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해독 (完本エヴァンゲリオン 解讀)

에바 팬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



몇 달 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스치듯 이 뻘건 표지의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뭐 어차피 덕후라 알게 되었을런지는 몰라도 '에반게리온 해독'이라는 대문짝 만한 타이틀을 발견한 것은 다행이었다. 에반게리온이라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실사/애니/음악 포함) 중 하나인 동시에, 극장판인 '에반게리온 : 파'를 보고 나서는 '그래, 이 정도라면 누가 나를 오덕이라 불러도 좋아!'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AT필드를 송두리채 흔들어 버린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에반게리온'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그 관련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해설집 혹은 또 다른 설 등을 담은 책들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특히 애니메이션과 관련하여 감독론이나 작품론 등을 다룬 책들이 그렇지만 지독하게 취향을 타기 때문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호불호가 갈리곤 했는데, 에바의 경우 그리 만족스러운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바를 다뤘다는 이유 만으로 이 책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간 읽어보았던 에바 관련 책들 가운데서는 가장 내 취향과 맞는 흥미롭고 감정적인 책이었다.




(책 리뷰인가 피규어 사진 소개 글인가;;;;)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 특히 에반게리온처럼 이야기를 끌어낼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한 작품일 경우 아쉬움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이른바 '떡밥'이라 불리우는 설들을 설명하고 자신 만의 논리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1박2 일은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정작 작품 본연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도는 도대체 왜 오는건지?' '세컨드 임팩트가 갖는 의의는 뭔지' '인류보완계획이 뿌린 떡밥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에바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고 궁금해지는 점들이지만, 에바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이렇다보니 내가 처음 아니 지금도 에바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며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다잡게 되는 부분들에 대한 내용들을 다룬 내용들이 간절하기도 했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 '에반게리온 해독'은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에바 팬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고 혹할 만한 저자 만의 설득력있는 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그래 내 생각과 맞아!'라고 120% 동의하게 되는 주장들도 있었고, 반면 살짝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것들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키타무라 마사히로도 책 속에서 이야기하듯, 이런 주변 것들에만 집중하면 정작 에바가 갖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놓쳐버리게 된다. 에반게리온이 지금과 같은 엄청난 세계관을 이루게 된데에는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분명 그 근본에는 소년들을 흔들어 놓았던 (누구에게도 쉽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인간 본연의 고민과 아픔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카오루 등장. '이번엔 꼭 널 행복하게 해주겠어';;;)


즉, 이 책은 떡밥을 다루더라도 바로 이 측면에 근거하여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행동을 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라던지, 레이의 이 대사는 어떤 심리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것인지, 여기서 신지의 변화 된 행동은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던지는 주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등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에반게리온이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남게 된 이유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상처,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용기, 두려움 등의 감정을 어쩌면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보면 에바는 상당히 어려운 말들로 도배하듯 둘러싸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잘 살펴보면 그 어떤 작품보다도 과감하게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심하게 흔들렸던 것이고. 그 흔들림의 이유를 좀 더 풀어 설명해주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터라 멈추지 않고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이번엔 컵까지;;;)


여튼 이 책 '에반게리온 해독'을 평소 영화 리뷰 하듯 리뷰하자면 거의 똑같은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의미가 없어질 것 같으므로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빨리 다시 '에반게리온'을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게 만드는 책이었으며, 궁금함의 해결보다는 '그래 맞아!'라는 공감대가 더 짙게 깔려 있는 작품이었다. 에반게리온 팬들이라면 개인차는 있겠지만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카우보이 비밥 다시보기 (Cowboy Bebop : Again)

#1 시작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이 처음 나온 것도 1999년이고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본 것도 2001,2년 쯤이니 벌써 이 작품을 만난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카우보이 비밥'은 내 블로그의 제목인 'The Real Folk Blues'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데, 2012년에 들어서며 계획을 하나씩 세우던 중 문득, '카우보이 비밥' 다시 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대단한 프로젝트인냥 싶지만 사실은 그냥 비밥을 몹시도 다시 보고 싶어졌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또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된 프로젝트라 하겠다. 과연 2012년에 다시 보는 '카우보이 비밥'은 또 어떤 작품일까?






다시 보면서 든 첫 번째 느낌은, 상당히 쿨한 1화 라는 점이었다. 간혹 1화에서도 캐릭터들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작품들이 있기는 하지만, 비밥의 1화는 그 가운데서도 '갑'이 아닐까 싶다. 만약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이들이라면 '엇, 내가 받은게 1화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의 전개인데, 1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스파이크와 제트에 대한 아주 간단한 소개는 물론, 시대와 공간의 배경에 대한 단 한 줄의 설명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이미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대략 마쳤다고 가정한 듯 한 시작이자, 시공간적 배경이야 중간중간 나오는 정보들을 통해 알아가라는 식에 가깝다. 더군다나 첫 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마저 굉장히 빠른 전개와 거의 서두 부분 없이 진행이 되기 때문에 '엇, 이거 뭐지?' 싶은 느낌이 없지 않다. 물론 이것은 첫 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카우보이 비밥' 1화의 러닝타임이 매우 짧은 편이기 때문에 캐릭터나 배경 등에 대해 서두를 길게 가져가기 보다는,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정보를 제공하고 상당히 빠른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다. 결과론 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방식이었는데도 이 정도의 인기와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선명한 우리말 광고판. 디테일이 상당하다)


우주력 원년 2022년. 태양계는 워프게이트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위상차공간게이트’이론으로 태양계 내에서 행성간의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는 신기원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게이트의 실험 도중 ‘위상차 공간 폭발’ 사건으로 달이 파괴되어, 그 파편과 운석 등으로 인해 지구는 인류가 살아가기 힘들 정도의 황폐한 별이 되고 만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계로의 이주 계획을 추진하였고, 콜드 슬립(냉동수면)이나 지하도시에 살게 되었다. 비록 위상차공간게이트 실험 도중 발생한 사고로 이러한 사태들이 벌어지기는 하였지만, 또한 위상차공간게이트로 인해 행성과 행성 간의 빠른 이동이 가능해 지면서 화성과 목성을 비롯하여, 더 먼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행동범위를 넓히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광범위한 공간의 대두는 경찰들은 미처 손쓰기 힘든 무법시대를 여는 배경이 되었고, 국가들도 독립국가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무법천지가 계속되기에 이르자 결국 정부에서는 예전 현상금 제도를 부활시키게 되는데...


'카우보이 비밥'의 시공간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간단 소개는 위의 내용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각각 독립국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수의 행성에서는 범아시아적인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 중국어를 베이스로 한 분위기에 한국어도 비교적 자주 만나볼 수 있으며, 인물들도 대부분은 동양인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다 (정확히 동양인이라고 확정짓기 애매한 부분들도 많지만, 반대로 서양인을 그릴 때는 확실히 구분 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할아버지 삼총사가 바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이 캐릭터들의 이름은 음악팬들은 너무나 잘 알다시피 보사노바 음악의 전설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에서 가져왔다. 즉, 본래는 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얘기.





인디안 주술사를 연상하게 하는 캐릭터도 등장하는데, 다시 볼 때 주목한 것은 주술사가 아니라 그 뒤에 놓여진 20세기의 물건들이었다. 뒤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본격적으로 VHS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잘 따져보면 '카우보이 비밥'은 2022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90년대에 만들어진, 20세기에 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2화 에서는 메카닉의 특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여기에 노출된 모습만으로 보자면 '미래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날로그 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전투정의 모습은 실제 현재의 비행선에 상당부분을 기인한 모습 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점 역시 앞서 이야기한 20세기의 감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첫 화에서 나타나는 가장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라면 역시 주인공 스파이크의 액션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바로 스파이크가 총과 전투기 위주로 싸우는 것 뿐만 아니라 무술을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캐릭터라는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어쩌면 시공간적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설정이라서 더 흥미를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스파이크 스피겔이라는 캐릭터가 이소룡과 루팡 3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유명한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더 큰 흥미를 갖게 되기도 했었다. Session #1 소행성 블루스 (Asteroid Blues)에서 스파이크가 처음으로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면, 전성기 이소룡의 그림자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기도 하다.





비밥 호에서 우주를 바라보며 말없이 절권도를 수련하는 스파이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영락없는 이소룡 (Bruce Lee)을 떠올리게 된다.





Session #2 들개의 스트러트 (Stray Dog Strut)에 등장하는 악당 캐릭터의 이름은 '압둘 하킴'인데, 이름으로 보나 용모로 보나 큰 키로 보나, 이 캐릭터는 이소룡 주연의 1978년작 '사망유희'에서 L.A 레이커스 출신의 농구선수 카림 압둘 자바가 연기한 '하킴'에 대한 오마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스크린 샷을 보면 아예 용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이 장면에서는 아예 이소룡이 등장한 광고 판을 노출하고 있다.



(아인의 역사적인 첫 등장 장면!)


그리고 스파이크와 제트에 이어 페이와 에드 보다도 더 먼저 등장하는 비밥의 주요 캐릭터 '아인'! 이후 수 많은 이들에게 웰시코기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 캐릭터이자, 웰시코기 부흥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아인! 아인의 그 역사적 첫 등장은 이랬었다.




(에드가 등장하고 나서는 아인은 주로 에드와 콤비를 이루기 때문에, 스파이크와 아인이 콤비를 이룬 이 장면도 흔치는 않은 장면!)

마지막으로, 예전에 카우보이 비밥 DVD출시 때 왕성한 혈기로 작성했던 시리즈 리뷰를 소개하며, 다시 보기 첫 시간은 일단 마무리 해볼까 한다. 다시 보기 2탄에서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에피소드 'Session #5 타락천사들의 발라드 (Ballad of Fallen Angels)'에 대한 이야기가 될듯!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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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상암 CGV에서는 '초속 5cm'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소소한 기획전이 열렸다. 이 기획전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다른 이유는, 최근 DP에서 진행한 DP시리즈 블루레이의 4,5호가 바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와 '초속 5cm'이기 때문인데, DP를 통해 이번 행사에 좋은 기회로 참여할 수 있었고, 두 개의 타이틀에 직접 감독님 싸인도 받을 수 있었으면 악수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초속 5cm DVD 리뷰 _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http://www.realfolkblues.co.kr/50




(감독님께 직접 싸인 받은 초속 5cm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블루레이 타이틀)


기존에 나온 DP시리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시, 외출)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판을 살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신카이 마코토의 대표작 2작품을 다른 것도 아닌 DP시리즈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정말로 반가웠다. DP시리즈는 국내의 정상적인 시장 구조에서는 (열악한 블루레이 시장 규모를 감안) 나오기 힘든 작품이지만, 작품성이 있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선주문 형식으로 받아 수량을 확보하고 발매하는 프로젝트인데,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영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으나 이번 4,5호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초속 5cm'를 집에 오자마자 블루레이로 다시 보았는데, 아주 간단하게 평을 하자면 20대에 본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 작품 속 두 주인공의 애틋한 감정이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는 더 깊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조용히 흐르다 갑자기 커질 때의 그 전율과 떨림도 더 커졌다 ㅠ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 Masayoshi Yamazaki


그리고 이 날 상영회의 작품 가운데는 신카이 마코토의 가장 최신작 '별을 쫓는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개봉 당시 그의 팬들이 기존과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며(지브리화 되었다며) 실망했던 것에 비해서는 덜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전작들에 비하면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확실히 다시 보게 되니 세 명의 캐릭터들에게 각각의 절실함이 더 느껴졌다. 결국 '별을 쫓는 아이'의 테마는 이별하는 방법을 배우는 여행 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이 테마를 생각하면서보니 개봉 당시 극장에서 느꼈던 절실함이 배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5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흥얼거리게 되는 'Hello, Goodbye and Hello'로 시작되는 엔딩 곡까지.




