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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아름다워.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을 보기 전,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황옥의 이야기에 대해 먼저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아주 자세하게 살펴본 것은 아니었지만 황옥의 삶은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에게 조차 그가 끝까지 의열단 단원이었는지 아니면 일본 경찰이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당시 행했던 행동과 결과들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이라는 시대를 설명하는 존재인 동시에 몹시 영화적인 인물로서 아마도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황옥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고 했을 땐 그 존재의 모호함을 어떻게 시대와 함께 그려낼 것인지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작품이 바로 김지운의 '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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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기대와는 다르게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라는 인물 (영화 속에서 황옥과 같은 인물)이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 모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의열단과 뜻을 함께 했다는 확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 황옥의 삶을 보면 의열단으로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했다던가 반대로 일본 경찰이라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까지 번갈아 가며 행했었기 때문에 그가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가 매우 불확실한 인물인데, 영화 속 이정출로 분한 황옥의 모습은 초반에는 살짝 모호한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중반 이후부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주 확고한 시선으로 조선을 위해 행동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영화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실명으로 등장시키지 않았을뿐더러 다큐멘터리도 아니니까), 황옥이라는 인물을 영화화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밀정'이라는 제목 역시 그러하듯,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영어 제목처럼 시대의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위태로움에 대한 묘사와 영화가 끝났을 때 극장을 나오며 '과연 이정출은 어느 편에 섰던 것일까?'라고 되묻게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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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러한 선택과 별개로 192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이미지, 미장센은 역시 기대한 대로 매혹적이었다. 당시 상해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미장센이 스크린 가득 펼쳐졌을 땐, 아마도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선택했을 때 바로 이런 장면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소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서 기대대는 바와 영화적 시대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모습이었다. 기차 씬도 전체적인 긴장감의 묘사가 흥미로웠고 후반부의 볼레로를 배경으로 한 씬은 반어적인 음악이 적중한 매력적인, 또 보고 싶은 멋진 씬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나중에 읽어보니 처음에는 존 르카레의 스파이 영화들처럼 차갑고 건조한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자 싶었으나 후반부가 되었을 때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에 대해 감화되어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래서인가. '밀정'은 매력적인 요소가 충분했음에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조금 아쉬운 점이 남는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지점은 두 군데 정도인데, 장면으로 두 곳 정도이지만 아쉬웠던 이유는 사실 같다. 하나는 중반쯤 독립군들이 밀정으로 인해 함정에 빠져 참혹하게 사살될 때 스윙 재즈 곡인 'When you’re smiling'이 반어적인 느낌을 주며 배경에 흐르는 장면이다. 이런 반어적 음악의 사용은 참혹함을 강조시키기거나 혹은 정반대로 풍자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선과 악이 모호한 주인공 혹은 인물이 또 다른 악을 처단하거나 할 때 비극적인 느낌이 아닌 음악을 활용함으로써 그 인물의 선악의 모호함과 함께 그 행위 자체의 선악의 불분명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밀정'에서 독립군들이 총격을 당해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리듬감 있는 재즈 음악이 흐를 땐, 반어적 활용에서 오는 재미나 메시지보다는 1차적인 불편함이 더 컸다. 이러한 반어적 음악의 활용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액션 (폭력, 살인 등)을 행하는 인물이나 당하는 인물의 선악이 불분명하거나 특히 가하는 쪽이 분명한 정의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데, 독립군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명확한 슬픔과 아픔의 역사이기에 아직은 반어적으로 표현하기엔 보는 입장에서 불편함이 더 앞섰다. 더군다나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확실한 전후 처리, 그러니까 친일 세력에 대한 벌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는 더욱더 불편한 영화적 기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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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기차 씬에서 이정출과 김우진 (공유)이 대화를 나누는 씬들도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중요한 상황으로 밀정, 그러니까 배신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동시에, 경성에 잠입하려는 의열단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 경찰이 서로 교차하기를 반복하는 장면으로서, 사실상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는 씬이다. 이 가운데 이정출은 김우진과 몇 차례 조우하게 되는데, 그 대화 시퀀스를 보면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은 밀정을 색출해 내고 또 무사히 경성에 도착하기 위한 말만을 전하는 반면,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이 대화 속에서 배우 송강호 특유의 말투와 유머를 구사한다. 


예를 들면 김우진이 어떻게 하라고 이정출에게 말하자 이정출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기를 '저 새끼는 나한테 자꾸 명령을 하고 그래'라며 투덜대는 장면 같은 거다. 이런 생활감, 현실감 있는 대사들로 관객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연기는 오달수 배우나 송강호 배우 등이 많은 영화를 통해 자주 보여주었던 스킬인데, 그런 대사들이 적절한 곳에 사용되었을 때는 아주 반가울 일이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서의 웃음 포인트 (실제로 여기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웃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웃을 만한 장면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는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기보다는, 긴장감을 떨어 뜨리는 동시에 이정출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마저 떨어 뜨리는 역효과가 있었다. 너무 내용이 무겁다고 판단된 탓에 긴장을 덜어주고 재미를 주려 했다면 이러한 대화 시퀀스는 사건이 전개되는 시점에 삽입되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 중요한 그 기차 씬 중간에 벌어지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는 분명 아쉬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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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결과적으로 그 스스로 조금 모호한 지점에 놓여 버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애초 그리고 싶었던 것처럼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을 냉전 시대의 스파이 영화처럼 차가운 분위기로 그려내거나 아니면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더 감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섞으려 했던 것이 오히려 조금은 어중간한 영화로 남는 결과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역사를 다룰 땐, 특히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같은 정의롭지 못한 자들과 정의로운 자들의 결이 분명한 역사를 다룰 땐 행여 더 투박할지언정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밀정'은 영화적으로만 놓고 보았을 땐 이미지 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역사적 측면으로 보았을 땐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1. 써놓고 보니 마치 프로불편러가 작성한 글 같은데 영화의 전부가 그런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몇 가지 지적한 부분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부분을 특별히 콕 집어 얘기한 경우죠. 


2.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밀정'과 '암살'을 비교했을 때 영화적으로만 보면 '밀정'이 훨씬 매력적이지만, 역사를 대하는 태도나 신중함에 있어서는 '암살'이 더 낫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암살은 맞고 밀정은 틀렸다가 아니라, 암살이 밀정보다 역사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얘기.


3. 전 개인적으로 일제 시대 그리고 독립운동의 근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로 풀어내기에 매력적인 소재인 동시에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고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영화와 프로그램 등으로 만들어져서 많은 억울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권력을 쥐고 있는 많은 친일파 세력들을 더 자주 불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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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블루레이 : 역대급 부가영상을 만들어냈다!

(Veteran : Blu-ray special features Review)


블루레이로 영화를 다시 혹은 처음 즐기게 될 때 가장 큰 매력은 최고 수준의 화질과 음질로 접하게 되는 영화 본편의 재미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블루레이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제작 과정 등의 뒷이야기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는 Special Features라고 주로 부르고 우리 말로는 부가영상으로 이르는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영상들들은, 제작 과정에 대한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다룬 메이킹 다큐멘터리나 감독, 배우, 스텝 들의 주요 인터뷰 영상, 그리고 각종 예고편 및 시사회 등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리고 감독을 중심으로 영화에 참여한 이들이나 평론가 등이 참여한 음성해설 (코멘터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블루레이를 보고 난 뒤 개인적으로나 또는 매체 등에 기고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해오면서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특히 국내 영화의 블루레이 타이틀에 대해서 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극장이 아닌 블루레이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때 가장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매력 포인트가 바로 부가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국 영화의 부가영상 구성이나 완성도는 매번 아쉬움이 남는 수준이었다. 굳이 변호를 하자면 결국 국내 시장 상황의 현실을 또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실제로 감독 본인이 DVD나 블루레이 제작에 대한 열의를 갖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많은 자료들을 최대한 남기고자 노력한 경우도 없지 않았으, 이후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혹은 흥행을 했더라도 물리 매체를 중심으로한 국내 2차 시장의 규모가 워낙 협소하다 보니 제작비를 감안하여 최소한의 부가영상이 수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양적으로 부가영상이 많은 경우는 적지 않았으나 질적으로 보았을 때는 확실히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부가영상이 수록된 경우에도 인터뷰 등이 중복되어 수록되는 경우가 많았고,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임에도 특별히 촬영 소스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SD급의 떨어지는 화질로 수록된 경우도 없지 않았다. 또한 전반적으로 DVD나 블루레이를 애초부터 감안하지 않은, 그러니까 부가영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다른 성격의 영상들이 끼워 넣기 식으로 수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구성 측면에서는 특히 아쉬운 면이 컸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가 성장하는 가운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스타 감독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자신의 작품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환경이 조금씩 마련되면서,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긍정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그 영화를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 본인이, 자신의 영화가 그냥 그저 그렇게 평범한 (솔직히 말해 허접한) 물리 매체로 제작되는 것에 더 큰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긍정적인 의미로 바꿔 말하자면, 감독이 자신의 작품이 더 나은 2차 물리 매체 (블루레이)로 제작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제작사에 어필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물을 첫 번째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류승완 감독의 최근작 '베테랑'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다. 








예전에 '베를린'의 DVD가 발매되었을 즈음 류승완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베를린' DVD 그리고 그 당시 곧 발매 예정이었던 블루레이에 대해 적지 않은 아쉬움을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감독 역시 이 시장의 규모나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영화가 더 풍성하고 높은 완성도의 블루레이로 발매되기를 원하는 갈증을 해소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점 역시 오해가 있을까 부연을 하자면, 해당 타이틀의 완성도가 특별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류승완 감독이 평소 DVD나 블루레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 어떤 팬들 보다도 더 나은 블루레이가 나오길 바랐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후 '베테랑'의 블루레이 제작에는 더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이 있었고 결국 기획과 제작을 맡은 CJ E&M의 주도 하에 제작 진행 및 오소링을 맡은 플레인 아카이브 그리고 구성/편집을 맡은 RABBIT ON THE MOON 까지 세 회사의 협엽을 통해 그간 한국 영화 블루레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부가영상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반적으로 한국영화 블루레이, DVD의 경우 부가영상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대부분이기 때문에, 추후 발매되는 매체의 부가영상 역시 인터뷰가 여러 번 중복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 촬영된 인터뷰나 촬영 장면을 범용 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베테랑’ 블루레이는 무엇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부가영상(메이킹)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인터뷰들과 많은 촬영 분량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추후 천만 관객을 넘는 흥행이 있고 나니 진행한 부가적인 인터뷰 등이 아니라 이미 영화 제작 당시 많은 인터뷰나 자료들을 현장 촬영해 두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후 진행된 인터뷰 들도 있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전체적으로 부가영상이 메뉴에 맞춰 수록하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기획/편집된 영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 중간중간에 그 인터뷰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영화 속 장면이 삽입된 것은 물론, 영화 속 장면을 인용해 인터뷰 중간에 유머를 넣은 것도 한국영화 부가영상에서는 거의 첨 보는 경우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영화를 볼 때 보다 더 놀랐다!). 어쩌면 벌써 한 참 전에 이런 부가영상을 가진 한국 영화 블루레이가 있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타이틀을 만나게 된 기분이다.




'탐문수사 (기획 배경/자료조사)'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상세한 인터뷰를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흥미롭게 전한다. ‘베테랑’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이유와 이 제목이 영화에 미친 영향들 그리고 이런 구도의 이야기를 기획하게 된 배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단순히 ‘베테랑’에 국한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감독의 전작인 ‘부당거래’와 ‘베를린’의 영향 혹은 유사한 점과 차이점 들도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만난 실제 형사들, 경찰, 사회부 기자, 기업 관련인 등과의 취재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다. 더 실감 나고 디테일한 묘사와 이야기 전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현실 속 인물들을 만나 취재를 진행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작전설계 (캐스팅/로케이션)'를 통해서는 주요 캐릭터들에 대해 왜 그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뒷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의 인터뷰는 물론 배우들의 인터뷰 역시 부가영상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인터뷰 영상이라 무엇보다 메리트가 있다. 또한 이런 배우 인터뷰 부가영상의 경우 유명한 1~2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광수대 팀원 전원의 캐릭터 소개와 적지 않은 분량의 배우 인터뷰가 수록된 점도 확실히 인상적이다.


로케이션에 대한 부분도 조화성 미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극 중 경찰서의 촬영지는 어떤 곳인지 또 조태오의 공간은 어떤 곳에서 촬영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하는데, 단순히 로케이션 및 세트에 관한 미술적 설명뿐만 아니라, 그 로케이션 장소가 영화적으로 갖는 의미까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더한다. 






