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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너무 앞서간 기이한 그 이름
김기영



사실 김기영이란 감독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창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 등의 영화를 좋아하던 때에 어느 인터뷰에선 가 이들 감독이 존경하는 감독으로, 혹은 극찬했던 작품으로 그의 작품을 꼽으면서, 현재 한국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감독들이 모두 다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국내의 감독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부끄럽지만 ‘김기영’이라는 거장의 이름을 그제 서야 찾아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원로 감독들이라고 하면 개인적으로도 신상옥 감독 외에는 그다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 없었는데, 김기영 이라는 이름 앞에 항상 붙는 수식어인 ‘기이한’으로 미뤄봤을 때, 쉽게 말해 메이저 성향이라기 보다는 마니아들에게 인정받는 언더그라운드 감독이라 잘 몰랐었구나 하고 언뜻 생각했지만, 김기영은 놀랍게도 당대의 흥행 감독 중 한 명이었다. 물론 그의 작품 세계가 유난히 독특하고 기괴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영화 <화녀>와 <충녀>는 1971년과 72년에 각각 그해 최고 흥행작이기도 했으며, 신상옥, 유현목 감독과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었다(실제로 <고려장> 개봉 시에 노모를 지게에 지고 가는 장면이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에도 등장해 고소장을 접수하는 사건이 있는 등, 별로 서로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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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들 말하는 옛날 영화, 흑백 영화라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루하고 고리타분 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만(이런 선입견을 갖게 된 데에는 실제 재미없는 한국 흑백 영화를 더 먼저 접한 이유도 있었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은 6,70년대 군사 정권 하에 만들어 졌다 고는 믿어 지지 않는, 오히려 최근 만들어지는 작품들도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스타일과 개성으로 가득 찬 ‘재미있는’ 영화였다. 물론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이른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모두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썩고 곪아 있는 곳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이를 통렬 하게 비판하는 텍스트로서 오히려 ‘불편’하고 보기 힘든 작품을 만들어왔다. 여기에 기인에 가까운 그의 연출 방식에 대한 집착과 행동들은 김기영 식 영화를 더욱 ‘컬트’로 몰아가는데 일조를 한 경향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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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제로 영화를 정식으로 배운 영화 학도 출신이 아니라 의사 출신이었다. 당시 잘나가던 치과 의사였던 아내가 꿈을 펼쳐보라며 기회를 준 탓에 김기영 감독은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취미 활동’하 듯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는 의사 출신 답게 문제를 바라볼 때 단순히 겉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배를 째고 해부를 하는 수준까지 문제를 바라보면서, 당시 경직된 시대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은, 반대로 그런 시대 상황이었기에 해야만 했을 이야기를 일관되게 해왔다. 그는 또한 자신의 작품 <하녀>를 <화녀> <충녀> <화녀 82> 등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이는 단순히 흥행작인 원작의 요소를 불러내 비교적 흥행이 보장된 안전한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녀>에서는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 시대의 시대 정신에 맞게 변주 하는 형식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또 다른 문제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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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기영 감독은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영화의 모든 전반적인 것을 직접 컨트롤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연출은 물론 카메라 구도 같은 것도 카메라 감독에게 전적으로 맡긴 다기 보다는 자신이 일일이 체크하곤 했으며, 특히 재능을 보였던 미술 분야(특히 세트와 소도구) 같은 경우는 그의 손길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봐도 전혀 무방하겠다. 더 나아가 영화를 찍는 도중에는 스텝들은 물론 배우들도 자신이 지금 무슨 영화를 찍고, 무슨 연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연기를 했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 디테일까지 일일이 디렉팅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충녀>에 출연한 윤여정 씨의 경우, 침대 위에 쥐가 잔뜩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실제로 어떤 얘기도 해주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 채 촬영에 임했다가 촬영 시에 크게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는 이런 김기영 감독이 1998년 자택에서 화제로 우리 곁을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해로서 갖가지 행사와 재조명의 기회가 많았었다. 각종 영화 관련 지와 사이트에서는 김기영 감독을 비중 있게 다뤘으며 특히 지난 6월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김기영 감독 전작전’이 열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이번 특별전 행사가 끝난 뒤 김기영 감독의 작품 네 편을 DVD로 소장할 수 있는 ‘김기영 컬렉션’이 발매된 점이 가장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겠다.


