 것 없고 모난 듯 보이지만 이 모습과 방식을 일부러 둥글게 다듬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치유해가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깊게 다가왔고 뭉클하게 느껴졌다.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치유의 이야기 가운데 팻과 티파니의 로맨스를 녹여 놓았는데, 자칫하면 뻔할 수 있는 너무 익숙한 선택이 될 수 있었지만 결국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 데이비드 O.러셀은 전작 '파이터'를 통해 집중했었던 가족의 이야기도 또 한 번 그려내고 있는데, 팻의 부모님의 대한 묘사가 두 주인공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다 이해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남편과 아들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어머니 캐릭터도 인상적이었고,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쉽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 (로버드 드 니로)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사실 처음 극 중 아버지 역할로 등장하는 로버트 드 니로를 보았을 때 주변 캐릭터로 그냥 소비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에 울컥하게 만든 건 오롯이 로버트 드 니로라는 대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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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너도나도 힐링을 외치는 시대에 쿨하게 자신 만의 방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치유하는 한 줄기 빛나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씨익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으로 증명된다.



1. 제니퍼 로렌스는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이전까지 그냥 괜찮다 싶은 배우였다면 이 작품을 통해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2. 영화 음악이 참 좋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웨스트사이드스토리'도 슬쩍 등장하고. OST를 질러야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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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러브드 (Les bien-aimés, The Beloved, 2011)

또 다른 사랑의 역사



크리스포트 오노레 감독의 '비러브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 째도, 둘 째도 주연을 맡은 루디빈 사니에르 때문이었다 (셋 째는 카트린트 드뵈브). 요근래에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조이 데샤넬이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프랑소와 오종의 페르소나였던 그녀에게 한 참이나 빠져있었더랬다 (이 때는 분명히 루디빈 사니에르로 표기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루디빈 새그니어로 표기하는 듯). 당시 프랑소와 오종에게 흠뻑 빠져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8명의 여인들' '스위밍 풀' 등을 통해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 '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 (2000)'까지 찾아보게 되었을 정도로 당시 그녀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적이 있었다. 이후 한 동안 극장에서 그녀의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찾아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기는 했는데 국내에 소개는 거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 '비러브드'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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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루디빈의 출연, 그리고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60년대 파리의 아기자기함과 컬러풀한 이미지까지, 이런 것들로 가득찬 사랑스러운 영화일 줄로만 알았으나 '비러브드'는 그것에 그치지 않은 가볍지 않은 사랑 이야기, 아니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영화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랑의 역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는 마들렌과 그의 딸 베라로 이어지는 각각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거침 없이 이야기한다. '비러드브'의 이야기에 선뜻 공감하기에는 물론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도 어느 정도 있는 듯 하지만, 그 보다는 아직 감독도 사랑이라는 존재에 대해 완전한 답을 찾지 못한 것 때문인 듯도 하다. 이것은 감독 역량의 부족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존재에 대해 알면 알 수록 모르겠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는 얘기다.


가끔은 헛 웃음이 나올 정도로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의 행동들도 있고, 또 공감하지 못했기에 더 깊은 이해가 어려운 장면들도 있지만 영화가 마지막으로 가면 갈 수록, 영화 스스로도 그 답을 찾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아마 그래서 '비러브드'는 굳이 같은 장소가 등장하는 어머니와 딸의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를 배경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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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러브드'가 내어 놓은, 이 알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그나마의 대답은 아마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사랑을 나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워낙에 힘들기도 하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이 있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를 역설하기도 한다.


이 짧지 않은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사실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말로 길게 풀어놓기 보단 더 느껴보고 사랑해봐야 알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더 들기도 했다.


아, 이 사랑이라는 것 정말 어떻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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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만난 루디빈 사니에르는 일단 너무 말라버렸어요 ㅠ 어린 시절 통통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는데, 너무 말라버린 탓에 살짝 안쓰럽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저 미소를 보세요 @@


2.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의 스타일도 인상적이더군요.


3. 개인적 욕심이 있다면 그냥 6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젊은 마들렌과 자호밀의 러브 스토리만 그렸더라도 괜찮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도 싶어요. 이러면 전혀 지금의 '비러브드'와는 다른 작품이겠지만 말이에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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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류승완 감독 인터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들어가며...


최근에 본 영화 '베를린' 리뷰 말미에 다시 한 번 류승완 감독님과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었는데, 진짜로 감독님 측에서 연락이 왔고, 지난 2월 12일(화) 외유내강 사무실을 방문하여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감독님과는 지난 2008년 (벌써 5년 전;;;) '다찌마와 리' 극장판 개봉시 역시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긴 시간 인터뷰를 나눴던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먼저 당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는지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놀랐다.



그렇게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한 인터뷰는, 기대한 만큼 좋았던 동시에 최근 세간에서 논란 아닌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의혹에 대한 이야기도 집중적으로 나눌 수 있었다. 사실 본래 이 인터뷰 글의 제목은 단순하게 '류승완 감독님 인터뷰했어요~' 아니면 '베를린, 류승완 그리고 의혹에 대해' 정도였는데, 결국 최종 선택한 제목은 씁쓸하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였다.



'베를린'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아쉬타카 : 인터뷰 준비를 위해 주말에 베를린을 한 번 더 보고, 가급적 새로운 질문을 해보려고 다른 인터뷰들도 많이 읽어보았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라는 것에 대한 피로감 혹은 부담감이었다.


류승완 : 제작비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외 로케이션, 여러 명의 스타들이 출연, 처음 해보는 장르, '부당거래' 이후 다시 액션 영화를 하는데 뭔가 다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게 맞겠다.
하지만 역시 많은 제작비의 영화라는 점이 큰 부담이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막말로 이 영화가 안되면 실업자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다찌마와 리' 이후 겪었던 그 공포를 떠올려보자면.. ㅎㅎ


아쉬타카 : 많은 인터뷰의 말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영화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라는 식의 답변들이 많더라. 팬으로서는 조금 안쓰럽기까지 한 부분이었다.


