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유쾌하고 맛있는 삶의 진리

독립영화와 TV드라마를 통해 주목 받았던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남극의 쉐프’는, 일단 제목에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남극이라는 특수한 공간, 영화 속에서는 주로 고립으로 인한 공포의 대상이거나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스릴러 적인 공간으로 자주 등장하곤 하는 남극이라는 공간과 요리를 만드는 쉐프(Chef)와의 공존이라니, 무언가 이 부딪힘 에서는 묘한 스파크가 발생한다. 이 영화가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남극의 쉐프라는 이 이야기가 잘짜여진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 인물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인데, 극중 주인공의 이름과도 같은 니시무라 준은 실제로 남극관측 대원으로서 기지에서 조리를 담당했던 조리사였다. 영화는 바로 이 니시무라 준이 쓴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그야말로 남극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겪는 특별한 이야기가 그려질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영화는 의외로 요리사라는 직업에 장점을 적극 활용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도구 그 이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요리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이자 소재가 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제3자가 아니라 요리사인 니시무라 준이 직접 썼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담담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남극 기지에서 일했던 다른 대원이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면, 매번 특별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주목하여 이야기를 써내려 갔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요리를 만든 장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든 요리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반응이나 그 과정 등을 전체적인 남극이라는, 그리고 그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극의 쉐프’는 휴먼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과 템포가 깊게 드리워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일본 영화에는 그들 만의 특별한 리듬과 템포, 그리고 소소함과 담담함이 존재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일본영화만의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빠르고 자극적인 리듬에 익숙한 이들의 경우, 이렇게 굴곡이 많지 않고 참 담담하기만 한 (가끔 무덤덤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본 영화의 매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남극의 쉐프’의 매력에 또 한 번 빠져들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남극의 쉐프’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한정된 공간에서 여덟 명의 남자들이 벌이는 분명한 캐릭터 영화이자, 결국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일곱 명의 남자 캐릭터들은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이 비교적 많은 편이 아님에도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할당량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으며, 이것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재미인 유머러스 한 부분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매우 직접적인 가족 영화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단편적으로는 고립된 공간에서 서로를 만날 수 없는 가족 구성원들의 애환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여덟 명의 남자 캐릭터들에게는 모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특징적 역할이 주어져 있기도 하다.




‘남극의 쉐프’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처럼, 보고 나면 무언가 삶에 대해 깊게 여운이 남게 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니시무라 준도 그렇고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굉장히 담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런 담담함을 쭉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여운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담담한 연기에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카이 마코토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아, 물론 다른 7명의 배우들과의 이른바 ‘단체 연기’가 더욱 핵심적인 요인인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 일 듯. 어쨌든 이 영화는 관객을 일부러 심하게 웃기려고 하지 않지만 웃게 되고, 억지로 울리려고 하지도 않지만 찡하게 만드는 매력을 갖은 작품이다. 즉, ‘남극의 쉐프’라는 특수한 상황이나 설정에서 오는 에피소드적 재미만으로 흘려 보내기엔 참 괜찮은 작품이라는 얘기.

DVD 메뉴






DVD Quality

1.85: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 DVD답게 훌륭한 편이다. 이 작품처럼 드라마 장르이면서 특히 일본 영화일 경우 화질 면에서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타이틀들이 많은데 ? 물론 이런 가장 큰 이유는 DVD자체의 화질의 문제라기보단 원 소스의 화질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 그에 반해 ‘남극의 쉐프’는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블루레이 위주의 감상 환경이라면 각각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업스케일링을 통해 DVD를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렇게 볼 경우 40인치 정도의 큰 화면으로 볼 때에도 비교적 DVD치고는 큰 부담이 없는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화질 자체가 감상을 좌우하는 타이틀은 아니지만, 클로즈 업의 디테일도 좋고 영화 속 맛깔스러운 요리들도 ‘정말’ 먹음직스럽게 보일 정도로 표현력이 좋은 편이다.





사운드의 경우 돌비 2.0만을 제공하고 있는데, 사실 5.1채널이 제공되었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로 5.1채널이 수록되었더라면 좀 과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화질도 그렇지만 음질 역시 주요 포인트는 아니기 때문에 2.0채널 만을 지원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사 전달에도 무리가 없으며 사운드 적인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2.0채널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다.