이번 DVD에는 <고려장 (1963)> <충녀 (1972)> <육체의 약속 (1975)> <이어도 (1977)> 이렇게 4편이 수록되었는데, 특별전에도 상영되었던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하녀>가 빠진 것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 <하녀>의 경우는 현재 추가적으로 복원이 진행 중임으로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쯤에는 단독으로 DVD가 출시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번 ‘김기영 컬렉션’DVD에 수록된 네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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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려장’이라고 하면 신파 드라마가 아닐까 하고 섣불리 오해할 수 있지만, 김기영 감독이 만든 <고려장>은 이런 오해를 불식 시키고도 남을(아니 넘쳐 날) 정도로, 극한 상황에 닥친 인간의 모습과 기이하고 상식을 뒤집는 설정과 메시지, 그리고 권력자와 이에 굴하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로서 정치적인 텍스트로까지 연결되는,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들을 ‘고려장’이라는 소재를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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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의 크레딧 장면. 화면 가득 한자가 뿌려지고 그 가운데 스태프들의 이름이 보여 지는 방식의 이 장면은 지금 봐도 상당히 인상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일단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적인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영화에서 지리적 공간이 갖는 의미는 여러 가지 내용 적인 면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현대적인 좌담회에 이어 타이틀 롤과 함께 보여 지는 첩첩산중의 이미지는, 현대 사회와는 고립되어 있는 일종의 원시사회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당시로서는 더욱) 가부장 적인 유교 적 가족의 이미지라던가, 기본적인 도덕적 윤리가 통용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일종의 비현실적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비현실적인 요소는 극심한 가뭄과 식량 부족으로 인한 지배 권력의 등장과 경제 논리로서 더욱 섬뜩하게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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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먹기 위해 조부모를 구타하는 아이들이나, 배고픔을 호소하는 늙은 아버지에게 ‘먹는다고 더 산다는 보장도 없고, 더 살아봤자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하며 오히려 산으로 내버릴 생각만 하는 10형제의 모습이나, 감자를 얻기 위해 딸을 산 채로 바치는 어미의 모습 어디에서도 윤리적인 가치관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것이 아무리 극적으로 묘사된 비현실적인 공간에서의 상황 이라고는 하지만, 1963년 당시로서 이 정도로 상식을 뒤집는 극렬 한 묘사는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어른이 했다 하더라도 독하디 독한 대사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나, 부모나 부인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참극에 가까운 장면들은 ‘이것이 정말 1963년도 작품이 맞나?’ 할 정도로 충격적인 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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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이 보여준 원시사회의 모습을 보았을 때, 적어도 고려 시대 이전 사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저 뒤편에 자리 잡은 병풍의 그림은 누가 봐도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김기영 감독은 거리낌 없이 조선시대의 그림을 사용하면서(이 바로 앞 장면의 결혼식 혼례 장면에서도 조선시대의 결혼예식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 역사적 시간의 모호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얼핏 보면 <고려장>에 등장하는 원시 사회는 말 그대로 원초 적인 배고픔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는,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로 보이기도 하지만, 가뭄으로 피폐해진 마을에 유일한 식수 원을 10형제가 소유하게 되면서 이 영화는 절대 권력에 의한 지배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육체적인 힘과 수적인 우세에서 비롯되는 힘이 윤리적 도리를 앞서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이후부터는 경제적인 우위가 바로 절대 권력이 되는 21세기인 현재에 더욱 어울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사실상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무당과 고목으로 대변되는 무속 신앙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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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간난이가 구룡에게 ‘당신을 닮은 아이를 빚고 싶다’면서 정사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당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아니라 김기영 감독은 위와 같이 손을 어루만지는 장면으로 대체하고 있는데, 마치 아이를 빚기 위해 구룡의 신체를 익히려는 듯 구룡의 손을 어루만지는 장면은, 굉장히 은유 적이면서도 에로틱한 장면이었다.)


영화의 초반 구룡이 10형제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무당의 예언 때문에 10형제는 구룡에게 평생 콤플렉스를 겪고 경계하게 되고, (비록 10형제에 의해 간난이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있긴 했지만) 끝까지 고려장을 거부했던 구룡마저 마을에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위협해, 결국 노모를 선인봉에 버리고 오게 만드는 것도 다름 아닌 무당이었다. 10형제가 갖게 된 권력은 경제적 상황으로 인한 인위적인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무당의 권력은 이 마을 대대로 애초부터 갖고 있던 것으로서, 모두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왔던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 말미에 구룡이 고목과 무당을 쓰러트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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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은 <고려장>의 제작노트에서 ‘4.19때 학생은 고목을 쓰러뜨리는 데 104의 목숨을 잃었다’라고 언급하였는데, 이런 말에 비춰 본다면 <고려장>의 텍스트는 상당히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해석될 수 있다기 보다는, 그냥 ‘정치적인 텍스트다’라고 보는 것이 더 옳겠다), 당시 시대적 상황 상 검열을 염두 해 두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을 미뤄봤을 때 원시적이고 비현실적인 배경의 묘사는 이를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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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연이 역할을 맡은 아역 연기자 전영선 씨는 신상옥 감독의 1961년 작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그 유명한 옥희 역을 맡기도 했었다. 아역 연기자들의 연기를 연출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고려장>에 등장하는 아역 연기자들은 전영선 씨를 비롯해 모두들 비교적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이 영화가 맞나 하고 놀라게 된 것은 비단 메시지 적인 것 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세트 미술이나 장면의 묘사, 대사의 묘사 같은 것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옛날’영화라고는 믿기 힘든 연출이 등장한다. 일단 잘 알려졌다시피 김기영 감독은 미술 적인 면에 상당히 뛰어난 감독이라 할 수 있는데, <고려장>에서도 세트의 디자인이나 동선의 구성 등이 매우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거의 95% 이상이 세트에서 촬영되었는데, 구룡의 집이나 그 집 앞 마당, 그리고 10형제의 대장간, 고목이 위치한 마을 어귀, 그리고 선인봉으로 가는 산길 세트와 선인봉의 세트는 영화적으로도 그렇고, 미술 적인 면에서도 봐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뛰어난 감각이 묻어 나는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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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봉의 저 그로테스크한 세트는 지금 봐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해골들이 너무 하얀 것이 플라스틱인 티가 너무 나기도 하지만, 당시로서 저 정도로 괴기스런 세트를 한국영화에서 보여주었다는 자체가 놀랍다)