'사전훈련 (액션 메이킹)'에는 류승완 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액션 메이킹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감독이 좋아하는 성룡 영화의 액션을 구현하고자 했던 이 영화의 액션 디자인에 대해, 감독과 무술감독인 정두홍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현장출동 (촬영/미술)'에서는 조화성 미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상세하게 들려준다. 세트 디자인과 각 공간에 놓인 소품들에 대한 의미들에 대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배치하게 되었는지 들려주는데, 영화를 볼 때 미처 다 포착하지 못했던 미술적 요소들에 대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편집이라는 역할은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에 연출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 할 수 있는데, 그간 한국영화에서는 편집자에 대한 조명이 많지 않았던 것에 반해 이번 ‘베테랑’ 블루레이에서는 별도의 '사건수습 (편집/CG/음악)' 섹션을 통해 영화의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이 영화의 편집을 맡은 김상범 편집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는데, 감독의 인터뷰와 코멘터리만큼이나 흥미롭고 유익한 섹션이었다. 참고로 김상범 편집감독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왕의 남자’ ‘아저씨’ ‘부당거래’ 등 약 80여 편의 한국영화의 편집을 맡은 마스터 편집 감독이다.





마지막으로 '사후보고 (개봉/반응/속편계획)' 에서는 해외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국내 관객과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 해외 관객들의 반응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속편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는데, 언젠가 만나보게 될 ‘베테랑 2’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영상이었다.





* 삭제 장면에는 이동휘 배우의 씬들이 제법 있었다.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전체적으로 각 섹션별 분량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각 20~30분 수준), 확실히 양적인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구성과 편집이 특히 마음에 쏙 드는 완성도였다.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는 각 섹션들을 통해 거의 대부분 등장함에도 중복된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정보량이 상당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부가영상'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한 인터뷰 들이었다.




* SITGES 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에게 보내 온 친필(?) 선물 ㅎㅎ




마지막으로, 영화 장인 리들리 스콧의 DVD나 블루레이를 주의 깊게 살펴본 이들이라면 아마 잘 알겠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의 블루레이에서는 종종 그의 버금가는 잘 짜인, 완성도 높은 메이킹 다큐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메이킹 다큐멘터리들을 만든 이는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찰스 데 라우지리카 (charles de lauzirika)라는 감독이다. 한 번 그의 메이킹 다큐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이후에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만큼이나 그가 만든 영화의 메이킹 다큐를 기다리게 될 정도로 그가 만든 부가영상의 완성도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되었다 (찰스 데 라우지리카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별도로 자세히 소개해 볼 예정이다). 



* 찰스 데 라우지리카가 작업한 메이킹 다큐가 수록된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블루레이 부가영상에 대한 소개 글

프로메테우스 _ 그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을 제목 그대로 스페셜한 메이킹으로 만들어 낸 제작진들!


국내에서도 최근 '올드보이'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으로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올드 데이즈'가 별도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물론 '올드 데이즈'는 그야말로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 규모의 시도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하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한국 영화 블루레이에서도 자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전체적으로 기획된 구성의 부가영상을 지속해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의 제목처럼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해외 영화 블루레이의 부가영상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역대급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한국영화 블루레이의 아쉬움과 현실로 미뤄봤을 때 '베테랑'은 그런 첫 번째 시도로서 몹시 반가운 블루레이임이 틀림 없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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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파수꾼의 추억


윤성현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파수꾼 (Bleak Night, 2012)'는 그 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영화 '파수꾼'이 개인적으로 조금 다르게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 때문이다.


* 참고로 영화에 대한 리뷰는 여기로 (파수꾼 _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이 때도 살짝 오늘 할 얘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속으로 '어? 설마?'라는 말을 내뱉게 되었는데, 바로 극 중 배경이 된 장소가 몹시 낯이 익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삼인방이 함께 야구도 하고 또 걸터앉아 담배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나오는 기차역이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있었던 탓에 확신까지는 하지 못했었으나, 영화 말미 크래딧을 보고 나서야 내 기억 속의 원릉역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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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때만 해도 철로 옆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이 장소가 내게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실제로 원릉역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자주 오가던 혹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던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원릉역을 사이에 두고 아래쪽은 성사동으로 주공아파트 단지가 위치하고 있었고 위 쪽은 주교동으로 버스 종점 정류장과 함께 주택단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원릉역에서 약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바로 약이 내다 보이는 주공아파트 단지에 당시 살고 있었다. 풀이 우거진 계단을 올라 원릉역 철로를 지나서 나오는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를 다녔더랬다. 그리고 영화 속과 비슷하게 원릉역에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기도 했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내가 살 때만 해도 이 곳은 많지는 않아도 가끔 기차가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영화 속처럼 학생들이 죽치고 담배를 피거나 철로 위에서 놀거나 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또,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릉역은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이동 통로로 활용이 잦은 위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비슷한 점이라면 실제 원릉역은 (그럼에도) 밤이 되면 불빛이 어둡고 으슥한 느낌이 있어서 무서운 형님들이 돈을 뺏거나, 혹은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일들도 가끔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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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처음 보고 긴가민가 했던 이유는 철로 옆에 높게 솟은 고층 아파트 풍경 때문이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모두 보냈지만, 20살이 넘어서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독립을 하게 되어 한 동안 가보지 못했던 터라 주공아파트가 재개발되고 신도시가 생겼다는 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말로만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철로 뒤로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지만 내가 살던 당시, 그리고 열차가 다니던 당시의 풍경은 5층짜리 주공 아파트가 늘어선 풍경이었다. 만약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이 영화가 촬영되었더라면 영화 속에서 내가 살던 주공아파트 107동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수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살았던 곳이 영화 속에 등장해서가 아니다. 잠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동네는 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공 아파트 단지 전체가 재개발되면서 동네 자체가 전혀 달라져 버렸다. 즉, 내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작은 단지들의 모습을 이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원릉역은 비록 그 경계에 있었던 중간 지점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에 추억이 남다를 수 밖에는 없었다. 여기서 참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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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교회 건물 바로 옆 빌라 반지하 집에서도 수년을 살았던 기억이...)



그렇게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던 영화 '파수꾼'을 어제 오랜만에 케이블 티비를 통해 다시 보게 되니, 나도 교복 입고 원릉역을 넘나들던 그때가 다시 떠올랐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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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

올드보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메이킹 다큐멘터리 성격 영화에 대한 글 제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나'는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 최대한 피해보려 했지만, '올드 데이즈 (Old Days, 2016)'는 박찬욱 감독의 2003년작 '올드보이'가 어떤 과정과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그대로의 작품이라 피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올드보이' 블루레이에 부가영상으로 처음 기획된 이 다큐가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건 분명 과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해보고 싶었던 작업, 그러니까 좋아하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긴 호흡과 디테일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상이 우리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늘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 애초 기획이었던 것에서 확장된 버전으로 발전된 것은 조금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과잉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걱정 외에 다른 의미로 보자면, 과연 메이킹 다큐를 만드는 데에 한 편의 영화와 동일한 수준의 규모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가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가 10주년을 맞아 재상영도 할 만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고 또 해외에서 특히 인정받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당위성보다는 영화의 명성에 기댄 다큐 제작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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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드 데이즈'를 다 보고 나니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굳이 '올드보이'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블루레이에 수록될 부가 영상에 그치지 않고 영화화까지 발전시켜야 만 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즉, '올드 데이즈'는 단순히 '올드보이'라는 작품의 명성을 더하기 위해 기념 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역으로 말해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탄생된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하고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자 놀라움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2003년 '올드보이'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스텝들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모두 주역을 맡고 있는 마스터들이지만 당시엔 완전 신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경력이 많은 스텝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올드 데이즈'는 바로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히고, 이겨내며 '올드보이'라는 영화를 완성시켰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간혹 오래전 작업한 (특히 현재는 걸작이 된) 영화를 배우와 스텝들이 추억하며 회고하는 메이킹의 경우, 당시 어리고 미숙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그때는 참 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하라면 아마 다를 거예요'라는 식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드 데이즈'에 수록된 당시 스텝들의 인터뷰들에서 하나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장'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라는 것이었다. '올드보이'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였던 스텝들도 있고, 나이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상황과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익숙하고 숙련된 지금에 와 다시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그들의 진심에서 다시 한번 왜 이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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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는 내용적인 면이나 스타일,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혹자는 과잉의 영화라고 할 만큼 모든 분야의 에너지가 한계 이상으로 분출되고 있는 벅찬 영화였다. '올드 데이즈'를 보고 느꼈던 건, 아마도 이 영화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 (지금에 와서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의)를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다 담아낼 수 이유가, 감독 한 명 혹은 예술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출중한 몇몇 아티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자신들의 한계치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에 기적처럼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정확히 뭐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당시의 순간에 내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공기가 느껴져,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해보자 라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괴물. 그런 에너지들이 마치 어떤 상자 안에 봉인되듯이 '올드보이'라는 영화 안에 봉인되는 것에 성공한, 그런 괴물 같은 우연 혹은 사건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들었다. 


솔직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팬으로서 '올드보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가라는 질문엔 선뜻 답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건 지난 10주년 상영회 (리뷰 : 올드보이 10주년 -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에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올드보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영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올드 데이즈'와의 만남은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여러 번을 보고, 수 없이 영화 음악을 듣고, 여러 버전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작품임에도 '올드 데이즈'를 보는 내내 속으로 '아... 빨리 올드보이를 다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결국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 지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올드 데이즈'는 그렇게 익숙한 '올드보이'를 또 보고 싶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놀라운 영화였다. 

곧 블루레이로 다시 만나게 될 '올드보이'가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1. 플레인 아카이브는 (본인들은 쑥스럽겠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네요.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2.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상영회 후 GV 자리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올드 데이즈'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조영욱 음악감독님의 얘기들이 흥미로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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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버스터즈 (Ghostbusters, 2016)

여성 버전으로 다시 한 번!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시고니 위버가 출연했던 1984년 작 '고스트 버스터즈'가 멜리사 맥카시와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 레슬리 존스 4인방의 여성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원작 '고스트 버스터즈'는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고 사랑 받는 코믹 액션 영화인데, 전작 '스파이'를 함께 했던 폴 페이그 감독과 멜리사 맥카시가 주축이 되어 4명의 남성 팀원들을 모두 여성으로 교체한, 이른바 여성버전의 '고스트 버스터즈'를 선보였다. 


일단 간단하게 말해서 원작에 비해 여성 버전의 '고스트 버스터즈'는 성별을 교체한 것 외에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즉, 1984년 원작의 리메이크 영화라 할 수 있는데 4명의 주인공들을 모두 여성으로 교체하고, 원작에서 여성인 시고니 위버가 맡았던 역할과 유사한 롤의 캐릭터를 남성인 크리스 햄스워스가 연기하는 것 외에, 2016년 버전의 현재성을 가미하거나 발전된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조금 어려운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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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갖고 극장을 찾는 다면 (특히 원작의 재미에 버금가는 흥미진진한 요소를 기대한다면) 아마도 실망하기 쉽지만, 원작을 못 본 관객들이나 큰 기대 없이 코미디를 즐기고자 하는 관객들에겐 그리 나쁜 선택이라고 보긴 힘들 듯 하다. 이 영화는 거의 9할이 개그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렇게 개그가 양념이 아니라 본 식사로 제공되는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일단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호불호가 될 것이다. 쉴새 없이, 거기에다 미처 관객들이 (특히 미국 관객이 아닌 관객들이라면 더)다 알아 채지 못하고 넘어갈 정도의 개그들까지 아주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데, 솔직히 조금 지치는 감도 없지 않았지만 몇 몇 장면에서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소리 내서 웃었을 정도로 유쾌한 유머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주인공을 단순히 남성에서 여성으로 교체한 것에 그치는 것은 맞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 버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자와 재미 요소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사실 영화 스스로는 페미니즘 적인 요소를 겉으로 전혀 과장하여 주장하고 있지 않은데, 이 영화를 겉에서 바라보는 일부 관객들이 오히려 단지 성역할이 바뀌었다는 이유 만으로 몰지각하게 비판하는 것이 다분하다. 폴 페이그의 2016년 여성 버전의 '고스트 버스터즈'는 여성들로 주인공을 바꾸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설득하기 보다는 그냥 여성들이 주연을 맡았을 때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반드시 여성이여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도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더 나아가 레슬리 존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영화를 비판하는 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재미가 없다는 건 다른 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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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여성들로 주연 캐릭터들이 바뀌면서 새로운 재미와 풍자의 요소가 된 건 크리스 햄스워스가 연기한 케빈 캐릭터다. 우습게도 여성 캐릭터였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요소들이 크리스 햄스워스의 해맑은 연기 (본인 스스로 너무 즐기는 듯한)를 통해 새로운 풍자의 요소로 부각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페미니즘적 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크리스 햄스워스의 캐릭터는 시종일관 재미있는 가운데서도 무언가 그간의 남성 중심 영화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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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럼에도 전체적인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 수많은 개그들을 유기적으로 엮을 만한 스토리와 전개 과정이 아무래도 단순한 편이고,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부분이 그다지 임팩트가 떨어지는 (분명 여긴데 겨우 이정도?? 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것은 좀 더 시원하고 통쾌할 수 있었던 액션을 심심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아, 그리고 이 영화는 대놓고 3D로 보라고 만든 영화인데 국내에서는 (아마도)흥행성 탓에 3D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3D아이맥스, 4DX 등으로 관람했다면 더 유쾌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이 영화는 그렇게 봐야하는 영환데 말이다.



