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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4th Place, 2014)

1등이란 이름아래 스러져 간 소중한 것들에 대해



'해피 엔드 (1999)' '사랑니 (2005)' '은교 (2012)' 등을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의 신작 '4등'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등만을 위해 살아가는 (살아가도록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질문 이자 대답 같은 작품이다. 부모의 열성적인 지원과 함께 수영을 한 지 2년 쯤 되어 가는 준호는 열심히 하지만 항상 4위를 기록해 부모를 애타게 한다. 부모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고자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코치를 수소문 하게 되고, 전직 천재 수영선수라 불리웠던 광수를 만나게 된다. 아, 영화는 그 이전에 광수의 수영선수 시절 이야기를 먼저 흑백으로 들려준다. 광수가 왜 수영선수를 그만 두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건과 그 사건에 얽혀 있는 준호의 아버지 이야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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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의 '4등'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좁게 보자면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교육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아이를 가르치고 더 잘되도록 함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것이 (사랑의 매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어떤 영향을 끼치고, 무엇보다 그 폭력의 기억이 어떻게 되물림 되는 지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폭력을 경험한 인물이 나중에 자신도 어른이 되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 점은 한편으론 익숙할 정도인데, 그 인물이 폭력을 어떻게 정당화 하는 가에 있어서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은 더 현실적이고 날이 서있다. 자신의 현재를 비관하며 그 때 감독님이나 부모님이 더 강하게 폭력을 써서 라도 본인을 질책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느끼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의 되물림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폭력이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의 분위기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 하고 피해자 스스로를 길들이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더 큰 메시지는 폭력의 되물림 혹은 기들여짐에 있지 않다. '4등'에서 가장 현실의 문제성을 날카롭게 다루고 있고 한 편으론 모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은연 중에 정당화 하거나 숨기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은 준호의 엄마 캐릭터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준호가 이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준호의 엄마는, 매번 4등으로 매달 권에 미치지 못하는 준호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 수단 가운데는 폭력의 묵인도 포함되게 된다. 준호의 엄마는 준호가 코치인 광수로 부터 폭력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준호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면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폭력을 동반한 교육의 방식이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진실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입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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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준호가 결국 폭력에 못 이겨 수영을 그만 둔 다음 그 잘못된 자식 사랑의 방식이 고스란히 동생에게 이어지는 장면도 공포스럽다. 더군다나 한창 준호의 수영을 지원하던 시절, 절에 가서 사실은 준호가 매달을 딸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준호의 동생은 물론, 가족에 대한 기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 봤을 때, 무엇이 준호의 엄마를, 그리고 아이를 둔 가족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앞만 보고 질주하도록 만들었는지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하게 된다.


영화 '4등'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영화다. 제목으로 미뤄 봤을 때, 1등만이 인정 받는 세상은 잘못되었다, 매달 밖의 4등도 중요하다.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순진하게 풀어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또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이 경쟁의 분위기에 골이 깊은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부모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더 직접적으로는 아이의 미래와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고민이 이 영화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어느 선까지 적정한 응원이자 지원이고, 어느 선부터가 강요이자 폭력인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한 과정이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 결과로 인해 아이가 더 나은 기회는 물론, 동등한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 불보듯 뻔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위해 그 과정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나음을 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이 쉽지 않은 문제를 충실하게 던진 뒤 자신 만의 대답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 결국 많은 일들을 겪게 된 준호는 코치인 광수가 부모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그냥 애가 혼자 하도록 놔두는 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진심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자 결국 2등도 아닌 1등을 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한 편으론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켜 보았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결과로서 '1등'이라는 등수를 보여준 것은 더 큰 아젠다는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준호가 스스로 수영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1등'을 해야 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에 꼭 1등을 해야겠다고 말하는 장면 역시, 조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차라리 대회 장면이 아니라 준호가 정말 하고 싶은 수영을 하기 위해 홀로 수영장을 찾아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을 엔딩으로 했거나, 대회 장면으로 하더라도 순위 발표 이전에 마무리 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1등을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느낌보다는 '1등도 4등도, 아이들에겐 등수가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준호가 1등이 되는 마지막은 한 편으론 아쉬운 부분이었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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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의 '4등'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관객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사실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조금만 쉬어 가려하면 그 사이에 순위가 바뀌어 버리는 탓에 쉴 틈 조차 없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럼에도 진지하게 다시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그 어떤 메시지보다 날카롭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도 이제 다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1.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박해준 배우나 아역인 유재상 군 말고도 개인적으로는 코치를 소개해주는 교회 분으로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더라는.


2. 이런 영화가 더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적은 상영 횟수라도 꼭 찾아서 관람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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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10번지 (10 Cloverfield Lane, 2016)

그 시간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영화의 특성상 모든 것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안보신 분들은 (특히 '클로버필드'도 안보신 분들이라면) 가급적..)


2008년 개봉했던 맷 리브스의 '클로버필드 (Cloverfield, 2008)'는 떡밥의 제왕 J.J.에이브람스가 제작한 깔끔한 장르 영화였다.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을 차용해 색다른 재난 블록버스터를 보여주었던 '클로버필드'의 외전 격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 '클로버필드 10번지' 역시 군더더기 없이 2시간이 안되는 러닝 타임을 즐길 수 있는 장르영화다. 사실 '클로버필드'의 외전이라는 표현 자체도 일부 관객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지 모르겠는데, 그 만큼 이 영화는 '그래도...혹시나??'하는 가능성을 끝까지 잡고 놓지 않는 적당한 긴장감을 가진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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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를 보지 않았더라면 전혀 감상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아니,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 속 현실이 진짜인지 아닌지 더 분간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본 이들이라도 그 연관성을 영화가 직접적으로 선언하지는 않고 있는 작품이라 전작과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클로버필드'와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연관성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차 얘기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영화 말미까지 이것이 같은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존 굿맨이 연기한 캐릭터가 그저 미치광이 이기만 한 것인지를 두고 계속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밀당이 가능할 만큼의 긴장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 속 가장 큰 의구심 중 하나인 벙커 밖 바깥 세상의 현실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훨씬 더 좁은 의미의 재미를 느낄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이런 공포/스릴러 장르 영화가 보여주는 클리셰들을 '클로버필드'라는 전작의 아우라를 통해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괜찮은 작품이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공포, 누구를 믿어야 하는 가에 대한 선택과 공포, 제한 된 공간의 감금과 탈출의 내러티브까지. 익숙한 것들을 또 한 번 즐기는 것이 가능하도록 다듬은 장르영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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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떤 지구 종말이나 외계인 침공과도 같은 엄청난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중심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보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채 스스로를 돌봐야 했던 이들의 모험담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는 큰 사건 속 (상대적으로)작은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풀어낸다. 난 더 심하게 고립 되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을 것 같지만, 이 영화는 다행히(?) 그래도 '클로버필드'라는 제목이 붙은 값은 해낸다. 영화의 말미에 갑자기 영화가 너무 뻔한 중심의 이야기로 전환되지 않는 것도 좋았다. 그저 주변의 이야기로 머물러서 제법 괜찮았던 영화.



1. 초반 여주인공이 이 벙커에 들어오는 장면에서 거실(?)에 깔려 있던 카페트에 토끼 그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놈의 토끼발인가?!

2. 브래들리 쿠퍼가 어디 나왔나 했더니 전화 음성이었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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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성급했던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



따지고보면 마블의 '어벤져스'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코믹스 팬들의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작품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을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에 관한 것이었다. 본래 영화화 측면에서도 마블보다 훨씬 더 먼저 관심과 성공을 가져갔던 DC코믹스는 차근차근 시네마틱유니버스를 완성시킨 마블의 성공을 보며 뒤늦게 (많이 늦게) '저스티스 리그' 영화화 계획에 들어 갔는데, 생각보다는 빠르게 바로 이 작품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획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것은 훨씬 오래 되었음에도 생각보다 빠르게 영화화가 되었다고 얘기한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서 더 확고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블의 '어벤져스'에 비해 DC의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조금 성급한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력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더 좋을 수 있었고, 이 기획의 기대감을 감안했을 때 더 좋았어야 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많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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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트맨 대 슈퍼맨'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역시 2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뚝뚝 끊어지는 듯한 편집점과 내러티브의 부자연스러움이었다.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본격적으로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캐릭터들 간의 충분한 연결고리와 갈등 구조를 풀어냈더라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득이 되었을 텐데, '배트맨 대 슈퍼맨'은 지루함도 다 지우지 못하고 성급하게 갈등을 풀어내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맨 오브 스틸'까지만 보았던 관객 입장에서는 슈퍼맨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배트맨의 이야기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 바로 중간부터 시작하는 경우라 쉽게 빠져들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본 관객 입장이라고 해도 놀란의 배트맨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사이에는 분명 스타일은 물론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간극이 있기 때문에, 만약 DC가 놀란의 배트맨을 연장선으로 가져가려고 했다고 보더라도 조금은 억지스러울 수 밖에는 없는 연결이었다. 놀란의 배트맨은 '다크나이트'라는 기본 테마를 중심으로 캐릭터의 갈등과 고민을 끝까지 파고드는 범죄 드라마였다면, 잭 스나이더가 다루는 배트맨은 그 일들을 겪은 한 참 뒤의 배트맨으로서 조금은 더 거칠어 지고 과격해지고, 자경단으로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에 있어서도 놀란의 그것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시기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이 연결은 조금 갑작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는 없던 경우라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얻기는 부족했다.