세트의 구조물을 통해 조명을 컨트롤 하는 것은 당시의 열악한 제작 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해골이 가득한 선인봉의 이미지는 괴기스런 음악과 더불어 그로테스크함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선인봉으로 올라가는 지그재그 형의 세트가 인상적이었는데, 효율적인 면에서도 캐릭터를 한 컷 만으로도 오래 담아내는 동시에, 구조물을 적절히 이용해 가며 전체적으로 장면에 리듬 감마저 부여하는 영리한 세트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고목이 있는 마을 세트 같은 경우는 사실상 별다른 구조물이 없는 연극 무대와 같은 단순한 세트이지만, 인물들의 배치와 카메라 앵글, 샷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만들어진 세트임을 뒤늦게 비로써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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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트는 아주 영리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일 구조물이지만 하나의 마스터 커트에서도, 돌아가도록 이동 경로가 설정되어 있는 것과 기둥들로 인해 다양한 움직임과 리듬감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세트이다. 김기영 감독은 영화 속에서도 이 세트를 비롯해 선인봉으로 올라가는 길로 만들어진 세트들을 쉽게 버리기 아까웠는지, 굳이 넣지 않아도 될 만한 장면들을 추가 시키면서 이 세트에 대한 노출 빈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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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김기영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 가운데 제작 연도는 가장 앞선 작품이지만 반대로 영상의 화질은 가장 좋은 편이다. <고려장>의 경우 이미 복원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제작 연도를 감안한다면 상당히 우수한 화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필름 일부가 유실되어 전체적으로 20분 정도 분량이 아무 장면 없이 사운드만 수록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는데, 그래도 이번 DVD의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함께 동봉 된 책자에 이 유실 부분에 대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담겨있어 조금 이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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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해설에는 김기영 감독에 대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영화 평론가 이연호씨와 <혈의 누>의 감독인 김대승 감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음성 해설은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김기영 감독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나누기도 했던 장본인인 이연호씨가 들려주는 영화의 뒷이야기와 영화에 관한 설명들은 <고려장>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 더없이 훌륭한 지침서로서 부족함이 없으며, 김대승 감독은 영화감독의 입장에서 장면에 대해 연출 방식이나 조명, 미술 등에 관한 도움말을 들려주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음성 해설과는 살짝 다르게 여기에 참여한 두 화자가 평론가로서(혹은 여자로서), 감독으로서(혹은 남자로서) 각각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 몇몇 장면이나 설정을 보는 방식이 다름에서 오는 두 사람 간의 의견 불일치는 오히려 신선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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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몇 번 씩 반복하여 리메이크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른바 ‘녀’시리즈로 불리는 <하녀>의 리메이크 작 들이 그것이다. 이번 DVD컬렉션에 포함된 <충녀>역시 <하녀>를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서 직접적으로는 역시 <하녀>의 리메이크 작인 <화녀>와 더욱 가까운 영화라 하겠다. 이는 <화녀>의 출연진인 남궁원, 윤여정, 전계현 씨가 그대로 <충녀>에도 등장하는 것에서도 유사 점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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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 영화에서 계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매번 등장한다. <충녀>에서도 첩의 딸인 이명자가 자신도 첩이 되고 마는 신분과 계급에 관한 의미와 마지막에 사건의 모든 것이 몰락하는 장소로도 등장하면서 김기영 감독의 계단에 관한 사랑(?)을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김기영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것 외에도 단순히 계단에서의 액션이 더욱 박력 있고 스릴러 적이라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충녀>에서 등장하는 명자는 <하녀>를 비롯한 다른 리메이크 작 과는 조금 다르게, 명자의 과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이를 통해 좀 더 명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있어 관객들로 하여금, 명자에게 좀 더 동정심을 유발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 역시 1972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보기 어려운 설정과 메시지, 장면들이 가득 담겨있다. 먼저 당시는 박정희 정권 하에 어느 시대보다 남성 성이 강조된 남성 우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시대를 완전히 뒤엎는 여성 상위의(남자 주인공인 김사장님(남궁원 분)의 모습은 이에 반해 너무 무기력하고 도피 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명자가 처음 호스티스가 되어 일하게 된 곳에서 보스로 군림하는 권력자도 여성인 마담(박정자 분)이며, 그녀가 첩이 된 뒤에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도 여전히 그 김사장이 아닌 본부인(전계현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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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에도 여전히 강한 여성의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박정자 씨의 연기도 인상적이고, 풋풋한 매력이 묻어 나는 사미자 씨의 젊은 시절 모습도 인상적이다. <충녀>가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시 한국 영화들이 대부분 전문 성우들의 더빙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해 <충녀>는 박정자 씨를 비롯해, 사미자, 윤여정 씨 등 대부분의 주연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배우가 직접 소화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시피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그 