1. 원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모습이 반가웠어요. 제법 비중있었던 빌 머레이 외에 잠깐 등장한 댄 애크로이드와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시고니 위버까지. 댄 애크로이드는 이 작품의 제작에도 참여했더군요.


2.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나고 짧은 쿠키 장면이 나와요. 속편을 암시하는 듯 한데, 과연 나올 수 있을지!


3. 어렸을 때 원작보고 호빵 귀신 젤 무서워했었는데 다시 만나서 반갑 ㅎㅎ 


4. 케이트 맥키넌은 팬덤 좀 생길듯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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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Worst Woman, 2015)

해피엔딩이 필요해



'조금만 더 가까이 (Come, Closer, 2010)'를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의 신작 '최악의 하루 (Worst Woman, 2015)'는 주인공 은희 (한예리)가 만나게 되는 세 명의 남자와의 이야기를 다룬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제목에서 또 한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얽히게 된다는 줄거리에서 쉽게 홍상수의 영화들을 떠올려 보게 되는데, 영화는 실제로도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홍상수 영화에서 느꼈던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한다. 그렇게 은희가 만났던 두 남자의 한 편으론 찌질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찌질하다 못해 무례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남산을 배경으로 즐기고 있는데, 소설가인 료헤이 (이와세 료)의 이야기가 조금씩 짙어질 수록 '아, 이 영화는 무언가 결이 좀 다른데?'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 부에 등장했던 료헤이의 내레이션과 연습실에서 대사를 읊던 은희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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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가혹한 상황 속에 몰아 넣고 탈출할 곳을 주지 않았던 작가의 이야기와 할 때는 진짜인데 끝나고 나면 가짜인 것이 연극(연기)이라는 영화 속 대사는, 은희가 하루 동안 겪게 되는 이른바 최악의 사건들 그리고 또 다른 최악의 하루를 맞게 된 소설가 료헤이의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단순한 남녀 관계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전혀 새로운 방향성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게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보다는 오히려 이와세 료가 출연하기도 했던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같은 이유로 시달리는 것에 가까운 은희와는 정반대로 배경이 되는 도시의 작은 골목들과 그 속에 위치한 자연에 가까운 공간인 남산 산책로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복선으로 볼 수 있다. 그저 아름다운 영상미 만을 위해 활용된 것이라기 보다는 메시지가 주는 희망과 포용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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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극장에서 그 해피엔딩이 언급된 대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속으로 생각하기에도 '어? 이건 좀 너무 갑작스러운데?' 라고 스스로에게 느낄 정도로 갑작스러운, 하지만 송곳 같이 마음에 다다른 대사가 바로 해피엔딩, 어쩌면 너무 뻔하고 순진하다고 자주 여겨지는 해피엔딩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영화 글을 통해서도 종종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대책없는 순진함 혹은 무턱대고 해피엔딩스러운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최악의 하루'에 담겨 있는 해피엔딩에 관한 내용은 분명 그것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건 그냥 연출의 힘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갑자기 다른 시공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공기가 달라진 늦은 밤 시간의 남산 산책로에서 영어가 서투른 두 남녀가 각자의 하루를 돌이켜 보며 (그럼에도)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 간절함은, 급작스러울 수 있는 해피엔딩의 감성을 너무나도 정확히 관통시켰다. 행복한 결말을 맺는 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새겨보는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작업 혹은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하거나 소설 속 인물을 대하는 (행하는)방식과 태도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소품 같은 이야기와 전형적인 메시지를 너무 판타지적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알맞게 그려낸 매력적인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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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비욘드 (Star Trek Beyond, 2016)

이제 오락만으로도 진행가능한 안정감


J.J.에이브람스가 연출을 맡으며 새롭게 선보인 스타트렉 시리즈가 '스타트렉 더 비기닝' '스타트렉 다크니스'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인 '스타트렉 비욘드'를 내놓았다. J.J.는 제작에만 참여하고 이번 영화의 연출엔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익숙한 저스틴 린 감독이 맡았는데, '비욘드'는 딱 저스틴 린의 스타일대로 나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타트렉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저스틴 린의 작품이다. 즉, 오락성, 여름 블록버스터에 적합한 볼거리 요소가 강조된 액션 영화라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변화에 대해서는 팬들, 특히 트레키라 불리는 골수팬들의 입장에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만한 요소가 될 수 있겠다.  저스틴 린은 이미 두 편을 통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에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연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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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122분의 러닝 타임은 짜임새 보다는 빠른 전개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초반 엔터프라이즈호와 대원들이 위험과 음모에 빠지게 되는 과정은 조금은 급하다 싶을 정도로 별다른 설명없이 빠르게 진행되며, 이후 전개에서도 이 세계관을 아우르는 디테일한 설명과 묘사 보다는, 이번 영화에 벌어진 사건 자체에만 집중한다 (물론 이 사건에만 집중되었음에도 이야기의 구조는 상당히 단편적으로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로 저스틴 린의 '스타트렉 비욘드'는 스타트렉을 잘 활용하기만 한 평범한 액션 영화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내놓을 수가 있는데, 나는 오히려 이 지점이 앞서 언급 했던 것처럼 이 시리즈가 전작인 두 편을 통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는 측면에서 괜찮은 작품으로 받아들여 졌다. 그러니까 만약 저스틴 린이 (물론 제작자로 여전히 J.J.가 전반적인 작품의 관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새롭게 연출을 맡으면서 이 이야기에 메시지나 내용적으로 자신 만의 것을 더 녹여내려고 했다면,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 보다는 이미 리부트에 안정적으로 성공한 시리즈의 기반 위에 자신이 잘하는 스피디한 액션을 가미하는 것이, 이미 궤도에 오른 스타트렉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의 조각으로서 의미 있는 연결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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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비욘드'가 전혀 이 세계관을 그저 활용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골수팬들이라면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장면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새로운 시리즈만을 접한 팬들 입장에서도 연속성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없지 않다.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스팍 역의 레너드 니모이에 대한 영화의 헌사는 짧지는 그래서 강렬하다. 그리고 그 사진 한 장이 주는 감동은 단순히 추억하는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시대의 '스타트렉'이 우리의 생각보다도 길게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 가지 더. 안톤 옐친을 스크린을 통해 그 소식 이후 처음 접하는 순간이다. 영화가 다 제작된 이후인 몇 달 전에 불의의 사고를 세상을 떠났기에 작품 내에서는 그에 대한 그리운 요소가 직접적으로 담겨 있지는 않다 ('분노의 질주 7'의 폴 워커의 경우와는 다르게). 하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독 더 돋보인 그의 등장 장면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냥 그대로 담겨 있어서 더 짠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가 다 끝나고, '레너드 니모이를 추억하며, 안톤 에게'라는 자막이 나오자, 앞으로 느끼게 될 그의 빈자리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커졌다. 다시 한 번 전설인 니모이와 너무 빨리 떠난 안톤 옐친이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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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먼 페그가 연기 외에 각본도 직접 맡았더군요.

2. 언제부터인가 극 중 악당들로 묘사되는 캐릭터들에 더 공감하게 되는 일이.... 이번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 원인을 따져보자면 그렇다는 얘기).

3. 커크가 차 마시는 그 머그컵. 살까 말까 고민중.

4. 역시 음악의 힘이 짱!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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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자이언트 (The BFG, 2016)

아이들을 위한 스필버그 영화



오랜만에 만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라 좋지 않은 흥행 성적과 평에도 제법 기대를 했었던 '마이 리틀 자이언트 (원제는 The BFG, 즉 Big Friendly Giant (우리말로는 '착한 거인 아저씨'정도)인데 그냥 국내에 출판 된 적이 있었던 로알드 달의 원작 제목인 '내 친구 꼬마 거인'을 그대로 썼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를 보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치 스필버그가 80년대 만들었던 영화들,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들과 유사한 구성을 취하고 있었는데, 실사와 그래픽이 결합된 기술적 측면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구성이 너무 느슨하고 헛점이 많은 전개와 유아적인 표현 들이 다분한, 조금 아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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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아원에서도 왠지 친구가 많지 않을 것만 같은 소녀가 거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거인 역시 거인들의 세계에서는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는 존재. 이 두 사람이 친구가 되면서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인간 아이들을 잡아 먹는 거인들과 이런 거인들을 막지는 못하는 대신 인간 아이들에게 꿈을 전해주는 작업을 하는 BFG의 설정은, 영화 만드는 작업에 대한 은유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리 깊게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의미를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확실히 이건 해석을 위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적 깊이에 신경은 덜한 모습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즉 호기심과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하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 잠이 들기 전에 '혹시 우리 동네에도 거인이 늦은 밤 돌아 다니는건 아닐까?' '내가 꾸는 꿈도 거인이 불어 넣은 것이 아닐까?'라고 한 번쯤 상상하게 되도록 말이다. 실제로 영화를 본 아이들은 이 세계와 영화 속 유머에 집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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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래도 성인의 입장에서 보기엔 조금 대책없이 낙천적인 전개들이 헛점으로 느껴졌다. 또한 캐릭터들도 지극히 평면적이어서 어른의 시각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거나,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거인들의 세상을 다룰 때는 나쁘지 않았으나 영국 왕실이 등장하는 인간 세계 파트는 너무 유아적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 그간 들려주었던 매력적인 꿈 이야기의 만족도마저 조금 식어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 만찬 장면의 가스 배출(?)장면에서는 극장 내 너나 할 것 없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ㅎ). 스필버그의 영화라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까. 아이들을 위한 스필버그 영화는, 내겐 조금 아쉬웠다.



1. 스필버그의 첫 번째 디즈니 영화군요.


2. '스파이 브릿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마크 라일런스가 거인 BFG를 연기하는데, 그 인자한 웃음과 눈 주름은 여전하더군요.


3.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느끼지 않은 것 같지만 저는 왜인지 영화 속 빨간 자켓과 관련된 이야기에 마이클 잭슨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몹시 짠하게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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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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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A Netflix Original Series : Stranger Things)

80년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장르영화의 선물세트



딱 봐도 8,90년대스러운 이미지에 끌려 보게 된 8부작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는, 그 특유의 신디사이저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타이틀 영상 만으로도 단 번에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과 추억을 바로 소환하는 타이틀 영상의 폰트 디자인은, 어린 시절 CIC비디오들을 통해 보았던 수 많은 헐리웃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타이틀만 보고도 '아, 이 시리즈는 추억을 소환하려고 작정했구나'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그리고 그 작정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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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여러가지 추억의 작품들을 쉽게 떠올려볼 수 있다. 일단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은 '구니스'와 닮아 있고 미지의 존재인 일레븐은 마치 'E.T'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기본적으로 'E.T'와의 유사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아이들이 일레븐을 숨기는 것이나 자전거를 무리 지어 타거나, 음모를 꾸미는 어른들을 피해 도망을 가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또 극중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캐릭터의 모습에서는 흡사 '미지와의 조우'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그 밖에도 '에일리언'이나 '폴터가이스트' '나이트메어' 등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하게 보았던 많은 SF/공포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들이 넘처난다. 아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좀 더 자세히 비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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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오마주가 되려면 원작의 요소들을 단순히 가져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요소들을 잘 활용하여 또 한 번 재미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내야 하는데, '기묘한 이야기'는 혹여 80년대 SF영화들에 대한 추억이 없더라도 충분히 빠져들 만한 꽉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8화로 이뤄진 구성도 한 호흡으로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빠져있으며, 작품 곳곳에 녹아 들어 있는 추억의 아이템과 정서들을 발견하는 것 만으로도 벅찬 작품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캐스팅이 완벽하고, 이야기 측면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위노나 라이더와 경찰 서장) 그리고 윌의 형과 마이크의 누나가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동시에 하나의 사건에 각각 접근해 가는 방식 역시 짜임새가 훌륭하다. 