류승완 : 정말로 하면 할 수록 영화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더라. '베를린'을 보고 난 반응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본'시리즈에 관한 것들인데, 이 영화가 '본'의 영향력 안에 있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한 점이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최대한 '본'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흔한 예로 핸드 헬드를 쓰면 훨씬 더 거칠고 현실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쓰지 않았고, 액션의 합구성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지막 액션의 구성은 '본'이나 '007'에서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라 정두홍과 내가 하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본'과 비슷하게 보셨다면 그건 관객의 몫이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쉬타카 : '본' 시리즈나 다른 유사하다고 언급되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다른 가벼운 질문 먼저 해보려고 한다. 윤종빈 감독과 이경미 감독도 등장하는데 류승완 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김수현과 안길강이 안보이더라!


류승완 : 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말씀을 하시더라. 스스로 변화를 주고자 했던 점이 작용했던 것 같다. 또 워낙에 외국 배우들도 많이 나오다보니 틈이 없더라 ㅎㅎ 승범이도 촬영장에서 둘이 없으니 뭔가 이상하다라고도 하더라 ㅎㅎ 뭔가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해보고자 하는 것이 강했던 것 같다.


아쉬타카 : 그럼 처음부터 이번 작품은 무언가 기존과는 다르게 해보자라는 취지나 의지가 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까?


류승완 : 뭐가 먼저였다라고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캐스팅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조금씩 이런 무의식 등이 반영된 듯 하다. 뭔가 너무 익숙한 방식 아닌가? 계속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등의 압박이 어느 정도 작용한 건 맞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쉬타카 : 예전에 주진우 기자와 함께했던 MBC '간첩'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베를린'의 시작은 이 때 부터라고 볼 수 있을까?



류승완 : 그 때는 이미 '베를린'이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다음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재차 확인했다. '간첩'을 보면 내용 가운데 '베를린'의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기도 하고. '베를린'을 준비하는 취재의 과정과 맞아 떨어진 프로젝트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실제로 '베를린'에 큰 도움을 주었던 분들은 '간첩'에는 공개되지 않은 분들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카메라를 꺼놓고 만났을 정도로 실제로 정보국 활동을 하셨던 분들, 실제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던 분들의 이야기들이 '베를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쉬타카 : 북한정보원이 주인공이라는 점 등으로 베를린으로 설정했다고 어느 정도 볼 수는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특별히 '베를린'이어야만 하는 부분은 비교적 적은 편인 것 같다. 왜 스파이 영화에 또 다른 주인공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베를린'에서는 베를린이라는 장소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로케이션 촬영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류승완 : 그 부분은 크게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베를린으로 향한 첫 번째 이유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 중요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에서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츠담 회담, 동백림 사건, 송도율 교수,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 등..


실제로 최근 무기거래 등은 모로코나 중동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편이라고는 하는데, 아직도 굵직한 무기거래 등은 베를린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 중에 가장 나를 자극시켰던 부분은 역시 베를린 북한대사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북한대사관이 베를린에 있는데, 이 곳에서는 촬영이 불가능하다보니 이런 점들은 아쉬웠다. 내가 꼭 찍고 싶었던 장소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었는데,  이 곳은 촬영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팀도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 우리가 뭐라고 가능하겠나 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이야기를 서울에서는 찍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왜 베를린이었나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여러한 점들이 작용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베를린'은 스파이 영화가 아니라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영화다



아쉬타카 : 다른 분들은 대부분 '본'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더 나아가 장철 영화 같은 쇼브라더스 시절의 무협영화의 정서가 떠올랐다. 감독님이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스파이 영화 특유의 설정이나 분위기 보다는 이와 같은 정서가 더 강하게 전달되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와 관련해서 리뷰에 '류승완의 본능적인 느와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류승완 : 오히려 '정전자'하고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다른 인터뷰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시작은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드 몽 당테스에게 누명이 씌워지는 과정을 보면, 그가 나폴레옹의 스파이라는 누명으로 시작된다. 영향 받은 부분이라면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아쉬타카 님은 잘 아시겠지만 나는 어떤 감독이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면 그 부분을 더 말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이 아닌가 ㅎ


아쉬타카 : 아무래도 각자 개인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인이 영향받는 작품이나 범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일텐데, 개인적으로는 '영웅본색' 등의 느와르 영화의 정서가 깊게 느껴졌기 때문에 반대로 스파이 영화로서의 세밀함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스파이 영화로서 평가하거나, 스파이 영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류승완 : 이 영화는 스파이 영화라기 보다는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스파이 영화라면 '무간도'가 스파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첩 행위가 주가 되는. '베를린'은 그래서 카피도 액션영화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요 몇년간 진짜 스파이 영화라면 아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밖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진짜 스파이들 세계에서 액션이 벌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보전이 주가 될테니.


결국 '베를린'은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개인간의 갈등, 관계의 문제가 더 중요했었고. 이를 바탕으로 김정일 사후의 평양의 정세가 어떻게 바뀌는가, 김정남 편을 들었던 군부의 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 몰린 사람 혹은 세력들이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해외 공관의 끈을 놓치 않고 장악하려고 하는 가운데,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파멸시키는가에 집중을 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두 번이나 영화를 본 분이 아쉽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ㅎ


아쉬타카 : 아 ㅎㅎ 하지만 지금 대답에서 정확한 답변을 들었다. 기존에 얼핏 듣기로는 '베를린'을 하면서 스파이 영화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에 저런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었는데, 지급 답변처럼 '스파이가 직업인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전혀 다른 시각과 잣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류승완 : 내가 본질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건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아쉬타카 : 스파이에 대한 영화와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답변을 듣고는 많은 부분이 명쾌해진 느낌이다.



인상 깊었던 두 개의 대사




이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극중 표종성이 언급하고 있는 '우리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이 대사가 두 번 정도 반복적으로 언급된 걸 봐서, 결국 이 영화는 결정권이 없거나 결정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던 이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단호하게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이 지속적으로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결국엔 이념적인 선택까지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나. 그래서 그 첫 번째 익숙치 않은 결정들로 인해 겪게 되는 상실이나 고통 등을 다루고자 한 것이 느껴졌다.