특이한 목소리를 너무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여성의 지배하는 권력 구조는 더 심화되어 등장하는데, 남편은 직업이 없고 무능하며, 사업 수단이 좋은 부인이 집안의 경제력을 지배하고, 이를 통해 가정 전체를 지배하며 심지어 나중에는 첩인 명자에게까지 월급까지 주면서 이를 모두 컨트롤 하는 모습은, 남편이 첩을 들인다고 하면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며불며 애원하는 일반적인 영화 속 본 부인의 모습에 비춰 봤을 때 상당히 파격적이고 인상적인 설정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또한 단순히 여성 우월을 넘어서서 여성이 남성을 사육하는 식의 설정은 당시 군사 정권하에서 만들어 졌다고는 믿기 힘든 설정들이다(이 같은 무기력한 남성을 여성이 사육한다는 설정은 <육식동물>같은 영화에서 정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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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은 이 영화에서 고비마다 중요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초반, 중반, 후반에 면도칼을 각각 등장 시키며 하나의 매개체를 통한 내러티브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하녀>와 마찬가지로 피아노가 등장하며, 김기영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 중에 하나 인 ‘쥐’도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충녀>를 보면서 가장 놀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70년대 영화 라고는 보기 힘든 세련된 디자인이다. 김사장과 본부인이 사는 2층 집은 물론 상당히 부잣집이라고는 하지만(김영진 평론가는 음성 해설에서 ‘초상류층’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세련된 조명 기구들과 벽지, 구조물들은 지금 봐도 별로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특히 명자가 사는 2층 집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놀라운데, 마치 요즘의 원룸을 보는 듯 한 구조와 벽지, 부엌과 거실이 뚫린 벽으로 연결되는 공간 디자인은 최근 개봉하는 영화의 세트로 쓰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된 미술 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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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대적인 세트 디자인은, 위에 걸려있는 컵과 조리 용구들과 마치 미술관처럼 벽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걸려있는 조명기, 그리고 윤여정의 알록달록한 의상과 맞물려 훌륭한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김기영 감독은 세트를 만들 때 공간의 깊이를 가장 중요하게 염두 해 두고 만든다고 하는데, 위의 장면처럼 인물을 원근 감 있게 배치하면서 그 깊이를 표현하면서도,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조명의 효과와 더불어 갖가지 소도구들을 굉장히 빡빡하고 많은 수를 배치하면서 넓은 공간임에도 무언가 답답하고 갇혀있는 듯 한 느낌도 연출해 내고 있다. 이 영화는 잘 보면 본 부인의 집보다는 명자의 아파트와 2층 집을 그릴 때 좀 더 많은 소도구를 배치하여 명자의 답답하고 억눌린 심리를 반영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녀>의 경우 같은 2층 집 안에서 1층과 2층 이라는 공간의 차이를 두고 계급과 두 여성 간의 대결 구도를 그려냈다면, <충녀>에서는 공간은 각자의 집으로 다르지만, 12시에는 남편을 본 부인에게 다시 돌려주고 혼자 남아야 한다는 시간의 제약으로 이 구조를 또 다르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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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본 부인의 2층 집과 명자의 집을 오가다 가도 가끔씩 현실의 서울 시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앞서 언급한 답답한 구조의 명자의 집과 극 하게 대비되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것과는 별개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여의도 광장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이채롭다.)


<충녀>는 초반에는 흔한 멜로 적인 요소가 등장하긴 하지만, 중반 부부터 치정 극으로 치닫기 시작하면서 점차 호러나 서스펜스에 가까운 연출을 보여준다. 특히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명자와 김사장 커플에게 이사와 함께 갑자기 아이가 생기면서 이런 극 변화는 더욱 더 가속도를 얻게 된다. 정말 영화 속에서 이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의 묘사들은 상당히 충격적인데,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묘사가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 들여졌을 지가 더 궁금하다. 젖먹이 아기가 쥐를 먹고 잎에 피를 잔뜩 묻히고 있는 장면은 정말 전 세계 영화사를 뒤져봐도 흔치 않은 극한 설정으로, 이후 쥐가 때로 등장하는 설정과 더불어 이 영화를 더욱 기이한 영화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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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판 위에 색색 사탕을 뿌려 넣고 벌이는 정사 장면의 연출은, 정말 당시에 저런 장면을 어떻게 떠올렸을까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미 적으로 상당히 우수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 바로 이어지는 사탕이 마구 흔들려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 외에, 거의 직접적으로 정사 장면이 묘사되는 영상도 담겨있는데, 아마도 당시 극장 상영 시에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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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DVD컬렉션에 수록된 <충녀>에는 붙박이로 스페인어 자막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이 판 본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화질 상태는 컬렉션에 수록된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잡티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가끔 씩 색이 변질되는 현상도 종종 일어난다. 화질의 아쉬움은 DVD영상 자체의 퀄리티와는 무관하게 보관된 필름의 상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이도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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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기 보다는 김기영 감독의 열혈 팬으로서 음성 해설에 참여한 봉준호 감독조차도 웃음을 참지 못하며, 도대체 어떤 의미로 저런 연출을 하셨는지 의아스럽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던 바로 그 문제의 장면. 피로를 풀어주겠다며 안마를 해주다가 갑자기 두 번 손으로 소리를 내는 제스처는 정말 컬트 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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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명자는 저렇게 찡그리듯 웃는 표정을 몇 차례 보여주는데, 이는 김기영 감독이 윤여정씨에게 직접적으로 지시한 하나의 연출이라고 한다. 얼마 전 회고전에 맞춰 EBS 시네마천국에서 있었던 윤여정 씨의 인터뷰에서도 전해들을 수 있었 듯이, 윤여정 씨는 영화 촬영 전에 김기영 감독의 집에서 합숙을 하다시피 했는데, 감독은 이 때 봐두었던 윤여정의 표정들을 캐치하여, 나중에 영화를 촬영할 때 그 때 지었던 표정, 뭐할 때 지었던 표정 하며, 직접적인 표정들을 요구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저 표정이 너무 의도적으로 드러나 약간 민망하기도 하지만, 분명 나름 매력이 느껴지는 표정과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충녀>에는 영화 평론가인 김영진 씨와 봉준호 감독이 음성 해설에 참여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 적인 면이나 뒷이야기들이 주가 되었던 <고려장>의 음성 해설과는 달리 <충녀>의 음성 해설은 장면에 대한 영화적 기법들과 연출의 의도, 미장센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나 봉준호 감독은 존경하는 감독으로서 김기영 감독이 만들어낸 인상적인 장면들과 구도, 설정 등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기도 한다. 