별을 쫓는 아이 리뷰 _ 나를 놓아주어야만 하는 힘겨운 여정

http://www.realfolkblues.co.kr/1535



'별을 쫓는 아이' 상영회가 끝나고 짧은 시간이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을 모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경품도 추첨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형 액자상품들이 하나 씩 주인을 찾아갈 때의 부러움은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ㅠ

감독님은 '별을 쫓는 아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별을 쫓는 이야기'에 나왔던 모리사키 캐릭터가 '초속 5cm' 1화의 '벚꽃 이야기'에 나왔던 타카키가 첫 사랑에 실패하지 않고 어른이 되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하에 만든 캐릭터라는 얘기였는데,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모리사키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더 느껴져 찡해지기도 했다 ㅠㅠ


그렇게 간단한 GV를 마치고 미리 프리오더한 초속과 구름저편 블루레이 속지에 싸인을 받을 시간! 싸인 받은 속지도 넘겨받고 감독님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한 장 같이 찍었는데, 갑자기 어떨떨한 상태라 표정 관리가 안되어 부득이하게 신지군이 등장했음 -_-;;





악수를 나누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할까 '감사합니다'라고 할까 라고 고민하는 순간 감독님이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하셔서 어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합니다'라고 해버렸는데, 뒤에도 줄이 길게 서 있어서 빠르게 찍고 다음 분께 기회를 드렸어야 했는데, 감독님이 사진이 잘 안찍힌 거 같다며 먼저 'one more'를 외치셔서 본의 아니게 세 장이나 찍었으나 내 표정은 다 관리가 안되어 있더라 ㅠ

정말 좋아하던 감독님도 직접 뵙고 악수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을 수 있어서, 전남 무안 영광입니다 였던 하루였음!


1. 참고로 이 날 저녁에 걸린 감기 몸살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날 내가 신체접촉을 한 사람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 밖에 없으므로 그 때문이라고 최종 결론. (그의 대한 애정 때문인가.... 몸살이 떠나질 않는다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코쿠리코 언덕에서 (コクリコ坂から, 2011)

직설적이어서 부담스러운 메시지



지브리 스튜디오의 2011년 신작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보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전작 '게드전기 (ゲド戦記, 2006)'를 연출했던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한 작품으로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게드전기'가 물론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브리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경우인 정도라고 관대한 평가를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그보다도 더 아쉬운 작품이었다. 여러 평가들이 '게드전기'보다는 나아간 작품이라는 평이 더 많은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인 동시에 주제를 둘러싼 이야기의 연관성이 깊지 못하고 더불어 21세기에 즐기기에는 너무 올드 풍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 STUDIO GHIBLI INC.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 사회,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시작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이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고 자란 소년 '슌'과 소녀 '우미'가 있다. 이 둘의 러브 스토리는 나이답게 풋풋함이 서려있지만, 그 배경을 둘러싼 시대와 영화의 메시지가 이들에게 너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뭐랄까, 슌과 우미는 순수한 소년 소녀이지만 시대가 만든 아픔으로 인해 일찍 성숙함을 배워야 했던 것은 물론, 이 가운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마저 짊어져야 하는 부담스러운 짐을 진 듯 한 모습이었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얘기해보자면 결국 오래된 것들을 지키고 계승하자는 것과 더 나아가 60년대를 살았던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당시의 젊은이들에게서 배우자 라는 이야기가 될 텐데, 이 모든 짐을 풋풋한 러브스토리만 이끌기에도 벅찬 소년 소녀에게 전부 맡겨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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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느 정도까지 관여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스텝롤에 나온 역할 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얘기),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메시지 전달 방식은 기존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주었던 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주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배경 묘사를 통해 영화를 깊이있게 볼 수록 메시지가 드러나도록 구성하거나, 아니면 매우 직접적인 은유를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시대와 배경, 판타지와 현실과는 무관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왔었는데, 이번 작품의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는 이러한 영민함 보다는 홍보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직선적인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극 중 고등학교 동아리 건물 철거를 둘러싼 학교의 이야기는, 슌과 우미의 러브스토리 측면으로만 보자면 없다하더라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약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 영화는 이 학교를 둘러싼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며 메시지 전달의 활로로 이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풋풋하고 은은한 지브리다운 러브스토리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가장 아쉬운 점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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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극 중 등장하는 깃발의 의미처럼, 숨겨둔 신호로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은은한 방식이었다면, 그것이 아니라면 소년 소녀의 러브스토리 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져야만 했던 그 세대의 이야기와 그들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확실히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에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면'을 연상하며 전자의 기대를 했었기에 너무도 직접적인 이 영화의 방식에 조금은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60년대 일본을 추억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아 이런 불편함이 조금은 상쇄되지 않았을까 싶다. 


결론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고, 어떤 감성을 담으려고 했는지 의도는 알겠으나 그 것이 가슴으로 전달되지는 않았던 아쉬움이 남는 지브리의 첫 작품이었다.



ⓒ STUDIO GHIBLI INC. All rights reserved


1. 솔직히 저도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이른바 '지브리빠'인데, '게드전기'도 재미있게 본 저인데, 이 작품은 극장을 나오며 아무런 뭉클함이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2. 물론 조각조각 좋은 장면들은 여럿 있었어요. 또 급하게 공감해서 울컥한 장면도 없지 않았구요.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로 잘 모아지지 않았다는게 결국 이 작품을 아쉬운 작품으로 결론짓게 한 이유인 것 같네요;

3. 극 중 수록된 음악들의 분위기는 참 묘합니다. 60년대 일본과 잘 어울리는 동시에 미국의 예전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도 자아내거든요 (어쩌면 둘이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서도).

4.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DVD나 BD를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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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아이 (星を追う子ども, 2011)

나를 놓아주어야만 하는 힘겨운 여정



'별의 목소리 (2002)'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004)' '초속 5cm (2007)' 등을 통해 팬덤을 확고히 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별을 쫓는 아이'를 다행히(?) 극장에서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위의 작품들과 더불어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단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1999)'까지 모두 인상 깊게 보았을 정도로, 그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들 중에서도 손 꼽는 감독이기도 해 '별을 쫓는 아이'는 제작이 결정된 시점부터 매우 기대되고 기다렸던 작품이었다. 먼저 공개된 장면들에서 알 수 있었듯이, 기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지브리스러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명작동화 풍의 작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단순히 작화 측면을 떠나서도 메시지와 세계관에서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색채가 느껴진 반면, 많이 다른 옷을 껴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신카이 마코토만의 색깔과 메시지 역시 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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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별을 쫓는 아이'의 배경은 '아가르타'라는 판타지의 세계다. 기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에서도 판타지스러운 설정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배경으로 사용되는 정도거나 오히려 과학으로 보기에 더 충분한 부분이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별을 쫓는 아이'는 단순히 배경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판타지의 세계관이 짙게 깔려있는 경우다. 인간 세상의 주인공들이 아가르타로 우연히 빠져들게 되어 벌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들 인간들 역시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크게 보았을 때 이 판타지 세계관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은 고대의 신화와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작품이라 하겠다. 이렇듯 판타지적인 색채가 가미되면서 더더욱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작화나 표면적 세계관 보다는 오히려 메시지 적인 측면에서 더 지브리와 닮아있는 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특히 두 주인공 아스나와 신의 캐릭터를 보면 지브리 세계 속 캐릭터들과 많은 닮은 점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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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짧게 등장하는 슌의 경우는 크게 얘기할 만한 부분은 없지만 (물론 그의 짧은 아우라에서는 하울의 포스가 풍기긴 했다), 그의 동생인 신의 경우는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인 아시타카와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신 역시 인간 세계와 지하 세계의 중간자적 역할을 (결과적으로) 맡게 된다는 측면을 들 수 있을텐데, 물론 아시타카 처럼 이런 중간자적 성향이 스스로 몹시 강하다기 보다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점차 그런 성향을 스스로도 발견해 가는 경우라고 할 수 있어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신 의 많은 부분은 아시타카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특히 그가 마을을 떠나는 시퀀스를 보자면, 일족의 원로의 모습이라던가 마을 어귀에서 신을 기다리는 여자 아이의 모습 등은 '모노노케 히메'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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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르를 좋아하고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을 신봉하면서도 '별을 쫓는 아이'가 초반부터 와닿지 않았던 점은, 바로 이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었다면 '게드 전기'도 그럭저럭 최악으로는 감상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 작품 역시 괜찮다 싶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여러 면에서 이 작품은 '게드 전기'를 떠올리게도 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기대하는 바가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아 아쉬운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느꼈던 강한 매력과 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거의 신카이 마코토 1인이 모든 영역을 소화하는 능력과 구성 자체도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것 보다는 어떤 시공간과 판타지가 배경으로 등장하건 간에 이런 모든 것들을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매력적인 도구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강력하고 절절한 이야기와 사랑, 그 자체에 있었다. 특히 '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cm'에서 보여준 그 절절하다 못해 OST의 한 자락만 흘러나와도 금새 눈물이 핑도는 러브 스토리는, 신카이 마코토 라는 감독을 깊이 각인시키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 그의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애절했던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본 나의 추억을 강하게 끄집어낸다는 점이다. '초속 5cm'가 절절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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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아이'의 초반에서는 이러한 그 만의 장점이 잘 드러났다기 보다는 판타지 장르의 익숙한 설정들이 더 부각되었기 때문에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 수록 그 안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애틋함의 힘이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함께 가슴을 저밀 수 있었다. 결국 '별을 쫓는 아이'가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모노노케 히메'와 마찬가지로 '살아라'라는 것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을텐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그의 야심이 확인되는 부분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에서 주를 이룬 갈등과 애절함의 대상은 남녀 간의 사랑이 깊었었는데, '별을 쫓는 아이'는 그것보다는 존재와 존재간의 관계와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더 심오한 세계관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 판타지 세계관을 적극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판타지라는 겉옷을 너무 두껍게 챙겨입은 터라 신카이 마코토가 본래 하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가 관객에게 미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너무 거대한 세계관을 가져온 탓에, 그간 거대하기 보다는 소소함과 생활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던 그의 이야기가 빛을 발휘하기에는 살짝 부촉한 측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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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별을 쫓는 아이'는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판타지 모험 속에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또 다른 절실함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작품은 좀 더 가슴을 저미게하여 사운드트랙의 메인 테마만 살짝 흘러도 어쩔 줄 모르게 되는 작품이었으면 더 좋겠다.



1. 그래도 신카이 마코토 하면 기대되는 하늘의 묘사는 역시나 반갑더군요.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정지된 이미지로 주는 깊이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2. 따지고보면 '별을 쫓는 아이' 역시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그 여정 속에서 나를 인정하고 변화시키는 (혹은 놓아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이런 점이 극대화된 후반부가 어쩔 수 없이 눈물 나게 했던 것 같아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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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개된 지는 몇일 되었지만, 그래도 '에반게리온'인데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에반게리온 : Q (Quickening)'의 새로운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에반게리온 : 파'가 끝나고 서비스로 만나볼 수 있었던 예고편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가슴 떨림을 주었던 에반게리온은, 20초도 안되는 짧은 추가 예고편 공개로 또 한 번 심장을 들었다 놨다.


 


각성한 이카리 신지. 그 옆에는 처음 보는 소년.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새로운 세계.


무려 2012년 가을에야 만나볼 수 있는, 앞으로도 꼬박 1년을 기다려야 만나볼 수 있는 '에반게리온 : Q'이지만, '파'가 그러하였듯이 아마도 'Q'를 극장에서 보는 순간, 그 동안의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의 감동과 전율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아스카 ㅠㅠ


에반게리온:파 (破) _ 전율의 미완성 




글 / 아쉬타카 (
www.realfolkblues.co.kr)
 
  




진심을 담아낸 괴이물


'바케모노가타리 (괴물이야기)'는 일본의 소설가 니시오 이신이 2006년 고단샤 (株式會社講談社)를 통해 연재했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신보 아키유키 감독이 연출을 맡고 샤프트 (SHAFT Inc)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주인공 '아라라기 코요미'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인물들에 각각 관련된 괴이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하렘물(한 남자가 여러 여자 캐릭터에게 둘러 쌓인 구조를 담은 작품)의 구성과 괴이물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는 독창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니시오 이신의 원작에는 이 작품 외에 '키즈모노가타리'와 '니세모노가타리'가 있는데, '키즈모노가타리'는 이 작품의 이전 이야기에 해당하는 아라라기와 하네카와 흡혈귀 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니세모노가타리'는 오시노 메메가 마을을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니시오 이신의 작품 가운데 첫 번째 애니메이션 화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근본적으로 괴이물의 미스터리 한 요소를 담고 있다. 주인공 아라라기 코요미는 각각 다른 괴이를 갖고 있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이야기와 갈등 구조를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이 '바케모노가타리'의 기본 구조다. 센조가하라 히타키, 하치쿠지 마요이, 칸바루 스루가, 센고쿠 나데코, 하네카와 츠바사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각각을 독립적인 이야기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진행된다. 하지만 각 남자 주인공인 아라라기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 사이에도 느슨한 관계가 존재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라는 점은, '바케모노가타리'를 깔끔한 구성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한편, 각 캐릭터에게 개성을 부여해 줌으로서 더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또한 스타일리시 한 화면구성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실사 화면과의 다양한 결합은 물론, 하나의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굉장히 자유롭게 화면을 분할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영상미를 추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정지 텍스트 이미지를 통해 빠른 전개와 더불어 자신 만의 색깔을 확고히 하고 있다. 실사와의 결합 부분이라던가 정지 텍스트가 등장하는 부분은 이미 안노 히데아키의 걸작 TV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방식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훨씬 더 다양하고 요즘에 맞게 세련된 이미지를 수록하고 있다. 단순히 볼거리로 이런 요소들을 첨가한 것이 아니라, 이 자체가 이야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자리잡도록 만들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만큼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 들고 있다.