류승완 : 맞다. 우리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던지, 우리는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라던지, 이런 대사들은 실제 북한사람들을 취재할 때 나왔던 말들이다. 북한이라는 시스템은 종교적인 시스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유일하게 비교할 만한 모델이라면 바티칸 밖에는 없을 정도로), 이런 시스템 가운데 교육받고 성장한 이들이라는 전제라면 시스템을 벗어난 개인의 자의적 결정이라는 점은 이야기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아쉬타카 :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는데, 후반부 목숨을 잃어가는 련정희를 만난 정진수가 '고향이 어디에요?'라고 묻는 대사였다. 이전까지는 전혀 남북의 이념적이거나 분단 상황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대사 한 방으로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독특한 정서가 불현듯 올라왔다. 혹시 어느 정도 포인트를 준 대사였나?


류승완 : 그 대사는 한석규 선배의 즉흥연기였다. 의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깨우려는 설정이긴 한데, 이에 앞선 대사 중에 '너들하고 우리하고 요즘 쓰는 말이 다르데'라는 것에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향이 어디에요?'라는 대사는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한석규 선배가 '베를린' 시나리오를 받고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해외를 배경으로 하면서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었다. 한석규 선배는 개인적으로 남북을 소재로한 이야기에 관심이 큰데, 이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냉전이 끝난 21세기에 아직도 냉전 중인 나라는 우리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쉬타카 : 액션에 있어서는 다 소진된 상태에서 벌이는 처절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너무 제이슨 본 같은 전문가 액션만 있었다면 오히려 류승완 스럽지 않아서 조금 심심했을 텐데, 역시나 클래이맥스에서는 최고 전문가인 두 주인공이 그 기술에 근거하되 이미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벌이는, 육체적인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고통과 피로함이 느껴져서.


류승완 : 그런 점을 봐주어서 고맙다. 액션이 주가 된 영화이기 때문에 클래이맥스의 액션 시퀀스는 특별히 많은 신경을 썼다. 권총을 둔기로 사용하는 것도 그 아이디어에 도달하기 위해 정두홍 감독과 엄청난 노력과 고민 끝에 나온 장면이다. 이런 방식으로 권총을 사용하는 경우는 다른 영화에는 거의 없지 않나? 그러고보니 '다찌마와 리'에 잠깐 나오긴 했었지만 ㅎㅎ





아쉬타카 : <베를린>은 류승완 영화 최초의 멜로 드라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극중 표종성과 련정희의 관계에는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 애틋한 로맨스가 느껴졌다. 다시 말하자면 다음 작품에도 로맨스적인 요소를 가미해도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점인가?


류승완 : 나도 모르게 그렇게 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냉혹한 인물과 관계들을 생각했었는데, 언제 부턴가 나도 모르게 로맨스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소설 '차일드 44'와의 표절 논란에 대하여



아쉬타카 : 조심스럽지만 팬의 입장에서 최근 굵어진 표절논란에 대해 여쭈어보겠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큰 부담이기도 했는데, 일단 몇몇 설정은 장르의 클리셰로 보기엔 너무 디테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내를 의심하고, 광장과 지하철 역에서 추격하고 하는 것 등을 비롯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가지 중에 거의 대부분은 충분히 클리셰로 인정할 수 있고, 스탈린의 유명한 잠언을 사용한 것이나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는 시간을 언급한 것도 어느 한 작품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련정희의 속옷과 관련된 장면이나 동전으로 표현된 아이템이나, 련정희가 임신을 했었다는 디테일한 설정은 의문을 재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차일드 44'와의 디테일한 유사점과 장르의 클리셰까지 표절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결론적으로 표절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류승완 : 이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차일드 44'를 재미있게 읽었고 주변에도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장을 했던 소설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하신 분이나 이 소설을 번역하신 분이 제기하신 의혹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절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차일드 44'와 관련된 의혹들 중에 '그러면 왜 영향받았다는 얘기 중에 진작 이 작품을 보았다고 얘기하지 않았냐'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50권이 넘는 소설 들을 모두 이야기해야만 하는 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의도적으로 '차일드 44'만 뺐다가 이제서야 뒤늦게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아니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차일드 44'는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고 리들리 스콧이 영화화 할 예정이라는 것도 '베를린' 제작 전부터 알고 있었다.


차일드 44와의 유사점 부분에 대해 이렇게 부분 캡쳐로 비교를 해서 표절로 몰아가면 억울한 부분이 있다. 본래는 이 취재파일과 취재 과정 중에 얻은 실제 인물들의 녹취 기록 등을 기자들에게 다 공개를 하려다가 이미 몇몇 함정 인터뷰도 있었고해서 차라리 여과없이 전달해주실 아쉬타카님 같은 분에게 공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요청한 점도 있다.


(이후 제가 개인적으로 의혹을 갖고 있던 부분들을 비롯해, 세간에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부분들을 설명해줄 많은 양의 취재 자료 들과 녹취 자료등을 직접 보고 듣는 확인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KGB 교육이 구동독에서 러시아로 넘어갔고, 북한 정보원들이 받은 교육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비슷할 수 밖에는 없다. 모방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방과 표절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분 캡쳐만 해 놓으면 내가 봐도 비슷하더라. 그렇기 때문에 의혹이 있는 것 자체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란에 휘말려 보니까 알겠더라. 사실관계를 입증하려 자료 등을 공개하려고 보니 이미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도 변명 밖에는 되지 않는 상황이라 가만히 있는 것 뿐이다. 이걸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보다는 같이 일한 사람, 믿어줬으면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알아주면 그것으로 괜찮다라는 생각이다. 이미 당사자인 내 입으로 얘기하는 것은 명백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직접 보고 들으신 분들이 전해주시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의혹을 제기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직접 보여드리고 들려드리고 싶다.



아쉬타카 : 마지막으로 <베를린>이라는 작품은 좋은 면이든 그렇지 않은 측면이든 감독님에게 어떤 전환점이 될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감독님에게 <베를린>이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류승완 : 8번째 장편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장르 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쉬타카 : 개인적으로는 의혹이 완벽하게 해소되어서 너무 만족스럽고 기쁘기까지 하다. 말은 못했지만 이 인터뷰의 핵심이 이 표절 의혹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질문을 어떻게 하고, 내가 수긍할 만한 대답을 과연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부담 때문에 잠도 못 잤을 정도로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었다. 완전히 해소되어서 좋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표절로 여기고 있고 완벽하게 해결할 만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


류승완 : 어쩌겠나. 아쉬타카 님처럼 몇 분이라도 진실을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쉬타카 : 이 광풍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류승완 : 그렇게 하자!