또한 김영진 평론가와 얘기를 나누던 중 히치콕에게 ‘새’가 있다면 김기영에게는 ‘쥐’가 있다는 말과 함께 만약 히치콕이 살아서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면 분명히 충격을 받고 존경을 했을 것이라며(‘아마도’ 수준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다), 브뉘엘과 히치콕, 김기영 감독이 서로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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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리메이크 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육체의 약속>인데, 김기영 감독이 직접 밝힌 ‘원작의 30%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 불문율’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알려진 <만추>의 내용과 분위기와는(<만추>는 개인적으로도 물론 볼 수 없었으며,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유추해볼 뿐이다) 많이 다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기영 감독은 <육체의 약속>이라는 제목 답게 또 한 번 인물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남자와 여자의 관계, 여성이 남성에게 갖고 있는 피해 의식과 한 여성을 중심으로 매우 복잡한 심리와 인간성에 대해 직설적인 대사와 은유 적인 표현으로 만들어낸 김기영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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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약속>에서도 어김없이 김기영 감독의 인장 과도 같은 ‘계단’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하녀>나 <충녀>등에 비하면 단순히 등장하는 정도로 머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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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의 소도구에 대한 애정은 가히 집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특히 소도구 들을 통한 복선과 의미 전달 방법이 강하고 반복 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계를 비롯해 거울이나 사탕 등의 도구들을 이용해 은유 적으로 이 영화를 꿰뚫고 있는 주인공 여자의 심리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도구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김기영 감독은 영화에 쓰인 소품이나 소도구들을 본인의 집에 모두 가져다 쌓아 놨다고 하는데, 아들 분께서도 평소에 저 많은 걸 나중에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택 화제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소품도 모두 불에 타 없어졌는데,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도 결국 소도구들을 모두 가져가신 것 같다고 하는 말이 인상 깊게 들렸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대부분 정상적이지 않다고(혹은 극적으로 솔직하다고)볼 수 있는데, <육체의 약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여성들을 종족 번식을 위한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맨스나 사랑 따위는 아예 없으며, 오로지 종족 증식을 위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기며 죄 의식은 전혀 없이 섹스를 위해 달려들고 행위가 끝나면 버리고 마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이 영화에서는 이런 설정들을 인간적으로 보기 보다는 동물의 행위에 가깝게 연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영화 속 정사 장면들이 인간들의 ‘섹스’로 느껴지기 보다는 동물들의 ‘교배’에 더욱 의미가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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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기영 감독은 이렇게 격자 구조의 창틀이 라던가 창살이 있는 창문 구조를 의도적으로 삽입하여, 어딘 가에 갇혀 있고 격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과, 여자 주인공의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지 못하고 남성의 도구로만 사용되는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는 3개의 플래시백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띄고 있다. 이미 남편과 아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기차를 타고 여수로 내려가면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구조인데, 이 세 가지의 플래시백은 아주 밀접한 연관을 띄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그 다음 에피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고 확장되는 와중에 여자 주인공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리고 그 사건들이 다음 에피소드에 어떻게 작용하게 되었는 지를 염두 해 두고 영화를 보면 이 영화의 내러티브에 좀 더 집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거울이나 사탕, 시계 등의 소도구가 중요한 의미의 전달 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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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이나 <충녀>등에서 김기영 감독만의 세트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다면 <육체의 약속>에서는 로케이션에서의 미장센을 다루는 연출 방법을 만나볼 수 있다. <육체의 약속>은 실제로 세트에서 촬영한 장면이 거의 없는 편이고, 대부분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촬영 되었거나 야외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많은데,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도(더군다나 별로 움직임 없이 인물들이 고정되어 있음에도) 지루하지 않게 인물들을 잡아내는 구도는 아주 인상적이다. 특히 창에 서려있는 서리들이 녹아내리면서 마치 여자 주인공이 흘리는 눈물처럼 묘사되거나, 배우들의 연기 만으로 열차가 덜컹 하는 효과를 내는 기본적인 트릭 같은 것은, 어쩌면 상투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한정된 공간 내에서 충분히 변화의 요소로 훌륭히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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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사탕은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반복 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거울이 그 곳에 원래 있었는지, 아니면 주인공이 스스로 꺼내 들었는지, 사탕을 언제 먹었는지, 누가 먹여 주는지, 뱉었는지 등등 각 장면과 방식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해석되고 주인공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고(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김지미 씨의 대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여자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등장하는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다. 