DC코믹스의 '어벤져스' 격이라 할 수 있는 '저스티스 리그'가 조금은 성급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벤져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등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독립적인 작품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물론 '헐크'도 리부트를 겪기는 했지만)난 다음의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는데, 이번 '저스티스 리그'는 아직 밴 애플렉과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에 대한 명확한 컨셉이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바로 '맨 오브 스틸' 이후의 슈퍼맨과 결합해 버린 영화이기에 (여기에 원더우먼까지 등장하고), 조금은 성급함이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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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배트맨 대 슈퍼맨'이라는 테마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 바로 그 좋은 재료를 이렇게 쉽게 써버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과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을 정말 좋아하는 팬으로서, 히어로물이 사유할 수 있는 담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소재이자 프로젝트가 바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과 협력을 다룬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이런 테마는 어설프게 그리고 액션 측면에서도 100% 만족감을 주지 못한 잭 스나이더의 결과물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잭 스나이더가 놀란의 '다크나이트'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스 짐머의 장엄한 음악까지 더해져 시종일관 무겁고 웅장한 분위기를 내려하지만 그 내면의 깊이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분위기를 깨버린 건 역시 그 갑작스러운 갈등 해결의 내러티브였는데, 아무리 이 재료가 보여줄 수 있었던 깊이를 제외하고 순수 액션 블록버스터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이 갈등해결을 비롯한 내러티브의 전개는, 다들 너무 갑작스럽고 순진하기까지 한 진행을 보여준다. 그렇다보니 배트맨은 물론이고 슈퍼맨까지도 '왜 저러지?' 혹은 '저렇게 하면 될걸 왜 그러지 못하지?'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렉스 루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점을 다 포기한다면 액션 측면에서 기가 막힌 볼거리를 제공해서 압도해 버려야 하는데, 뭐 별로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웅장한 음악에 비해 실상은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았던 액션 연출이 한 번 더 아쉬움을 남겼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액션은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니고 원더우먼의 등장 뿐이었다 (원더우먼은 이 등장 씬을 남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없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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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좋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밴 애플렉의 배트맨은 생각보다 괜찮고, 특히 액션에 있어서는 크리스찬 베일은 보여줄 수 없었던 묵직한 덩치 액션(?)이 가능해 시기적으로 잘 어울리는 편이다. 밴 애플렉의 독립적인 배트맨 영화가 가능하다면 (아니 저스티스 리그를 시작한 이상 이건 꼭 필요하다)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대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고, 크리스토퍼 리브 이후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헨리 카빌의 슈퍼맨 역시 액션 중심의 영화가 아닌, 슈퍼맨(클락 켄트)의 내면의 테마를 기반으로 전개 되는 '맨 오브 스틸' 이후 슈퍼맨 영화를 하나 더 진행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역시 충분하다. 좀 갑작스럽기는 했으나 원더 우먼 역시 이번 작품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들려준 것이 없음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을 비롯해 플래시나 아쿠아맨, 사이보그 등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 시켜도 좋겠다. 아, 그리고 그린 렌턴도 합류해야 할 텐데 (참고로 이번 관람 전에 코믹스로 저스티스 리그를 읽었더니 그린 렌턴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 이미 마블의 '데드풀'을 통해 스스로 디스를 완료한 라이언 레이놀즈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여기도 리부트가 필수적일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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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더라면 더 흥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래도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 입장에서 안볼 수는 없는 작품일 것이다. 아...그래서 또 아쉬움이 남는다...



1. 아이맥스 3D로 1차 관람하고 2차로는 돌비 애트모스로 관람할 예정인데, 예상으로는 돌비 애트모스가 더 적절한 포맷이 아닐까 싶네요. 아이맥스 3D도 물론 좋았지만 최적의 포맷이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고 답할 듯.

2. 별 것 아니었지만 초반에 조금 그랬던게,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겨우(?) 레니게이드를 탄다? 동네 나갈 때도 람보르기니 타던 분이...

3. 제레미 아이언스가 뛰어난 배우라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알프레드 캐릭터는 이미 마이클 케인이 너무 완벽하게 해 냈던 바람에 더 보여줄 여백이 남지 않은 듯 하더군요.

4. 잭 스나이더는 참..... 애증의 감독인듯 ㅎ

5. 관련 예전 글들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http://realfolkblues.co.kr/696)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http://realfolkblues.co.kr/700)

* 맨 오브 스틸 _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http://realfolkblues.co.kr/1812)

* 왓치맨 _ 히어로에 빗댄 정치와 권력에 대한 담론 (http://realfolkblues.co.kr/89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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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끝까지 단단하고 새롭기까지 한 역대급 사극



지상파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엔 별로 재밌게 본 작품이 없었는데, '육룡이 나르샤' 역시 첨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퓨전 사극 냄새가 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제목이 처음 내용을 몰랐을 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봐야지 했던 이유는 역시 배우들이었다. '베테랑' '사도' 등으로 한창 뜨거웠던 유아인을 비롯해 김명민, 천호진, 신세경 등은 물론 개인적으로 '미생' 이후 더 주목하게 된 변요한까지 출연한다는 소식은, 최소한 일단 시작은 해봐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던 배우들은, 이 작품을 더 역대급으로 만들어 내는 완벽한 조각이기도 했다.


50부작에 달하는 내용을 하나 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전체적인 감상과 마지막 회 위주로 간략하게 이야기해볼 텐데, 첫 째는 역시 완성도다. 보통 50부작이나 되는 TV드라마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있어서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은데, 그건 국내 드라마의 퍽퍽한 제작 여건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전반적인 리듬감이나 균형을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 전체가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한 회도 그냥 지나치는 화가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빠른 리듬감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끝나고 나면 '벌써 끝났나?'라고 자주 얘기했던 건 그냥 팬심 만은 아니었다.


사극의 특성상 여러 인물들과 관계 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함을 복잡함의 나열이 아니라 깨알 같은 연관성으로 엮어 냈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여러 다른 인물들과 관계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빠지고를 반복해도 완성도의 붕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 회차가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25회를 꼽지 않을 수 없겠다. 땅새와 연희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절정을 치닫는 가운데, 땅새와 무휼, 영규까지 목숨을 건 액션 시퀀스는 과연 한국 TV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와 연출의 액션을 본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엄청난 회였다. 액션 측면으로만 봐도 잠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긴 호흡으로 가져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액션 시퀀스를 비롯한 이 회차 전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밑바닥에는 땅새와 연희의 감정선이 아주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분출시킨 장면으로서, 볼거리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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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역사를 묘사하는 작품의 방식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 절정은 역시 정몽주와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나눈 단심가와 하여가 시퀀스였다. 누구나 학창시절 배우고 외워서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을, 머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해 내 이제야 비로소 두 사람의 진심과 심정을 해아리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은 대단했다. 이 밖에도 우리가 흔히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수 많은 역사 속 순간이나 인물, 사건 들이 등장할 땐, 마치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해 내는 연출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 마저 들게 만들거나 혹은 '아..그래서 그랬던 거구나...'하며 비로소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것이 '육룡이 나르샤'가 달성한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싶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것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뻔하다고까지 생각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만들어 낸 연출과 구성은, '육룡이 나르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마지막 회는 주로 에필로그를 담는 형식으로 그려졌는데, 보통 에필로그를 그리게 되면 축축 처지면서 정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마지막 회에서도 마치 더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듯한 에너지를 보여주며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50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SBS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던 이 드라마를 '육룡이 나르샤'는 아주 영리하게 활용했다. 특히 마지막 회는 '육룡이 나르샤'의 50회이자 '뿌리 깊은 나무'의 0회 정도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고리가 단단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그 연결 고리를 하나 하나 발견해 내며 이 역사의 계속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뿌나'를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선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다음 주 부터 '뿌나'를 방영하는게 새로운 드라마를 하는 것 보다 나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도(세종)를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로 등장시킨 것도 정말 좋았다. 이도의 존재가 이방원이 꿈꾸었던 자신을 포함한 존재들의 가치를 모두 조금씩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연기한 아역이 다름 아닌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라는 점은 묘한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쉬지 않고 긴박하게 달려 온 '육룡이 나르샤'는, 배우들의 놀랍고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바탕으로 마지막회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단단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익숙한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역대급 사극이었다.