얼핏 보면 '바케모노카타리'를 단순한 캐릭터 물로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괴이물에 근거하여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각 캐릭터들은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에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장점들을 갖추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가 되지만, 여기에는 캐릭터 적인 장점 외에 그 캐릭터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갈등을 마음으로 풀어내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바로 이 갈등과 해결이라는 근본적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설명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바케모노가타리'는 분명 취향을 타는 작품이다. 여기서 말하는 취향은 앞서 국내에 출시되었던 애니메이션 블루레이인 '아프로 사무라이'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바케모노가타리'는 그야말로 오타쿠 문화를 바탕에 깊게 깔고 있는 터라 자칫 관리를 소홀하게 했던 이들이라면 극중 등장하는 수많은 인용과 패러디, 단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즉, 백지 같은 상태로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약간의 무리는 동반할 수 있을 정도의 스타일이 깊은 작품이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스타일이 불편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Blu-ray : Open Case






사실 '바케모노카타리'를 인상 깊게 본 이들조차 이 작품이 국내에 DVD도 아닌 블루레이로서 출시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한 이들은 없었을 텐데, 출시 자체에 한 번 놀라고 그 다음은 일본 판과 동일한 패키지로 출시된 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출시된 블루레이는 '히타키 크랩' '마요이 달팽이' 그리고 '스루가 몽키'가 먼저 출시되었는데, 3개의 타이틀 모두 클리어 아웃 케이스 패키지에 원작자 일러스트카드와 12p 해설집 그리고 OST를 포함한 특전CD가 수록된 버전으로 출시가 되었다. 매번 일본 판을 보며 군침을 흘려야만 했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Blu-ray 메뉴






Blu-ray : Picture Quality

1080p 풀HD 화질은 최신 애니메이션 작품답게 흠잡을 데 없는 레퍼런스급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작품에 특성상 시원시원한 화면 구성과 더불어 쨍 한 화질을 맛볼 수 있는 장면들과 다양한 효과가 더해진 장면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어 화질의 우수성을 마음껏 즐겨볼 수 있다. 디지털의 차가운 느낌과 구조적인 느낌의 영상은 확실히 블루레이의 차세대 화질에서 더 느낌이 잘 살아나는 편이다.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운드는 PCM STEREO만을 지원하고 있는데 제법 사운드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한 장면들도 있어 멀티 채널이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PCM스테레오 채널의 퀄리티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바케모노가타리'는 상당히 대사가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사 전달에 있어서 부족함 없이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으며, 간간히 흐르는 배경음악 전달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각 2장씩 총 6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바케모노가타리' 블루레이 1,2,3 타이틀에는 각각 거의 동일한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일단 특별한 음성해설 트랙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다. 일반적으로 음성해설의 경우 애니메이션 작품이라 하더라도, 감독이나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들이 참여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인데, '바케모노가타리'의 음성해설은 이와 같은 방식이 아닌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진행하는 새로운 개념의 음성해설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이 음성해설은 원작자인 니시오 이신이 직접 쓴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각 캐릭터가 마치 정말 배우인 것처럼 자신들이 나오는 본편을 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한편으로는 이 음성해설이 더 캐릭터적인 특성을 맛볼 수 있기도 할 정도로, 각각의 개성이 잘 묻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본편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팬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음성해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성해설 출연자 목록을 보면 '센죠가하라 히타키, 칸바루 스루가' '하치쿠지 마요이, 하네카와 츠바사'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밖에 특전 CD에는 각각의 주제가와 뒷이야기 완전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장편판+방영판 다음회 예고와 논크레딧 오프닝과 엔딩 영상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총평] '바케모노가타리'는 분명 취향 타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방영되던 그 해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작품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떠나서 조금은 아쉬운 자막 번역 얘기를 언급하더라도, 비교적 비대중적인 애니메이션임에도 특전 CD를 비롯 다양한 부가물을 포함한 패키지로 출시되었다는 점은, 현재의 국내 시장을 고려했을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작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애니메이션 팬들이 비싼 금액을 지불해가며 해외 버전에 눈 돌리지 않아도 될 만큼, 국내에서 이와 같은 만족스런 블루레이 패키지를 계속 만나볼 수 있길 바래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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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시간 극장판 (イヴの時間)
안드로이드에 관한 감성적 단편


제 7회 JMEFF를 통해 만난 또 하나의 신작.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의 '이브의 시간'이다. 이 작품은 2008년 8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총 6화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재편집 및 제작한 작품인데, 일단 기존의 내용을 거의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조금 내용을 추가해 극장판으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기존 판을 보지 못하였더라도 상관없을 정도다. 그렇게 보게 된 '이브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다시 한번 '아시모프 로봇 3원칙'에 기인한 안드로이드의 정체성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있다. SF영화에서 지겹도록 그려진 이 주제를, 애니메이션 '이브의 시간'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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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브의 시간'은 이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상당히 감성적이고 캐쥬얼한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다. 일단 혼자서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에서부터 감성적인 작화와 표현력까지, 요시우라 야스히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많이 닮아 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만의 감성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브의 시간 극장판'을 보고 있으면 신카이 마코토의 분위기가 조금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브의 시간'을 보면서 느꼈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상당부분 게임적인 요소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극중 캐릭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다수의 샷들은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와 같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화면 구성 느낌을 주고 있으며, 카메라가 이동하는 동선 역시 수 많은 롤플레잉 게임에서 보아왔던 삽입 동영상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영화 음악은 또 어떤가. 영화음악은 완벽할 정도로 게임 음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RPG를 많이 해본 이들이라면 단번에 느낄 수 있겠지만 '이브의 시간'의 음악은 그 악기의 선택부터 흐름까지 '완벽한' 게임음악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앞서 얘기한 장면의 게임스러움까지 더해지니 마치 감독이 조종하는 게임 '이브의 시간'의 리플레이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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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 로봇 3원칙'을 기본으로한 매우 정형화 된 안드로이드 물이지만, '이브의 시간'은 철학적인 고민 보다는 (물론 안드로이드를 논하면서 이런 고민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고민의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정도) 감정적인 부분에 훨씬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마치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지 않는 극 중 카페인 '이브의 시간'과도 같이, 리쿠오와 사미, 마사키의 이야기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마음과 마음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안드로이드라는 형식적인 측면 만을 취한 느낌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편으로 '이브의 시간'은 마치 일본영화 '우리 개 이야기'와도 같은 반려동물과 인간과의 이야기로까지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런 애틋함이 느껴져 울컥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반려동물과의 관계마저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의 갈피는,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화두를 다시 한번 던져줄 것으로 기대했던 SF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애초에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선보이기 보다는 재편집을 통해 극장판으로 선보인 경우여서인지, 아무래도 조금씩은 끊어가는 듯한 느낌이 있다 (물론 이건 의도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한 종결이 아니라 시즌 1격의 이야기라는 점을 미뤄봤을 때, 엔딩 크래딧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후속편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려주기는 하지만, '이브의 시간 극장판'만을 두고 보았을 땐 조금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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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쩃든 '이브의 시간 극장판'은 인간과 안드로이드라는 익숙한 소재를 그리 지루하지 않은 터치로 풀어낸 작품이었으며,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과연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라는 끝나지 않는 논제에 대해 또 한 번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니, 그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이미 후속편을 계획해 둔 작품으로서 시즌 2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 되느냐에 따라 '이브의 시간 극장판'의 의미도 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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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 (Redline, 2010)
사이버 펑크 같지만 고전스러워


올해 신주쿠에서 영화를 보았을 때, 상영 전 인상적으로 본 예고편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고이케 타케시 감독의 신작 '레드라인 (Redline)'이었다. 이 예고편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이버 펑크스러운 작화와 자극적인 영상 그리고 예고편 내내 쿵쿵 거리게 했던 영화음악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곧 개봉이었지만 일정상 보지는 못하고 국내에 돌아왔는데, 메가박스에서 주최한 일본영화제 'JMEFF'의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작품에게 기대한 것은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에너지'였는데, 확실히 그 에너지 하나 만큼은 제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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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은 기본적으로 레이싱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레이싱만에 관한 이야기다. 레이싱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승부 조작 및 배후세력, 레이서의 트라우마 그리고 불꽃튀는 결승전까지. '레드라인'은 이 이외의 것들은 건드리지 않는 제법 충실한 레이싱 영화다. 아, 물론 다른 레이싱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도 등장한다. 결승전 무대 겪인 '레드라인' (옐로우라인, 블루라인 등 다양한 대회에서의 우승자들이 최종적으로 레드라인에 참여하는 방식이다)의 장소로 이 레이싱 대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펼치고 있는 행성이 결정되면서 이들의 군사적인 (혹은 이를 넘어서는 가공할 만한 외부 요인의) 공격마저 피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인데, 넓은 의미로 본다면 이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는 레이싱의 외부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레드라인'은 무엇이든 과잉의 연속이다. 부스터를 쓸 때 자동차와 레이서가 모두 비상식적으로 늘어나는 장면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이 작품에서 상식의 범위는 그리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런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유지해온 터라 이것을 문제 삼을 일도 없다. 또한 레이싱 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레드라인'에게 무언가 다른 그 이상의 레이싱 영화를 기대했다면 예상한대로 그대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결말과 전개에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 작품의 미덕은 내러티브보다는 그 마초스러움의 뚝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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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JP (기무라 타쿠야)의 경우 이 세계관을 가장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극히 만화적인 동시에 마초적인 캐릭터로서, 그의 무모함은 멋지기 보다는 유치한 느낌이 들지만 희한하게도 마지막에는 멋진 이미지로 기억될 것만 같은 그런 캐릭터다. 이 작품이 만약 TV시리즈 같은 여러 작품으로 기획되었더라면 이런 레이싱이 가능한 세계관을 설명하고 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에 공을 들여 좀 더 사이버 펑크스럽고 우주 지향적인 작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단 한편의 극장판으로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이런 심플함과 무모하리만큼 밀어붙인 에너지가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를 연상시킬 정도로 확연한 '끝'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기에는 헛 웃음이 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통쾌한 웃음이 번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진정한 쿨함이 바로 '레드라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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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보다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기무라 타쿠야나 아오이 유우, 아사노 타다노부 등 유명 배우들의 영향력은 크지 않은 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기무라 타쿠야의 목소리 연기가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번 JP는 목소리를 제외한 캐릭터가 너무 강한 탓에 반감된 느낌이 있었다. 

2. 마치 클럽에 온 듯 시종일관 극장 좌석이 들썩일 정도로 '쿵쿵' 거렸던 강한 비트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레이싱이라는 소재와 어울려 그 속도감을 잘 살려주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red-line.jp 에 있습니다.







사실 피규어 수집은 예전에 많고 많은 취미들 정리하며 WWE 시청 등과 함께 과감히 포기한 취미 중 하나였는데, 이건 보는 순간 참기가 어렵더군요. 초호기 피규어는 이미 하나 갖고 있긴 한데, 이번 반다이사의 로봇혼 시리즈로 나온 '파'의 초호기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절로 지름신이!! 그리하여 내 손에 쥐게 된 에반게리온 초호기! 구매한지는 제법 되었는데 포스팅이 늦었네요 ^^;




저 힘이 잔뜩 들어간 손 끝을 보라!! (사도의 눈이라도 콕콕 찌를 기세!!!)





가격대비하여 디테일이 상당히 좋습니다. 관절 들도 물론 매우 자유롭고요. 손의 경우 여러 개의 옵션들이 있어서 포즈에 따라 어울리는 손 모양을 바꿀 수 있고, 머리 역시 경계를 넘어선 초호기의 얼굴이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어떤 포즈를 잡아도 저 꼿꼿이 선 손날 때문에 집중이 안돼 -_-;;;




그리고 이번 초호기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AT필드!! 무려 AT필드를 저렇게 형상화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AT필드따위 두 손으로 찌익~~




옆에서 보면 이렇게 그럴듯한 시츄에이션. 아....'에반게리온 : 파'의 감동이 새록새록 ㅠㅜ





좀 더 다양한 포즈들을 시도해 봤어야 했는데 시간 부족으로 일단 여기까지만 흑.
어쨋든 그리하야 제 책상위에 자리잡게 된 AT필드.