정성일 평론가는 그럼에도 김지미 씨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가 그녀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기 중 하나라고 평했는데, 대사 없이도 이렇듯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배경에는 물론 김기영 감독의 치밀한 연기 디렉팅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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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의 작품에는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장면이 없다. <육체의 약속>에서는 영화의 거의 말미에 가서 이른바 ‘최후의 만찬’식의 식사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세 인물은 ‘먹는다’라기 보다는 ‘보충 한다’에 가까울 정도로 미친 듯이 먹어 댄다(정성일 씨는 ‘쳐 먹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지속적으로 깔려 있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과 유사 점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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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컬렉션에 포함된 <육체의 약속>의 화질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필름이 유실 된 부분도 없으며, 크게 색의 변질이 일어나는 점도 없고, 잡티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사실 이런 영화의 화질을 논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의미를 따져본다 하더라도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육체의 약속> 역시 음성 해설을 수록하고 있는데, 네 작품 중 유일하게 두 명이 아닌 정성일 평론가의 단독 음성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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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름으로만 들었었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에 절정에 달했을 때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은, 그 시대를 함께 하지 못했던 다음 세대의 관객으로서 무척 반가운 일일 것이다. 김지미 씨도 그렇고, 이정길 씨나, 다른 작품에 출연했었던 김진규, 남궁원 씨 같은 배우들이 왜 세대를 넘긴 지금까지도 이름으로 나마 전해지고 있는지, 그들의 당시 연기를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혹자가 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는 ‘정성일 씨와 정성일 외로 나뉜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를 적극 공감할 정도로 엄청난 분석과 깊이가 담긴 음성 해설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겠다. 본 <육체의 약속> DVD 리뷰를 쓰면서도 정성일 씨의 음성 해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장면과 설정 하나 하나의 의미를 분석적으로 파고드는 정성일 영화 평론가의 음성 해설은, 어쩌면 이 영화에 숨겨진 상징과 은유 들을 많은 부분 그냥 놓치고 말았을 부족함을 완벽하게 채워주는(그래서 영화 자체가 더욱 완벽하게 느껴지는) 훌륭한 음성 해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말미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전문가들이 참여한 음성 해설 트랙만으로도 이번 김기영 컬렉션 DVD는 높은 소장 가치를 보장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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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한국 영화계는 외화 쿼터를 채우기 위해(한국 영화 몇 편을 만들면 외국영화 1편을 수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문예 영화라고 해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곤 했는데, 1977년 작인 <이어도>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이청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이런 문예 영화는 말 그대로 쿼터를 채우기 위한 의무적인 영화였기 때문에 감독에게 있어서 흥행의 부담 없이 만들 수 있는 이점이 있기도 했는데, 김기영 감독은 여기 서도 자신 만의 색깔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그의 또 다른 걸작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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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영화들에서도 한정된 공간과 극한의 상황 속에 놓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김기영 감독은 <이어도>에서는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제한을 통해 본격적으로 고립되고, 또한 <고려장>처럼 원시적이고 무속 신앙이 지배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역시 번식에 관한 집착과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어도>는 <육체의 약속>처럼 플래시백이 사용된 영화이지만, <육체의 약속>이 정해진 플래시백에 따라 다음 내러티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것에 비해, <이어도>에서 사용된 플래시백은 그 수도 잦고 무엇보다 큰 하나의 플래시백 안에 여러 개의 플래시백이 반복해서 존재하는 혼란 스런 구조를 갖고 있다. 사건에 진행에 따라 플래시백이 등장 한다 기 보다는 인물이 등장한 뒤 그 인물이 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쓰여지기 때문에 시점이나 시기 등이 뒤죽박죽 섞여있어 자칫 집중하지 않으면 전개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보통 영화 같으면(특히 스릴러나 서스펜스 영화 같은 경우), 이러한 플래시백들을 내러티브의 연결 상 상당히 비중 있게 관찰해야 하지만, 어쩌면 김기영 식 영화에서는 영화의 주요 인물이 되는 ‘천남석’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라는 것 보다는 감독이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는 지배 구조나 종족 번식의 본능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영화를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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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당시 영화로는 드물게(드물게 라기 보다는 거의 유일하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환경오염에 관한 설정이 비교적 자세히 되어 있다. 당시는 군사 정권 하에 오로지 개발에만 신경 쓰던 근대화 시기임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사실상 그 당시에는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던 문제라고 생각되는 공해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1977년 작에서 들고 나왔다는 사실은, 환경오염으로 고통 받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으로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수질 오염으로 인해 죽어간 물고기 들이나 야심차게 준비했던 전복 양식 업이 오염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는 것, 폐타이어들이 쌓여 있는 공터의 모습 등 근대화의 발전 논리에 의해 나타난 환경오염이 만들어낸 공허함을 짧은 시간이지만 정확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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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에서는 유난히 푸른 빛의 라이팅이 된 장면들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검은색과 파란색의 조화는 스산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내 인물들마저 그런 분위기가 풍기도록 하고 있으며, 반대로 무당의 옷이나 술집 여자의 옷처럼 빨간 색이 더 돋보이는 효과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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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촬영 기법도 자주 쓰이고 있는데, 정일성 촬영 감독은 문이나 인물의 뒷모습, 구조물, 조명 등을 이용해 장면 내에서 일부분을 잘라버리면서 또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즐겨 쓰고 있다.)