정리하며...


'베를린'을 보고나서 썼던 제 리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차일드 44'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커뮤니티를 통해 정리된 표절 의혹 부분을 보고서는, 이건 장르의 클리셰라고 하기엔 너무 디테일한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판단을 하였고, 이 부분에 대해서 류승완 감독님이 더 명확한 답을 해주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었습니다. 그 이후 감독님으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왔고, 제안을 받고서는 저도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냉정히 봤을 때 의혹을 갖기에 충분한 정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더라도 그 의혹이 명확히 해소될까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에도 있듯이 의혹을 갖는 것은 감독 스스로도 내가 봐도 비슷하다고 느낄 정도로 유사점에 대해 의혹을 갖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많은 양의 취재 자료들과 더 나아가 이 표절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취재원과 대조하는 녹취 파일을 듣고 나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모스크바에서 정보원 활동을 했던 취재원을 다시 만나 표절이라고 의혹을 받고 있는 소설의 부분 등을 재기하며 사실 여부를 일일히 확인하는 녹취 파일 및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취재 자료들에서는, 개인적으로 클리셰를 넘어서는 디테일한 인용이라고 생각했던 동전 부분에 대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실제 있는 정보원들 사이에서 유니크하지는 않은 일종의 소품이었고 (정보원 취재 자료에서 사진으로 직접 확인), 이 동전을 속옷에 숨기는 장면 및 련정희가 임신을 했다는 설정 모두 실제 취재원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걸 격앙된 북한말투로 이야기하는 취재원 분의 음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녹취는 표절 의혹 이후에 다시 진행된 부분이었는데, 일일히 표절 의혹을 받는 부분들을 거론하며 취재원에게 다시 한 번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내 인생 자체가 표절이라는 얘기냐?'라는 식이었기에 격앙될 수 밖에는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오인된 의혹들이 그렇듯이, 이 표절 의혹에 휩싸인 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 취재원들 모두는 억울함이나 실망을 넘어서서 이 영화 만드는 일 자체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류승완 감독님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취재 자료들과 녹취 자료 등을 통해 표절 의혹이 의혹을 갖는 것은 가능했으나 사실은 아니었음을 두 눈과 귀로 확인했다는 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저 같이 미약한 영화애호가 한 사람의 확인이 모든 의혹을 해소시키거나, 더 나아가 의혹 해소의 계기가 될 만한 신뢰성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까지도 이해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직접 보고 들었다는 것은 니 말일 뿐이지 않느냐'라고 물었을 때 '보고 들어서 아닌 것을 확인했기에 그렇다고 했을 뿐인데 어떻게 그렇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저 역시 최소한 제 주변에서 의혹을 갖던 분들이나, 제 블로그 등을 통해 제 글을 읽어주셨던 분들만이라도 이 의혹에 대한 사실을 (진실로 까지 포장할 이유가 없어 사실이라고 씁니다) 저를 담보로라도 믿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류승완 감독님 힘내세요!




* 마지막 제 의견을 정리한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설득 혹은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싶어서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적었었는데, 결국 다 쓰고 보니 구차해진 느낌이 있어서 그냥 간단하게 정리를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분들이 표절로 낙인찍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혹자는 출판사 측에서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소송 걸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소송하면 100% 출판사가 질 수 밖에는 없어요. 이건 CJ라는 대기업 때문이 아니라 사실관계가 너무 분명히 자료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나올 수 있는 반론이라면 '그러면 그 자료를 공개해라' 일텐데, 아마 이 문제가 더 확산되면 공개를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타블로 때도 그렇지만 공개로 과연 해소가 될까요. 또 자료가 조작이네 이럴 텐데요. 현재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영화라는 일을 해야할까 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라, 저렇게까지 번진다면 그 보다는 영화 라는 일을 접는 편을 선택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일인데, 그렇지 못하면서까지 해야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인터뷰 /정리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웨스 앤더슨의 로맨스 동화



웨스 앤더슨의 작품은 확실히 좀 '이상한' 사람들이 좋아한다. 나도 그 이상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로열 테넌바움' '판타스틱 Mr.폭스' 등의 작품을 보면 대중적으로 친화력이 있다기 보단 조금은 성격있는 작품들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사랑 받는 건, 그 인물들이나 배경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신작 '문라이즈 킹덤'은 사전 공개된 이미지들 만으로도 이 귀여움과 아기자기함이 폭발할 것만 같다는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의 방식으로 귀여움의 포텐이 폭발한 작품인 동시에 제법 진지한 로맨스 영화였다. 아, 물론 이번에도 동화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일단 '문라이즈 킹덤'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카메라 구도였다. 전작인 '판타스틱 Mr.폭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인물을 정가운데에 무조건 위치시키고 좌우 정확한 대칭을 만들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라이즈 킹덤'은 다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러티브의 영화라기 보단 이미지 자체의 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측면에서 이 강박적이기까지한 구도는 기억에 강하게 남는 이미지들을 여럿 생산해 낸다. 과장을 조금 보태 '문라이즈 킹덤'의 어떤 장면도 액자에 넣어 보관하면 그럴싸한 그림이 될 정도로 이 구도는 영화만을 위해서라기 보단 독립적인 이미지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 워킹에 있어서도 수평적인 이동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방식은 웨스 앤더슨이 신경써서 만들어낸 영화의 소품들과 배경들을 관객이 효과적으로 발견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마치 동화책을 넘기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어쩌면 '문라이즈 킹덤'은 스토리의 내러티브보다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대로의 내러티브에 더 충실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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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문라이즈 킹덤'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보다 소품과 디자인에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지만 사실 그 사실을 몰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이 영화의 배경과 소품, 디자인들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다기 보다 문라이즈 킹덤이라는 독특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은 아이템이 없는 듯한 영화의 이미지는 답답하거나 밀도가 높다고 느껴지기 보다, 오히려 편안하고 동화같은 느낌을 준다. 컬러는 다양하지만 강렬하기 보다는 파스텔 톤에 가깝고, 그렇다고 이들의 조합이 힘이 빠져보이기 보다는 살아있는 (만지고 싶은) 느낌을 주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은 얻게 된다. 사실 이 영화를 다 보고나면 특별히 무엇이 남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웨스 앤더슨이 만들어낸 묘한 세계관 때문이며 그 때문에 매번 그의 영화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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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미있는 건, 브루스 윌리스,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프랜시스 맥도먼드, 틸다 스윈튼, 하비 키이텔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이 즐비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이들이 기억나기 보다는 두 어린 주인공만이 뇌리에 남는다는 점이다. '오!! 브루스 윌리스가 나와!'하며 기대하고 봤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웨스 앤더슨의 전작을 하나라도 봤던 관객이라면 브루스 윌리스를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의 이런(?) 활용에 오히려 더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두 어린 주인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동화일 것이라는 점은 예상을 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강렬한 로맨스 영화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문라이즈 킹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 이야기들은 분명 동화이지만, 그 중심에 있는 샘과 수지의 이야기는 이들이 어린 아이라는 점만을 제외하면 그 어떤 로맨스 영화 못지 않은 강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냥 아이들의 사랑이 귀엽다' 정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로맨스 영화의 측면으로도 이해가 되었다는 얘긴데,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의 조합을 웨스 앤더슨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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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은 그의 팬들에겐 종합적인 선물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만의 귀여움과 건조한듯 하지만 깨알같은 캐릭터들, 그리고 하나 하나 갖고 싶지 않은 것이 없는 아이템들이 즐비한 소품과 이미지들까지. 포스터와 미니 캘린더는 득템했으니 이제 사운드 트랙을 질러야겠다.