아... 다음 주 부터는 정말 뭘 보지. 둘 중 하나는 봐야겠다. '육룡이 나르샤'를 1회부터 다시 정주행하거나 '뿌리 깊은 나무'를 다시 보거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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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 3 : 최후의 대결 (葉問3, Ip Man 3, 2015)

패배를 인정하는 자들의 아름다움


홍콩에 정착하게 된 영춘권 최고수 ‘엽문’, 뛰어난 무예와 올곧은 성품으로 무술인들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존경 받는 지도자이다. 마을에 들어 닥친 외세의 부정부패 속에 학교부지를 뺏으려는 암흑조직이 어린 학생들을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하고 암흑가의 보스를 찾아가 일대일 결전을 벌인다. 밤낮 없는 싸움이 계속 되는 상황, 스스로를 영춘권 정통 계승자라 칭하며 일대종사의 자리를 넘보는 ‘장천지’ 까지 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데… (출처 : 다음영화)


실존 인물인 영춘권의 계승자 엽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엽문'이 벌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견자단이라는 현재 중화권 최고의 무술 액션 배우를 통해 빚어낸 엽문의 이야기는 1차적으로 쿵푸 액션이 주는 볼거리를 전하는 동시에 무협, 즉 정신적인 측면의 뿌리를 강조함으로서 스스로 깊이와 정통성을 말하고자 한 시리즈였다. 세 번째 작품인 '엽문 3'의 구도는 마치 오래 전 이연결이 연기했던 '황비홍' 시리즈를 연상시키며, 견자단이 연기한 엽문은 보여주기 식의 액션이 아닌 정반대로 보여주기를 최소화 한 액션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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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1,2편에 이어 3편까지 감독을 맡은 엽위신의 이번 '엽문'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액션 만큼이나 드라마를 강조하고 있는 이번 작품에서 그 약점은 도드라지는데, 배우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 아쉽고 드라마와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연결도 자연스럽지 못한 편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그럭저럭이지만 별개로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며 받은 깊은 인상이 있었다. 중화권 영화 특히 무협 영화에서 등장하는 강호라는 개념, 그리고 그 강호 속에 등장하는 고수들의 면면을 보자면 쉽게 말해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호의 의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그러니까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의 우정이나 의리 뿐만 아니라 목숨을 두고 겨루는 상대와도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술적인 실력 만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고수가 되기 까지의 과정에 대한 존경과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킴으로서 오는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엽문 3'에서도 그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타이슨이 연기한 캐릭터나 장진이 연기한 캐릭터 모두 엽문과 대결을 하게 되는데, 서로 협의한 방식에 대해 정당하게 겨루고 그 결과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결이 끝난 후에 안심하고 돌아서는 주인공을 뒤에서 비겁하게 공격하거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막판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당 들의 모습, 혹은 현실에서 만나는 구질구질한 인간 군상의 모습에 비춰 봤을 때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은 부러움을 넘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부정을 저질렀거나 옳지 않은 방법으로 부나 권력을 얻게 되었더라도 그 과정이 밝혀지거나 어떤 합의 한 룰에 의해 패배했을 때 '아, 끝났구나'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근래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끝까지 거짓말을 하거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결과를 뒤집거나 흐리기 위해 더더 인간성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들을 보면, 영화 속 인물들이 패배 후 단 한 마디 없이 깨끗하게 인정하는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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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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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Joy, 2015)

'가족'이라는 어쩔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이혼한 부모님과 전남편,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싱글맘 조이(제니퍼 로렌스).
자신이 꿈꿨던 인생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지쳐가던 어느 날, 깨진 와인잔을 치우던 조이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조이는 상품 제작에 돌입한다. 그러나 사업 경험이 전무한 조이는 기업과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으며 여자에게 더욱 가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벽 앞에서 매번 좌절하게 된다. 이 때 전 남편 토니의 소개로 홈쇼핑 채널 QVC의 경영 이사인 닐 워커(브래들리 쿠퍼)를 만나게 된 조이는 기적적으로 홈쇼핑 방송 기회를 얻게 되고 5만개의 제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단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처참한 상황을 맞게 된 조이는 결국 빚을 떠안고 파산 위기에 처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미국 최대 홈쇼핑 채널의 CEO인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를 그린 데이비드 O.러셀의 '조이 (Joy, 2015)'는 예상외로 성공 신화를 다루지 않는다. 그녀가 엄청난 성공을 이룬 이후의 이야기는 짧게 스케치 정도로만 등장하고 성공하기 까지의 우여곡절 역시 조금은 느슨하게 다루는 편이다. 그녀 역시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서 만인이 바라는 부를 누리게 된 것은 맞지만, 데이비드 O.러셀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사업적인 흥망성쇠 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둘러싼 특별한 가족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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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현실 속에 놓인 주인공과 가족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족 역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지만 그 존재 만으로도 힘겨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로 묘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 그 힘겨운 현실을 더 힘겹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그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 '조이'는 이 둘 중 하나로 말하기가 어렵다. 이혼을 한 남편이나 이복 동생, 이혼한 부모님이 만나는 연인 등의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의 구성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점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각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탓에 주인공 조이의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방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방해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 조이의 모습에서는 이미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존재이자 관계 임을 인정한 듯 보인다. 그래서 한 편으론 영화 속 조이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가 한 걸음 내 딛는데 까지 너무 많은 가족들의 직간접적 방해를 해치고 나와야 하는 상황들은, 어쩌면 그녀가 비즈니스 적으로 겪었던 어려움들 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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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데이비드 O.러셀이 조이 망가노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 이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전작 '파이터 (The Fighter, 2010)'에서도 이러한 가족이라는 존재를 깊이 그려낸 적이 있는데, '조이'를 보다보면 '파이터'의 가족이 절로 떠오른다. 만약 다른 감독의 영화나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면 조이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애초부터 방해 요인이 되거나 될 변수를 갖고 있는 가족들을 자신의 삶에서 분리해 나갔을 텐데, 이 영화 속 조이는 그러한 노력을 사실상 거의 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완전하게 거리를 두거나 인연을 끊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렇게 조이를 이용하거나 해를 가하는 가족들이 마음을 고쳐 먹는 것도 아니다. 관계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는 반복하지만 조이는 그래도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라기 보다는 그저 '어쩔 수 없는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수용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도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만인이 부러워 하는 성공을 이뤄낸다. 영화는 그렇게 조이라는 인물의 성공에 있어서 그녀의 악착 같음이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어쩌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는 가족을 말한다. 성공이라는 계산적이고 치열한 현실과 경쟁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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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전체적으로는 조금 심심한 감이 있어요. 가족이라는 테마를 성공담에 녹여내고는 있지만 특별하지는 않거든요. 제니퍼 로렌스의 무르익은 연기를 보는 재미가 어느 정도 이런 점을 상쇄시키는 편입니다.

2.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시대 배경을 피부로 와닿게 하는 동시에 인물의 감정 표현까지 음악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편이에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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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Room, 2015)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진정 배려하고 있는가


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게 된 열일곱 살 소녀 ‘조이’.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 ‘잭’을 낳고 엄마가 된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잭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 단 한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잭을 더 이상 좁은 방안에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의 극적인 탈출과 충격적인 과거 때문에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엠마 도노휴의 아마존 베스트셀러 '룸'을 원작으로 한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영화 '룸 (Room, 2015)'은 영화 속 이야기와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모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소녀 시절 작은 방에 납치되어 7년 간을 살아가게 된 조이와 이 곳에서 태어난 조이의 아들 잭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갇혀버린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에 관한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보통 공간과 탈출이 주된 목적인 이야기라면 이 작은 공간 밖의 세상과 이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고통을 더 부각 시키기 마련인데, '룸'이 이 갇힌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한 편으론 자발적 감금을 의심할 정도로 이 작은 방 안에서 모자의 생활은 비슷한 다른 영화 속 감금 된 주인공들보다는 우울하지 않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우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어린 잭의 시선처럼 이 작은 방 안에서도 자신 만의 우주를 만들고,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을 더 부각시키면서 이 감금의 상황을 더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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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적으로 보통 같았으면 탈출과 동시에 끝나 버렸을 이야기를 그 이후에도 한참이나 더 이어간다. 일반적인 감금의 스토리라면 감금 기간 동안 그 고통과 답답함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관객 역시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증폭시킨 뒤, 결국엔 아주 극적으로 탈출하고 구조되는 것으로 안도의 한 숨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 것이 대부분 일텐데, '룸'은 오히려 극적인 탈출 이후의 이야기에 더 주목한다. 아니, 탈출 이후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는 것 보다는 인물이 진짜로 이 상황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고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고 그 사건이 일차적으로 종료되었을 때 제3자의 시선에서 안도와 함께 당사자의 삶도 함께 일단락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어쩌면 철저히 제3자의 시선일 것이다. '어떻게 저런 끔찍한 일이...' '와, 정말 구조되서 다행이다', '이제 됬네'로 마무리 하는 것은 사실 당사자들을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자기 만족에 가까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 판단 속에는 당사자들이 겪은 일들을 결국 100% 공감할 수는 없는 한계와 더불어 그들이 실제로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견뎌야 할 지리한 시간들은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거나, 지켜볼 생각이 없다는 심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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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룸'은 바로 그 지리한 시간, 마치 모두가 그들 만을 위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던 난리통이 다 지나간 뒤의 시간까지 차분히 기다려준다. 그리고 실제로 오랜 감금 생활에서 벗어난 모자가 그 오랜 감금의 시간으로 인해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지, 그런 시간들로부터 회복한다는 것이 당사자인 그 두 사람에게는 물론, 그들을 아끼는 가족들에게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를 한 발 물러나 바라본다. 보통 재난 영화 같았으면 탈출과 구조의 시점에서 모두 행복함과 안도감만 남기고 끝나 버렸을 그 이후의 시간들을 말이다. 그리고 조이와 잭이 스스로 이 사건과 오랜 심적 감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영화를 조심스럽게 끝낸다. 완전히 벗어 났을 때야 끝을 낸다 라고 말하지 않은 건, 영화가 끝을 내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영화 '룸'에서 발견한, 모정이나 탈출의 극적인 요소보다도 더 인상적인 점, 바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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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잭이 룸을 탈출해서 바깥 세상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은 올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그 눈빛이 정말 모든 것을 말해주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2. 영화를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보고 나니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것을 두고 평론가들이 불만을 얘기했는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냥 아역으로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쓴 브리 라슨 보다도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거든요.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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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 (Saul fia, Son of Saul, 2015)