어린 시절 스필버그의 SF영화들을 비롯해, 당시 유행하던 공포/미스테리 영화들과 스티븐 킹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거의 '무조건' 봐야 할 시리즈라 아니할 수 없겠다. 다행히 시즌 2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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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 2016)

아직 멀기만한 DC의 마블 따라잡기



할리퀸, 조커, 데드샷, 엘 디아블로, 캡틴 크룩 등 DC코믹스의 여러 캐릭터들이 한꺼 번에 등장하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 2016)' 즉, 자살 특공대는 여러모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영화다. 많은 팬들이 '어벤져스'급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더라도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을 비롯해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조커까지 등장하며 마블의 '데드풀 (Deadpool, 2016)'에 대적할 만한 똘기 넘치고 스타일리쉬한 영화가 되길 바랬던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총체적 난국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안타깝다, 아쉽다 이런 표현을 자주 하는 나인데, 이번엔 그보다 실망스럽다가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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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볼거리 위주의 슈퍼 히어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각기 다른 캐릭터가 함께 모여서 하나의 막강한 적과 싸운다는 전제의 논리가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비올라 데이비스가 연기한 국장이 이 강력한 캐릭터들을 모아 팀을 꾸려야 겠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 설득이 되질 않는다. 영화가 전제하는 건 슈퍼맨 같은 존재가 만약 우리 편이 아니라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대응으로 메타 휴먼인 범죄자들을 하나의 팀으로서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진짜로 슈퍼맨과 같은 존재의 위협을 대비하려고 했던 것이었다면 배트맨과 플래시 등의 팀 (이 영화엔 안나오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에 나오는 원더우먼과 아쿠아맨까지 더해서)으로서 준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굳이 배트맨의 팀이 이들을 잡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이 메타 휴먼들을 팀으로 준비하는 것이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영화는 전혀 설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국장이 이들의 목숨을 앱을 통해 쥐고 있는 설정이 이 팀이 운영 가능한 이유가 되는데, 이것도 너무 허술해서 저게 과연 무력화 시키지 못할 정도의 일인가 싶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적이 되는 인챈트리스와 그의 오빠(?)의 행동도 별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굳이 오랜 시간을 위험하게 공들여 가며 무슨 무기(?)를 준비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 자살 특공대가 올 때까지 굳이 그 무기 만들기에 매달려야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 정도 능력이라면 자살 특공대를 맘만 먹으면 쉽게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뭐 능력치 밸런스에 대한 부분은 코믹스를 영화화 할 때 매번 논쟁이 되는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번 영화의 능력치 밸런스는 확실히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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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점들을 다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해도 이 영화의 완성도와 연출력은 정말 답답한 수준이다. 이 영화가 가장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점은 삐딱한 캐릭터들을 한 방에 몰아 놓고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유머를 담아내면 흡사 마블의 '데드풀'처럼 쌈마이 스러운 히어로 물이 되지 않을까 했던 점인데, 이상향과 실력의 차이가 너무 현격하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유치한 전개가 되어 버렸다. 설령 극 중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유머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소수 마니아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송곳 같은 농담이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 농담들 만큼이나 전반에 삽입되어 있는 진짜 진지함은 솔직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참을 수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던 '데드풀'이나 병맛 같은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마셰티'같은 영화의 경우 가끔 등장하는 진지한 장면들은, 극중 캐릭터가 진지한 장면이지 영화까지 진지한 장면은 아닌, 즉 갑자기 진지해 짐으로서 피식하고 웃게 되는, 사실은 웃음 포인트인 장면들인데, 첨에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그런 진지한 장면들이 나오길래 '아, 그런식으로 웃기려나 보구나' 했는데, 웬걸. 정말로 진지한 장면이어서 이걸 어찌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민망하더라. 그런 장면이 클라이맥스에 한 두 장면 정도 있으면 그냥 아쉽다 정도로 마무리 되었을 텐데, 이 영화는 마치 그게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서 아주 고르게 삽입되어 있어 피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보니 맥은 5분 마다 뚝뚝 끊기고, 집중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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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영화는 마치 제작비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 에미넴, 퀸 등의 유명한 곡들을 영화 중간 중간 삽입하여 관객들을 선동하고자 하는데, 사실 곡들이 너무 좋아하는 노래들이라 선동될 뻔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장면에서 남는 것은 영화가 아닌 음악 뿐이었다. 전혀 장면과 결합되지 않은 삽입곡들. 차라리 이 곡들의 라이센스 비용을 다른 곳에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그렇게 실망스러운 영화를 그나마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건 이미 익숙한 캐릭터들의 힘이다.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은 관객들을 자신의 팬들로 만드는 것에 겨우겨우 성공한다 (겨우겨우 성공한 건 그녀가 매력이 덜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너무 별로여서다. 이 정도 매력이 아니었다면 아마 할리 퀸도 다 같이 무너졌을 것이다). 또한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조커는 오히려 분량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특히 이 자살 특공대들과 엮이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함이 살아 있는 케이스라 봐야겠다. 이야기에 더 깊숙이 엮였다면 그도 온전히 살아남는 것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하나 윌 스미스는 데드샷 캐릭터로서 보다는 오히려 윌 스미스라는 배우의 경력과 그로 인해 관객들이 갖는 신뢰로 연명한 경우다. 아주 유치한 장면들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윌 스미스라는 익숙한 배우 때문이었다.


DC코믹스, 그리고 워너브라더스는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너무 성급하게 마블 스튜디오가 이룬 성공 만을 쫓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만 해도 새로운 조커와 할리 퀸의 영화를 먼저 꺼낸 뒤 진행했더라면 더욱 인기를 끌었을 법한 영화인데, 너무 갑작스럽게 떼로 몰려 나오는 영화를, 그것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수준으로 내놓은 것은 앞으로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캐릭터가 없다면 모를까,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는 DC코믹스의 영화화 작업을 마블과의 대결 구도(마블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을 것 같지만)만을 생각해 너무 성급한 행보들을 보여주는 것이 팬으로서 또 한 번 안타까운 점이다. 



1. 글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번 영화의 실망스러운 결과를 오롯이 감독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더군요. 워너가 편집 등 제작에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 등의 뒷얘기를 들어보면 말이죠.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니 이 정도로 연출할 만큼 능력이 없는 감독은 아니었거든요.


2. 이 영화의 쿠키 장면을 보면 '와, 다음 편이 정말 기대되는데!'가 아니라 또 코웃음이 ;;;; 이 쿠키 장면은 일종의 자문자답 같아보였어요. 그러게 배트맨과 팀이 나서면 애초에 벌이지 않아도 될 일을, 왜 이 고생을 하는지.


3.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설레었던 장면은 캐릭터들이 배트맨과 플래시에게 잡혀오는 짧은 장면들이었어요. 이 과정을 길게 만드는 것이 차라리 훨씬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었을 듯.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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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 2016)

어제의 나에게 보내는 안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 2016)'를 보았다. 언제부턴가 신작을 가장 기다리게 되는 감독 중 하나인 그의 새로운 영화는, 또 한 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삶의 진리를 어김 없이 찾아 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를 통해 발견하고 꺼내 드는 삶의 순간, 깨달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모두의 삶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부정하려 애쓰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인정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후자의 경우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하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후회하고 포기하고 자책했던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당부 같은 이야기다. 막연하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마법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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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중요하다는 것. 특히 가족의 죽음이나 부부의 이혼 등을 겪은 이후에 '그 때 잘 할걸'하며 그러니까 지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머리로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중요성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다룬 다른 영화들이 그 후회를 말끔히 씻어 줄 방법과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를 돌이켜 그 잘못된 매듭을 풀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반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번 되 묻지만 결국 그 답을 찾아내지 못한 주인공들을 그린다. 다시 말해 '태풍이 지나가고'의 이야기는 과거 나태하고 실수를 많이 하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인해 정신차리게 되는 이야기나, 과거 오해나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이 비로소 해결되는 방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말할 수 없는 삶의 행복이 느껴진다.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 료타의 후회는 가족이라는 존재의 힘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바로 그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하는 가가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애써 무리하게 억지로 행복하려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후회를 덮지 않도록 료타(아베 히로시)를 감싸고 돌보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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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가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이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인권의 그 노래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는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두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는 일인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 인정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에 영화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칫 허무맹랑한 낙천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약 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이 한 가족의 이야기는 그렇게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자신 만의 결말을 맺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의 이야기를 연달아 그리는 가운데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고심해 왔다. 어른스럽다 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인지에 대해 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내세워 그 고민과 답을 이어왔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어른이 되어야 하는 부모의 역할과 무게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 것은 감독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부터 어쩌면 당연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또한 과거의 후회스러웠던 일들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있으면 그러한 감독의 고민과 지금의 답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분명 후회되는 일들이 있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내일로 나아가는 것.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 내일에 먼저 도달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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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에게 진정으로 안녕하고 안부와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나에게도 어제의 나를 미소 지으며 떠나보낼 수 있도록 (이건 쿨한 안녕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진짜 안녕이다)작은 용기를 불어 넣어준 영화였다. 나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알 수 있을까. '안녕'하며 인사할 수 있을까. 



1.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어머니가 홀로 사셨던 연립아파트단지의 기억을 이 영화에 그려냈다고 하는데,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연립아파트의 모습이나 풍경이 마치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주공아파트의 기억과 겹쳐졌어요.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도 했었고. 무언가 그 자체가 추억인 주공아파트의 풍경이...


2. 키키 키린의 연기는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하는데,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장면을 그러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 속의 진리와 소중함을 관객에게 100% 전달하는데에 그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에요. 


3. 극 중 아베 히로시의 아들 '싱고' 역의 배우는 우리 배우 김새론과 몹시 닮았더군요 ㅎ


4. 사실 이번 작품은 전작 이후 텀이 좀 짧기도 했고, 포스터나 시놉에서 '걸어도 걸어도'가 연상되기도 해서 아주 큰 기대까지는 갖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아..... 또 한 번 완벽한 드라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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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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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 (Jason Bourne, 2016)

영원히 고통받는 제이슨 본



1. 이번 '제이슨 본'은 길게 쓸 내용까지는 없어서 간단히 코멘트 하는 방식으로만.


2.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제이슨 본'은 확실히 또 한 번 요원물의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제 C.I.A.요원 이야기는 영화로나 다큐로 너무 많이 접해서 신선한 감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바는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액션 영화였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본이 그 특유의 빠른 걸음걸이로 군중 속을 휘젓고 다니는 장면만 봐도, '아, 본이 돌아왔구나!' 싶다.


3. 가장 격렬한 격투 액션을 보여주었던 '본 얼티메이텀'에 비하자면 이번 영화는 격투 액션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이미 레전설이 된 제이슨 본 답게, 직접 격투를 최대한 피하면서도 추격 장면만으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지 않다. 격투 액션 얘기가 나온 김에, 아무리 본이 최정상급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만한 특수요원이라지만 같은 C.I.A.요원들이 본에게 거의 한 방에 다 기절하고 마는 장면을 보면, 이것이 진정한 C.I.A.의 위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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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이슨 본의 과거 찾기 이야기와 더불어 영화에는 C.I.A.와 거래를 한 거대 IT회사 대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 흥미로운건, 보통 이런 첩보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위협이나 음모 등의 경우 현실성이 있는 수준의 가까운 미래 혹은 아직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 공포에 대한 것이 대부분인데,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감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 비지니스의 이야기는 이미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스노든의 폭로를 비롯해 많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피부로 느껴지는 수준의 공포, 더 나아가는 과거의 위협으로까지 볼 수 있던 점이라 공포감이 덜했다고나 할까. 영화의 메인 테마가 제이슨 본 한 사람의 과거와 정체성 찾기에 맞춰져 있다보니, 이 거대한 위협은 비교적 축소되고 또 영화적으로 매력은 덜했던 측면이 있다. 차라리 이 이야기를 제외하고 본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


5. 스노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무래도 서브 테마의 이야기의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스노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데, 미정부 그리고 C.I.A.에게 스노든의 폭로가 얼마나 큰 상처이자 걸림돌이었는지 (마치 영화 속 제이슨 본의 존재처럼)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참고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를 권하고 싶다. 