DVD Special Features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남극의 쉐프’ DVD는 Special Edition답게 풍부한 부가영상이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다. 간단히 얘기해서 음성해설을 제외하고는 다 수록되었다고 봐도 무리 없을 정도. 최근 블루레이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SE 타이틀 다운 DVD의 부가영상들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는데, 이런 저런 편집이 많지 않은 제법 긴 분량의 제작과정 영상과 시사회, 무대인사 스케치, 토크쇼, 음악에 관한 제작과정 등 영화를 재미있게 본 이들이라면 모두 흥미롭게 즐길 만한 부가영상들이 가득 수록되었다.





‘남극의 쉐프가 만들어지기까지 월동생활 전반전’에서는 주로 극중 돔후지 기지의 세트가 있었던 로케이션지에서의 촬영 분량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남극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도 배우들이 추위와 싸워야 했을 만큼의 추운 날씨 속에서 벌어진 촬영장 뒷얘기와 더불어, 실제 남극처럼 보이기 위해 동원된 세트나 장치들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남극의 쉐프’의 첫 촬영이 바로 이 부분부터였는데, 그래서인지 나중에 후반부나 시사회에서의 모습들과 비교하면, 배우들이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친해졌는지를 확인해볼 수도 있다.




‘남극의 쉐프가 만들어지기까지 월동생활 후반전’ 에서는 주로 세트 촬영 분에 관한 장면들과, 주인공을 연기한 사카이 마사토가 남극의 쉐프로서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요리를 배우는 과정 등이 담겨 있다. 누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절로 찾게 될 정도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정말 쉐프가 만든 것 같이 먹음직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었는데, 이는 모두 ‘카모메 식당’ ‘안경’ 등으로 유명한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오미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를 능청스럽게 연기한 사카이 마사토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또한 7명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촬영장 뒷모습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하는지, 이 뒷이야기가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을 정도다. 특히 모토씨 역할을 맡은 나마세 카즈히사의 경우,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로서 대장역의 기타로와 함께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현장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미수록 & 다른 테이크’는 제목 그대로 본편과는 다르거나 수록되지 않은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이라면, 본편에서는 공항 장면 이후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에 반해, 덥수룩해진 머리와 수염을 정리하기 위해 니시무라가 가족들과 함께 이발소를 찾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미엄 시사회’에서는 2009년 7월 27일 ‘르 테아토르 긴자’에서 가졌던 프리미엄 시사회 현장을 담고 있는데, 처음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라 긴장된 감독과 배우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수록된 토크쇼와 무대 인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나마세 카즈히사와 키타로의 만담은, 이번 타이틀의 부가영상의 백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두 중견 배우가 격이 없이 펼치는 만담들 덕에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관련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개봉일 무대인사’에서는 프리미엄 시사회와는 다르게 감독을 비롯해 출연한 여덟 명의 배우들이 모두 참석해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데, 물론 여기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나마세 카즈히사다. 의외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다른 대부분의 배우들 덕에, 나마세와 기타로 두 중견 배우가 나름의 짐을 짊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극중에서 니시무라의 딸 유카 역할로 출연했던 오노 카린 양이 스페셜 게스트로 등장한다.


‘영화 개봉 기념 토크쇼’를 비롯해 ‘남극의 쉐프 음악 제작 과정’과 ‘가족의 테마’는 모두 영화 음악에 대한 부가영상을 담고 있다. ‘남극의 쉐프’의 영화 음악은 일본의 밴드 유니콘 (Unicorn)’ 출신의 뮤지션 아베 요시하루가 맡고 있는데, 무겁지 않은 분위기의 영화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녹음 과정 등이 수록되었다. 휘파람 연주가 돋보이는 테마 곡의 녹음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38차 남극지역 관측대인 돔후지 기지로 가는 길’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바로 그 진짜 돔후지 기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영상이 극중 ‘통칭 본’으로 불리는 대원이 촬영한 영상이라는 점이다. 실제 영화 세트와 너무도 흡사한 모습들과 남극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오로라 마저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데뷔작 ‘남극의 쉐프’는 추운 남극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따뜻한 감성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소소하고 담담한 매력에 빠지길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아,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반드시 무엇이든 먹고 싶어질 테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편이 좋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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