죽음의 한 가운데 구원을 행하다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한 비밀 작업반이 있었다. ‘존더코만도’라 불리던 이들은 X자 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직 시키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더코만도’ 소속이었던 남자 ‘사울’의 앞에 어린 아들의 주검이 도착한다. 처리해야 할 시체더미들 사이에서 아들을 빼낸 ‘사울’은 랍비를 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심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 (Saul fia, 2015)'은 홀로코스트의 참혹했던, 아니 지옥같았던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유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대규모의 유대인 학살 한 가운데서 시작하는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크게 들이 쉰 숨을 끝날 때까지 내뱉지 않는다. 4:3의 제한된 화면비와 오로지 주인공 사울의 등 뒤에서 혹은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카메라 역시 최소한의 것들만을 보여준다. '사울의 아들'은 지옥 같았던 홀로코스트 현장을 그려내면서도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것들만을 보여주고자 한다. 오로지 카메라의 포커스는 사울의 얼굴과 사울의 등, 그리고 사울이 만나는 이들의 얼굴에게 맞춰질 뿐, 참혹하게 쌓여있는 죽은 자들의 현실은 철저한 포커싱 아웃되어 묘사된다. 이것은 어쩌면 관객에 대한 영화의 배려다.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참혹한 비극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감동과 비극을 극대화 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사울의 아들'은 오히려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관객에게 이 참혹한 진실을 각자의 눈으로서 어떠한 의도됨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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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극 중 사울의 행동은 한편으론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백명이 넘게 유대인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는 한 가운데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자신의 아들 (나는 이 아들이 사울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이 더 의미하는 바가 크기도 하고)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용소를 탈출하고자 계획을 세웠던 동료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면서까지 랍비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한 사울의 모습은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기적인으로 보여지는 측면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영화가 선택한 구원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는 사울을 비롯해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는 이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데, 이들은 자신들도 유대인이면서 끌려온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안내하고 이후엔 시체를 치우고, 청소를 하고, 귀중품을 챙기는 등의 행동을 했던 이들로서 어쩌면 극 중 사울의 대사처럼 '이미 죽어버린'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아유슈비츠의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기생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목숨을 담보로 같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동참할 수 밖에는 없었던 또 다른 비극의 피해자로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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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아들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랍비를 찾아 해매는 사울의 행동은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작게는 존더코만도들에 대한 구원, 더 나아가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야 했던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행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이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히려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서도 거부할 수 없었던 사울이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간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를 반영하듯 영화 내내 사울의 등 바로 뒤에서 오로지 사울의 행동 만을 쫓고 보여주었던 카메라는, 마지막에 가서 마치 이 지옥 속에서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던 사울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신(God)이 그만의 방식으로 사울이 구원을 이뤄낸 순간 비로소 그를 떠나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등 뒤에서 떨어져 나온다. 사울의 아들이란 그저 그 한 아이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구원 받지 못했던, 구원 받아야 했던 모든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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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Zootopia, 2016)

편견없는 판타지아를 꿈꾸며


오래 전 우리가 보고 자랐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그 당시에는 몰랐었으나 사실 대단한 편견과 잘못된 가치관을 담은 이야기들이 많았었다. 이미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를 통해 풍자 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외모로 캐릭터를 판단하거나 외모를 중심으로 삶의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기도 했었고, 육식공룡은 나쁜 편, 초식공룡은 착한 편 같은 흑백 논리를 펼치거나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캐릭터는 악당이라는 선입관을 심어주기도 했었다. 이런 디즈니 스튜디오의 가치관을 그저 한 영화사의 성격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앞서도 잠시 이야기했던 것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전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 아닌 편견을 갖게 되는 샘인데, 바로 그 지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번 '주토피아 (Zootopia, 2016)'라는 작품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디즈니가 픽사 인수 이전부터도 아주 예전과 같은 보수성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주토피아'처럼 바로 그 잘못된 편견에 대해 근본부터 제대로 다룬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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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이런 변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났던 좋은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이 작품을 연출한 리치 무어 감독의 전작인 '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 2012)'였는데, 디즈니의 세계관에서는 매번 악당 역할을 해야 만 했던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가운데로 끌여들여, 그런 편견이 옳지 않았음을 표현해낸 작품이었다. '주토피아'는 이보다 더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니까 육식동물은 위험하고 초식동물은 착하고 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본이요, 그것을 반대로 뒤집는 경우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어쩌면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것이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조차 못한 것들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 주디 홉스가 처음 경찰이 되어 주토피아 경찰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입구에서 안내하던 육식동물 경찰은 제법 편견없는 시선으로 주디를 바라보며 '정말 귀엽게 생긴 토끼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로 사심없이. 하지만 이 때 주디는 이렇게 얘기한다. '토끼끼리 귀엽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동물이 귀엽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와! 이런 정도의 대사를 디즈니 영화에서 만나게 되다니. 크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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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영화는 텍스트 전반에 걸쳐 이 편견에 대한 풍자 혹은 뜨끔한 농담을 늘어 놓는다. 엄청나게 느린 나무늘보의 이름은 '플래시 (Flash)'이고 이름부터 큰(?) '미스터 빅'이라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작은 생쥐다. 이 미스터 빅을 묘사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는데 '대부'의 돈 꼴리오네를 패러디하다 못해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딸의 결혼식까지 똑같다 ㅎ) 이 캐릭터는 작은 몸집 임에도 훨씬 큰 북극곰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있는데, 이것 자체가 편견을 뒤집는 설정이다. 쉽게 생각하면 왜 저런 큰 덩치의 곰들이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 생쥐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나 의아해 할 수 있는데,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 이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크기를 기반으로 한 힘으로서 누군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설정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면 또 한 번 기존의 보수적인 설정을 뒤집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반전의 의미라기 보다는 설정을 뒤집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겠다), 기존의 영화들 특히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단순한 구조의 애니메이션 작품의 경우 착한 편인 주인공이 하는 행위는 모두 그래도 되는 것으로 넘어가는, 아니 그렇다고 믿는 경우가 많은데 '주토피아'는 그 반대의 경우도 똑같은 폭력이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걸 놓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행동하기 쉽지 않는 문제이고, 아이들에게는 머리와 가슴 모두로 새겨야 할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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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가 담아 낸 이 편견없는 판타지아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꺼내 들었기 때문에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본다면 위태위태한 부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토피아'가 의미 있고 무엇보다 좋은 영화라는 점은 들려주고자 했던 메시지의 건강함 때문이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평소 편견이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만이 아니라, 이런 것도 편견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남녀의 차별, 인종으로 인한 차별과 편견, 외모로 인한 차별과 편견, 지역, 출신 등 모든 것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들 가운데는 겉으로 드러나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들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곱씹어 보아야만 그것이 편견이 될 수 있겠구나, 차별이 될 수 있겠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마지막 샤키라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엔딩곡의 가사 내용은 더 의미 심장하다. 내일도 실수할 거고, 또 실수할 거에요. 라는 말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노력을 멈추지 말자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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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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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카데미 시상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TV를 통해 시청한 건 이번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매번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인터넷이나 다른 중계등을 통했었는데, 이번엔 쾌적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CGV의 동시통역 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동시통역이라는 것이 본래 매끄럽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처럼 현장의 소리와 통역 소리가 거칠게 겹쳐지고, 또한 대충 들어도 빼먹는 부분이 많거나 통역사의 말투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차라리 이전처럼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듯 싶다. 내년에는 좀 늦더라도 실시간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좋을 듯.


2. 시상식 전부터 흑인 후보가 한 명도 지명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일부 보이콧 까지 벌어졌던 이번 오스카는, 이를 의식한 듯 사회자 크리스 록의 작정 멘트들과 함께 다양한 부분에서 흑인들의 배제를 역으로 이용하는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단 하나 스스로 만든 논란과 그 반대의 의견을 그 스스로의 무대에서 펼치는 것이 가능한 아카데미의 환경이 조금은 부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논란을 안만드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3. 개인적으로 촬영상과 더불어 가장 주목했던 부문이 바로 여우조연상이었는데, 다섯 작품을 모두 관람한 결과 '대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가 가장 손꼽을 만 했으나, '캐롤'의 루니 마라는 물론, '헤이트풀 8'의 제니퍼 제이슨 리와 '스티브 잡스'의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충분히 좋았고, '스포트라이트'의 레이첼 맥아담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이변이 나지는 않을까 흥미로웠던 부문이었다. 수상은 예상대로 비칸데르가 가져갔다. 루니 마라는 뭐, 칸에서 주연상도 받았는데 뭐. 차라리 주연상 후보에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동시에 올랐다면 더 흥미진진 했을 듯.


4.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매드 맥스가 아니네요'라는 수상 발표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감독상이나 작품상의 주연 부문에서는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작품성이 몹시 뛰어난 작품으로, 경쟁작들을 재치고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수상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한 편으로는 받았어야 할 작품이기도 하다.


5. 주제가상 후보로 오른 '유스'의 더 심플송의 공연이 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근데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곡이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이 '과연 이 곡을 어떻게 공연할 것인가'였는데, 역시나 시간 상 공연이 어려워 취소된 것이 아쉬웠다.