이번 DVD에 수록된 평론가나 감독들의 음성 해설을 들어봐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감독들이 김기영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 보면, 내러티브의 자연스런 전환에도 어울리지 않는 쇼트들이 너무 많고, 너무 엉뚱한 설정들이 난데없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으며, 도대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과장, 과잉에 표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대놓고 막 가버리는 식이다. 편집 같은 부분에서도 그렇고, 너무 나도 눈빛만이 지나치게 강조된 연기 들도 그렇고 일반적이라면 잘못된 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김기영 감독은 오히려 이 같은 점을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그것도 자신의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일관되게 표현해 왔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그 만의 스타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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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씨가 굿을 하는 이 장면은, 본인이 나중에 보아도 참 그 때 잘했다는 생각을 하셨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였다. 박정자 씨는 김기영 감독의 작품의 여럿 출연하였지만 아마도 <이어도>에서의 무당 연기가 가장 인상 깊지 않았나 싶다.)


<이어도>를 보면서 또 놀랐던 점은 세트의 마술사라고 불리 우는 김기영 감독이 로케이션에서도 엄청난 장면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김기영 감독이 풀을 보고 이리 누우라면 풀들이 이리 눕고, 바람을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불어오라면 그리 불고, 파도를 어찌 치라면 어찌 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 현상들을 영화 속에 너무 나도 완벽하게 녹여내는 장면들을 볼 때, 영화의 내용 적인 기이함을 떠나서 미 적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그런 장면들은 아마도 오랜 시간의 기다림에 끝에 만들어진 일종의 노력에 의한 장면이겠지만, 하나의 장면으로 접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놀라운 미 적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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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옷과 우산을 쓴 술집 여인이 섬을 거니는 장면인데, 그야말로 어느 것이 하늘 빛이고 어느 것이 바다 빛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파란 색의 배경과 그 속에 자리 잡은 강렬한 빨간 색이 인상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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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민자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중의 하나인데, 바닷물이 바람에 의해 빛을 발하며 이는 장면은 정말 보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웠다. 캡쳐 화면으로는 이 장면이 주는 놀라움에 반에 반도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90년대 후반 ‘컬트’라는 개념이 국내에서 급속도로 인기를 끌면서 나중에 컬트 감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의 모든 작품이 기이하고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어도> 후반 부에 시체가 등장하는 시퀀스부터의 장면들은, 정말로 가장 기이하면서도 컬트 적인 요소가 넘쳐 나는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무당이 굿을 해 영혼도 아닌 시체를 직접적으로 불러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시체의 씨를 받아 아이를 얻기 위해 시체의 성기에 관을 꽂아 산 사람과 시체가 섹스를 벌이는 이 장면에서는, 정말 ‘와’하는 짧은 탄성과 함께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못한 채 바라볼 수밖에는 없을 정도로 상상을 뛰어넘는 충격을 받았다. 2008년에 본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데 이것이 1977년 도에 만든 작품이라니 당시에 이를 심의한 검열관들의 표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물론 이 장면은 검열에서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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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비롯해 <이어도>에서는 광각으로 담아낸 몇몇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런 광각 렌즈를 통한 장면들은 극의 기이함을 더욱 증폭시켜 주고 있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서는 유독 여배우들이 큰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어도>에 출연한 이화시 씨만큼 인상적인 마스크를 보여준 여배우는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이화시 씨의 얼굴은 그 과장된 눈빛 연기와 함께 스산함과 기이함을 전달하는 탓에, <이어도>를 보고 나면 영화의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얼굴 만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당시 7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마스크로서 보편적인 여배우들의 인상과는 너무도 다른 얼굴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때문에 ‘퇴폐 적’이라는 공식 이유를 들어 활동하는 데에도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이 모든 작품들이 이런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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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의 모든 것은 다 잊어도 이화시 씨의 저 표정은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잊고 싶어도 잊혀 지지 않을 거 같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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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도 역시 만족할 만한 화질이라 할 수 있겠는데, 물론 가끔 잡티가 있긴 하지만 제작 년도를 감안한다면 이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음성 해설에는 김영진 평론가와 <킬리만자로>를 연출한 오승욱 감독이 참여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이어도>라는 영화에 장면마다 집중하기 보다는 김기영 감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후반부의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 할 때 이들이 반응을 보는 것도 또 다른 흥미 거리라 하겠다.