1. 두 아역 연기자의 얼굴과 이미지가 강렬했어요. 특히 수지 역의 '카라 헤이워드'는 다른 작품에서는 어떨까 벌써부터 기대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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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속과 같은 저런 섬에서 저런 아이템들과 함께 한다면 몇 일간은 평화로운 휴가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Indian Paintbrush 있습니다.


 





베를린 (The Berlin File, 2013)

류승완의 본능적 느와르 영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를린'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팬임을 밝히고 시작하자면, 본래도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함께 좋아하는 감독이었지만 몇 년 전 '다찌마와 리 : 극장판'을 통해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더욱 친근하고 응원하고픈 감독이 된 것이 사실이다. 류승완의 전작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큰 인기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부당거래'였다. 그런 그가 '부당거래' 이후 더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비로 해외 로케이션 스파이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부터,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기대와 동시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작은 영화에서 류승완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대형 프로젝트의 규모 탓에 자신의 색깔을 잃고 흔한 대중적 포인트에 휩쓸려 성공은 거두더라도 팬으로서 아쉬움은 남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류승완의 '베를린'은 다양한 장르 영화의 클리셰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분명히 류승완이 뿌리로 삼고 있는 성룡 영화와 쇼브라더스의 무협 영화와 골든하베스트의 액션 영화들, 그리고 홍콩 느와르 영화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본 시리즈나 007, 더 나아가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 피하였으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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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은 '베를린'과 관련된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그 모티브를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것에서 시작했다'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결과물에 있어서는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방향성이 달라졌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류승완 감독이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장르와 정서를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에 무엇보다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앞선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작 가장 디테일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져야 할 '스파이'의 이야기가 조금은 힘을 잃은 것 같았다. 베를린이라는 멋진 로케이션과 북한 정보원과 남한 정보원, 여기에 CIA에 모사드와 아랍 단체까지 엮여 있는 구조는 스파이 영화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이 만드는 그 비밀스러운 일의 과정과 정보를 다루고 처리하는 정보원 특유의 스킬을 관객에게 100% 흡입시키기에는, 무언가 이미지와 정서에 기대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서 수시로 케이블에서 재방송을 해주는데도 그 때마다 잠깐만 봐야지 했다가 몰입해서 한참을 보게 되는 이유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의 세밀함이 워낙 흥미로워서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마저 의심하게 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에는 바로 이러한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특히 스파이 영화인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라면 바로 '배신'을 들 수 있을 텐데, 이 배신이 더 충격적이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정황이나 배경이 더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했으나, 초중반의 흐름은 이와 같은 스파이 영화의 디테일한 재미를 주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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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디테일한 측면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탓에 정서적인 측면은 오히려 더 부각되고 깊은 인상을 주었다. 스파이 영화이 대표격인 '007'시리즈의 최근 작 '스카이폴'과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느껴졌던 쓸쓸하고 차가운 스파이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비교적 성공했으며, 글의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류승완 특유의 액션이 강조되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평소 동경하고 있던 홍콩 영화들의 정서가 은연 중에 함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액션 스타일 등을 들어 '제이슨 본'을 연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가깝다면 '스카이폴'이 더 가깝다고 여겨졌으며 근본적으로는 오우삼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작품에 더 큰 정서적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동생 같은 존재에게 배신 당한 것이나, 가장 멀리 있다고 느껴진 상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나, 하정우가 연기한 표종성이라는 캐릭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홍콩 느와르에 열광했고 류승완의 팬인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동일한 정서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즉, 오우삼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이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지와 대칭점에 선 두 인물의 공감대를 보여주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단순히 버림 받은 스파이의 이야기를 다룬 전문적인 스파이 영화가 아닌 이를 배경과 도구로 하는 느와르적 정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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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흥미로워지는 또 다른 지점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남과 북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베를린'은 기획 초기에 남한 캐릭터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정도로, 남북의 이념이 주제가 되거나 부각되는 영화는 전혀 아닌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바로 이 남북이라는 설정이 특별한 감정을 불러왔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과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가 전향이나 남북의 주인공들이 등장해도 전혀 이념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딱 한 마디의 대사에서 다른 스파이 영화에는 없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련정희 (전지현)'를 발견한 '정신수 (한석규)'는 '같은 편이야'라는 말을 한 뒤 점점 숨을 잃어가는 련정희에게 이렇게 묻는다. '고향이 어디에요?'