6. 음악상은 쟁쟁한 후보들을 재치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헤이트풀 8'로 수상했는데, 공로상을 먼저 받고 아카데미를 그 후에 수상하는 경우가 또 있었나 싶다. 레오의 남우주연상도 그렇고, 스콜세지의 감독상도 그렇고, 모리꼬네도 '헤이트풀 8'로 수상하는 건 아이러니랄까.


7.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은 아마 촬영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든 '레버넌트'의 촬영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혹시라도 그가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엠마누엘 누베즈키와 만난 다른 후보들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시카리오'의 로저 디킨스는 그저 눈물 ㅠㅠ





8. 이렇게 긴장되는 시상식이 또 있을까. 아마 나중에 우리나라 배우나 감독이 아카데미의 유력 수상 후보로 올라간다 해도 이보다 더 걱정되고 긴장되지는 않을 듯 하다.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모든 예상이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점칠 때마다 '혹시...'하는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그의 팬으로서 상을 꼭 탔으면 하는 것 보다도, 빨리 이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심정이 더 컸던 것이 사실 ㅋ '레버넌트'보다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수상하는 것이 더 적절했겠지만서도. 눈물이 날 법도 한데, 초연한 듯 환경 문제에 대한 수상소감을 힘있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광마저 느껴졌다 @@ 다음 작품은 좀 덜 고생하고 가벼운,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영화 하나 했으면 좋겠다.


9. 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작품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감독상을 누구에게 줘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조지 밀러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감독을 비롯한 배우, 스텝들의 영화적 야망이 아주 강렬하게 묻어난 작품이었는데, 아무래도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보다는 좀 더 아카데미 취향의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10. 맨 마지막 작품상 수상작으로 '스포트라이트'라고 모건 프리먼이 짧게 외쳤을 때, 혹시 일종의 페이크는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예상 못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의외의 결과였다. 좋은 영화였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극 중 마크 러팔로가 연기했던 실제 인물이 함께 자리를 한 것도 의미있었다.


11. 이렇게 이번 아카데미도 막을 내렸다. 뭐 상을 받고 못 받고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레오에게는 아닐 듯), 그보다는 인상 깊게 봤던 영화들의 장면들과 배우, 감독, 스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후보작들 가운데 아직 못 본 '룸'이나 '사울의 아들', '트럼보', '브루클린' 등도 어서 봐야겠다.



* 이번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주요 작품들의 리뷰들.



레버넌트 _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경외 (http://www.realfolkblues.co.kr/2063)

빅쇼트 _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68)

스파이 브릿지 _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38)

마션 _ 다시 우주를 꿈꾸게 만드는 휴먼드라마 (http://www.realfolkblues.co.kr/2017)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_ 여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http://www.realfolkblues.co.kr/1971)

스포트라이트 _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77)

스티브 잡스 _ 전기 영화 아닌 치열한 캐릭터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6)

대니쉬 걸 _ 진짜 나를 찾아줘 (http://www.realfolkblues.co.kr/2076)

캐롤 _ 아름답고 확고한 사랑의 이름 (http://www.realfolkblues.co.kr/2071)

헤이트풀 8 _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2)

인사이드 아웃 _ 부모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미안함 (http://www.realfolkblues.co.kr/1985)

시카리오 _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49)

침묵의 시선 _ 악마와 얼굴을 마주하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10)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_ 새로운 삼부작의 시작 (http://www.realfolkblues.co.kr/2054)

007 스펙터 _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http://www.realfolkblues.co.kr/2041)

엑스마키나 _ 인공지능에 관한 깊은 반복의 결과물 (http://www.realfolkblues.co.kr/1988)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동주 (The Portrait of A Poet, 2015)

부끄러움이 절실한 시대에 바침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륙첩방은 남으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 쉽게 쓰여진 시 中)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나라를 빼았긴 암흑과도 같았던 시절을 배경으로 애국심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행동에 대해서도 또한 일제 강점기 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한 발 물러서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동주라는 청년이 있다. 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 그렇게 영화 '동주'는 물러설 곳이 없었던 어두운 현실 한 가운데 있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들려줌에 있어 시대 정신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인 내러티브로, 마치 윤동주의 시와 같은 쓸쓸함을 머금은 공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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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윤동주 - 자화상 中)


영화 '동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윤동주의 시 구절을 내러티브로 활용한다. 영화 속 장면과 시의 구절이 뜻하는 바가 실제로 반드시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착각이 들도록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윤동주의 시 한 구절 한 구절의 힘을 관객에게 최대한 가슴 깊이 전달하고자 한다. 문학 장르 가운데서도 '시'라는 형태는 가장 쉬운 방식인 동시에 가장 그 깊이를 다 소화하기 어려운 문학이기도 한데, 영화 '동주'를 보고나면 실제로 학창시절 별다른 생각 없이 혹은 그저 문장의 아름다움 만으로 읽었던 윤동주의 시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설령 그 구절이 영화가 만들어 낸 것과는 다른 심정으로 쓰여졌다해도 말이다. 그 지점이 영화 '동주'의 첫 번째 의미다.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윤동주를 다른 요소를 최대한 섞지 않고 그려내고자 한 점. 그것은 아마도 박정민이 연기한 송몽규라는 인물을 비중있게 다루게 되면서 윤동주라는 인물을 좀 더 시대의 그림자처럼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주'는 그저 시집을 내고 싶었던 청년 윤동주의 심정과 그로 인해 느껴야 했던 부끄러움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일제 시대라는 무시하려해도 할 수 없는 시대의 문제와 그 시대를 독립운동이라는 정신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이들의 숭고함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어느 한 편으로 기울었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되기는 힘들었을 영화였을 텐데, 이준익 감독은 균형점을 찾는 것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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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 서시 中)


영화 '동주'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결국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윤동주의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다시 꺼내고자 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힘이 없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두려워서 그저 닥친 현실과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 모른척 하거나 무시하려 자기 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동주'는 바로 그런 자들, 이런 저런 이유들을 들어 그럴 수 밖에는 없다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못 본척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뼈저린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현실에게 보내는 과거로부터의 메시지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시대에 시인이라는 작은 꿈을 꾸었던 윤동주가 거대한 시대 앞에서 죽음으로 느껴야만 했던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을 통해 과연 현재의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최소한 부끄러워는 해야 할 양심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윤동주라는 한 청년의 짧은 삶과 그가 남긴 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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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많은 것들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최소한 부끄러워 하자. 그것이 시인 윤동주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절실한 외침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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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더욱 굳건히 닫히는 진실의 장벽. 결코 좌절할 수 없었던 끈질긴 ‘스포트라이트’팀은 추적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나는데… (출처 : 다음영화)


2002년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지 내 스포트라이트 팀을 통해 폭로된 가톨릭 사제들의 충격적인 아동 성추행 스캔들 실화를 다룬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는, 충격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시 한 번 고발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제목처럼 이 스캔들을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스포트라이트 팀이 겪어야 했던 과정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다. 단순하게 성직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영화는 이 충격적 사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보스턴이라는 오래되고 견고한 도시의 특성을 배경으로 보스턴에서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단순한 종교 이상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즉 이 가톨릭 커뮤니티가 가족, 동료, 학교, 회사 등 모든 영역에 근본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 가운데 오로지 진실 만을 위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던 스포트라이트 팀의 활동을 건조하지만 치밀하게, 비교적 감상적이지 않는 입장을 취하며 전개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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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명감을 강조한다. 꼭 언론과 기자라는 직업군을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여러 일 가운데는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과 굳이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일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의 일을 전자의 일로 감수해 낸 용감한 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로 내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내가 다닌 학교 등 나를 구성하는 많은 커뮤니티들이 묵인했던 진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믿고 있고 나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묵인하고 부정할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반드시 '내'가 해야만 했던 일을 해낸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차적으로 요금 같이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기자라면 더욱)자신이 하는 일과 직업에 대해 사명감과 장인정신을 찾아 보기 힘든 세상에서, 기사를 내 자식처럼, 온전히 내 것이라는 인물들의 열정과 신념은 그 자체로 주는 감동이 있었다. 굳이 취재라는 것이 거의 실종되어 버린 국내 언론의 현실을 비춰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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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는 사명감의 이유나 목적을 추상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상황을 무릅쓰기엔 너무 먼 개념인 추상적 정의로움이나 선의 등의 이유가 아닌, 그 아동성추행의 대상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통해, 누군가가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 조직적이고 거대한 범죄와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음은 물론이요, 다음 피해자는 나나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조언을 한다. 실제로도 현실에서 보면 뉴스에 나오는 어떤 끔찍한 사건 등을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면서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곤 하는데,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단순히 '내가 될 수도 있었어' 수준이 아니라 '내가 선택되지 않은 것이 운이 좋은 것 뿐이야'라고 더 센 강도로 이야기한다 (놀라운 건 실제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수를 본다면 정말로 운이 좋아서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고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가서 만약 이들이 이 기사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들 역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 일 없이 덮으려고 했다면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들이 그 이후로도 발생되었을 지를 단적인 자료들로 보여준다. 그 엄청난 수의 리스트는 이 스캔들의 규모를 보여주는 데이터라기 보다는 이들이 살려 낸 생존자 리스트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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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크 러팔로는 이번에도 참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를 비롯해 이 스포트라이트 팀은 정말 다 진짜 같아요.