(아스카와 스파이크도 AT필드에 보호(?) 받고 있음 ㅋ)




사진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언제부턴가 신촌 언저리에만 가도 반드시 가야할 곳이 되어버린 '북오프'에 어제도 예정없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예정이 없었다는 건 들어가는 찰나까지도 '그냥 구경만 하자' 였다는 것이죠;). 진짜 구경만 하려고 갔던 북오프. 진짜 갈 때마다 신기한 저의 매의 눈은 어쩌면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만 쏙쏙 골라내는지, 이번에도 몇몇 작품들을 쏙쏙. '카우보이 비밥 설정집'이나 '이누야샤 극장판 화보집' 등 찾고도 눈물을 머금고 선택하지 않은 아이템이 있는 반면, '바람의 검심' 올컬러 화보집 만큼은 그냥 올 수가 없더군요. 가격도 9,000원 정도 밖에 안하는 터라 바로 구입!




일단 표지 이미지부터 확 눈길을 끌었던 화보집은 아주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들을 담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도 만나볼 수 있고.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분들의 '멀쩡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켄신을 본 분들이라면 화보집에 담긴 컷 하나하나를 그냥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올컬러라서인지 더더욱 몰입되고 추억되는 장면들이 가득했습니다.





화보집이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드네요. 사실 몇년 간 잊고 있던 켄신이었는데 이 화보집을 보니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ㅠ DVD출시 당시에도 한정판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타이틀이었는데, 어디 중고라도 찾아봐야 겠어요 (아, 중고 찾기가 더 어려웠던 켄신이었지 ㅠㅠ)



*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제작사인 Nobuhiro Watsuki 1998 에 있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이누야샤 (犬夜叉, 2000~2010)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누야샤 (犬夜叉)'가 지난 달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누야샤를 방영 때 부터 바로 챙겨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작품과 함께한 시간은 어느덧 수년이 되었다. 물론 이 수년 가운데는 이누야샤 없는 기간이 제법 길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제대로 된 마지막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잘 아다시피 완결편 이전에 이누야샤의 마지막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팬의 입장에서는 매우 힘빠지는 엔딩이었다. 무언가 아직 결말도 짓지 못한채 그저 '자,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라고 하며 마무리해버리는 TV판의 엔딩은 '이걸 기다려 말어'를  고민하게 하는 동시에, 진짜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하는 아쉬움이 컸었다. 물론 여기에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코믹스에 진행과도 연관이 있었던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누야샤를 오로지 애니메이션으로만 접해왔었기 때문에 이렇게 마무리 되어버리는 방식에는 더더욱 아쉬움이 많았었다. 그리고 나서 수년 뒤에 다시 시작된 '이누야샤 완결편'은 이번에는 제대로 완결을 내주려나보다 라는 기대에서 시작되었고, 빠른 전개와 마치 극장판과 같은 전개들로 그 대단원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누야샤 완결편과 마지막 회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혼의 구슬과 함께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사혼의 구슬로 마무리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누야샤가 인간이 되길 소원으로 빈다거나 아니면 본래 계획대로 대요괴가 되도록 바란다건가 그렇지 않다면 카고메가 자신만의 소원을 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했던 것 같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저 중 하나를 택하는 결말은 뭘 택해도 좀 뻔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결말이긴 했으나, 그 과정을 그린 방식은 역시나 절절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울컥하는 경우는 매우 잦은 편인데(본래 이런 식의 문장이라면 '별로 없는 편인데' 가 되어야 맞다만;;), 이누야샤 완결편의 경우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치닫다 보니 이런 장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카고메가 기쿄우에게 '내게도 이누야샤와의 소중한 추억이 있어'라는 식으로 감정이 폭발할 때는 마치 <에반게리온 : 파>의 신지의 그것처럼,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져서 찡했었고, 카구라가 바람처럼 산화할 때도 정말 찡했다. 생각해보면 카구라는 참 묘한 캐릭터였다.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부분이 있음에도 그녀의 마지막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결국 카고메는 이누야샤와 함께하는 것 대신 사혼의 구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소원으로 빌었고, 이것은 이누야샤가 소원을 빌지 않아도 함께 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것 외에 이누야샤는 동료, 즉 믿을 수 있는 자의 존재를 매우 중요하게 그리고 있다. 희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암흑 속에서도 항상 동료가 반드시 구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동료가 나의 일을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사혼의 구슬이 없어도 원하는 바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 결국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에필로그 격으로 소개한 이야기를 보면, 결국 카고메는 무녀의 옷 (기쿄우의 옷)을 입고 이누야샤 곁에 남기로 하였으며, 미륵과 산고는 결혼해서 무려 아이를 셋 씩이나 나아 기르는 모습이 연출되었고, 싯포는 여우요술시험 연습으로 승급을 노리고 있으며, 코하쿠는 토우토우사이에게 무기를 받아 퇴치사로서 수행을 떠났고,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코우가는 아야메와 결혼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쇼마루는 카고메에게 '아주버님' 소리를 듣는 동시에 링과의 묘한 관계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사실 원작 만화를 읽지 않은 입장으로서는 셋쇼마루와 링의 관계가 살짝 모호한 부분이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 기모노를 또 선물했다는 대사를 보면 (물어보니 일본에서 기모노를 선물하는 경우는 정인에게 선물하는 경우라고 한다) 결국 링을 좋아하는 것으로 '확정'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미 이곳저곳 커뮤니티의 반응을 보면 '역시, 셋쇼마루는 아무리 폼을 잡아도 결국은 로리였다'로 결론지어지고 있는데, 셋쇼마루를 가끔씩 이누야샤보다 더 응원했던 나로서는 좀 실망인걸 ㅎ




최근 종영한 <추노>의 경우도 그랬지만, 악한 캐릭터에게 여지를 주는 경우는 이누야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누야샤는 극 내내 이런 분위기를 내지는 않았었지만, 사실 그 태생을 살펴보자면 나라쿠의 목적이란 것은 단순히 기쿄우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 정도였으며 그것이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혼의 구슬에 힘에 이끌려 오히려 조금 이용당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완결판 마지막회와 그 전회의 나라쿠의 모습은 참 안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카고메가 '결국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구나'라는 말을 했을 때 주저하는 나라쿠의 모습이나, 마지막에 평온함과 구원을 얻게 되는 마지막은, 이누야샤 이야기의 종결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쨋든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이누야샤가 완결편을 끝으로 정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근 애니메이션은 짧은 경우가 많아 종영이 되더라도 이 정도의 아쉬움은 들지 않았었는데, 이누야샤는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 끌고 오다보니(분명 끌고 온 뉘앙스가 있다) 막상 끝난 뒤의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동안 TV판은 물론이고 국내에 어렵게 어린이 영화제에서만 한정 개봉했던 '홍련의 봉래도'를 보려고 수많은 어린이 속에서 관람한 추억도 있고, 극장판 DVD들도 별로 좋지 않은 사양이지만 모두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 일본가서 작은 피규어도 사왔었고, 이누야샤 덕에 Do As Infinity도 더더욱 좋아지게 되었는데, 이런 여러가지를 안겨준 이누야샤가 진짜 끝나버렸다니 아쉬움 뿐이다.

그 동안 이누야샤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벌써 그리워진다~

1. 이누야샤의 수록곡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곡.



Do As Infinity - 深い森




Do As Infinity - 真実の詩

2. 그리고 지난해 일본에 가서 사왔던 이누야샤 피규어도 보너스로.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에반게리온 : 파 (破) (Evangelion: 2.0 You Can (Not) Advance, 2009)
전율의 미완성


아....에반게리온.
일찍이 TV시리즈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접한 탓에 오히려 더 열심히 그리고 깊이 빠져들어, 그 속에 담겨 있는 안노 히데아키의 그 수많은 떡밥들을 죄다 물어늘어지며 인류보완계획에 대해 알아내려 했었고, 극중 신지의 절규와 해체로 이어지는 갈등과 고민은 나로 하여금 '그래 누구나 이런 고민들은 가슴 속에 하나씩 안고 있는 거였어'라며 그 심오함에 찌질함을 더해 신지의 독백, 나아가 레이와 아스카, 미사토의 독백에 이르기까지 모두 120% 흠뻑 받아들인 나머지 어느 덧 <에반게리온>이란 작품은 수많은 명작들이 존재하는 아니메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안노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은 비단 위와 같은 내 경우가 아니더라도, 오타쿠와 일반인을 나누는 척도로 사용될 만큼 하나의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최근들어 미드에서 주로 자주 언급되곤 하는 '떡밥'이란 것에 대표적인 케이스인 동시에 작품 그 이상의 토론과 해석을 자아낸 일종의 '퍼스트 임팩트(First Impact)'였다하겠다.

수 많은 화제를 불러 왔던 TV시리즈와 이를 보완하려 등장한 두 편의 극장판 <앤드 오브 에반게리온 (The End of Evangelion, 1997)>와 <데스 앤 리버스 (Death & Rebirth, 1997)>가 공개된지 10년 만에 새롭게 공개된 <에반게리온 : 서 (序)>는 기존 TV시리즈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 되 디자인 적인 측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많은 부분 보강된 '리빌드(Rebuild)'의 개념이었다. <서>는 TV시리즈를 충실히 즐기지 않은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크게 부담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극의 흐름이나 캐릭터의 설명이나, 새로운 하나의 시작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기존 TV시리즈의 이야기를 압축하되 장면은 더욱 극장판스러워졌고, 이야기의 흐름은 더욱 매끄러워진 편이었다. 이런 <서>는 이렇듯 새롭게 시작하는 극장판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서 괜찮은 스타트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새롭게 선보일 극장판 시리즈가 그저 기존 TV판을 보완하고 다듬는 정도의 작업이 되는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물론 그렇다고 '서'가 그저 리빌드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에바의 팬들이라면 무언가 이상 징후를 느낄 만한 몇가지 장면들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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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극장판 <파>를 기다리는 마음은 오히려 담담했었다. 시간상으로 <서>이후의 TV시리즈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어떻게 그려질까를 슬쩍 예상하며 감상하기만 하면 되었었기 때문이다(물론 여기에는 '루프설'이라는 강력한 떡밥이 있다!!!). 그런데 <파>는 시작부터 이런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다. 새로운 캐릭터 '마리'의 등장 씬부터 무언가 이상한 점이 감지된다. 그것은 단순히 마리라는 정체 모를 캐릭터 때문도 그녀가 입고 있는 새로운 디자인의 플러그 슈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파>의 대부분의 장면은 분명 에바 팬들이 기존에 보았었던 장면이지만, 동시에 전혀 새로운 장면이기도 한데, 이것이 이번 극장판의 가장 큰 장점이자 흥미로운 점이다.

<서>가 기존 줄거리를 보완하고 다듬는 리빌드였다면 <파>는 마치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백 투더 퓨처>의 지워지는 마티의 사진마냥, 존재하는 과거가 지워지고 새로 쓰여지는 느낌이다. 이런 징조는 아스카의 첫 등장 시퀀스의 다른 구성부터 시작하여, 신지의 나체를 교묘하게 가리는 코믹 씬을 더욱 코믹하게 아스카로 바꾸어 보여주는 것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속타는 빨대의 몹쓸 위치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랏, 이것보게, 무언가 계속 바뀌기 시작하잖아' 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 이후로 이런 장면들은 예고도 없이 쉴세 없이 등장한다. 분명 센트럴 도그마에 있어야할 롱기누스의 창은 달 표면 위 우주에 고이 싸서 모셔져 있으며, 플러그 슈트를 입고 있는 카오루는 이카리와 조우하여 '아버지'라고 부르질 않나, 카지가 가져온 가방 속엔 아담 대신 '느부갓네살의 열쇠'라는 것이 들어있고 사도의 모습들도 처음 보는 낯선 모습들이다.

<에반게리온 : 파>가 <서>와는 달리 기존 TV시리즈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더 높은 싱크로율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 내용에 익숙한 팬들이라면 위와 같은 바뀐 장면들에서 이상함과 의아함을 느낄 수 있지만, <서>를 보고 바로 <파>를 감상한 이들이라면 이런 장면들이 어색하게 느껴질리 없기 때문이다. <파>는 철저히 에바 팬들을 위한 작품이다. 에바 TV시리즈와 극장판들을 모두 섭렵한 이들에게만 허락한 세계랄까.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관람 전에는 반드시 TV시리즈를 봐야만 한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확인해야만 '왜?'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고, 그 '왜?'라는 물음이 <파>를 넘어서서 다음 극장판에서 어떤 대답으로 돌아올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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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팬들을 궁금케한 떡밥들을 분석하자면 사실 보통일이 아닌데, 영화를 처음 다 보고 난 첫 느낌은 '아, 이거 내가 만만히 다룰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구나'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써두었던 에바 관련 시리즈 글들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아니 어쩌면 전부 틀린 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파>의 충격은 대단했다. 영화가 다 끝나고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한 것은 정말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온몸에 힘을 쏟은 탓이었다. 아, 떡밥 얘기를 하려다가 말았는데, 그리하여 떡밥 이야기를 지금 이 시점에서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아, 그렇다고 해서 떡밥을 열심히 분석하신 분들의 글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분석 글들이 저를 또 한 걸음 에바의 세계로 다가서게 하니까요 ^^;).