개인적으로 이 한 마디는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두 주인공의 국적을 한 번에 인식하는 순간이었으며, 더 나아가 분단된 국가라는 새삼스러운 사실 역시 떠올리게 된 의외의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영어를 범용으로 사용하는 서양의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3의 언어를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을 넘어서서, 고향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는 서로 다른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어도 대한민국을 사는 관객으로서는 이 장면에 흐르는 묘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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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액션 연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만든 기술적인 측면은 재쳐두더라도 연출 측면에서 다른 스파이, 범죄 영화와는 다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 표종성과 동명수 (류승범)의 한계까지 몰아 붙이는 액션 시퀀스를 보면서, 최고의 기술자들이 한계에 달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임팩트도 물론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보다는 정서적으로 진이 빠지도록 만든 연출이 더 인상적이었다. 류승완 영화의 액션 클라이맥스 들은 대부분 이렇게 주인공을 더 이상 소모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소모시켜서 관객 역시 피로함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베를린'의 클래이맥스 역시 바로 이 점이 테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장철 영화에서 느꼈던 비장함이나 처절함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미 숨을 거둔 련정희의 시체를 표종성이 들쳐 업고 나오는 장면만 봐도 다른 영화였다면 더 간결하게 갈대 숲 안의 장면으로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으나, 류승완은 이 정서를 더 연장하여 몇 번이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갈대 숲을 빠져나와 슬픔과 아픔에 녹초가 되어버리는 표종성을 계속 응시한다. 이런 시퀀스에서 좀 더 류승완 만의 정서를 분명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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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근 이 영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혹은 클리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관람하기 전 이미 '제이슨 본' 시리즈의 표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간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이 부분은 클리셰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크게 문제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래에서 코드 진행이 같다는 사실 만으로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듯이, 스파이 장르와 특히 최정예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액션 영화에서 클리셰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상당 부분 많기는 했지만 이것의 유사점을 들어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제이슨 본' 시리즈 보다는 '스카이폴'이 연상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이후 논란이 된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는 쉽게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베를린'과 유사점이 의심되는 '차일드 44'의 소설 부분 부분을 확인해본 결과 이는 단순히 클리셰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디테일한 설정과 장면의 유사점이 발견되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으나,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들의 유사점 만으로도 소설 '차일드 44'와의 논란은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누구보다 류승완 감독의 팬이기에 이 부분은 좀 더 명확한 이야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 표절 논란으로 발전적이지 않은 추가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2.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감독님과 인터뷰해보고 싶었는데, 이제 안되려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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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Jagten, 2012)

사냥감이 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는 아내와 이혼했지만 아들 마커스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중이며,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가장 친하게 장난 치고 놀 정도로 착하고 평범한 남자다. 그런 루카스에게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주 사소한 일이 발생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이자 어쩌면 부모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던 클라라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감정의 스침은 루카스를 하루 아침에, 모두가 혐오하는 범죄자로 발전시킨다.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더 헌트 (Jagten, 2012)'는 '사냥'이라는 제목을 들어 억울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과 이 주인공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어른이라는 이름의 이성과 그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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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더 헌트'의 루카스 (매즈 미켈슨)의 이야기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 그리고 남들보다 좀 더 친절했던 주인공은 어쩌면 그 친절함 때문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순간, 아주 작은 우연으로 억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작은 실수가 아니라 작은 우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루카스가 클라라에게 보인 행동을 실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순간의 감정으로 거짓말을 해버린 어린 클라라의 실수 때문 만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원인이 없는, 과정이 원인마저 잠식해 버리는 이야기다. '더 헌트'가 매력적인 건 바로 이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테일한 부분은 다를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억울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또 한 번 루카스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하고 답답함마저 느끼게 되는 것은, 그 깊이를 가볍게 다루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 영화의 시선과 방식에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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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루카스를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 넣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그를 범죄자로 몰아넣는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의 모습을 무지와 억지로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즉, 몰상식으로 한 사람을 몰아가는 모양새가 아니라 이들이 최대한 이성과 논리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충분히 보여준다. 그리고나서는 바로 그 이성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이는 지를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리고 관객에게는 더 나아가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더더욱) 루카스가 처한 상황이 분명히 억울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걸 알면서도 만약 내가 저 마을의 한 일원이라면 굳이 루카스와 엮이고 싶지는 않다는 이기적인 생각까지 불러온다. 즉, 완전히 루카스의 편에만 서 있는 듯 하지만, 은연 중에 루카스를 멀리하는 그의 친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는 영화 후반부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루카스의 친구인 '테오'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을 통해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더 헌트'의 주인공은 분명 루카스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테오의 영화라고 느껴졌다. 그 만큼 테오의 행동과 갈등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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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는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쉽게 부서짐에 노출되어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누군가가 이로 인해 처절히 무너져 가는 과정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어렴풋이 열어두고 있어 더 인상적이었다. 사실 몇몇 장면은 너무 쉽게 이 희망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할 때 쯤 영화는, 스윽 하고 다시 나타나 결국 아직도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혹은 더 혹독한 사냥의 시절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긴다.

사냥감이 되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내가 누군가를 사냥하고 있는 지도 아마 그 전엔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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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즈 미켈슨의 연기는 정말 좋았어요. 이전 헐리웃 영화에서 보았던 악당의 모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요. 더불어 클라라 역할을 맡은 아이는 어떻게 이런 아이를 찾아냈을까가 더 놀랍더군요.


2. 주인공의 심리에 완전히 공감하도록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 사회의 입장에 서도록 만드는 연출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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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 (Juvenile Offender, 2012)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