시티즌포 _ 다음 사람들을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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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줄리 스타일스도 참 오래 버텼다.


7. 아마도 이 영화가 제이슨 본 이야기의 마지막 편일 가능성이 높지만, 특성상 하려고만 하면 충분히 계속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이 가능은 할 것이다. 제목에 '영원히 고통받는..'이라고 쓴 것처럼, C.I.A.국장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고, 조직이 개선되고, 프로그램이 완전 패기 된다하더라도, 그 자체가 실패한 프로그램의 상징인 제이슨 본을 가만히 둘리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게임은 제이슨 본이 죽어야만 끝나는 얘기이기 때문에, 그가 죽지 않는 이상 영원히 고통 받으며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


8.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정말 매력적인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한계가 있어서 그녀의 본래 매력을 다 뽐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뭐 그건, 뱅상 카셀도 마찬가지고.


9. 마치 아쉬운 점들만 늘어 놓은 것 같지만, 2시간을 쉼 없이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딱 기대했던 본 시리즈의 새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관람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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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Train To Busan, 2015)

세월호 이후, 혐오의 시대에서 생존하려면



연상호 감독의 첫 번째 실사영화 '부산행 (Train To Busan, 2015)'은 그의 전작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좀비들의 확산으로 마비가 되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부산으로 향하는 KTX열차 안을 배경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막막한 현실과 특수한 재난 상황에 놓인 각기 다른 이해 관계의 인물들의 충돌을 빠른 템포로 그려낸다. 물론 '부산행'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좀비가 맞지만 이 영화를 좀비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좀비라는 설정은 말 그대로 이 재난을 가져온 소재와 장르적인 요소로만 활용되고 있고, 영화의 구성은 오히려 전형적인 재난 영화에 가깝다. 좀비와 재난. '부산행'은 이 두 가지에서 떠올려 볼 수 있는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적인 것에서 오는 장르적 쾌감을 만끽하는데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 영화 이상의 인상을 주는 이유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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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거의 색이 바래지기는 했지만 한 때 미국 영화는 9/11 테러 사건을 전후로 나뉜 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9/11 이후의 미국 영화들을 직간접적으로 또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9/11의 기억과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최근의 한국 영화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도드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미리 말하고 싶은 점은 '부산행'을 세월호 참사와 전혀 연결 짓지 않아도 영화는 장르 영화로서, 그리고 연상호 감독이 꾸준히 해오던 테마의 발전으로서 충분히 성립 가능한 영화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9/11 이후 미국 영화들의 다수도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 제작된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산행'은 세월호 참사를 이제 그만 좀 얘기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좀비들에게 공격을 받고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 정부와 언론은 일부 과격 시위 단체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전한다. 또한 실상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들의 확산을 막지도,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현재 모든 상황을 완벽히 관리하고 있다며 안심하라는 기자회견을 연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완전히 좀비들을 막아낸 이후에 상황에도 현실과 비슷한 대처를 하지 않았을까? 끝까지 좀비는 없었다고 부정하다가 나중에야 천천히 진실이 밝혀져도 또 딴소리와 책임 소재를 묻는 공방으로 시간이 흘러 잊혀지기 만을 바랬을 것이다. 세월호 때도, 메르스 때도 정부는 모두 구조 했다고,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거짓말로 안심시키는 동안 누군가는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게 되었었다. '부산행'의 시작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네, 영화!'라고 웃어 넘길 수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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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같은 영화적인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더 현실같아서 비참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철저하게 고립된 KTX 안의 상황은 더 지옥과도 같다. 말도 안되는 영화적인 캐릭터인 상화를 앞세워 좀비들을 물리치고 아직 좀비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승객들이 대피하고 있는 열차 간으로 이동해왔지만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던 승객들에게 주인공 일행은 감염 되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존재이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존의 확률을 낮추는 변수인 동시에, 정반대로 버팀막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칸의 승객들이 처음 부터 전체적으로 나서서 이들을 막고 못들어 오게 하자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스스로의 양심과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앞으로 나서서 큰 목소리를 낸 용석 (김의성)의 행동 이후에야 함께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다른 대부분의 승객들 모두 저들이 감염 되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조금씩 갖고는 있었으나, 차마 이 상황에서 그들을 내치는게 양심에 걸리기도 하고 또 자신만 너무 나쁜 이가 될 것 같아 주저하고 있던 바를 용석이라는 매게체로 인해 자신들의 욕망을 타인의 손을 통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자신이 피해나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나서서 혹시라도 몰매를 맞기는 싫은 또 다른 이기적인 생각 또한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론 전면에 나서서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이성적인 용석 보다도 용석의 등 뒤에 숨어 목소리를 보태며 주인공 일행을 배척한 승객들이 더 나쁜 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만약 용석이 아니라 다른 이가 용석과 다른 목소리로 주인공 일행을 다 같이 구하자고 외쳤더라면 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칸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은 적어도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선뜻 어떻게 하자는 말이나 행동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마치 용석이 그랬던 것처럼 '자, 여러분 저들을 빨리 도웁시다. 이리와서 함께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면 아마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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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영화같이 장르 영화의 구성에 충실한 재난 영화를 세월호 참사 이전, 아니 자신에게 깊이 각인 된 어떠한 현실의 인재나 사건 등의 발생 이전에 보았다면, 장르 영화의 쾌감에만 충실하게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재난 상황 속에서 국가나 정부가 뉴스 등에 나와 하는 말은 '뭐 영화 속 정부 모습이 다 저렇지'하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고, 열차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 들도 '아..이거 너무 뻔한데'라며 조금은 전형적인 측면에 심심해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라는 실제 재난을 느껴야만 했던 그 이후의 영화다. 떠올리지 않을 래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다들 안전한 열차 안에서 대기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나 정부의 브리핑을 들었을 땐 '아, 만약 나에게도 저런 상황이 닥치면 그냥 하라는데로만 해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또 세월호 이후 그 유가족들과 이 참사를 두고 벌어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만연한 혐오를 지켜 보았기에 부끄럽지만 내 가족들에게 '혹시 저런 일이 생기면 절대 나서지 말고, 남들 생각하지 말고 너만이라도 꼭 살아야 돼'라고 가르치거나 당부할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재난 영화를 보고는 희생하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혹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우린 저런 사람이 되자'라고 말해왔는데, 이번에 보게 된 '부산행'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이 영화 속 재난이 더 이상 스크린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몇 년간 실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기에, 마치 영화 속 용석이 재수 없고 화가 치밀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저렇게라도 나와 내 가족은 살아 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어 더욱 가슴이 아팠다.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그 참사 속에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사회의 무시를 넘어선 질타를 보며, 누군가에게 '그래도 영웅이 되어야 해'라고 선뜻 말하기가 주저 될 수 밖에는 없었다 (말이 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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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산행'을 보고 나서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더 큰 잘못을 한 이는 따로 있으나 양심을 가진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커다란 죄책감들. 그래서 차라리 스스로 좀비가 되기를 선택하다시피 한 어떤 장면은, 처연함도 들었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이들을 죽거나 죽지도 못하는 자가 되도록 만드는 현실이 떠올라 더 안타까웠다. 



1. 저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렸지만 본문에도 썼던 것처럼 이 영화는 애초부터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영화도 아닐 뿐더러, 그렇게 읽히지 않아도 충분한 상업 장르 영화입니다.


2. 혹시나 중간에 공유가 카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ㅎ


3.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라는 캐릭터는 '베테랑'에 등장하는 아트박스 사장 캐릭터의 연장선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만약 마동석=아트박스 사장 캐릭터가 수 많은 한국 영화에 조금씩 다 등장하는 일종의 신개념 캐릭터를 구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았어요 ㅎㅎ 무슨 영화에 나오든 마동석이 연기한 캐릭터는 덩치 좋고 힘좋은 아트박스 사장인데, 각 영화마다 분량이 조금씩 다른거죠.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동일한 시대를 사는 것처럼, 코리안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마동석 캐릭터가 모두 동일하게 존재하는. 말도 안되는 ㅋㅋ


4. 아, 스크린X 극장에서 보았는데 확실히 좀비 나오는 장면들에서는 몰입도가 더 좋더군요. 특히 모든 장면이 스크린X면 좀 정신 없을 것 같다 싶었는데, 다행히 좀비가 나오는 액션 장면들만 활용되고 있어서 좋았어요. 


5. '서울역'도 곧 개봉인데, 더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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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를 찾아서 (Finding Dory, 2016)

영화는 장애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


디즈니와 픽사의 신작 '도리를 찾아서'는 '니모를 찾아서'에서 니모를 찾는데 함께 했던 도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종종 픽사의 작품은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인트로 부분에서부터 감정을 울컥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도리를 찾아서' 역시 그랬다. 전편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그저 우스꽝스럽고 모험의 재미를 주는 요소로 활용되었던 도리를 이야기에 중심에 가져오게 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리가 단기기억 상실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도리를 찾아서'를 보지 않고 전편 '니모..'만 본 이들이라면 도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장애라는 것까지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식되어 있을 텐데, '도리를 찾아서'는 분명하게 도리가 갖고 있는 것이 병이고 그로 인해 겪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명확하게 들려주고자 한다. 언제부턴가 디즈니, 픽사의 작품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도리를 찾아서'의 인트로 장면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갖고 그 장애로 인해 앞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할 자식을 바라보는 도리의 부모 심정이 느껴져서 인지, 시작부터 감정이 동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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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가져오면서 전작의 모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모험과 드라마가 되었다. 많은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을 보면 사실상의 장애를 갖고 있는 (특히 정신적 장애) 캐릭터들을 희화하거나 재미 요소만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이런 점은 평소 인식되지 못할 정도로 정상적인 주인공의 스릴 넘치는 모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데, '도리를 찾아서'를 보고 나니 그런 모험의 주변에서 희화화 되어 특히 애니메이션을 보게 될 아이들에게 어떠한 잘못된 선입견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전편인 '니모를 찾아서'만 해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니모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이 이야기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 모험의 과정에 조력자로 등장하는 도리의 존재는 그저 우습기는 하지만 착한 캐릭터 정도로 묘사된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 속편 격이라 할 수 있는 '도리를 찾아서'는 마치 속죄라도 하는 듯이 도리를 주인공으로, 또 도리의 장애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에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 우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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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갖고 있는 본인이거나 가족 가운데 장애를 갖고 있는 이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영화는 하나씩 말해준다.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것이 전작에 묘사된 것처럼 한 순간의 모험으로만 보았을 땐 재미와 변수, 흥미 요소로 그칠 수 있지만, 한 인생을 두고 길게 보았을 땐, 특히 부모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평생 조심스럽고 걱정되고 또 장애를 가진 본인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불편한 것 정도가 아니라 매순간 순간 삶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걸 (물론 이 영화는 전체관람가이기 때문에 그 고통까지 직접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영화 속 도리와 도리의 부모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도리를 찾아서'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장애에 대해 가볍지 않은 태도로 접근하고 바라본 점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인트로에서 어린 도리와 도리의 부모가 나누는 찡한 대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바로 도리가 처한 현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도리라는 캐릭터가 주는 재미와 웃음은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장애 때문이 아니라 도리 자체가 갖고 있는 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성격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건 단순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많은 작품, 애니메이션들이 놓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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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좋았던 점은 끝까지 이 장애를 극복해야 만 할 요소로 보지 않고 인정하고 함께 해야 할 요소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영화 말미에 기적같이 도리가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거나 하는 가짜 해피엔딩 대신, 그런 도리를 편견 없이 함께 하는 동료, 친구들의 모습으로 마무리 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영화가 선택한 도리 가족의 이야기를 두고 이거야 말로 너무 영화 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냐 라고 질문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영화가 선택한 가족의 이야기야말로 더 현실적이고 또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응당 도달해야 할 정상적이고 영화적인 해피 엔딩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쉬운 점도 있었다. 마치 '니모를 찾아서'의 도리가 그랬던 것처럼, '도리를 찾아서'의 등장하는 일부 장애를 갖고 있는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거리로 묘사되는 안타까운 점이 발견되었다. 캐릭터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새(bird) 캐릭터와 물개 캐릭터는 분명 일종의 정신적으로 장애를 앓고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여전히 활용 측면에 있어서 그 장애가 웃음거리가 되는 수준의 묘사를 넘어서지 못했다. 후반부 모험에 등장하는 고래상어 '데스티니'와 고래 '베일리'의 경우는 도리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앞선 두 캐릭터의 경우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으로 묘사된다는 점은 이 영화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니모를 찾아서'에 이런 캐릭터가 등장했다면 차라리 덜 아쉬웠을지 모르겠으나 장애에 대해 제대로 된 시선을 담고자 한 이 영화에서의 그런 묘사는, 정말 아쉽고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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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도리를 찾아서'는 아쉬운 옥의 티가 있지만 그래도 나에겐 전작 '니모를 찾아서'보다도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보러간 부모님들이 더 감동 받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1. 영화 시작 전 만나볼 수 있었던 단편 영화 'Piper'도 참 깔끔하고 좋았어요. 스토리도 좋고, 특히 CG수준이 한 차원 높은 수준이어서 놀랍더군요. 