사실 팬들이 <에반게리온>에 열광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앞서 여러 번 언급한 이른바 '떡밥'에 관한 흥미가 그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일 것이고, 메카닉에 열광하는 것도 있을 것이며 아스카나 레이, 미사토 등 여성 캐릭터들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매력과 애착도 있을 것이다(다음 극장판인 'Q'의 예고편이 극장에 공개되었을 때 애꾸눈이 된 아스카를 바라보며 항의 섞인 탄성을 내뱉던 아스카 팬들의 마음을 해아려보라!). 이것들 외에 (혹은 보다도) 개인적으로 에반게리온에 흠뻑 빠지게 된 이유는 캐릭터들이 독백으로 풀어내는 수 많은 고민들과 관계 맺음의 어려움에서 오는 갈등에 있었다. 예전 이카리 신지의 관한 글에도 썼던 표현이지만, 신지의 독백은 곧 에반게리온의 주제라고 봐야할 정도로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찌질하다'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실 이런 신지를 보고 단 한번도 진심으로 찌질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내가 찌질해서인가 -_-;;). 신지의 독백은 당시 내가 겪던 고민들과 상황은 같지 않지만 충분히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나 또한 쉽게 이겨내지 못했던 것들과 싸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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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 파괴하고 건축하는 것은 비단 사도와 에바, 제3동경시 만은 아닐 것이다. 기존의 신지, 기존의 레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을 매우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적극성'이다. 먼저 레이의 변화는 놀라움을 넘어서 어색하기까지 할 정도다. 시리즈를 통틀어 딱 한 번 웃었나? 싶을 정도로 표현에 인색했던 레이는,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수줍게 표현하는 것은 물론 그 감정을 신지에게 전하기 위해 굉장히 적극적인 행동들마저 보여주게 되는데, 사실 이런 레이의 변화는 기존 TV시리즈의 팬들이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다(기존 팬들의 반응은 극중 토우지의 대사인 '저 레이가 인사를 했어'와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레이가 변하면서 아스카 마저 캐릭터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됬다. 레이가 신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이건 분명 적극적이다) 표현하게 되면서 은근히 신지에게 마음이 있었던 아스카 역시 레이에게 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라도 자신을 표현하게 되어버린다(신지에게 줄 도시락을 요리하며 다친 손가락의 반창고 숫자에서 레이에게 뒤진 아스카의 심정은 사도를 혼자 무찌르지 못한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일거다).

신지의 변화 역시 여러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레이에게 직접 도시락을 싸주거나 된장국을 건내는 것도 그렇고, 아스카가 밤중에 불쑥 자신의 방에 들어와 옆에 등을 맞대고 누웠을 때에도, 놀라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자신을 컨트롤 하는 모습이다(TV판에서 신지가 비슷한 장면에서 자신을 이보다 컨트롤 하지 못한 건 다들 잘 아실듯 ;;). 이런 것들 외에도 신지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힘이 실렸다. 네르프를 떠나기로 결정한 뒤 이카리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기존에는 그저 피곤하고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더 컸었다면, 이번에는 비꼬는 투는 여전하지만 분명 자신의 의지를 좀 더 확고히 밝히는, 목소리에 힘이 제대로 담겨있었다. 이런 신지의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변화들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신지가 흔히 말하는 '찌질 신지'를 벗어나 각성하면서 <에반게리온 : 파>의 주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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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판 인트로에 항상 귀를 즐겁게 해주던 삽입곡을 기억할 것이다. '잔혹한 천사의 테제 (残酷な天使のテーゼ )'의 주제는 역시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였다고 할 수 있는데, TV시리즈를 감싸고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신화가 되어라'라기 보다는 그 이전에 '너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너는 칭찬 받아 마땅한 존재야'라는 위로와 토닥임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 <파>는 분명히 '신화가 되어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폭주를 넘어서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신지를 바라보며 미사토는 '그래, 신지 나아가라!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기존의 신지였다면 이 같은 상황에서 신화가 되기 보다는 그저 잠식되어버릴 확률이 높지만 <파>에서의 신지는 그야말로 신화다.

이번 작품이 그 어느 영화보다 절절하고 온몸에 힘을 쏟아 내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신지의 절실함 때문이었다. 신지가 사도에게 흡수되어버린 레이를 구해내려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신지의 절실함에 눈물마저 주르륵 흐를 정도였다(작품이 끝나고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이 장면에서 신지와 함께 거의 동일한 에너지를 극장에서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여기서 신지가 레이를 이렇게까지 구해내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레이라는 존재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레이에게서 어머니가 느껴져서만도 아니다. 이것은 대상이 레이여서인 동시에 무엇보다 (진부하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신지가 여기서 레이를 그냥 놓아주게 된다면 신지는 또 다시 기존의 신지로 남게 된다.

이것은 TV판의 마지막에 모두에게 둘러쌓여 박수를 받으며 축하 받던 신지와는 또 다르다. 그 신지는 자신 내면의 고민과 갈등을 주변 사람들의 위로를 통해 내면에서 극복해낸 경우였다면, 이번 신지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능동적으로 이뤄내는 새로운 신지이기 때문이다. 이번 극장판을 본 이들이라면 누구도 신지를 더 이상 찌질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이런 절절한 절실함이 보여준 적이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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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장선 상에서 보았을 때 단지 버전을 어쿠스틱으로 달리하여 다시 한번 엔딩곡으로 등장한 우타다 히카루의 'Beautiful World'는 <서>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곡의 가사를 보자면 앞서 언급한 미사토의 그 외침과 동일한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의 엔딩에서는 그저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거니?'라는 가사만이 와닿았었는데, 이번 <파>의 엔딩에서는 이보다는 오히려 '나의 세계가 끝날 때까지 만날 수 없다면, 너의 곁에 잠들게 해줘, 어디라도 상관없어'라는 가사가 더욱 와닿는다. 전자가 신지의 주변에서 신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면 후자는, 신지 자신이 본인에게 하고 있는 다짐에 가깝다. 극의 후반에 정말 치열하게 자신을 표현한 신지에게 너무나도 동화되었던 탓인지, 엔딩 크래딧에서 흐르던 'Beautiful World'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은 정말 절실하게 다가왔다.

음악 얘기가 나온 김에 이번 작품에 쓰인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자면, 사실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파>에 쓰인 음악의 포인트라면 가장 강렬한 순간에 가장 반대되는 서정적인 음악을 배치함으로서 오히려 장면의 파급력을 극대화시키려던 것이었는데, 이런 안노의 의도는 100% 이해되었지만 그 이질감이 조금은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았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이질감은 덜해져 '날개를 주세요 (
翼をください)'가 나올 때에는 완벽히 동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두의 동요에 가까운 음악이 사용된 것은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론 반비례가 아닌 비례하는 음악이 사용되었더라도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겼다(에바의 음악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에바 팬들만이 모인 프리미엄 시사회 같은 곳에서, TV판의 오프닝인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다같이 합창하는 순간을 꿈꿔본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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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실 <에반게리온 : 파>를 처음 보았을 때 '과연 내가 이 영화에 대한 글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만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 작품이 아직은 하려는 이야기를 다 꺼내어 놓지 조차 않은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신 극장판에서는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쨋든 미사토의 이야기, 그리고 신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마기와 리츠코의 이야기, 이카리 사령관과 유이의 이야기, 아스카의 개인적인 이야기 등은 아직 제대로 설을 풀지도 않았다. 그리고 에바 최고의 떡밥 캐릭터(아니 아니메 최고의 떡밥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카오루는 이번 <파>에도 무언가 보여줄 듯 했지만 그 이야기를 'Q'로 미뤄둔 상태이다.

<파>는 이야기의 임팩트만 보자면 거의 보통 시리즈 물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가공할 만한 먹먹함과 무력함을 안겨준다(글 속에서 여러번 언급한 듯 하지만 굳이 한 번 더 언급하고 싶을 정도로, Q의 예고편까지 감상하고 난 다음의 몸상태는 정말 '무력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새삼스럽지만 이 작품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일 뿐(?)이다. 과연 나머지 시리즈에서는 어떤 얘기를 또 어떻게 풀어가려고 <파>에서 이미 이런 무력함을 주는지 걱정이 될 정도다. 과연 이 이야기가 완전하게 종결이 될지도 의문이다. 또 다른 숙제만을 남긴 채 떠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이런 고민은 사실 하나도 중요스런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린 그저 안노 히데아키가 앞으로도 더 선사할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와 세계관에 그저 빠져들기만 하면 된다. 기다림은 그 어느 때보다 고되겠지만, 어쩌면 아니 반드시 훗날 내 아이들에게 '난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모두 극장에서 보았단다'하며 자랑하게 될터이니 이 정도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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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엔 에바 관련 글엔 예전에 써두었던 관련 글들을 링크 걸었었는데 이젠 부끄러워서 못 걸겠네요 ^^;
그나마 함께 소개할 수 있는 글이라면 신지에 관한 글 정도일듯 (http://www.realfolkblues.co.kr/48)
2. <파>에 등장한 이야기를 가지고 TV판과 비교를 해본다던가 다음 극장판을 유추해 보는 것은 아마도 <파> DVD나 블루레이를 보고나서야 가능할 것 같네요;;
3. 사실 개인적으로 수록곡을 블로그 주소로 사용했을 만큼 <카우보이 비밥>을 에바와 거의 동급으로 좋아했었는데, 이미 <파>로서 정해졌네요. 에바가 진리입니다 --v
4. 보통은 오타쿠가 아니라고 하려는 것이 보통인데 (오해가 있을실지 몰라 말씀드리자면 전 오타쿠라는 단어에 반감은 커녕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자라는 점에서 호감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에반게리온은 없는 오덕력을 죄다 모아서라도 '나 오타쿠야!'라고 외치고 싶은 작품입니다 ㅠ
5. 과연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요. 신지는 또 다시 박수를 받게 될까요. 아니면 박수는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 뒤일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GAINAX에 있습니다.





에반게리온의 오랜 팬으로서 엇그제는 정말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대망의 <에반게리온 : 파> 프리미엄 시사회 날이었죠. 작품 관련한 단평을 별도로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아마도 정식 개봉이전에 남겨보는 정말 '단평'이 될 것 같아요).

프리미엄 시사회와 관련하여 시사회 분위기 스케치와 프리미엄 아이템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문득 한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프리미엄 시사회에는 여러 가지 아이템들과 함께 포스터를 함께 증정하였는데, 저는 속을 슬쩍 들여다보고는 '아, 이거 이미 갖고 있는 거잖아'라며 아예 펼쳐보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거죠.

'아, 맞다. 서(序)와 파(破)는 묘하게 포스터가 틀렸었지!'

그래서 갑자기 예전에 받았던 서(序) 오리지널 포스터와 함께 이번에 받은 파(破) 오리지널 포스터를 함께 펼쳐보았습니다.





좌측이 '서'고 우측이 '파'입니다. 뭐 팬 분들이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저처럼 잠시라도 착각하신 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해보자면, 두 포스터 사이에 제목과 우측에 있는 붉은 글씨 외에도 크게 다른 점이 두 가지가 있죠.
'서' 포스터 이미지에서 좌측부터 토우지와 반장, 켄스케와 레이 그리고 신지와 카오루는 그대로이지만 카오루의 뒤로 아스카가 새롭게 추가되었고, 우측 하단에 보면 이번 극장판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신캐릭터 '마리'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죠(사실 이 밖에도 미세한 차이점은 여럿있죠. 신지의 그림자 각도라던가, 풀이 없던 계단 곳곳에 풀이 솟아 났다거나, 창문의 낡음이 달라졌다거나 등등이요)

이게 사실 별거 아닌거 같아도 두 장의 포스터를 붙여 놓으니 은근히 매력이 있군요. 만약 Q(급)와 결(?)도 이와 같은 컨셉으로 제작된다면 매우 흥미로울듯 하군요. 포스터를 고이고이 모셔두었다가 나중에 네 장의 포스터를 멋지게 액자에 보관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뿌듯해지네요 ^^


그리고 이왕 꺼낸 김에 <에반게리온 : 서> 프리미엄 시사회 아이템과의 비교 시작.