강이관 감독 연출, 이정현, 서영주 주연의 영화 '범죄소년'을 뒤늦게 보았다. 이미 주변의 호평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2011년 '파수꾼'이 있었다면 2012년에는 '범죄소년'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묘한 감정이 용솟음 치는 작품이었다. 만약 지난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나의 2012년 올해의 영화 목록이 조금은 변경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범죄소년'이라는 제목처럼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듯한 한 소년과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포스터 속 문구에도 있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가정 환경 탓에 소년원을 들락날락 하는 소년 장지구(서영주)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 장효승(이정현)의 이야기는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몰입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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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따지고보면 아들인 지구와 엄마인 효승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두 명의 '범죄소년'인 지구와 효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효승은 모자 관계이기 이전에 둘 모두가 같은 현실에 놓여있거나 같은 현실을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효승은 지구를 낳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의 지구와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른바 범죄소녀였다. 즉,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보냈던 소녀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캐릭터라는 얘기다. 강이관의 '범죄소년'이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시간 대가 다른 두 명의 범죄소년이 하나의 이야기에서 만나는 동시에, 더 나아가 모자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범죄소년과 그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혀진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애초부터 이 두 가지 관계가 다 성립 (혹은 공감)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좀 더 곱씹어 보니 그렇지 않았더라도 의도와 다르게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되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두 명의 범죄소년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던 영화가, 둘을 모자 관계로 설정하는 것 만으로도 자연스러운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한 편으로는 완벽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로 읽혀지게 (범죄소년이라는 내용을 지우더라도) 되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생각은 두 배우, 특히 엄마인 효승 역할을 맡은 이정현의 대단한 연기를 보며 절로 들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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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이 좋았던 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일상 그 이상으로 특별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자극적일 수 있는 청소년의 임신과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 그리고 이런 이들이 가정으로 나아갈 수 없는 구조의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결코 선정적이거나 혹은 너무 미화하려 하지 않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지구와 효승이 처한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놀랍게도 이 특별할 것만 같았던 이야기에 영화를 보는 '내'가 대입 가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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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가난에 찌들리고 더 이상 갈 곳 없던 효승이, 얹혀살던 같이 일하는 미용실 원장에게 이제는 그만 집에서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처음에는 사실 그 미용실 원장의 입장이 더 공감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미 이 원장은 여러 차례 대가 없이 효승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거기다가 일자리와 집에 방까지 내주었기 때문에 이미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가달라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집기를 부수고 바닥에 들어 누워 오열하는 효승의 모습에서, '왜 저래?'하는 짜증이나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하는 동정 섞인 마음이 아니라 '나는 왜 저렇듯 더 간절하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효승의 방법이 옳았다라기 보다 그냥 처해진 상황을 극복하려는 방법이 결코 영리하거나 효과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해결해보려는 효승의 행동에서, 다르지만 같은 상황에 놓였었던 나 자신에게 '왜 너는 더 발버둥치지 않았어?'라며 후회섞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이 영화는 두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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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도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계속 진행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영화를 본 '나'의 이야기도 함께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새삼 알려주었기에 더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1.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보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참 평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묘한 영화였습니다.


2. 이정현의 연기가 정말로 대단했어요. 너무 여러 장면에서 '와!' 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의 완벽함을 보여주어서 그렇게 깊게 영화 속 이야기에 공감한 상태에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연신 들더군요.


3. 강이관 감독의 다음 영화도 기대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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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밀로크로제 (ミロクローゼ, 2011)

영상미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워낙 아무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나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 '위대한 밀로크로제'의 정보 아니 선택하게 된 요인은 오로지 주연 배우인 야마다 타카유키 밖에는 없었다. 야마다 타카유키를 몹시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요근래 '13인의 자객'이나 '크로우즈 제로'를 연달아 보면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고, 슬쩍 예고편을 보니 그간 영화에서 보았던 진지한 매력 외에 정말 의외의 매력까지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덥썩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감독이 누구인가는 영화를 보고나서야 확인해보게 되었는데, '푸콘 가족'을 연출한 이시바시 요시마사 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선택에는 아마 변동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게 된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참 드물게 실망스러웠다. 보는 내내 조금은 민망스럽기도 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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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일반 관객들이 '이거 뭐야??'라고 생각할 만한 이른바 '이상한' 영화들도 비교적 잘 보는 편이다. 그래서 어지간히 이상하지 않으면 별로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정말 이상한 걸로 승부를 보는 영화였다면 오히려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그냥 이상하기만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감독이 처음부터 내러티브나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뭐 없어도 너무 없다는 점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사실상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 (이것의 연관성을 '사랑'이라는 테마로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 조차도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 있다)마저도 이해하려고 했는데, 더 문제는 각각을 독립적으로 보았을 때 그 자체로 너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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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인 '쿠마가이 베송'의 이야기는 일본 특유의 색깔있는 유머라는 점을 감안하여도 조금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사실 쿠마가이 베송을 연기한 이가 바로 야마다 타카유키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등장하는 외눈박이 검객 '타몬'의 이야기와 이름이 가장 재미있는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의 이야기 역시 아쉬움이 많았다. 타몬의 이야기는 비쥬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 만큼 비쥬얼이 강조된 에피소드였는데, 비쥬얼만 과장되어 강조되다보니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칭찬한 타몬의 5분이 넘는 슬로우 모션 시퀀스 역시 정교하다거나 신선하다 라는 느낌 보다는 지루하다 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보여주기를 위한 비쥬얼 쇼크의 에피소드, 더나아가 영화라도 최소한의 맥락은 갖고 있어야 할 텐데,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과감하게 비쥬얼만을 내세운 작품이었고, 그 결과는 사실 별로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비쥬얼 쇼크라는 것이 결코 쇼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더라도 감독의 색깔이 비쥬얼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상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위대한 밀로크로제'의 영상은 '조금 색다르네' 정도였기 때문에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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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래딧을 보니 감독인 이시바시 요시마사가 연출 외에 각본, 음악, 편집, 미술 등 다양한 역할을 혼자 소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조금은 과한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이름부터 빵터지는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의 이야기만으로 하나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훨씬 더 이시바시 요시마사의 장점을 살리고 독특한 영화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진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건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 그 이름이었다.



1. 아직 야마다 타카유키는 이름만으로 작품을 선택할 만한 정도는 아닌듯 ㅠ

2. 상상마당에서 보았는데 오랜만에 필름 상영이라 더 그랬는지는 몰라도 프린트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은 것 같더군요. 화질이 상당히 안좋았어요. 비쥬얼이 중요한 작품인데 그나마 디지털로 봤다면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3. 아쉽지만 '크로우즈 제로'나 한 번 더 봐야겠네요. 세리자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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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