2. 시고니 위버는 정말 시고니 위버 목소리였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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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 (The Truth Beneath, 2015)

암묵적 은폐 되었던 진실들을 꺼내다


'미쓰 홍당무 (2008)'를 연출했던 이경미 감독의 신작 '비밀은 없다'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손꼽힐 만한 성격(그렇다, 성격이다)과 스타일의 작품이다. 거두절미 하고, '비밀은 없다'가 색다른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가 잘 다루지 않았던, 발견하지 않았던, 혹은 발견했으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손예진과 김주혁이 전면에 나선 포스터, 그리고 아이의 실종과 대선 15일전.. 등의 문구를 내세운 포스터를 보았을 땐 이 영화의 내면을 미처 예상하기 어려웠었다. 바로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로 인한 선입견이라면 선입견 때문이었는데, 역시 '미쓰 홍당무'를 연출했던 이경미 감독은 뻔한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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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다'는 관객들이 쉽게 흥미를 가질 만한 전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선거를 보름 앞 둔 후보자 부부와 경쟁 후보와의 묘한 관계는 그 이상의 음모나 모략이 있을 것만 같아 기대를 모으고, 여기에 아이의 실종이라는 사건의 발생은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며 미스테리를 전개해 나갈지 역시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단, 조금 다른 점이라면 '비밀은 없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것과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미리 (잘못)짐작한 이야기로 보자면 이 영화는 남편의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아내의 이야기와 딸의 실종 이야기가 연관되어 전개될 것으로 보기 쉽지만, 이 영화는 손예진이 연기한 '연홍'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홀로 꿋꿋이 딸의 실종과 관련된 사건 만을 파고 들고자 한다. 아마도 주객이 바뀐 다른 영화였다면 딸 아이의 실종으로 인해 반쯤 미쳐버린 엄마 정도로 묘사되었을지 모르지만, '비밀은 없다'는 그 반쯤 미쳐버릴 수 밖에는 없는 엄마의 심정에 주목한다. 하지만 영화는 연홍을 그저 폭주하는 인물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담아내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날 뛰는 세상과 인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홍은 딸의 실종 사건의 본질에 홀로 더 깊이, 깊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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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밀은 없다'에는 한 편에서 괴이하다고 까지 표현되는 여중생 소녀들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소녀들의 이야기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지, 아니 몰이해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사회가 만들어낸 일종의 이상향으로 인한 최면의 결과에 가깝다. 남성 중심의 사회, 권력자 중심의 사회에서는 그 반대 편 (약자의 편)의 이야기에 대해 권력층 본인은 물론 전체적인 사회의 분위기 조차 상대적 약자 층의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거나 큰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다시 말해 무시를 한다기 보다 관심이 별로 없어서 그냥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존재했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선 후보자의 아내와 중학생 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선거를 앞 둔 종찬(김주혁)의 입장에서는 아내나 딸이나 별 문제 없이 남아 있기를, 최소한 중요한 선거가 끝날 때 까지만이라도 자신의 일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보란 듯이 사건을 터뜨리고 모두를 역으로 무시한 채 오직 딸을 되찾는 것에만 집중하는 연홍의 이야기를 영화의 한 가운데로 끌고왔다는 점에서부터, 같은 배경의 다른 이야기가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은 민진이와 미옥이의 이야기 비중이 커지고 깊이를 더해가면서 무언가 이질감을 느끼게 되지만, 사실 이 이질감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몰이해에서 오는 것이 더 크다는 점이다. 특히 중학생이 아닌 관객들. 더 나아가 중학생 소녀를 자녀나 형제 등으로 함께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저 공부 열심히 하고 별 탈 없이 졸업하고, 고등학교 가고 또 대학가기 만을 바라고 그것이 너무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럽다고만 여기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민진이와 미옥이가 영화 속에서 겪는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에 몰입을 해치는 요소가 되어 영화 전체가 혼란스러워 지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경미 감독은 그저 왕따 라는 것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이 시기의 혼란과 더 나아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내 가족과 주변 사람의 이야기만 아니면 상관 없다고 여기는 왕따 이야기를 다시 꺼내들며, 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오히려 이 이야기를 민진이와 미옥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로 접하는 것보다는, 본인도 역시 잘 몰랐던 어른인 연홍이 사건을 통해 알게 되는 방식을 취한 것이 더 좋았다. 어쩌면 이 과정은 연홍이 민진의 실종과 이와 연결된 다른 사건들을 풀어가는 전개보다도 더 의미 있고 본질적인 미스테리의 해결 과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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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 암묵적으로 은폐되다시피 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된 연홍이 굉장히 빠른 시점에서 또 빠른 속도로 각성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초반 연홍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루머 등으로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되는데, 아이를 잃고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 연홍이 거친 사투리로 남편을 몰아 붙이는 장면은 더 이상 이 시점에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누군가를 위해서 보여주기 식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장면이라 그 이후 이어진 뺨을 되갚아 주는 장면과 더불어, 아주 원초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심지어 쾌감까지 느껴지는)인물의 묘사였다. 다시 말해 왜 쾌감이 느껴졌나 생각해보니, 따지고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인물의 행동인데 그간의 한국 영화에서는 좀 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의 행동과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연홍의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대부분의 쾌감과 공감대는 대부분 너무 당연하지만 우습게도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가 그간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상대적인 감흥이었다는 점은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는 씁쓸한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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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단순히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를 위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한 편으론 암묵적 침묵 속에 벌어지는 잘못과 범죄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의 비밀은 '없다'로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론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생각하기 위해 역시 암묵적으로 비밀로서 규정한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꺼내 놓으며 비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역시 경고의 메시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비밀은 없다'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지만 이 영화가 어떻게 읽히고 느껴지는 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몹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1. 글 중에는 따로 언급을 못했지만 이 영화는 미술과 음악에 많은 공을 들인 영화라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던 작품이었어요. 극장에서 빠르게 내려간 것도 너무 아쉽지만, 나중에 블루레이라도 온전히 출시되어 그 질감과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 손예진의 캐스팅은 여러 모로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앞서 언급 했던 것처럼, 무지와 몰이해에서 빠르게 각성하고 변해 가는 인물을 표현하기에 손예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와 그녀가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 사이의 거리는, 더 큰 몰입도를 주기에 완벽한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은.


3. 영화를 보면서 민진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누구지 싶었는데, 오디션 프로에 나왔었던 신지훈 양이더군요. 기존에 노래하는 모습만 봐서 매치가 바로 안된 듯.


4. 아마도 이 영화는 이번에 많은 관객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놓쳐버린 경우가 많을 텐데, 나중에 더 많이 찾아보게 되는 영화가 반드시 될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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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 (Suffragette, 2015)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투표권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서프러제트 (Suffragette)' 무리의 이야기를 그린 사라 개브론 감독의 '서프러제트'는, 근래 개봉했던 스티브 맥퀸의 '헝거 (Hunger, 2008)'와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셀마 (Selma, 2014)'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응당 누려야 할 권리 혹은 자유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투쟁 혹은 그 투쟁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 속 런던의 배경 역시 20세기 초로 아주 가까운 과거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올해가 되어서야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을 정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근 과거의 이야기 혹은 현재 진행형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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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는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모드 와츠라는 평범한 인물이 어떤 일들과 변화를 겪으며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운동가로 변모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주목한다. 이런 구조는 전형적일지 몰라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쟁이나 운동에 큰 관심은 없었던 평범한 인물이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결국 서프러제트가 되는 이야기는 반복이지만, 투쟁 혹은 운동에 있어서 이 반복된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가를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선택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거리에 나와 운동을 하거나 투쟁을 하는 이들을 그저 원래 그런 사람들로 생각하거나, 특별한 이해 관계가 있어서, 성질이 그러해서 그러는 거라고 오판하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수 많은 사고 혹은 피해로 인해 거리에 투사가 된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평소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역시 누군가 정해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로만 알고 있었던 모드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면서 운동에 뛰어 들게 되는 것처럼,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평범한 이가 투쟁해야 한다는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반복이 있었음에도 재차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직도 다수는 내가 자의 혹은 타의로 인해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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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묘사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공권력에 의해 폭력을 당하거나 하는 종류의 고통 보다는 오히려 주변과 가족으로부터 겪는 이질감과 몰이해에서 오는 외로움과 괴로움, 갈등에 주목한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가치 판단의 중요성 보다는 사회의 분위기가 투표권을 주장하는 여성들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과 억누르려는 방향성을 갖고 있을 때, 나서서 피해를 감수하거나 투쟁하기 보다는 그저 조용히 침묵하기를, 적어도 나와 내 가족은 침묵하기를 바라는 답답하고 차가운 공기는, 모드에게 그 어떤 무력을 통한 폭력 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파고 든다. 시위를 하다 경찰에게 잡힌 모드를 풀어주면서 '체포하지 말고 그냥 집 앞에 내려줘. 남편이 알아서 하게'라는 식의 대사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 중 하나다. 그렇게 평범한 인물이 가족과 소중한 아들, 직장 등 모든 것을 잃고, 누군가는 목숨을 통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반면 그 무언가를 남성들은 너무 쉽게 소유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부당함, 너무 쉽게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이들의 무지함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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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결코 과거의 역사 속 투쟁으로 읽을 수가 없다. 최근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여성 혐오 범죄를 비롯해, 다른 곳도 아니고 '서프러제트'의 상영관에서 벌어진 여성 혐오 및 비하, 폭력 사건은, 솔직히 내가 지금 어떤 수준의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처참한 기분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프러제트'는 누군가가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실은 그것들을 싸우지도 않고 애초부터 갖고 있어서 자신만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과, 왜 이것들을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역사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이들이 그것을 행동으로 거침 없이 옮길 정도로 사회의 분위기가 썩어버렸다는 것에 한심함 마저 든다. 지금은 우리 사회는 후퇴해도 너무 후퇴했다.



1. 벤 위쇼는 출연하는 지도 몰랐었는데 반갑더군요. 그래도 꾸준히 스크린을 통해 만나게 되네요

2.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온 많은 것들에 대해 적지 않은 수가 혐오 혹은 분노를 느낀다는 걸 근래 종종 느끼게 되어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한 요즘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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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