좌측이 '서', 우측이 '파'. '파'는 네르프의 로고가 조금 달라졌네요.




화보집(?)의 컨셉은 그대로 동일하구요.





이번 프리미엄 시사회에서 얻은 득템들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저 신지의 옆모습을 트위터나 야머, 네이트온 등 여러 곳에서 아바타 이미지로 썼을 정도로 좋아하는 이미지였는데, 이렇게 엽서 형식으로 포함되어 반갑기도 했네요. 머그컵은 저것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네르프 마크가 새겨진 버전이 아니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번에 오사카 가게 되면 지난번에 비싸서 못샀던 네르프 머그컵 무조건 사야겠어요. 가격 따위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ㅠ



추가로 '왜'(제가 예전에 썼던 에반게리온 연재의 제목도 '왜?'였죠 -_-;;) 에반게리온 : 파의 홍보대사로 뽑혔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는 티아라의 짤방입니다. 처음에는 얘들이 무슨 소리하나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스포를 한 것이더군요 -_-;

티아라 팬분들을 위한 티아라 무대인사(?) 동영상 입니다.



여튼 결론은 에반게리온 : 파 쵝오!!!
지금까지, 에반게리온에 대해 조금 안다고 설쳤던 것이 하나같이 부끄럽게만 느껴졌을 정도로 말이죠 ...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직접 촬영하였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에반게리온> 팬이라면 들뜨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오늘! 오늘은 바로 <에반게리온 : 파> 프리미엄 시사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메가박스 M관에서 상영하는 프리미엄 시사회의 예약은 순식간에 매진되어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는데, 나중에 웃돈을 주고 판매가 벌어지기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요. 저는 그 와중에 사내에 에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무려 9장의 예매를 성공! (나는 능력자 ㅠ) 다행히 모든 희망관람자들과 함께 오늘 저녁 드디어, <에반게리온 : 파>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프리미엄 시사회에만 주어지는 특전들도 기대되네요~).

에반게리온에 대한 분위기가 물씬 오른 김에 얼마전 일본 여행에서 사온 에반게리온 포토북을 제대로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워낙에 싼 가격이라 (105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제대로 살펴보니...이거 퀄리티가 제..제법입니다!




짜잔! 시부야의 만다라케에서 구매한 에반게리온 포토북 3종! 레이, 카오루, 신지! 살 때는 몰랐는데 이 정도의 가격대비 성능비 인줄 알았다면 점원에게 물어봐서라도 아스카 편을 살 걸 그랬네요.








신지 편에는 신지의 고독함, 해맑음, 우울함 그리고 찌질함 등 다양한 면이 단편적으로 담겨있습니다. 몇 줄 안되는 본문과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팬으로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퀄리티라 할 수 있겠네요.










그 다음은 제가 에바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카오루! 참고로 카오루는 역시 일본에 간 김에 피규어를 사오기도 했었지요.


(제 사무실 책상으로 자리를 옮긴 카오루 군)

카오루 역시 그 짧은 등장 시간 덕에 거의 등장한 모든 장면을 만나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야나미 레이. 레이는 특히 포토북에 삽입된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그 글들도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할 것 같네요.










그리고 이건 그냥 보너스로 올려보는 에반게리온 초호기 피규어. 아주 예전에 (피규어에 흠뻑 빠져있을 때) 구매했던 피규어인데, 파 개봉을 맞아 오랜만에 꺼내어 씻어(?) 보았네요 ^^;

아....이제 몇 시간 뒤면 보게 될 <에반게리온 : 파>가 너무도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음반의 이미지는 직접 촬영하였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은하철도 999 리턴즈 - Episode 1 : 신비소녀 쥬라 (IMAX)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터라 TV용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국내에서 개봉하게
되는 흔치 않은 경우라던가, 추억의 애니메이션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역시 흔치 않은 기회들은
여러 악조건들을 감안하고서라도 꼭 챙겨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하지만 이런 노력도 최근에는 조금
무뎌져서, 예전에 '어린이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이누야샤 극장판 - 홍련의 봉래도>를 본 것이
이런 류의 애니를 극장에서 관람한 가장 최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이런 제게 최근 가장 관심있게 들려온 소식은 바로 '은하철도 999' 관련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냥 극장판을 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맥스 포맷으로 63빌딩 아이맥스 관에서만 특별 개봉한다는
소식이었죠. '은하철도 999'는 최근 EBS에서 방영하며(현재는 종영했죠) 다시금 관심을 끌기도 했었는데,
전부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보면서 새삼, 참 어린이들이 즐기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새삼스럽지만 너무 앞서간 작품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여튼 이런 은하철도 999가 아이맥스 포맷으로 새롭게 선보인다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극장들과는 달리 예매 시스템도 편리하게 지원되지 않고(좌석제가 아니죠),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특수성을 미리 고려하지 못했음에도 과감하게 63빌딩으로 수년만에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일단 영화 외적인 얘기를 조금 드리자면, 크리스마스라는 대형 이벤트 데이이기는 했지만 정말 그리도 사람들이
많을 줄을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요. 63빌딩을 가득채운 엄청난 인파들 때문에 예매를 하고나서도,
'그냥 환불하고 어서 이 빌딩에서 탈출할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정신이 없는 분위기였는데,
63빌딩 아이맥스관의 특성상 좌석제 보다는 그냥 입장하는 방식을 택한 듯도 보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다보니
극장 분위기보다는 놀이동산 분위기가 나더라구요.

줄을 서서 입장하는 것도 그랬고, 엄청난 인파들과 섞여 자리에 앉아 '관람'이 아니라 '체험'하는 듯한 분위기도 그랬고,
전체적으로 놀이동산에서 대형화면과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 관람하는 특수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러닝타임이 약 40분 남짓 인것도(가격은 대인 8,000원 이었습니다) 그러했구요.

이런 화기애매(?)한 분위기에서 관람한 <은하철도 999 리턴즈>는 일단 초대형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화질 자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볼 수
있었던 아이맥스 트레일러와 비교하여도 별로 좋은 화질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작품은 '은하철도 999'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인물과 기본 설정만 빌려왔을 뿐
완벽하게 원작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 듯 보였습니다. 좀 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은하철도 999의 아이맥스 버전'이
아니라 '아이맥스 영화의 은하철도 999 버전'이랄까요. 999보다는 아이맥스가 위주가 된 이야기 구조와 영상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3D로 제작된 <폴라 익스프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맥스 포맷을 위한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999 열차가 관객들 눈 속으로 빠져들듯 지나가는 장면이라던가, 눈 바로 옆을 스치는 앵글로 만들어진
장면들이 많았죠),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해 인물들을 멀리서 이동 카메라로 바라보는 듯한 장면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은하철도 999보다는 아이맥스에 집중하고 있다고 얘기한데에는 이런 영상적인 측면 외에 스토리에 관한
이유도 있었는데, '지구의 온난화'와 '공룡의 멸종' '갈릴레오 위성' 등 상당히 교육적인 내용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마치 교육용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철이와 메텔의 설명을 통해 공룡들이 지구에서 어떻게 멸종했으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친절한 설명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공룡을 등장시키다보니
영상 측면에서도 아이맥스의 장점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구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작인 <은하철도 999>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상당히 심오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작품인데, <은하철도 999 리턴즈>는 갑자기 너무 아동스러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갑자기 너무 쌩뚱맞은
희망의 메시지라던가, 아무 설명없이 급하게 시작되고 급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게 했구요
(그래서 마지막에 '자, 다 같이 안드로메다로 출발!'했을 때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네요 ㅎ).

아이맥스의 초대형 화면으로 보여지는 영상은 흥미로웠으나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더군요.
마치 게임 중간에 삽입된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인물들의 움직임이 게임 속 캐릭터 처럼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요 배역들의 우리말 더빙이 어색하다보니 999스럽지 않아 어색했던 것도 있구요
(참고로 이 작품은 100% 우리말 더빙판만 상영하고 있습니다).
메텔의 목소리는 스컬리 역할로 유명한 서혜정님이 맡았는데 뭐 그럭저럭 이었다고 생각되나, 철이와 차장의 목소리는
끝내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익숙한 두 캐릭터의 목소리가 없다보니 더더욱 은하철도 999 스럽지 않았던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은하철도 999>를 생각하고 오신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메텔과 철이, 차장, 은하철도 999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익숙한 목소리도 없고, 이야기의 분위기도 사뭇 틀리니까요.
하지만 63빌딩 아이맥스 관 대형 스크린의 웅장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체험'을 원하시는 분들께는 그리 나쁜
선택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관람보다는 '체험'이 위주가 된 애니메이션인듯 싶습니다.


1. 하록 선정과 에메랄다스가 우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

2. 엔딩 크래딧을 보니 영어 더빙 캐스트가 나오던데, 미국에서 상영하는 버전에 우리말 더빙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3. 이럴바에야 처음 999호를 타고 출발하는 장면에서 김국환의 주제곡이 신나게 울려펴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명곡을 아이맥스 대화면을 통해 들었다면 초 감동이었을텐데 말이죠;;;

4.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쥬라' 캐릭터를 보니, 왜 이렇게 '록맨'이 생각나던지요
    (쥬라의 아빠는 정말 록맨 같더라구요 ㅎ)

5. 원제를 찾아보니 '은하철도 999 별하늘은 타임머신 에피소드 1 : 태양계 공룡 멸종편' 이군요 ;;;

6. 현재로서는 1월 19일까지 상영 스케쥴이 잡혀 있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2008)
다섯 살 아이의 순수함, 그 세계

스튜디오 지브리.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이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만들어낸
스튜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이지요(이 창대한 시작 문구로
알 수 있듯이 저는 지브리와 미야자키 월드에 흠뻑 빠져있는 팬이며, 객관적인 평가가 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해
둡니다. 하긴 평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관적이지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후 다시금 직접 몸소 나서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벼랑 위의 포뇨>는 기획 단계서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던 <게드 전기>가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제가 쓴 <게드 전기>리뷰를 보면 아실 수 있지만,
엄청난 혹평들에 비해 저는 그럭저럭 최악은 아니었다고 봤었구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의 경우가 그랬듯이, 사실 <벼랑 위의 포뇨>는 포스터만 보고는 별로 끌리지는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얼굴이랄까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같은 경우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질 않았던 것도 갓파쿠의 생김새가 크게 작용했었거든요.
이렇게 엄청난 기대와 조금의 우려도 있었던 <벼랑 위의 포뇨(이하 '포뇨')>는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른으로서 잃어가는 순수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 스틸컷만 보니, 마치 괴수물의 도입부분과 흡사하군요. 어떤 공포스런 미확인 물체가 인간을 덮치기 이전에는
꼭 저런 앵글의 컷이 등장하죠. 멀리서 간을 보는 장면이랄까요. 물론 <포뇨>에서는 전혀 이런 분위기를 찾을 수 없지만요)


고전인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미야자키 하야오 식으로 풀어낸 <포뇨>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면어 '브룬히루데'가
인간인 소스케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다섯 살 어린이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소스케 등장 이전에
'브룬히루데('포뇨'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 본래 이름입니다)'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묘사되는데, 이 세계의 모습은
동화 속 그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인간이지만 바다의 여신과 결혼하여 바다 속에서 인간들로 인해 오염된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 나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후지모토'를 중심으로 이 세계는 조명되는데,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과도
같은 포스의 뒷모습을 풍기는 듯 하지만, 이 후지모토 캐릭터의 역할은 '하울'과는 분명 다른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후지모토'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연민이 느껴졌는데, 그에게서는 <렛 미 인>에 등장했던 '이엘리'의
보호자 격 남자의 모습과,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아버지와도 같은 부정이 엿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뇨>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 드문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들은 '후지모토'가 악당 역할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느낌이(매우 동양적인)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포뇨가 인간이 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포뇨가 인간에게 선택 받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경우 받을 상처와 일들이 걱정이 되어 미리 예방하려 하는 것이고,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결합이 행복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직접 느낀 바가 있기 때문에(아마도 그는 바다의 여신을 극진히 사랑해서 인간 세상과 멀어져
바다 속 삶을 택한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 외로움도 느꼈을테지요. 자신의 딸인 포뇨가 이런 외로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구요. 잘 생각해보면 '인어공주' 스토리는 포뇨의 아버지인 후지모토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돌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깊었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후지모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포뇨가 인간인 소스케와 더불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애초부터 있었다는 걸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끝끝내 둘의 만남을 막거나 했어야 했는데 결국엔 그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애초부터 '브룬히루데'가 '포뇨'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후로 '포뇨'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불러주었거든요.
<포뇨>에서 후지모토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개그를 치는 조연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됩니다.




