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 줄리아 (Julie & Julia, 2009)
꿈 그리고 동반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을 연출한 노라 애프런 감독의 2009년 작 <줄리 앤 줄리아>는 아무래도 연출을 맡은 그녀의 이름보다는 주연을 맡은 두 여배우의 이름이 더 솔깃 하는 작품이다. 노라 애프런의 전작들이 특히 별로였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두 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 소설이 있는)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것이 고스란히 그녀의 공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역시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아니 유일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두 명의 배우 때문이었다. 아마도 현존하는 여배우들 가운데 연기 내공으로 따지자면 동사서독 쯤 될 메릴 스트립과 평범한 듯 하지만 자신 만의 영역을 점점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에이미 아담스가 그 주인공이다. 잘 알다시피 이 두 배우는 이미 2008년작 <다우트>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있는데(참고로 <줄리 앤 줄리아>는 이 두 배우가 같이 연기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때와 이번 작품의 양상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메릴 스트립의 실로 무시무시한 연기력과 이를 맞서 겨루기보단 다른 방식의 영리한 연기를 선보이는 에이미 아담스의 모습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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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 배우가 좋아서 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감상이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이야기에도 제법 감동하고 나온 경우였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쉽게 접하기 힘든 독특한 이야기 인 것은 또 아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매우 전형적이진 않지만 어쨋든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이야기이고 별다른 클라이맥스도 존재하지 않는, 스토리상으로는 제법 심심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되게 우스운건 몹쓸 감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극중 인물처럼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별 것 아닐 것 같은 장면에서 뭉클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전설의 프랑스 요리 셰프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의 이야기와 뉴욕을 살아가는 평범한 공무원인 '줄리(에이미 아담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두 이야기는 다른 세대와 시간의 이야기이지만, 줄리가 동경하는 줄리아의 이야기는 줄리가 막 요리 블로거로서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서 동일하게 시작된다. 즉 줄리에게 줄리아는 영웅같은 닮고 싶은 존재이지만, 영화의 구성상은 줄리아 역시 줄리처럼 이제 먹 요리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함께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교훈은 사실 별다를 것이 없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었다'가 될 수도 있겠고, '시련 없는 성공은 없다'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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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마도 노라 애프런이 말하고 싶었던 깊은 뜻은 이런 전형적인 교훈적 메시지보다는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옆에서 항상 아무말 없이 지켜봐 주는 그들의 동반자다. 이 둘에게는 자신이 미국인들을 위한 프랑스 요리 책을 완성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있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블로깅을 응원해주는 남편이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 이야기는 줄리가 줄리아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줄리 부부가 줄리아 부부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을 듯 싶다. 물론 이제 막 요리를 배우고 책을 써가는 줄리아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의 남편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된다(여기서 완벽이란 경제적 능력 따위가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고 지원하는 동반자로서의 의미다). 그에 반해 줄리는 열심한 블로깅 가운데서도 가끔 흔들리기도 하는 한편, 그의 남편 역시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줄리를 응원하는 듯 하지만 너무 블로깅에만 몰두하는 줄리에게 질투섞인 투정을 부리고 다투기도 한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얼핏보면 줄리아 부부에겐 커다란 힘든 일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저 줄리아의 호탕하고 기분 좋아지는 '호호' 웃음처럼 이들 부부에겐 항상 좋은 일만, 설령 좋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항상 긍정적 마인드로 모든 것을 이겨내는 듯 보이기도 한다. 분명 이런 긍정적 마인드는 줄리아에게 있어 지배적인 것이긴 하지만, 영화는 길지는 않지만 이들의 역경을 잠깐이나마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줄리아는 임신을 했다는 동생이 연락에 말없이 눈물 흘리는 것으로 봐서 (그리고 자녀가 없는 것으로 봐서) 자녀를 갖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 듯하고, 남편 역시 항상 아무 일 없는 듯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국가에게 불려가 의심받고 조사를 받는 등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련을 딱 이렇게 스쳐가듯 한 장면으로만 묘사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임팩트가 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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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나름 가깝게 다가왔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블로그와 서른이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영화 속에서 흔히 불만족스러운 현실과 정체된 삶 등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이 작품에서 역시 서른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에 비해 작아만 지는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나는 무얼 잘하고, 무엇을 해야할까'하는 고민을 스무살 시절과는 또 다르게 고민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보니 영화 속 서른이 다가왔다기보다는 그 서른에 시작하는 것이 블로그여서 인듯 하다.

극 중 줄리가 블로그를 처음 만들고 목표를 잡고 블로그 이름을 짓고, 개설 버튼을 누르는 과정을 보며 새삼 내 블로그를 처음 만들던 그 시절이 떠올랐달까. 그것과 동시에 나는 처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가 하는 회상에 잠기게도 되고,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블로그를 이용하고 혹은 즐기고 있나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과연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듣고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그 때, 처음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 주었을 때, 방문자 수가 점점 늘었을 때 등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겪게 되었던 소소한 감정들을 직접적인 장면으로 만나니 이것 참 새롭고 한편으론 감격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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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잘한다 못한다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린지 이미 백만년 전의 일이니 추가할 말이 많진 않겠지만, 관객들은 또 한 번 그녀가 부리는 마법에 농락되어 메릴 스트립 = 줄리아 차일드를 그대로 믿게 되어버린다. 그 특유의 억양이나 발음 등은(아마도 실존 인물인 줄리아 차일드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척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절로 미소짓게 될 정도였으니, 메릴 스트립이 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야 더 할말이 있을까(이야기의 반절만 맡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에이미 아담스 역시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라 그런지 메릴 스트립과 투 톱으로 진행된 작품에서도 그럭저럭 선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메릴 스트립처럼 압도하는 연기는 아니었지만 현실적이고 있을 법한 줄리라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뇌리에서는 <마법에 걸린 사랑>에서의 공주옷이 지워지질 않아서인지 너무 평범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에이미 아담스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배우만 믿고 보러 갔다가 찔끔 감동마저 받고 온 그런 영화였다.


1. 이 영화가 끝나고서는 저녁으로 맛있는 걸 먹으러 갔었습니다. 안 갈 수 없는 영화였죠 ㅎ
2. 이 영화가 또 한 번 찡했던 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온 실제 주인공들의 에필로그 자막 때문이었는데, 줄리아는 언제 세상을 뜨고 그 후 몇년 뒤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는 자막이 특히나 슬펐던 이유는, 줄리아가 먼저 떠난 뒤 몇년을 남편은 얼마나 외롭게 보냈을까가 절로 걱정되서였어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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