현실의 굴레를 꿰뚫은 치명적 섬세함의 결정체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은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전체관람가의 영화다. 하지만 요즈음은 보기 드문, 말그대로 전체가 관람해야 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건 화려한 색감과 일러스트가 인상적이었던 포스터 이미지에 끌렸기 때문이었는데, 이 포스터를 보고 '혹시...'했던 기대감은 '역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가 연상되는 데뷔작인데, 대한민국의 현시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섬세한 시선으로, 하지만 아이들이라는 순백의 도화지로 투명하게 그려낸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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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마도 집안의 경제적인 수준으로 인한 이유 때문에 선이 (최수인)는 보라 (이서연)를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외톨이다. 그러던 어느 날, 4학년 여름방학을 앞 둔 날 전학을 오게 된 지아 (설혜인)와 처음 만나게 된 선이는 바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놀며 보내게 된다. 그렇게 같은 반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선이는 지아와 친해지면서 하루 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지아가 같은 학원을 다니는 보라와 친해지게 되면서 지아 역시 선이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들이 겪게 되는 작지만 큰 우주의 이야기로 봐도 좋다. 극 중 방학을 맞아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너희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알아?'라며 방학동안 알차게 보낼 것을 당부하는데, 이 대사는 처음에 들으면 '피식'하고 웃게 되는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 그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깨닫고 피식했던 웃음을 지우게 된다.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서 자아와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그 중요한 시기에, 친구와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왜 자신을 따돌리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왜 그런지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조심스럽고. 선이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매일 같이 노는 친구에게 맞고 오는 선이의 동생 윤이 (강민준)에게는 그럼에도 그 친구와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어른들에게는 그저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고, 다투고 하루하루 다들 그렇게 보내는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에겐 마음이 통했으면 하는 친구와 사이가 좋지 못한 것 보다 더 큰 고민과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선이와 지아의 이야기를 통해 이 아이들이 겪는 복잡한 삶의 고민을 아주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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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관계에서 답답함과 힘겨움을 느끼는 선이를 보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엄청난 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어른의 가치관이 생겨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왜 나를 싫어하지?' '나는 잘못한게 없는데 무슨 오해가 있는거지?'라며 그 상황과 분위기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 했었던 것 같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선이와 지아의 이야기는 아마도 대부분의 어른들이 겪었을 어린 시절의 고민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미움을 받는 것. 그래서 그 미움이 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따져 묻기 이전에 당황스러움이 먼저 들게 되는 감정의 변화는 처음에는 누구나 겪었을 생경함이었을 거다. '우리들'이 놀라운 건 누구나 겪었지만 제대로 풀어내거나 표현된 적은 드물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과 처음 겪었던 답답함들을 정말로 100%에 가깝게 묘사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3D입체영화도, 물과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4D영화도 아니었으나 '우리들'은 가히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고 있다는 실감이 날 만큼 섬세한 감정선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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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들'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 영화 속 아이들의 감정과 관계의 뒤틀림 뒤에 보일 듯 말듯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 때문이었다. 즉, 선이와 지아 그리고 보라가 겪게 되는 문제의 원인이 되는 어른들의 현실의 문제 말이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못살고 하는 문제. 누군가는 더 큰 집에 살고, 누군가는 더 작은 집에 살고, 누구는 좋은 차를 타고, 누구는 차가 없고. 누구는 생일을 맞아 어디서 어떻게 파티를 할까 고민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생일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속앓이를 해야만 하는. 더 나아가 반 친구들이 다 다니는 학원을 다니고 싶지만 우리 집 형편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스스로 마음을 접어야 하는 이런 현실 말이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그 답은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쉽게 생각하면 태어나면서부터 경제적인 환경을 통해 경쟁이 시작되는 아이들의 현실을 탈피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워내고 싶지만, 이건 자칫 부모의 과욕 혹은 자만일 수도 있다는 불확신 역시 드는 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부모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벗어나 현명한 삶을 이루고자 한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겪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 영화 속에서도 등장했던 따돌림이나 사회의 일원으로 속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 들을, 그 작은 아이에게 선택권 없이 겪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내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바로 이 지점을 잔인하리만큼 꿰뚫고 있는 영화다. 그 섬세함이 좋았던 건 이 현실을 그리면서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되거나 섣부른 판단을 하는 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이의 부모에 대한 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런 고민을 겪는 외로운 어린이 주인공을 그린 다른 영화였다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알콜 중독자고, 어머니 역시 빠듯한 살림고로 인해 아이의 고민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하는 인물로 그려졌을 텐데, 이 영화 속 선이의 어머니는 빠듯한 살림고 속에도 최대한 두 아이의 삶을 돌보려 노력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시해가며 아이에게 헌신하지도 않으며 매일 같이 반복되는 어린 아들의 트러블에도 현명하게 대처해 낸다. 나는 그래서 선이 만큼이나 선이 어머니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더 심장이 조마조마 하고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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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선이의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로 아주 나쁜 아빠였다면, 그리고 선이의 엄마도 하루하루 사는 것에 목 매달려 선이의 삶은 관심 조차 없는 무정한 엄마였다면, 그리고 선이를 따돌리는 보라도 어쩜 저렇게 나쁜 애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약한 아이였다면, 선이가 겪는 고민과 힘겨움들에 오히려 탈출구가 보였을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너무 현실적이었기에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앞서 내가 내 아이를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키워가야 할지에 대해 아직도 명확한 답, 아니 방향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처럼, 영화 속 선이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쉽게 해결하거나 매듭지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경제적인 생활 수준의 차이는 선이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같을 수 없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학원)의 차이 역시 발생할 수 밖에는 없으며, 이 차이로 인해 아이들이 겪게 될 아픔 역시 그저 어린 아이들 보고 현명하게 대처하라고 놔둘 수는 없는 어른의 문제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영화보다 섬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답도 선뜻 내리지 않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선이는 반친구들과의 피구 게임에서 맨 마지막에 지목되는 것에서 결국 벗어나게 되었지만, 이것이 과연 해결이라고 영화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영화가 섣불리 답을 내놓지 않은 태도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그 문제의 본질의 깊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 만의 답을 내놓는 것에 비하자면, 윤가은 감독은 깊이있게 파고들어 이해한 덕분인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음을 알아차린 듯 했다. 그래서 이 영화엔 막연한 긍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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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문제가 고스란히 재현된 탓에 심장이 답답하고 또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도 여럿 있었다. 그 만큼이나 슬펐던 건 객석 뒤에서 영화 중반 소리 내어 훌쩍이던 어느 어머님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계실 그 분의 울음 소리는 이 영화가 얼마나 현실을 꿰뚫고 있는 지에 대한 증거인 동시에, 우리가 처한 어려운 문제를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도 얼마 전 아빠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특별한 영화일 수 밖에는 없었다.



1. 진짜 아역 배우분들 어쩜 이렇게 연기를 다 다 다! 잘하나요!!! 이선 역할을 연기한 최수인 배우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욧! 

2. 올해 '우리들'보다 더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나올까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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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 블루레이 리뷰 (Tinker Ticker : Blu-ray Review)



김정훈 감독의 데뷔작 '들개 (Tinker Ticker, 2013)'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그러니까 보통 현실을 담아낸다고 했을 때 흔히 선택하게 되는 보편적이고 겉 핥기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을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를,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는 사제 폭탄이라는 소제를 활용해 그려낸 수작이다 (다른 얘기로, 요즈음의 한국 사회 모습을 보면 사제 폭탄이 더이상 비현실적인 소제라고 말하기 조차 구차스럽다). 여기에 지금은 제법 알려진 스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첫 장편 출연작이거나 아직 독립 영화계에서만 이름을 알려왔던 변요한과 박정민 두 배우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마 이 작품은 이 두 배우 덕에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더 많은 조명을 받게 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들개'는 어떤 이유에서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흡수 되지 못한 20대 혹은 30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흔히들 2,30대 청년들의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청년 실업 문제를 중심으로 경제적인 불투명한 미래 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현재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김정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즉 자신이 겪었던 감정들을 그려낸 이 영화 속 박정구(변요한)의 이야기는 물론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섞이지 못한 일종의 외부인으로서 겪는 직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 외에도 정확히 이거다 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불만 혹은 답답함이 더 큰 갈등이자 문제로서 등장한다. 정구는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계속 면접을 보지만, 정구가 사제 폭탄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등의 일은 단순히 그가 매번 면접에 떨어져서도, 조교실에서 교수와 선배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만도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정구의 이야기를 단순히 취준생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했던 현실과 감정/갈등을 다 읽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들개'에는 주인공 정구 외에 박정민이 연기한 이효민 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효민은 정구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불만을 가진, 다른 성격의 같은 인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효민이 정구에게만 존재하는 유령 같은 (혹은 악마같은)존재로 느껴졌다. 정구는 사제 폭탄을 만들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그 폭탄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탓에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을 보내 그 폭탄이 사용되기 만을 바라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아주 적합한 이가 바로 사회의 불만이 많아 보이고, 더 나아가 그 불만을 표출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효민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나란히 두고 각자 존재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효민을 정구의 욕구가 표출된 분신으로 볼 때 더 큰 매력을 갖게 된다. 정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폭탄을 사용한 정구의 행동에 표현하지는 않지만 쾌감을 느끼게 되고, 효민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면서도 그를 큰 거리낌 없이 받아 들인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정도 안정과 안식을 찾게 된 이후 위험한 존재인 효민을 멀리하고자 하지만, 효민은 결코 쉽게 정구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들개'에서 가장 소름끼치도록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순간은 죽일 정도로 미워했던 담당 교수가 결국엔 정구를 (그래도)신경 써주고 취업을 도와주게 되면서, 정구가 한 순간에 자신도 동경 혹은 멸시했던 그 사회의 일원으로 흡수되는 장면이었다. 그 전에 이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보통과는 다르게 담당 교수가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고 정구가 오해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쁜 놈인 것은 그대로인데 정구가 원했던 몇 가지를 해결해 주는 것에서만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담당교수를 향한 정구의 불만과 증오가 단순한 오해만은 아니었음에도 정구가 그렇게 원하던 취직을 해결해 주었다는 점은, 그 취직이라는 것이 오히려 정구가 멸시하던 사회로의 편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고, 정구 역시 정의와 불의의 가운데 에 있는 영화적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그래서 현실적인 주인공임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시점부터 관객은 온전히 정구의 편에 설 수 없게 된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정구의 편에 서고 싶지 않게 된다. 그건 돌려 말하면 관객 자신도 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점을 송곳 처럼 파고드는 것이 김정훈 감독의 '들개'가 가진 가장 큰 시사점이다.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정구는 과연 살아남았나. 정구는 과연 그가 바라던 사회에 일원이 된 것인가. 처음부터 그 사회를 경멸한 것은 내가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스포일러 끝)


[들개 : 블루레이] 인상적인 데뷔작에 내려진 놀라운 축복




*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이기는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같은 타이틀을 중복으로 A/B타입 모두 구매하지 않는데, '들개'는 둘 다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A타입은 영화와 딱 떨어지는 완벽한 이미지였고, B타입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또 다른 매력이자 취향이어서 구입하지 않을 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만약 플레인에서 '들개' 블루레이가 발매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국내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이 푸념은 하면서도 늘 지겹고도 슬프다) '들개'같은 독립 영화가 발매 될 확률은 지극히 희미 하다는 점에서 새삼스럽지만 출시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다. 앞서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라고 한 이유는 플레인 아카이브의 유명세로 인해 이 영화를 흥행 시켰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생'과 '육룡이 나르샤'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된 변요한과 '파수꾼'을 비롯해 최근 '동주'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 박정민 배우의 팬들이 놓칠 수도 있었던 두 배우의 뜨거운 연기가 담긴 수작 한 편이 적당한 타이밍에 블루레이로 발매된 덕에 서로를 놓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최근 뜨거워진 두 배우의 인기에 편승한 재빠른 출시가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블루레이 제작을 결정했을 시점에서는 결코 두 배우의 인지도가 지금과 같지 않았었다. 좋은 작품을 작품의 크기나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선택한 것인데 이후 두 주연 배우가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오히려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으로서 역으로 고마울 정도다. 






아주 가끔이지만 간혹 영화에 비해 과한 패키지로 출시 된다거나 혹은 굳이 블루레이로 발매될 정도의 영화가 아닌데 (이건 국내의 특수한 시장상황 때문이지 결코 보편적인 이유는 아니다) 급작스럽게 블루레이로 발매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다. 물론 출시 되지 않은 것 보다야 훨씬 더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많은 좋은 영화들이 제대로 된 타이틀로 발매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상황에서 상대적인 아쉬움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적어도 '들개'는 그 놀라운 축복을 받을 자격은 충분히 있었던 좋은 데뷔작 임엔 틀림 없다. 저예산의 규모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영리한 구성과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 그리고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대규모 상업영화들과 견주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긴장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다시 블루레이 패키지 이야기로 돌아와 플레인 아카이브 넘버링 #021 타이틀로 출시된 블루레이는 역시 플레인 답게 디자인과 패키지의 구성에서 또 한 번 만족감을 주는데,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무릎을 탁!하고 칠 만한 기막힌 아웃케이스(A타입)가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속 수제 폭탄 박스 이미지를 최대한 실제처럼 구현한 이 아웃케이스 이미지는 진짜 '딱'이다. 여기에 청테이프의 질감을 살린 플레인 아카이브 한정판 스티커는, 새삼스럽지만 하나의 블루레이 패키지를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주먹구구식이 아닌 하나의 큰 기획 아래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 디테일!



* 디테일이다!!