초반 바다속 에서 포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잠깐 움찔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포뇨와 닮은 수 많은 '포뇨스럽게' 생긴
이들이 단체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포뇨는 저들의 엄마인가? 하고 생각할 때쯤 '엄마'가 아니라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포뇨가 먼저 태어났거나 마법으로 인해 생겨난 프로토 타입이라던가 라고만은
생각하게 되지 않더군요. 이후 포뇨가 소스케의 피를 마시고 인간으로 변하기 이전에도 포뇨는 동생들보다 월등히
큰 몸집을 갖고 있었는데, 마치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우친 네오와도 같이, 물 밖 인간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동생들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일찌감치 깨우치게 되었고, 이런 깨우침으로 인해 궁금한 점들이나 욕구들이 많아졌으며,
그로 인해 발달하지 않았던 신체가 발달하여 동생들과는 사뭇 다른 존재가 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이렇게 보자면 아예 동생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똑같이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존재였지만, 유독 발달하여 '언니'로서의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초부터 프로토 타입으로 생겨난 존재일지도 모르겠구요.

아마 이 동생들도 포뇨가 이렇듯 시스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욕구불만이 없었겠지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생들이 굉장히 포뇨를 부러워하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자신들은 못하지만 포뇨가
꿈을 이루는데에 적극적으로 돕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들도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거죠.
포뇨와 동생들의 관계도 흥미로웠던 설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통 클래식 음악에 가까운 배경음악과 함께 포뇨가 파도위를 춤추듯 달리는 이 장면은, <벼랑 위의 포뇨>의 명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속도감도 좋았고, 묘한 느낌도 좋았죠)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독특한 캐릭터를 꼽자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역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운전 스킬로(폭풍우 치는 좁을 길에서도 드리프트를!!) 보는 이를 움찔하게 했던 리사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주가 되는
<포뇨>에서 '후지모토'와 포뇨의 엄마와 더불어 어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사실 대변한다기 보다는
이런 어른이 되야 한다 라는 쪽이 더 어울리겠네요). <포뇨>에서 리사가 가장 돋보이는 점은 화려한 운전 실력도,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다 못해 영웅적인 면모까지 발휘하는 모습도 아닌, 포뇨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아이가 굴러들어왔을때(포뇨는 굴러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죠 ㅎ), 단 한번의 의심이나
고민도 없이, 아무런 스스럼없이 포뇨를 소스케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월드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일이도 모르겠는데, 마법을 부리고 더군다나 며칠 전에 물고기로서 만났던 이가 갑자기 꼬마 아이로
등장했음에도 이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리사의 모습은, '멍청하다' '허술하다'라기 보다는 '깨어있다' '열려있다'로
봐야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결국 말하려는 것은 아이의 순수함에 대한 경이와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순수함을 갖은 아이에게 얼른 어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그 순수함을 더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옳은 부모의 자세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부터 언급한 후지모토를 비롯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 그리고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까지...
<포뇨>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가감없이 편견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한 작품인 동시에, 한 편으론 이런 아이들을
보호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영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리사의 옆 모습에선 '하울'이 어렸을 적 '캘시퍼'를 처음 받아들일 때의 옆 모습과, '나우시카'의 옆 모습이 동시에
연상되더군요)

부모에 관한 작품이라는 점은 후반부에 가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포뇨의 앞으로에 대한 일들을 놓고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와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가 마치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듯 '누구 어머니 되세요?'하며
만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도 안되는 비현실 세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리사에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에는 리사와 포뇨의 부모들과 함께 노인정에서 피신한
노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도 리사와 마찬가지로 거리낌없이 이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한 할머니가 계속 되는
의심을 갖고 불신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여느 작품 같다면 이 할머니가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으로 등장해서 마수에 걸려있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겠지만, 미야자키 월드에서는 '왜 순수하게 믿지 못하는가?'라는 것을 되묻기 위한 캐릭터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를 보니 '다섯 살 아이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여있다' 라고 했던데 이런 마음에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해 노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가 들려주고 싶은 '원석'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모들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리사와 그랑망마레의 대화는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라는 식으로 흘러갔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은 옳은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멀리서 지켜주자 라는 것이 이 두 부모의
선택이었던 셈이이죠.



(아마도 '포뇨'는 지브리 역사상 가장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책없이 대놓고 귀여우니까요 ^^;)

<벼랑 위의 포뇨>를 일반 영화보는 방식으로 보게 되면 여기저기 모순 점 투성이고 이해안되는 부분도 분명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영화를 볼 때는 의심이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고, 캐릭터의 몸짓, 말짓
하나에도 무언가 암시하는 의도가 있지는 않나 생각하며 보는 스타일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히 포뇨는!)이런 의심 가득한 시선들 없이 맘 편하게 즐겨라 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는 마냥 즐기는 것보다는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필요없는 작품들이었거든요.

다섯 살 아이가 중심이 된 순수한 세상에 어떤 의심의 눈초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봤을 땐 한창 때의 미야자키 하야오
였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따져봐도 나름 젊었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보면
결국 순수함과 진리로 포용하기는 했지만, 환경파괴와 문명화, 기계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강했었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후는 점점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입장으로서 비판적인 마인드 보다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과 보호가 더 앞서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센과 치히로..>를 보면서도 감독이
치히로를 그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포뇨>에서는 이렇듯 아이를 할아버지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것이 일부에서는 일종의 '늙었다'라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기본 정서가 동심을 비롯한 순수함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더군요.
장면 장면에서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심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많은 이들이 유치하다라고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섯 살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만든 할아버지의 작은
선물이니까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임팩트 면에서는 최근작 <센과 치히로..>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비해 조금
약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포뇨~ 포뇨, 포뇨~'하는 주제곡만으로도 깊은 각인을 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네요(이 노래가 입에서 떨어지질 않는군요). 물론 앞서 잠시 언급했던 정통 클래식 스타일의 곡들도
좋았구요. 역시나 미야자키 월드를 완성시키는 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팬심없이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근거는
항상 변하지 않는 순수함에 있기 때문인데, 이를 보는 관객들은 점점 나이를 먹기 때문이죠. 작품은 계속 아이의 순수함으로
머물러 있으나 보는 이들은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기 때문에 점차 간극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구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벌어진 이 공간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며 다시 좁혀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의 '포뇨'모습만 보고 조금 이상하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나,
'포뇨'의 주제곡을 미리 듣고는 조금 유치하고 아동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다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환경 파괴에 대한 메시지도 분명 담고 있지만, <포뇨>는 이를 전작들에 비해 깊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판적 메시지가 깊게 담긴 작품들을 다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듯이, 이런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미야자키 월드이구요.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그 세계에 빠지지 못하면 공감하기 힘든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5세에 맞춰졌기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듯 싶구요.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와 그 세계에 매료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 며칠 전 <다크나이트> 블루레이를 사려고 들렀던 매장에서 <벼랑 위의 포뇨>OST를 보고는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은 질러야 겠군요!

2.

후지모토는 왠지 살짝 목소리도 그렇고 오다기리 죠가 연상되기도 하더라구요. 문득 문득 멋진 모습도 보여주는데
폐인스러움도 갖췄다고 할까요 ㅋ

3. 크리스마스에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군요.

4. 사실 닭살스러운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포뇨'는 대책없이 귀여운대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5. '소스케! 좋아!' 더 많은 대사는 필요없어요. 사실 여기에 다 담겨있기도 하구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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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ピアノの森, 2007)
클래식으로 풀어낸 두 아이의 우정


오랜만에 극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나고 왔습니다. 국내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제작했던 '매드하우스'의 작품임을
강조하는 홍보가 강했는데, 이런 면에서 만약 <시달소>를 염두에 두고 극장을 찾게 된다면 이 영화 <피아노의 숲>에는
적잖이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시달소>의 경우가 소녀의 풋풋한 감성과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라면, <피아노의 숲>은 '소년'이라기 보다는 '아이'에 가까운 두 남자 아이가
피아노와 음악을 통해 우정을 키워나가고 조금씩 자신과 주변을 알아가게 되는 내용으로, 전자보다는 좀 더 아동용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아동용'이라는 표현을 마치 작품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아동용이란 말 그래도 어린이들이 보기에 적절한 영화라는 그 본 의미로 쓰인 것이며, 사실 제대로 된 교훈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돋보이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클리셰의 향연이랄까요. 만약 이런 음악가나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과정과 결말을 미리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연주회 부분이나 그 이후에 방향을 보면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많이 비슷한 결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뭐 이건 '노다메'의 전유물이라기 보다는 이런 류의 스토리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봐야겠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사실 이야기가 새로울 것이 없어서 굳이 스포일러까지 될까
싶기도 하지만서도), 그렇다면 <피아노의 숲>이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에도 나름 괜찮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하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바로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느냐 하는 것에 있을텐데, 일단은 이런
일반적인 흐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고 있고, 더나아가 아이들이 볼 때에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더 컸을 때 비슷한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 맞어, 예전에 보았던
만화에서 비슷한 걸 보았었는데'하는 기억이 날 정도로 은연 중에 교훈적인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 피아노 연주와 클래식 음악을 들 수
있겠습니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사진을 보고는 '얘는 누구야?' '쟤는 또 누구고?'하고 얘기하던 주인공 카이가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면서 점차 얼마나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도 관심있게 봐야할 장면들이고, 일본 애니메이션 답게
클래식 전문 작품이 아님에도 음악적인 기본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작은 장면들도 놓치기 아쉬운 장면들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나름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타고난 천재와 노력파를 각각 그리면서, 이 둘을 갈등을 모두 다
제법 깊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마데우스>의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이런 관계에 대한 묘사는 여러번
있어왔던 것이지만, 아이들의 눈에 맞게 아주 심오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정곡은 제대로 찌르고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나 단순히 천재 소년의 놀라운 능력에만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노력해도 천재적인 친구를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을 몸소 체험하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가볍지 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동용 작품이라면 아마도 단순히 천재소년에만 집중했겠죠. 그래서 <피아노의 숲>이 오히려 참 교훈적이라는
얘깁니다. 이런 관계를 그리면서도 어느 한쪽을 악당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되도록 그려내는 점
말이죠).




이 두 아이의 이야기 가운데 선생님의 '어른'이야기가 잠시 끼어드는데, 제가 보았을 땐 끼어들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한 범위 내에서만 참여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즉 더 끼어들었으면 자칫 이야기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가 있는 이 어른의 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었고, 아이들 관객들이 보기에도 어려워질 수 있었으나 그 아슬아슬한
범위를 잘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죠.

그리고 리뷰 내 스틸컷은 삽입하지 않았지만 이 두 남자 아이 외에 피아노 콩쿨에 참여하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후반 부에 등장하는데, 재미면에서 보나 내용면에서보나 이 여자 아이의 등장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칫 너무 뻔한 이야기로만 흐를 수도 있는 과정 속에서 약간의 긴장을 주었고, 개그와 아련함이 적절히 섞인
독특한 시퀀스로 또 다른 메시지를 들려준 것 같기도 하구요.
원작인 만화에서는 영화 속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고 하는데, 이 여자 아이의 이야기도 전개가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목소리 연기로 우에토 아야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케와키 치즈루의 경우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워낙에 애니메이션에 흠뻑 빠져들다보니 그녀의 목소리를 특별히 인지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게 아이가 있다면 요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여줄 것 같아요. 교훈적이기도 하고 많이 어렵지도 않으면서,
음악이나 피아노에 흥미를 갖기에도 충분한 작품이니 말이죠.
아마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아이들은(실제로도 제가 본 극장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집에 갈 때 피아노 사달라고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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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耳をすませば, 1995)
리얼리티로 살아나는 아련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전의 대부분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귀를 기울이면>
역시 용산에서 구한 일본에서 넘어온 불법 VCD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전에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이 작품이 지난해였나, 대원에서 <마녀 배달부 키키>와 함께 DVD출시를
하기 위해 메가박스에서만 단독으로 잠깐 개봉을 했었고, 그 당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키키'와 함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죠. 그 이후에 DVD가 결국 출시되긴 했지만, 이번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세상의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귀를 기울이면>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요즘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한 때 지브리 하면 만사 재쳐두고 DVD며 피규어며, 디오라마며, OST며,
화보집, 설정집 등 닥치는대로 모으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모았던 각종 아이템들과 선물해주었던 피규어들을
다 모으자면, 조금 오버해서 지브리 스튜디오 서교분점 정도 될지도 모르겠네요.
메가박스에서 개봉했던 당시에는 너무 감상에만 젖어 제대로 된 감상기를 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한 번 써보는데 까지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지브리 DVD타이틀이 출시되면
열심히 줄줄이 리뷰를 썼던 것에 반에 반만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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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베르트 폰 지킹겐 남작과의 첫 만남! 남작은 이후 <고양이의 보은>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일단 이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지브리의 느낌과는 약간 틀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콘도 요시후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부분의
지브리 작품들이 그렇듯 각본이나 기획 작업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콘도 요시후미가 연출한 영화의 분위기는
확실히 미야자키의 판타지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장면장면의
디테일은 매우 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시즈쿠' 캐릭터는 정말 또래의 사춘기를 겪는 소녀의
미묘한 감정과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시즈쿠를 둘러싼 그녀의 가족들의
모습이라던가(도서관에서 일하는 아빠, 대학원 논문 준비로 시즈쿠 만큼이나 바쁜 엄마, 그리고 이제 막
사회로의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는 언니까지), 시즈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유코와 스기하라의 알콩달콩
미묘한 사춘기의 감정 묘사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전혀 밋밋하게 느껴지지 않는 연출력을 선보입니다.