2. 리브 슈라이버의 저런 지적인 연기는 처음 본 것 같아요 ㅎ

3. 전혀 다른 얘기로 요새 (주)더쿱 에서 수입한 영화들을 자주 극장에서 보게 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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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쉬 걸 (The Danish Girl, 2016)

진짜 나를 찾아줘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 풍경화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아이나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야심 찬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이자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파트너이다.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아이나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드레스를 입고 캔버스 앞에 선 에이나르는 이제까지 한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날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그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세계 최초의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로 알려진 아이나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원작으로 '킹스 스피치'와 '레 미제라블' 등을 연출했던 톰 후퍼가 연출한 작품이다. '대니쉬 걸'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인물의 이야기를 묘사함에 있어서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편에 서서)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시에, 또한 제3자의 시선일 수 밖에는 없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용기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 애 쓰고 있는 영화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의 아주 뛰어난 연기가 뒷받침되었다는 점과 혼란을 겪는 주인공 만큼이나 더 큰 혼란을 겪었을 그의 아내인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압도적일 수 밖에는 없었던 전자의 인상을 넘어설 정도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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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번째로 아이나 베게너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신체적 고생이 겸비 된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의 연기와 마찬가지로 '대니쉬 걸'의 아이나 베게너라는 캐릭터는 내면의 갈등과 외면의 변화를 모두 표현해야만 하는 캐릭터인 동시에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른바 오스카 수상에 적합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동일한 선상에서 연기상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그 누구보다 레오의 오스카 수상을 바라는 자임에도 이 영화를 본 뒤에는 에디 레드메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었다. '대니쉬 걸'에서 에디가 연기한 아이나 베게너는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인생을 살게 되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감정과 외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진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연기를 선보인다. 외향적으로는 아이나에게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표정이나 손짓, 발짓 모두 부족함이 없었으며, 내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쩌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또 한 번 보여주었음에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라는 이 영화의 근본적인 대답의 신뢰와 공감을 얻어내는 훌륭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만약 '대니쉬 걸'의 다른 요소들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얻지 못하더라도 단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로 탄생시킨 아이나 베게너라는 성전환자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의미있는 영화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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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극 중 아이나의 부인인 게르다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 더 인상적이었다. 성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결국 여성으로 살기 위해 수술을 감행하는 아이나의 고통(여기서의 고통이란 단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못지 않게,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남편이 아닌 여성으로 맞아야 했던 게르다의 복잡한 심경을 도드라지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게르다의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는데, 얼핏 보면 게르다는 자신이 함께 했던 일종의 장난이 커져서 결국 남편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다고 여기는 장면들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게르다는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나가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혹은 끝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성애나 성정체성의 혼란 등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그 당사자들이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조차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고치려 해봐도 되지 않자 결국 받아 들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니쉬 걸'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이나는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그려낸다. 그런 측면에서 게르다가 아이나를 바라보는 방식도 이해할 수 있는데, 게르다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아이나가 결국 여성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겠다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이나가 릴리(아이나의 여성 자아)가 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면 그렇게 되는 것을 적극 응원하겠다 라는 심경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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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게르다라는 캐릭터의 묘사는 '대니쉬 걸'이라는 영화가 성전환수술자의 실화 혹은 이야기를 어떤 시선과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는 행여 그것이 이제는 조금 진부할 수 있는 갈등이나 혼란이라고 여겨질 지라도 그들이 다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는 반면, 그(그녀)의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게르다를 묘사함에 있어서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서, 어쩌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성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에 대한 묘사도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게르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레이어로 이뤄진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게르다라는 인물의 인상이 더 깊게 남았다. 끝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나를 릴리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의심이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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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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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Deadpool, 2016)

'슈퍼'지만 '히어로'는 아닌 진짜 로맨스 영화



전직 특수부대 출신의 용병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암 치료를 위한 비밀 실험에 참여 후, 강력한 힐링팩터를 지닌 슈퍼히어로 ‘데드풀’로 거듭난다. 탁월한 무술실력과 거침없는 유머감각을 지녔지만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갖게 된 데드풀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린 놈들을 찾아 뒤쫓기 시작하는데…(출처 : 다음영화)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데드풀 (Deadpool, 2016)'은 다른 마블 히어로 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영화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의 정서라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의로움을 기반으로 한 주인공의 가치관 등은 데드풀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 존재하지 않지만 특별한 힘이나 능력을 갖고 있는 주인공인 경우 안티 히어로 영화인 경우도 많은데, 그렇다고 '데드풀'이 안티 히어로 영화인가 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데드풀'은 영화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로맨스 영화거나 개그 액션 영화에 가깝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그래서 관객의 취향에 따라 아주 극과 극으로 나뉠 수도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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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9금 히어로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던 것처럼, 액션이나 성적인 농담에 있어서 19금다운 수위를 자랑한다. 액션은 목과 사지가 절단 되는 등 잔인한 요소가 적지 않고, 노출도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데드풀'이 진짜 19금이 된 이유는 아마 그가 쉬지 않고 내뱉는 성적 농담 때문일 것이다. 데드풀이라는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개그를 쏟아내는 인물인데, 그 농담들 가운데서도 성적인 농담이 대부분이라 영화의 중반쯤 가면 완전히 그의 화법에 적응되어 어지간한 농담으로는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양도 많고 수위도 꾸준(?)하다. 이러한 잔인함이나 성적인 농담에 불편하다면 이 영화를 끝까지 즐기기는 아마 어려울 듯 하다.


유머러스한 측면에 있어서 '데드풀'은 그야말로 향연이다. 가끔 북미에서는 흥행을 거둬지만 국내에서는 흥행하지 못하거나 애초에 수입되지도 않는 코미디 영화의 경우 대부분 북미식 유머가 중심인 영화들이 많은데, '데드풀'의 유머는 이 같은 북미식 유머와도 조금 거리가 있다.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에 더 가깝고, 더 정확히는 덕후개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19금적인 요소로 인해 취향이 갈리기 보다는 이 유머를 어느 정도까지 반응하느냐에 따라 이 영화의 평가가 갈린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왜냐하면 어느 정도 유머러스한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처음부터 끝날 때 까지 쉬지 않고 유머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10번 던지면 8번 정도는 피식이라도 웃었을 정도로 웃음 사냥의 성공률이 높은 편이라 끝까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영화 팬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유머들이 다른 실망스러운 코미디 영화에서 처럼 '자, 이건 유머야. 여기서 웃으면 돼'라고 폼잡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못듣고 지나쳐도 상관없어'라는 식으로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것도 좋았다. 몇몇 기억나는 유머 중에 제일 재밌었던 건 역시 그린랜턴 관련 유머들이었으며, 리암 니슨 관련 유머도 재밌었다 ㅋ (그렇지 그렇게 매번 딸이 납치되었다면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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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갈릴지언정 '데드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대쪽같은 일관성이다. 아무리 가벼움과 유머로 가득 찬 캐릭터일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거나 감동적인 모습 (감동을 주려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데드풀'은 정말로 끝까지 가볍고 저질이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유지한다. 아마 대중들은 처음엔 저렇더라도 중요한 순간엔 정신 차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더 바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데드풀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순간에도 변하지 않는 뚝심을 보여준다. 뭐랄까 아주 하찮은 것도 오랜 시간을 꾸준히 해오면 장인으로 대우 받아야 하는 것처럼, 이쯤되면 데드풀의 그 실망시키지 않는 가벼움도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끝까지 초지일관 자신의 캐릭터를 잊지 않는 데드풀의 모습을 보니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ㅎ. 만약 다른 영화들처럼 데드풀 역시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혹은 악당과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마지막 순간에 어쩔 수 없이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었다면 조금은 평범한 영화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드풀'은 끝까지 유지했고, 그래서 더 특별한 영화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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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밖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도 대부분은 낯간지러워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데드풀'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하긴 무슨 짓인듯 어색했으랴 ㅎ). 그리고 로맨스 영화로서의 포장 방법도 좋았고, 실제 로맨스 영화의 플롯으로 봐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오버스런 포장 없이도 괜찮은 로맨스 영화였다. 똑같은 플롯에 성격만 바꾸면 (대사만 진지하면) 아마 후반부에 눈물 꽤나 흘릴 로맨스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데드풀'은 분명 기존 히어로 영화들의 선상에서 홀로 쭉 삐져나온 안 이쁜 모양의 영화다. 그런데 너무 다들 진지하기만 하고 정의롭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나. 데드풀 같은 이상한 녀석도 하나 있어야지.



1. 스탠리 옹의 업무 환경은 갈 수록 좋아(?)지는 듯 ㅎㅎㅎ

2. 왠지 이 영화를 보고 오니 '그린랜턴'이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3. 여주인공을 연기한 모레나 바카린은 '홈랜드' 등을 통해 익숙한 배우인데, 나이는 이번에 처음 알아봤어요. 무려 누님이네요. 대단하십니다 누님.