*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 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 (CD)


부가영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블루레이 독점으로 수록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최초는 아니지만 해외 타이틀에 로컬 음성해설을 별도로 제작해 수록하기도 했던 플레인은 (최초는 블루레이는 아니지만 아마도 예전 스펙트럼 DVD 시절에 쇼브라더스 타이틀에 수록되었던 로컬 음성해설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별도로 발매되지 않은 영화의 스코어를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하는 또 한 번의 과한(?) 정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취향에 따라 스코어 음반은 누군가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취향을 떠나서라도 어찌되었든 '들개'라는 영화와 블루레이 타이틀의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화와 관련 된 자료 혹은 정보를 최대한 끌어 담으려한 시도는 그 자체 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스코어의 독점 수록은 새로운 시도였는데 추후에도 국내 영화 출시시에는 유사한 시도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영화 만큼이나 만족스러웠던 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었다. 혹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잘 살펴보면 부가영상으로 수록 된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 및 삭제 장면, NG 장면 등이 사전에 영화 홍보를 위해 일률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블루레이 수록을 위해 진행되거나 염두에 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 타이틀의 경우 아직까지도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화질이나 음질 보다도 양적으로 부족하거나 질적으로 평범한 부가영상들인데, 애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DVD나 블루레이가 고려되지 않거나 고려되었다 하더라도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뻔한 인터뷰나 그 인터뷰 내용이 중복된 제작영상이 수록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들개'는 당연히 사전에 블루레이 제작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제작이 결정 된 이후 갖게 된 상영회 등에서 블루레이 수록 만을 위해 별도로 인터뷰나 관련 코멘트 등을 추가한 점이, 질적으로 확실히 느껴지는 점이라 만족스러웠다.





김정훈 감독과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도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 볼 만한 트랙이다. 김정훈 감독에게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두 배우가 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보니 흥미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아마도)상상마당에서 상영회 후 진행 된 듯한 두 배우의 인터뷰 영상도 진지함이 묻어나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듣게 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 된 관객과의 대화 영상 역시 불필요한 내용 없이 영화의 메시지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전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외에 삭제 장면, NG장면, 또 다른 엔딩, 오디션 영상 등이 수록되었는데 이들 영상이 좋았던 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냥 늘어 놓기 식의 정보성 영상이 아니라, 감독의 코멘트가 텍스트로 제공되어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이해가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확실히 그냥 별다른 설명없이 수록되었을 때보다 해당 영상들을 더 주목해서 끝까지 감상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 이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서 더 의미있는 부가영상이었다.





사실 나는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의 팬이자 플레인의 팬이라서 엎친데 덮친 격이라 '들개' 블루레이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여서인지는 몰라도, 영화도 타이틀도 만족스럽게 빠진 것이 이렇게 글을 부러 쓰게 되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아마 '들개' 블루레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는 더 소장 가치가 높아지는 타이틀이 될 것이다. 변요한의 데뷔작, 박정민의 초기작이 더 의미있어 질 때, '들개' 블루레이의 가치는 지금보다도 더 크게 빛날 것이다. (두 개 사길 잘했어.)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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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미처 소개 못한 스크린샷 몇 장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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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는 압도적인 미장센과 진취적인 이야기 그리고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캐릭터가 위태롭고 매혹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총 3부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숙희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2부는 히데코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녀의 입장으로 1부 벌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하고, 3부에서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종결지으며 두 여인을 비롯해 백작과 코우즈키의 이야기도 모두 마무리 한다.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1,2부의 제목은 아가씨고 3부의 제목은 아저씨'라고도 했는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1부의 이야기는 숙희의 입장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히데코와 백작 캐릭터를 중심으로 보여주는데, 반전의 요소가 있지만 결코 반전을 위한 구성이나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진실이 무엇인지 2부를 통해 소개한 뒤 영화는 3부를 통해 4명의 주요 캐릭터들을 각각 마무리 한다. 즉, 3부는 종결, 해결의 측면 혹은 목적이 강한 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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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근래 동성애를 다룬 좋은 영화 중 하나였던 토드 헤인즈의 '캐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캐롤'은 말 그대로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미묘한 감정 선을 유려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박찬욱의 '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루고는 있지만 동성 간의 사랑이 중심에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 중심의 세계 관을 풍자하고 여성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향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즉, 박찬욱에겐 동성애라는 소재가 더 이상 사회 통념 하에 극복해야 할 과제라기 보다는 이미 극복한 다음의 이야기, 즉 '동성애가 더이상 그렇게 특별한 일이야?'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스텝으로 건너 뛴 듯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와 감정을 '캐롤'의 그것과 1:1 비교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서로가 자신의 삶의 굴레를 깨고 나아가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구원자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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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보아도,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두 여자 인물들에 비해 두 남성 캐릭터인 백작과 코우즈키의 모습은 직접적인 형태로 풍자되고 하찮게 묘사되고 마무리 되는 구조를 담고 있음에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페미니즘 영화를 추구하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영화가 표현한 방법에 있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엔 여전히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수위 만을 놓고 보자면 제법 파격적인 수준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전혀 야하지 않은, 그러니까 두 인물의 감정 선이 녹아들어 있지는 않은 베드씬이라 다른 동성 간의 (이성 간도 마찬가지고) 베드씬과는 다르게 성적 흥분이 들지는 않는 건조한 장면이었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씬은 과연 그 정도의 묘사와 비중으로까지 필요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3부는 두 여성 주인공의 해피 엔딩만큼이나 두 남성 주인공의 배드 엔딩(?)의 비중이 큰데, 마치 이 마지막 베드씬은 두 여성 캐릭터를 위한 (그녀들이 원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두 남성 캐릭터의 배드 엔딩을 더 가혹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더 크게 느껴졌다. 1,2부에 비해 3부는 전체적으로 극이 고조되거나 클라이맥스에 이른다는 느낌보다는, 풀어 놓은 매듭을 모두 정리하는 완결(해결)의 느낌이 더 강한데, 그 보다는 두 여성 캐릭터의 해피 엔딩의 깊이나 감정선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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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단락에 조금만 더 보태자면, 그렇게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바로 박찬욱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가도 싶다. 감정적으로 공감대가 넓고 보편적인 방식 대신, 가지 않은 길을 택하고자 많이 고민하고 자신의 취향을 영화 속에 녹여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것. 그래서 모두가 그를 주목하던 시점에서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같은 영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3부의 전개와 묘사는 1,2부 보다도 더 박찬욱 스러운 모습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스텝들의 결과물도 연출 만큼이나 큰 기대를 갖게 하는데,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 낸 미장센은 '아가씨'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히데코가 살고 있는 코우즈키의 대저택은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인 동시에 스스로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낭독회가 진행되는 공간은 특히 그 거리감과 구도가 예술이었는데, 좌우로 보았을 땐 인물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띄엄 띄엄 앉아 있는 구도가 매력적이었으며, 앞뒤로 보았을 때도 히데코와 남성 캐릭터들의 거리 (가까이 있을 때 보다도 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거리)가 영화에 리듬과 긴장을 담아 내고 있다. 류성희 미술감독에게도 이번 '아가씨'의 디자인은 모든 것이 총망라된 몹시 모험적이고 고된 작업이었을 텐데, 그 결과물은 정말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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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미장센 만큼이나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히데코를 연기한 김민희와 숙희를 연기한 신인 배우 김태리의 연기다. 이제 더 이상 연기에 관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새삼스러워진 김민희의 경우, 연기가 업그레이드 된 것은 물론이요, 그 아름다움이 몇 배는 업그레이드 되어 버린 모습을 '아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상속녀로 그려지는 1부 속 숙희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히데코의 모습은, 깨어질 듯한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발견은 단연 김태리다. 보통 몇 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된 배우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을 끌지도 매력적이도 않은 것이 사실인데, 김태리의 캐스팅의 경우 새삼스럽게 '아..그 수 많은 경쟁자를 과연 물리치고 선택 될 만하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물론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김태리라는 배우의 얼굴 만이 가진 매력이 숙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 시켜준 느낌이었고, 애정, 애증, 행복, 모성애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에 있어서 어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딱 맞는 연기와 캐릭터였다. 그리고 하정우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독보적으로 해냈다. 백작 캐릭터는 자칫하면 풍자의 깊이는 없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우습게 보이는 동시에 연민마저 느껴지는 백작 캐릭터를 적절한 비중으로 연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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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박찬욱의 '아가씨'는 특유의 조소와 미장센이 시대극이라는 배경과 두 여성 캐릭터라는 매력을 통해 발산 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설정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것에 집중해서 영화에 빠져든다면 좀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극장에서 문소리 배우는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이 웅성웅성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동휘 배우는 관객들이 갸우뚱 하더군요 ㅎ

2. 히데코 아역으로 나온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본적이 없더군요...(이상해;;;)

3. 영화를 보고 나니 주연 캐릭터 중 몇몇은 일본 배우가 했어도 좋았겠다 싶더군요.

4. 아... 앞으로 김태리 라는 배우는 과연 어떤 영화를 보여줄까요. 몹시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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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아포칼립스 (X-Men: Apocalypse, 2016)

공허하게 늘어놓은 세대교체기



미리 말하자면 내게 있어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시리즈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보다도 더 좋아하고, 특히 시리즈를 거듭해 오며 캐릭터들의 역사와 이야기가 쌓여갈 수록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애정하게 된 시리즈라 하겠다. 그 가운데서도 최근에 선 보였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는 그 애정함을 최고조로 발산할 수 있었던 브라이언 싱어 특유의 아름답고 감정적인 액션 블록버스터였는데, 프리퀄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엑스맨 : 아포칼립스 (X-Men: Apocalypse, 2016)'는 아쉽게도, 그럼에도 선뜻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힘든 영화였다. 적어도 지금은 (왜냐하면 이런 시리즈의 역사 속에 있는 작품들은 간혹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 다시 좋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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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는 전체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액션의 스케일은 크고, 캐릭터들의 갈등도 고조되지만 시각과 청각적으로 볼거리가 화려해질 수록 한 편으로는 '왜?'라는 물음과 함께 공허함이 느껴진다. 러닝타임이 물론 긴 편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길기 때문이 아니라 주 악당인 아포칼립스 (오스카 아이삭)와 엑스맨 멤버들의 갈등의 비중을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말하자면 오스카 아이삭이 연기한 아포칼립스라는 캐릭터는 모든 돌연변이들 가운데서도 신 적인 존재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막강한 캐릭터인데, 그 캐릭터 자체로서도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측면이 너무 도드라졌고, 그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보니 후반으로 갈 수록 그 모습에서는 공포스러움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악당이 등장할 경우 더 단순한 대립 구조를 취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이번 작품에서는 프리퀄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 찰스와 에릭의 갈등 구조가 반복되는 동시에, 익숙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로의 (진 그레이, 스톰, 스캇, 나이트크롤러) 세대교체 목적을 달성해야 했기에, 조금은 장황하고 선명하지 못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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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와 에릭의 갈등 테마는 두 배우가 열연을 통해 (특히 패스벤더가)다시 한 번 살려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이미 전작들에서 충분히 활용 되었고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보니, 또 한 번 빠져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 외에도 '아포칼립스'는 공감대의 대부분을 프리퀄 전작들은 물론 싱어가 연출했던 엑스맨 1, 2의 이야기에 기대고 있는데, 물론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의존성은 싱어의 엑스맨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아포칼립스'는 그 단점을 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이유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아포칼립스'는 공허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농담처럼 이 영화를 한 줄로 평가하자면 '찰스는 어쩌다가 대머리가 되었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또 하나,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스케일은 엄청나게 키웠지만 (음악 또한), 내실이 부족하다보니 역시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지구 상의 모든 핵무기가 출동하고 지축을 흔들 만큼의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만, 그 크기도 그 위기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겉 도는 분위기였다. 차라리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아포칼립스의 능력을 더 드러내고, 이에 맞서서 고전분투하는 엑스맨들의 활약상을 그리거나 반대로, 아직 어린 엑스맨 캐릭터들이 어떻게 처음 엑스맨으로서 활약하게 되는지를 주목해 브라이언 싱어가 이루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목적 달성에 더 집중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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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속에서 '제다이의 귀환'을 이야기하면서 '망했다' '제일 별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엑스맨 프리퀄 삼부작 가운데 이 작품도 그런 평가를 할 수 밖에는 없겠네요. 재밌는건 이 농담 뿐 아니라 스토리상에서도 에릭과 퀵실버의 이야기 속에는 슬쩍 '제다이의 귀환'의 다스베이더와 루크의 설정이 들어있기도 하지요.


2. 로즈 번의 팬으로서 초반 그녀의 등장 씬을 보면서 마치 '에이전트 카터'처럼 모이라의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CIA 요원으로서 계속 돌연변이들의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3. 이 영화만 보면 능력은 아포칼립토 보다도 오히려 퀵 실버가 더 짱인듯 ㅎ


4. 스톰은 모습은 그렇다치고, 억양은 전혀 다른데 영재 학교에서 나중에 많이 고친듯.


5. 제니퍼 로렌스는 역시 멋있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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