특히 굳이 그런 설정들을 넣을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는데,
시즈쿠가 유코의 집에 놀러갔을 때, 유코가 아버지와 다퉈 냉전중이라 이층으로 올라가는 중에도
아버지가 시즈쿠와는 인사를 나누지만 유코와는 냉랭하게 지나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이런 애니메이션에서는 좀 처럼 만나기 힘든 리얼리티라고 아니할 수 없는 장면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굳이 극중 전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설정들을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외에도 부모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자녀가 빨래, 청소, 공과금 납입 등 집안일을 분담해야
하는 것이나, 여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방에 모여 선생님과 함께 도시락을 먹는 등,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디테일들을 여럿 배치하면서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좀 더 이야기에 공감하고
몰입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즉 내 얘기, 혹은 우리 딸 아이의 얘기로 여기게끔 돕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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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브리 작품 가운데 명장면 베스트 5에 꼽힐 '컨츄리 로드' 연주와 노래 장면)

지브리의 작품들은 주인공이 현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 동네나 거리 모습의 작화에 있어 실제 있을 법한
(물론 이 가운데는 실제 있는 경우를 토대로 애니메이션화 한 경우도 아주 많죠, 이런 방법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된 경우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cm>같은 작품을 들 수 있겠네요) 분위기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어스름한 새벽녘의 장면이나 해지는 도시의 장면 연출을 볼 때, 거의 실사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전신주나 일상 풍경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예전에 어느 글에선가 이 작품에 배경이 된 실제 동네가
일본 내에서도 부자 동네에 속하는 동네이고 작품 속 처럼 아래로 훤히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길 본적이 있는데, 작품 속에서는 그리도 소박해보이던(신비스럽긴 했지만, 귀티나진
않았었는데 말이죠) 동네가 실제로는 부촌인 것을 확인한다면 실망하게 될까요? 그래도 언젠가 직접 일본에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좀 더 확인해보니 도쿄 교외의 타마시 라는 곳이 배경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 작품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영화에 삽입된 노래 때문입니다. 존 덴버의 곡인
'Take Me Home Contury Road'가 바로 그 곡인데, 이 작품에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른 버전이 초반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이 원곡의 느낌보다도 시즈쿠가 세이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친구들의 연주에 맞춰 수줍지만 열심히 부르는 그 버전이 더욱 깊이 가슴에 남을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네요. 거기에다가 이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크리트 로드'를 더하자면, 가끔 이 애니메이션의
영어제목이 'Contury Road'가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로, <귀를 기울이면>에서 이 곡이 주는 인상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중 'take me home county road')

<귀를 기울이면>하면 <고양이의 보은>이 절로 따라올 정도로 이 두 작품의 연관성은 이미 많이
언급되었지만, 그래도 나도 한 번 더 언급해본다면 (--;;),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심술쟁이 고양이 '문'과
('문'은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문'외에 여러 이름이 있다며 '무타'라는 이름이 후반부에 잠깐 언급되기도
하는데,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바로 이 이름 '무타'로 등장합니다)
영롱한 눈을 갖고 있던 훔베르트 폰 지킹겐 남작이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좀 더 비중있게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즈쿠가 극중에서 썼던 소설 '귀를 기울이면'의 내용을 보자면 <고양이의 보은>은
시즈쿠가 쓴 소설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현실적인 작품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스러운 설정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시즈쿠가 쓴 소설 속의 내용 뿐인데, <고양이의 보은>은
이 판타지스러운 요소를 전면으로 가져와 소녀의 사춘기와 성장기를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겠네요.
물론 두 작품의 원작이 모두 히이라기 아오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2002년작 <고양이의 보은>)        

잘 알려졌다시피 <귀를 기울이면>은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이기도 합니다.
<빨강머리 앤>의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맡기도 했던 콘도는(그래서인지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시즈쿠의 친구인 유코의 모습에서는 얼핏얼핏 '빨강머리 앤'이 보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지브리 스튜디오에 가장 큰 기대주였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을 시작이자 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이 일로(직간접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불가피하게 은퇴를 번복할 수 밖에는 없었고,
지금까지도 지브리 스튜디오 내에서 미야자키를 이을 이렇다할 확실한 후계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이 콘도 요시후미가 살아서 <고양이의 보은>을 연출했으면 어땠을까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고양이의 보은>은 캐릭터만 비슷할 뿐, 소소한 리얼리티보다는 더 지브리적인 판타지적 요소가 강조된
작품이라 콘도와는 잘 맞지 않는 작품인듯 하고, 정작 <귀를 기울이면>의 속편 격 작품은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꼭 그 작품이 아니더라도 콘도가 만약 지금까지도 지브리 스튜디오에 미야자키의 후계자로 남아있었다면,
지브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너무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가 떠난 이후로
지브리에 <귀를 기울이면>같은 색깔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다시 한번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아쉽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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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2년작 <붉은 돼지>.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붉은 돼지>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양이의 보은>의 경우 <귀를 기울이면>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작품인데 반해,
<붉은 돼지>와의 연관성은 그리 자주 언급되지 않는 것 같아 짧지만 정리해보자면.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드워프 왕자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오래된 시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시계의 바늘이 자리한 곳을 보면 'Porco Rosso'라는 이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이름만 살짝 끼워 넣은 것이구나 할 수도 있겠는데, 그 다음 할아버지의 대사를 보면,
'이 시계를 만든 사람도 한 때 힘든 사랑을 했었던 것 같아'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붉은 돼지>에서도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포르코'와 '지나'가 한 때 결혼까지 하려고 했던 사이였다고 미뤄봤을 때,
세이지 할아버지의 저 대사와 <붉은 돼지>의 포르코 로소의 이야기는 정확히 매치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세이지는 바이올린의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계획하는데,
<붉은 돼지>하면 '이탈리아'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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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코 로소가 만든 환상적인 대형 시계. 2008년 극장에서도 저 시계가 작동하는 장면에선
 관객들이 모두 탄성을 내지르더군요!)


마지막으로 이들 작품 외에 <귀를 기울이면>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른 작품의 흔적으로는 1989년작
<마녀 배달부 키키>를 들 수 있겠는데요, 시즈쿠의 책상에 정확히 키키는 아니지만 빗자루를 탄 검은 복장의
인형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팬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넣은 그림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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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사춘기의 미묘한 사랑에 관한 감정을 그린 것 만이 아니라,
청소년기에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진지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것을 친구들보다 더 좋아하고 글 쓰는 것(정확히 말해 번역일)을 단순히 좋아하던 시즈쿠는,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하나하나 노력하고 준비해 나가고 있는 세이지의 모습을 보고,
단순히 부럽다, 멋지다라고만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과 나태함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면서 세이지에게는 좋아하는 감정과 더불어 일종의 질투심 또한 느끼게 되는데, 이런 감정은
'나랑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뭐하고 있었나'라던지, '세이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서 저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현재 DVD가 없는 관계로
극장에서 본 기억만으로 대사를 쓰려니 정확하지가 못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

이런 설정은 적어도 지브리의 일반적인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TV 연속극에나
나올 법한 얘기에 가깝기도 하구요. 소녀가 진로를 고민하고, 자신보다 앞서서 한참이나 멀리 나아가고 있는
애정의 대상에게 지지않기 위해, 아니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동등한 입장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 진로 상담을 하게 되고 여기서 일반적인
진학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무언가 꿈을 위한 도전을 하느냐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과 자기 자신과도
깊은 갈등을 겪고,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가족이라는 자체가 성장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는 이 이야기는, 앞서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손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도 있습니다. 극중 시즈쿠가 겪는 고민들이 내가 겪었던 사춘기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죠. 시즈쿠를 통해 나의 사춘기를 돌아보는 한 편, 나는 왜 시즈쿠 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보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되고,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사춘기 때 꿈꿨던 것들을
얼마나 이루었는가 하는 것도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이 작품이 그저 소녀의 꿈같이 판타지스런 사춘기를 그린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더더욱 오랫동안 가슴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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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은 1995년 작으로, 만들어진지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떠들거나 크게 웃는 것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을 볼 때 이 또래의 자식을 둔 어머니 분들이 장면마다 크게 웃으시는 것은 별로 불편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웃음에는 영화가 웃겨서 웃는다기 보다는 시즈쿠가 자신의 딸처럼 느껴져서,
귀여운 마음에 웃으시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거든요. 저는 아직 시즈쿠에게 감정 몰입을 더 하고
있지만, 한 10년 쯤 지나면 저도 오늘 극장에서 만난 어머니들처럼 시즈쿠를 제 딸 보듯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와 대원 C&A 홀딩스에 있습니다.





브레이브 스토리 (ブレイブ スト-リ-: Brave Story, 2006)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한참 HMV에서 블루레이를 사기 위해 기웃기웃 거릴 때,
잘 알지 못하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서 관심있게 표지를 보았던 것이 처음이었다.
2006년작으로, 일본에서는 이미 블루레이로 발매가 되었지만, 국내에는 이번에야 CGV단독 개봉으로
소개가 되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아서인지, 아니면 영화의 스타일과 맞게 내가 원래 RPG게임을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동심이 남들보다 강해서인지...뭐 언급한 이유 전부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매우 인상적이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실제로도
RPG게임 광이며,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적도 있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 그의 특징이
그대로 표현된 작품이 바로 <브레이브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이런 작가의 배경을 모르더라도, RPG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이 애니가 RPG게임과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보석을 5개 얻는 등 아이템을 모아야하며,
중간중간 사연이 있는 동료들을 얻어 파티를 이루게 되고, 보스를 깨면 아이템을 얻고, 최종 보스 즈음에
가서는 자기 분신을 만나게 되는 등등 딱 봐도 RPG스타일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RPG게임을 좋아해서 인지(그리고 최근 XBOX360 게임인 '로스트 오디세이'를 재미있게
플레이해서인지), 너무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브레이브 스토리>의 이야기가 그저 단순하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면을 보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분명 아이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애니를 만든 어른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왜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되며,
왜 이런 모험을 해야되는지의 이유를 바로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인공 와타루를 비롯하여 미츠루도 그러하고, 이 둘은 운명을 바꾸기 위해 환계로 와서 모험을 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원해서, 즐거운 여정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이혼, 자살, 살해 등 부모들이 만들어낸
운명의 짐을 결국에는 아무 죄없는 아이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왜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고통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근본적으로는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주인공들이 고생을 하며 돌리고자 하는 운명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바로 '가족'에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2D와 3D를 적절히 섞은 영상도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최근 게임들에서 보았을 법한 배경들과 건물, 캐릭터 디자인들도 돋보였고,
일부 액션 장면에서 등장한 3D애니메이션과의 싱크로율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최근에 와서는 캐릭터를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배경을 좀 더
디테일하게 연출하고 캐릭터는 단순하지만 특징만 잡아주는 정도로 묘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으로 느껴졌다.



판타지 장르를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있을 수 없다.
RPG스타일을 답답하게 느낀다면 역시 이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있을 수 없다.

반대의 경우인 나는 아주 재미있었던 오랜만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었다~


1. 후반부에 마족들이 하늘을 뒤덮는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 : 레볼루션>의 센티넬무리 같았다.
2. 역시 마지막에 가서 와타루가 결국 선택을 하게 되는 시퀀스는 역시 <매트릭스>의 네오를 연상시켰다.
3. 게임으로 제작되어도 아주 좋을 듯 하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GONZO와 후지TV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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