4.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흥행에 성공해서 속편에는 좀 진짜 까메오들과 진짜 헬리케이어 등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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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살인자 만들기 (Netflix _ Making a Murderer)

긴 호흡으로 즐기는 치밀한 다큐멘터리



최근 국내에 런칭한 넷플릭스 (Netflix)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서비스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익하고 볼 만한 작품이라면 역시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작품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다큐멘터리 작품들은 기존 다른 IPTV 서비스가 제공하는 콘텐츠들 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완성도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작품들을 여럿 만나볼 수가 있어서 반가운데, '살인자 만들기'는 그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SBS에서 방영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즌제로 만나는 느낌인데, 긴 호흡으로 하나의 사건을 차근 차근 그리고 치밀하게 다루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극 영화 못지 않은 극적인 재미와 흥미 그리고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몰입도가 무척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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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만들기'는 무려 10년 이라는 시간을 들여 제작한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실화'와 '다큐멘터리'를 굳이 또 한 번 강조하는 이유는 스티븐 에이버리를 중심으로 겪게 되는 이 사건과 법정 공방의 긴 이야기가 마치 수준급의 스릴러 작가가 공들여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실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적인 요소가 많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실화가 허구의 이야기보다도 더 허구 같은 경우는 가끔 만나볼 수 있는데, '살인자 만들기'가 그 가운데서도 첫 번째 손에 꼽을 만한 다른 이유는 실존 인물들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캐릭터스럽다는 점이다. 일부러 저렇게 딱 맞는 배우들을 찾아 캐스팅을 한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실존 인물들은 주인공 스티븐 에이버리를 비롯해 검사, 경찰, 변호사, 주변 인물 등 모두가 관련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만약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접하게 된다면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진 미드라고 보는 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실존 인물들이 주는 극적인 몰입감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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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라는 세월을 쫓아가며 사건을 다룬 점이 바탕이 되기는 했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를 10화에 달하는 하나의 시즌으로 제작한 것과 하나의 시즌이 다 끝날 때 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연출과 편집은 '살인자 만들기'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첫 번째 이유다. 아마 제작진이 가장 고심했을 부분은 무고하게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스티븐 에이버리가 다시 금 살인 혐의를 쓰고 재판을 받고 투옥하게 된 (진실 여부는 일단 떠나서라도)이 억울함을 시청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을 텐데, 긴 호흡에도 차근 차근 증거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낸 방식은 억울함을 넘어서 분노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반대로 그랬기 때문에 조금은 일방적으로 스티븐 에이버리의 편에 서 있는 작품의 시선이 실제 사건의 진실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방해를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작품에서 제공하고 있는 정보 만으로도 스티븐 에이버리가 무죄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기는 하지만 이 사건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실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추가로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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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완성도나 매력을 떠나서 '살인자 만들기'처럼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 가능한 환경에 대한 부러움도 컸다. 그리고 이를 제작한 넷플릭스라는 회사가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또 한 번 신뢰를 가질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만약 아직 넷플릭스를 결제 해 놓고 어떤 걸 봐야 할지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단, 짜증을 넘어선 분노가 일 수 있다는 점은 꼭 미리 체크하시길.


1. 무려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음악을 맡고 있다는 점!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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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Carol, 2015)

아름답고 확고한 사랑의 이름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출처 : 다음영화)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 1998)',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 2002)' 등을 연출했던 토드 헤인즈의 신작 '캐롤 (Carol, 2015)'은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위태롭기까지 한 불안함 가운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여성과 여성이 서로 사랑하는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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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을 이야기하면서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 가운데는 단순히 이성간의 사랑을 동성간의 것으로 대치한 경우가 있는 한 편, 반드시 동성간의 사랑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가 있는데 '캐롤'은 후자의 경우다. 즉, 극 중 캐롤과 테레즈 중 누가 이성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남성의 역할을 하는가 하는 질문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화제가 된 이동진 평론가의 보편적 사랑 즉,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대상이 그저 여성이었을 뿐이다 라는 의견 역시 이 영화에는 적절하지 않은 해설이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 가운데는 실제로 주인공이 동성이라서 사랑을 하게 된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도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부정하려 함에도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일종의 성별과 무관한 존재로서의 사랑의 측면에서 그리는 경우도 있는데,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그 어떤 동성애를 다룬 영화 보다도 더 확고한 신념에 찬 영화였다. 테레즈와 캐롤은 자신들이 동성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이성과의 사랑이냐 동성과의 사랑이냐 가운데 50대 50의 선택이 아니라 확고한 100%의 사랑임을 (동성애임을) 또한 인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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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여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서로에게 전하는 미묘한 손길과 시선 그리고 그 미묘한 행동들을 행하기 전까지의 세심한 갈등과 떨림 등은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를 통해 극도로 섬세하게 묘사된다. 현재 상영 중인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과 마찬가지로 '캐롤' 역시 겉으로는 밋밋하고 큰 클라이맥스 없이 진행되는 듯 한 로맨스이지만, 사실은 내면에서 아주 섬세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교류하는 과정을 역시 아주 섬세하게 연출하고 있는 영화다. 테레즈와 캐롤, 특히 테레즈의 모습을 얼핏 보면 캐롤을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불안함을 겪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녀가 캐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실제로 행동하고 대화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얼마나 확고한 신념에 차 있는 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캐롤'은 동성애를 금기시 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느낀 동성애에 대해 혼란을 겪고 불안함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테레즈와 캐롤이 그런 외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에 대해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고 아주 격렬하게 사랑하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즉,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편이지만 내면의 감정에 있어서는 오히려 확고하고 강렬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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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로맨스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감동 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올 정도로..) 오히려 휴먼 드라마나 액션, 스릴러 장르에 비해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가 눈물 흘릴 정도의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더 어렵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캐롤'의 어떤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캐롤이 남편과의 결혼관계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 각자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자리를 갖게 된 장면이 그 장면이었는데, 이 글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바로 그 '확고한 신념'이 아주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이 장면은 놀랍도록 강렬하고 감정이 요동칠 수 밖에는 없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테레즈를 만나면서 자신과 자신이 느낀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다하지는 못했던 캐롤이, 사랑에 대해 완전히 솔직해 지는 동시에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건강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 장면이야말로 토드 헤인즈가 '캐롤'을 통해 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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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캐롤'은 어쩔 수 없이 저항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저항하는 영화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영화다. 세상의 잘못된 시선과 잘못된 다수의 의견으로 인해 죄책감을 갖거나 불안해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담은.



1. Carter Burwell이 맡은 영화 음악도 예술이에요. 그가 만든 코엔 형제 영화의 음악들도 좋아했었는데 이번 OST도 정말 예술!

2. 올해의 캐스팅이라는 상이 있다면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를 꼽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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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섭은낭 (刺客聶隱娘 The Assassin, 2015)

내면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의 파도



코엔 형제가 포크 뮤지션을 주인공으로 한 음악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처럼, 허우 샤오시엔이 무협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영화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 '자객 섭은낭 (刺客聶隱娘 The Assassin, 2015)'은 액션 중심의 무협 영화가 아닌 정서적으로 완벽한 무협 영화다.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암살자로 길러 진 섭은낭 (서기)은 더이상 배울 것이 없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자 스승으로부터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정혼자였던 전계안 (장첸)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은낭은 자객으로서는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췄지만 정반대로 누군가를 암살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회의를 갖는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 같이 자객으로서의 임무와 한 사람으로서의 양심 혹은 가치관 사이에서 흔들리는 섭은낭의 심리를 정제되고 고요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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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섭은낭'은 기존 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액션 위주의 액션 영화들과는 물론, 전체적인 영화 서술 방식에 있어서도 조금은 다른 영화다. 서사는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는 단편적인 장면들과 이미지를 통해 진행하고 있으며, 그 서사의 중심 역시 이야기보다는 은낭의 심리에 근거한다. 실제 촬영 시에도 배우들이 더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거리를 두고 촬영을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 역시 샅샅이 파헤치거나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다보니 조금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조금만 집중한다면 겉으로 모두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의 감정이 영화 곳곳에 묻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객 섭은낭'은 무협 영화이지만 그 어떤 드라마 장르 보다도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인물들의 표정, 이를 만들어 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을 단숨에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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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자연의 풍광과 전계안이 머물고 있는 곳 내부의 화려한 이미지 등은 앞서 이야기한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겹쳐져 더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해 낸다. 반투명한 천과 천 사이로 보일 듯 말듯 존재하는 섭은낭의 모습은 자객으로서의 임무와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내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은낭의 상태를 대사 한 마디 없이도 완벽하게 그려낸다. 내면의 소용돌이 치는 파도를 표현해 내는 방식에 있어서 허우 샤오시엔은 내적으로 폭발하는 이미지를 외부로 표현함에 있어서 더 정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섭은낭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파도가 휩쓸고 간 여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신라도 길을 떠나는 섭은낭의 뒷모습에서는 이런 심리를 대변하는 대사도 그 어떤 표정도 없지만, 그 내면의 파도가 잦아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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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에 집중하다보면 어느 샌가 모든 장면에서 어딘가 섭은낭이 숨어 있지 않을까 찾게 되더군요 ㅎ

2. 소용돌이라는 제목을 쓰고나서 혹시나해서 찾아보니, 이전 이병헌, 전도연 주연의 '협녀, 칼의 기억'에 대해 내면의 소용돌이는 표현 못한 반쪽자리 무협영화라는 제목을 썼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객 섭은낭'은 완벽한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3.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 감독님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아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속편이 나올 수도 있겠더군요 ㅎ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인물과 은낭이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떠나는 여정을 다룬.