영속성으로서 가능한 영원에 대하여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워쇼스키 남매의 팬이다.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스피드 레이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도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장하는 바이고. 그럼에도 워쇼스키와 톰 티크베어가 함께 쓰고 연출한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는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되는 작품이었다. 원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시놉시스와 스틸컷들로 보았을 때 워쇼스키가 자신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위해 너무 많은 볼거리를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172분이라는 러닝 타임도 그 우려에 한 몫을 했다). 그렇게 보게 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우려하던 바와 같이 조금은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는 가운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고 나니, 조금은 직접적이지만 순수한 그 의도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 있는 유치함으로 도배된 '스피드 레이서'에서 왈칵 했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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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이미 '무릎팍 도사' 등을 통해 알려졌던 것처럼 이 영화는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윤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만약 이 영화가 윤회에 대한 영화였다면 별똥별 표식이 있는 이가 각 시대별로 누구인지 더 명확하게 소개했었을 것이며, 굳이 이 정도의 분장쇼를 동원하며 다른 배우로 윤회를 표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인간 혹은 영혼의 불멸이나 환생, 윤회 등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온 어떤 메시지 혹은 가치관의 힘이라고 느꼈다. 즉, 시대를 거듭하며 새로운 존재로 윤회하는 영혼의 이야기라기 보다 각 시대, 특히 그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던 어떤 존재 혹은 계층의 움직임이 그 시대 내에서는 비록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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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다면 이건 대단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위로의 메시지가 되는데, 물리적으로 한 시대를 살 수 밖에는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 넘는 영화적 시간 배경은, 하나의 이야기만 보자면 실패담이거나 별 다를 것 없는 성공담일 수 있는 이야기들 간의 영속성을 만들어 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차라리 윤회 보다는 '나비 효과'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영화 속 나비 효과가 윤회라는 형식을 빌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이 영화를 '나비 효과'의 영화로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인물들이 놓지 않았던 그 '의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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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는 그 원인이 되는 행위나 그 행위의 주체가 그 원인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고 그 결과에 대해 의도하는 바도 없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시대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혁하고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의지는 본인이 살고 있는 현재의 개혁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다음 세상을 위한 의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나비 효과의 영화라기 보단 영원 (永遠)에 대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영원에 미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들의 의지와 삶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 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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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예상 외의 고어한 장면들도 있고, 배경 역시 시대에 따라 클래식부터 SF까지 변화를 계속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영화는 아주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사로 전달한다. 거대한 바다 앞에 작은 물방울일 뿐이다 라는 얘기에 그 물방울들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결국 워쇼스키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이거였구나 싶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굉장히 단순한 메시지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그 메시지가 너무 순수하고 여린 탓에 마치 '스피드 레이서'가 그랬던 것처럼 유치하거나 시시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여러 겹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실로 순수했다. '순수'와 '순진'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많은 순수한 것은 순진한 것으로 오인되곤 하는데, 엄밀히 말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오인될 여지가 제법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는 없겠다.


하지만 난 그래도 워쇼스키와 톰 티크베어가 말하고자 한 영속성으로 가능한 영원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중이거나, 혹은 실패가 자명하지만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자신이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코 헛된 투쟁이 아니고,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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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Neo Seoul에는 별다른 불만이 없어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서울은 지금의 서울과 같은 의미로 등장한다고 보긴 어려우니까요. 즉, 논란이 될 만큼의 포인트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2. 벤 위쇼가 등장하는 부분은 왠지 톰 티크베어가 연출하고 썼을 것만 같은 느낌이더군요. 굳이 '향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어쨋든 벤 위쇼는 정말 멋지게 나옵니다.


3. 배두나는 '공기 인형'과의 연속성이 느껴졌는데, 재미있는 건 잠깐이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외국배우가 한국말 할 때처럼 어색하게 들렸다는 점이었어요 ㅋ


4. 배우들의 분장쇼는 재미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쇼'적인 측면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지만요. 배두나가 분한 1명, 할리 베리가 분한 1명 정도 빼고는 거의 다 알아봤는데, 휴고 위빙이 간호사라는 걸 못알아본 관객이 많다는 것에 전 더 놀랐어요 ㅋㅋ 휴고 위빙은 워낙에 강렬한 얼굴이라 얼굴을 다 지우지 않는 한 너무 쉽게 알아보겠더라구요 ㅎ 아, 주신도 몇 캐릭터는 못 알아봤어요. 하긴 주신이 나오는 줄도 사전에 몰랐던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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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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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

닮고 싶은 죽음, 아니  삶



비록 제작자라 할지라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신뢰의 이름 그리고 죽음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감독을 지낸 마미 스나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인 도모아키 스나다의 마지막 여정을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도모아키 스나다는 자신의 삶을 직접 정리하며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평소 영화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자주 우는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펑펑 흘릴 것만 같은 영화지만, 오히려 이 영화엔 눈물보단 미소와 부러움이 더 깊게 흘러나왔다.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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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계획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도모아키 씨의 여정은 결코 슬프지 않게 그려진다. 아니 그려진다는 연출의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보다는 유쾌함이 담겨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도모아키 씨가 적어내려간 엔딩 노트엔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장례식 초대 명단 정리하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을 믿어보기' 등 적어도 죽음보다는 삶이 느껴지는 to-do list가 담겨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영화들이 주인공의 일생을 모두 담으려 하는 것과 같은 거대한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히 도모아키 씨의 젊은 시절을 사진과 홈비디오 등으로 회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죽음을 더 극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장치라기 보다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손녀들 과의 관계에 대해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배려 정도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런 유쾌한 분위기가 도모아키 씨의 것이라기 보다는 영화가 관객을 위해 만든 방식이라고 오해할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는 철저하게 도모아키 씨의 생각과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려 애쓰고 있다. 왜 애쓰고 있다고 하냐면 이 작품을 촬영하고 만든 이가 바로 그의 막내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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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어떤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아닌 계획을 짜보기도 하는데, 그런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엔딩 노트는 정답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서 과연 이런 계획을 실현 혹은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삶은 '가능하다' 라는 확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저 이런 엔딩 노트를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는 도모아키 씨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도모아키 씨의 죽음이 정말 부러웠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막연하게 꿈꾸었던 죽음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도모아키 씨의 죽음보다는 그의 삶을 더 부러워하게 되었다. 이런 죽음을 준비하고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아온 그의 삶과 이런 그의 마지막을 기꺼이 함께 동참해주는 가족을 갖고 있는 그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엔딩 노트'는 처음엔 그냥 단순하게 '도모아키 씨처럼 죽고 싶다' 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도모아키 씨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소중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결코 울지 않았다. 최근 본 그 어떤 영화들 보다도 해피 엔딩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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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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