다른 세 작품은 모두 서플먼트로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등 추가 영상이 있던 것에 비해 <이어도> 디스크에는 추가 영상 없이 사진 자료 모음만이 담겨있다(앞서 작품을 이야기할 때 언급을 안 한 것 같은데, 다른 세 작품의 디스크에도 모두 사진 자료 모음이 서플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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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DVD 컬레션에는 <이어도>가 담긴 디스크를 제외하면 모두 각각 다큐멘터리 영상을 하나 씩 수록하고 있는데, 이 영상들은 김기영 감독의 세계를 좀 더 자세하고 이해하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생전의 각종 에피소드들을 전해들을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져 있다. 특히 김기영 감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DVD컬렉션에 수록된 네 작품 외에 다른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나 김기영 감독에 대한 연대기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유익한 영상이 될 듯하다. <고려장>이 수록된 디스크에 포함된 다큐멘터리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는 최근 열렸던 ‘김기영 감독 전작전’에서도 상영이 되었던 것으로 김홍준 감독이 만든 48분 분량의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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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에서는 현재 한창 활동 중인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송일곤, 김지운, 박진표, 장준환, 변영주, 김대승 감독 등 여러 명의 감독들이 각자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나 그의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그리고 만약 김기영 감독이 살아 계셨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한 답변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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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는 48분으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긴 하지만 여러 감독들이 들려주는 에피소드들을 듣다 보면 시간이 언제 지나갔었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졌던 경험이 있던 송일곤 감독이 전해주는 이야기에서는 강한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의 김기영 감독의 모습을 전해들을 수 있고, 근처에 살았던 관계로 김기영 감독이 돌아가신 자택의 화제 현장을 지나칠 수 있었던 김지운 감독이 추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도 전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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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녀>가 수록된 두 번째 디스크에는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제작한 36분 분량의 [김기영이 김기영을 말하다]가 수록되었다. 이 영상은 김기영 감독 자택에서 진행된 것으로 영상 내내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기영 감독 본인이 직접 들려주는 자신이 영화를 하게 된 계기나,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시금 젊은 세대 들에게 컬트영화로서 인기를 얻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그의 중 저음의 독특한 목소리와 더불어 이제는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는 그의 인터뷰 영상이라는 점에서 높은 소장 가치가 있는 영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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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약속>이 수록된 세 번째 디스크에는 역시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제작한 [김기영 감독 다큐멘터리]가 수록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의 예술인을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 중 하나로, 1997년 당시 제 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회고전을 갖기도 했던 시기에 제작된 영상이다. 이 영상에는 먼저 제 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영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박정자 씨, 안성기 씨 등이 참석한 기자회견장 모습을 담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40년 동안 영화를 만들어 온 원로 감독이 특별 전을 처음으로 여는데, 모르긴 몰라도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수많은 후배 감독들 가운데 어쩌면 임권택 감독 한 명만이 참석할 수 있냐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는 정일성 촬영 감독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오히려 이 유명한 업계의 스타들을 모두 자신의 영화에서 배출해 냈다는 자부심이 든다며 상관없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김기영 감독의 대꾸도 인상적이었다. 이 영상에는 상당 부분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김기영이 김기영을 말하다> 다큐와 중복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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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이번 ‘김기영 컬렉션’ DVD는 무엇보다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된 영화들이 모두 애너모픽 와이드 화면으로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겠다. 기존에 고전 영화들이 DVD로 출시되는 경우 4:3 비율로 출시가 되거나 비 애너모픽으로 출시되는 경우가 많아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네 작품 모두가 애너모픽 와이드 영상으로 수록된 점은 또 한 번 이 컬렉션의 소장가치를 높이고 있다.


네 편의 영화 모두 본편에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자막이 수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성해설에도 한국어, 영어 자막이 수록되어 있어 한국영화에 관심있어 하는 외국인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으며, 앞서 <고려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되었던 것처럼 별도의 해설 책자가 포함되어 있어, 유실된 부분의 시나리오라던가 감독의 연보, 작품의 대한 줄거리와 비평 등을 만나볼 수 있다(이 책자는 또한 영문판으로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번 ‘김기영 컬렉션’ DVD를 리뷰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그의 신작을 이제는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앞선 세대의 감독으로서 동시대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어찌 보면 불가항력 적인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1998년 화재로 돌아가시기 직전 까지도 <하녀>의 또 다른 리메이크작인 <악녀>를 준비하면서, 반드시 올해 안에 멋지게 선보이겠다고 아이처럼 흥분하며 말씀하시던 영상 속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이 대감독의 작품을 동시대에서 만나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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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무엇보다 그의 작품을 지금에나 마 DVD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도 다행스럽게 느껴지며(소장가치를 평하는 점수가 10점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아쉽다), 앞으로 이 네 작품 외에 <하녀>의 디지털 복원작과 더불어 제 2의, 제 3의 김기영 컬렉션도 차근차근 출시되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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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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