4. 마지막은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GV사진 몇 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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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 (The Big Short, 2016)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표되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 된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과 과정을 다룬 아담 맥케이의 '빅쇼트 (The Big Short, 2016)'는,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오히려 거대한 수익을 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만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이 영화는 홍보 방식에 있어서 '금융 위기의 가운데 월가를 물먹이고 초대박을 터뜨린 괴짜 천재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정서다. 즉, 천재적인 인물들이 이 금융 위기의 전조를 미리 발견하고 이를 통해 대박을 터뜨리는 과정을 통해 통쾌함과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는 내용이 아니라, 아주 객관적으로 이 사태가 왜 벌어졌고 어떻게 최악으로 말미암았는지를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빌어 설명하는 내용에 가깝다. 영화는 아주 발랄하고 리드미컬하며 오락적인 구성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내용은 정말로 끔찍하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망할 것만 같았던 정도의 세계 금융위기라는 현상을 아담 맥케이는 최대한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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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다 보고 난 첫 번째 느낌은 '왜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않았지?'였는데,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려다보니 내용은 자연스럽게 전문적 경제용어들이 난무하는, 일반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내용이 될 수 밖에는 없었다. 아마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더 심화 된 내용과 메시지가 강한 영화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도, 무엇보다 제대로 이해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이미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안다). '머니볼'을 쓰기도 했던 원작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 원작은 전문적인 경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 대중적으로도 성공했었는데, 아담 맥케이의 영화 '빅쇼트'는 여기에 한 번 더 친절한 필터링을 거친 설명서라고 보면 되겠다. 즉, 영화 '빅쇼트'는 아주 명백한 제작 의도가 담긴 작품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기로 몰고 간 금융위기가 왜 벌어졌고, 어떤 과정으로 최악으로 치닫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른채 집과 직장을 잃어야만 했던 평범한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목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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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영화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극영화라는 장르의 선택이었을테고, 두 번째는 크리스찬 베일, 브래드 피트,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이었으며, 세 번째는 친절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크리스찬 베일이나 브래드 피트 같은 배우들의 이름에 낚여서 갑자기 의도하지 않았던 경제 공부를 하게 된 관객들도 많겠지만, 어쩌면 이 낚시 아닌 낚시는 영화의 의도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조연급의 유명한 배우들 외에도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 같은 셀러브리티들은 물론 세계적 셰프인 안소니 브루댕이나 경제 학자 리차드 탈러 박사 같은 이들이 등장하여 스크린에서 관객을 똑바로 보면서 알기 쉽게 소개하는 방식은, 다시 한 번 이 영화가 어떤 목적성을 갖고 있는 지를 알게 한다. 또한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자레드 베넷 캐릭터는 스크린 밖의 관객을 인지하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실제로 상당히 유효했다. 나 역시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CDO, CDS 등 전문 적인 경제 용어들과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화는 아주 낮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하고 있어서 적어도 단순화 하여 이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는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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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이토록 설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문구들은 이 2시간 넘는 일종의 공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는데, 이 문제로 처벌 받는 금융인은 단 한 명 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이 엄청난 규모의 사태를 일으켰던 일종의 금융 상품이 이름만 바뀌어서 다시 2015년에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안일하고 멍청한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모르는 것은 약이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걸 영화는 전하고자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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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Kumiko, the Treasure Hunter, 2014)

이 쓸쓸하고 행복한 모험



인구 3,500만명이 살아가는 대도시 도쿄.. 29살의 쿠미코는 누구보다 절박한 외로움을 느낀다. 장래가 없는 회사 생활과 모욕을 주는 상사,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매력적인 후배들, 그리고 결혼을 재촉하며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쿠미코는 동굴 속에서 영화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발견한다. <파고>라는 미국 영화에서 어떤 남자가 눈밭에 돈가방을 묻는 것을 보고 그녀는 그 보물이 실재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결국 회사 법인 카드를 훔친 쿠미코는 직접 만든 보물 지도를 들고 얼음 덮인 미네소타를 가로질러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한 장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정을 시작한다. (출처 : 다음영화)


2001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고니시 다카코는 여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는 잔혹한 현실과 이를 돌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환상이라는 영화적 기법으로 응원하며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크게 완전한 스토리텔러의 역할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술하는 방식이 있고, 다르게는 영화가 관객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돕거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에 경우다. 이런 방식은 이야기에 오히려 더 쉽게 빠져들게 되는 효과가 있는데, 이 영화 역시 쿠미코가 처한 현실과 그녀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는 모험을 지켜보면서, 이 짧은 러닝 타임 동안 쿠미코라는 여성을 조금은 가여운 심정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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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반해 쿠미코가 처한 현실은 한 편으론 가벼운 편일지도 모르겠다. 생사가 걸려 있는 현실에 턱 막힌 인물들에 비하자면 가벼운 문제 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반대로 하자면 돈을 벌고 회사를 다니고 특별할 것 없이 살아가는 현대의 보통 사람들의 현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쿠미코처럼 그저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과 조여오는 타인들과의 관계와 부담이 곧 벗어나고픈 현실이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쿠미코의 모험담은 황당할 정도로 말이 되지 않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저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TV프로그램에나 스쳐 등장할 법한 이야기지만,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 (Fargo)' 속 이야기를 믿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여정을 떠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무언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쓸쓸함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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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쿠미코의 여정을 내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영화의 시선과 그 결말의 선택은 쓸쓸함과 동시에 조금은 행복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행복해진 쿠미코의 뒷 모습에서 느껴진 묘한 안도감과 평화로움은, 작지만 오래 여운으로 남게 될 듯 하다.



1.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여 실제 이야기를 좀 찾아봤더니, 고니시 다카코라는 여성이 2001년 11월 경 미네소타 주에서 여행을 하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을 한 사건이 있었네요. 영화 속 내용 처럼 '파고'의 돈가방을 찾아 왔다는 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조사결과는 '파고'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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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자 (The Revenant, 2015)

생존, 그 자체의 대한 경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신작 '레버넌트 (망령, The Revenant, 2015)'는 생존에 관한 경외심을 한껏 담아낸 영화다. 네러티브 상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 휴 글래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족을 잃고 살인자를 쫓게 되는 과정은 복수극으로 볼 수 있지만, '레버넌트'는 복수극이라기 보다는 생존이라는 의미, 즉 환경과 인간 누구도 100%를 의도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상황과 극복에 대한 긴 여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아니, 한 번 죽음에 닿았던 것이나 다름 없는 글래스는 생존이라는 대 서사의 앞에 놓인게 되고, 영화는 바로 그 과정을 최대한 가까이서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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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휴 글래스는 곰과의 사투로 사경을 해매기 이전 부터 이미 생존이라는 싸움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피 사업을 하기 위해 원주민과 거래하거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다른 백인들과도, 그리고 원주민과도 다른 조금은 특별한 존재다. 원주민과 정을 나누어 아들인 호크와 함께 하게 된 글래스 부자는 원주민의 무리에도 그렇다고 백인들 무리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경계에 놓인 존재다. 이것이 글래스가 이미 영화의 시작 전 시점부터 생존이라는 고독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느 한 편에 서지 못하고 (한 편에 서지 못한 이유 또한 일종의 물리적 생존을 위한 처신이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견뎌왔던 글래스는 곰에게 습격을 받는 사고와 그 이후 벌어진 일들로 인해 실제적인 생존의 경계에 놓이게 되면서 견디는 것 이상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죽다 살아난 글래스의 앞에 펼쳐지는 한겨울 매서운 산과 대지라는 자연은, 그의 생존을 돕기도 또 더 힘들게도 한다.


이 생존의 과정 속에 만나게 되는 자연의 범주에는 동물과 원주민, 인간들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단순한 복수극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글래스가 기여코 살아 남게 된 과정 속에는 단순히 아들을 죽인자를 찾아 복수하겠다는 일념의 에너지가 아니라 (오히려 복수극으로 본다면 이 복수심은 미약하게 그려지는 수준이다), 복합적인 생존이라는 싸움과 생존해야만 한다는 한 인간의 의지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거대한 자연과 순리의 현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냐리투는 생존이라는 것이 어떠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 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들까지 작용하는 더 경외로운 개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허무함이나 무력함이 아니라 경외로움으로서의 생존. 그것이 이냐리투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이 시대와 계절 속으로 카메라를 가져갔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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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 외적인 측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영상이었다. 이미 전작 '버드맨'을 통해 이냐리투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엠마누엘 누베즈키 촬영 감독은 이번 '레버넌트'를 통해 경지에 이른 촬영을 선보인다. '버드맨'을 통해서도 인물의 심리에 맞춰 아주 가깝게 바로 뒤에서 쫓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어 마치 현실과 영화를 넘나드는 듯한 카메라워크를 보여주었었는데, 이번 '레버넌트'에서는 이보다 더 진일보한 경지의 압도적인 촬영을 보여준다. 최대한 컷을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과 눈 앞에 펼쳐진 현장의 거리와 분위기를 실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대자연의 풍광에서 경외로움을 덜어내지 않고 담아내는 기술은 가히 압도적이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이냐리투의 연출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모두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엠마누엘 누베즈키의 촬영이다.



1. 레오의 팬으로서 이제 더이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캐릭터는 최소한 한동안은 그만 했으면 ㅠ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캐릭터로 좀 환기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


2. 또 한 번 디카프리오 얘기. 아무래도 그의 연기는 아카데미 수상을 안 떠올릴 수가 없게 만드는데, 그래서 더 안쓰럽달까. 워낙 영화 속에서 고생 고생 상고생을 하다보니 마치 그런 글래스의 모습에서 아카데미를 향한 레오의 고생 고생 상고생이 연상되기도 해서 흑;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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