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트 (Doubt, 2008)
신앙과도 같은 의심의 나약함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이 작품 <다우트>는 정말로 오로지 이 배우들의 이름들만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던 영화였다. 최근 <맘마 미아!>를 통해 수준급의 노래실력과 색다른 연기변신을 통해 역시 헐리웃 최고의 명배우임을 새삼 확인시켰던 메릴 스트립과 <카포티>로 비로소 더 큰 인정을 받게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카포티>이전에도 그의 연기는 항상 최고였다), 그리고 <준벅>과 <마법에 걸린 사랑>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에이미 아담스까지. 이 영화 <다우트>는 원작인 연극을 전혀 모르더라도 이들만 믿고 선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고, 결과적으로도 그랬다. 그리고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바로 '의심'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을 통해 매우 효과적이고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성니콜라스'라는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교구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며,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수녀가 교장을 맡고 있으며,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는 이 곳의 주임신부이며,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 역시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교훈으로 삼는 무서운 교장이자 의심이 많은 수녀이고 이에 반해 플린 신부는 술을 즐기고 아이들과도 격없이 지내는 것들에서 알 수 있듯 상당히 진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제임스 수녀는 말그대로 주께 모든것을 바치기로 종신서원을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듯한 순수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날 플린 신부는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론을 하게 되는데, 모든 일에 날이 서 있는 듯한 알로이시스 수녀는 왜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플린 신부가 강론을 했을지,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이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임스 수녀조차 플린 신부가 학교에 새로 전학온 유일한 흑인학생인 도널드와의 관계를 서서히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은 이 세 인물의 갈등구조에 있다.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또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는 인물들 간의 세력다툼과 갈등에 대한 묘사가 몹시도 매력적이다.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진보적 성향의 플린 신부는 어찌보면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정확한 상하관계는 아니지만 신부와 수녀의 관계이면서도 한편으론 학교의 교장으로서 더 높은 지위임을 확인시키려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이에 은근히 신부로서 수녀에게 지지 않으려는 플린 신부의 미묘한 밀고 당기기는 교장실을 배경으로한 장면에서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다. 설탕 같이 단 것은 죄악시 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설탕을 무려 3개나 타서 먹는 플린 신부, 연필을 고수하는 수녀와 볼펜을 선호하는 신부, 교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교장의 자리인(그러니까 알로이시스 수녀의 자리인) 곳에 앉는 신부와 이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생각하다가 플린 신부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마자 냉큼 자리에 앉는 수녀의 모습까지.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소소한 표현들만 봐도 이 두 인물이 얼마나 다른 캐릭터인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자신 만의 세계가 확고한 이 두 인물 사이에 놓인 순수한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도 매우 흥미롭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제임스 수녀답게 그는 이 두 인물 사이에서 몹시도 갈팡질팡 한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플린 신부를 함께 의심했다가 플린 신부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고서는 다시 알로이시스 수녀를 의심하게 된다.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는 본인 스스로의 능동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 간의 힘겨루기에 있어 중요한 캐스팅보트로 작용되고 있기도 하다. 둘의 의견 중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자적 입장인 제임스  수녀를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려 드는 것이다. 결국 제임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진심에 서게 되지만, 그렇다고 플린 신부가 일종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 <다우트>가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제목인 '의심'에만 집중할 뿐 '진실' 자체에는 그리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다. 스릴러였다면 바로 그 진실에 집중해서 플린 신부가 정말 도널드를 비롯해 예전 교구에서도 그렇고 무슨 문제를 일으켰던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으로 인한 오해였던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마무리했겠지만, <다우트>는 진실 자체보다는 제목처럼 '의심'이라는 것에 더 큰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보다는 의심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도널드의 어머니인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과 알로이시스 수녀의 대화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플린 신부를 의심하는 수녀의 말에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반적인 대답으로 대응하던 밀러 부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플린 신부의 잘못을 얘기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결국 본심을 이야기하고 만다. 그 본심인 즉슨 플린 신부가 실제로 아이를 유혹했던 그렇지 않았던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널드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이미 여러 학교들을 전학다녔었고, 성 니콜라스 학교를 졸업하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조금만 더 서로 눈감고 지내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 그리고 플린 신부가 아이를 유혹했다 하더라도 도널드가 신부에게 지금처럼 의지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 없다고 얘기하는 이 장면은, 실체보다는 그저 자신이 믿는 그대로 이루어만 지면 상관없다는 나약한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시퀀스였다.

영화의 마지막 플린 신부는 더 좋은 곳으로 일종의 승진이 되어 부임하게 되었고, 잠시 아픈 오빠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돌아온 제임스 수녀에게 알로이시스 수녀는 울면서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자신에게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만 알았던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과 믿음에는 결국 아무런 실체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막연한 확신과 선입견을 통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도 완벽히 옳다고 확신할 만큼 강한 자기 최면을 걸어온 것이다. 영화 내내 그 어떤 공포영화의 캐릭터 못지 않는 강한 포스를 내 뿜던 알로이시스 수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니, 결국 가장 나약한 캐릭터는 알로이시스 수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자꾸 의심되서 어쩔 수가 없다는 그녀의 눈물의 고백은, 특별한 케이스라기보다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컴플렉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과 여러가지로 맞지 않는 이의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등은 어찌보면 가장 태생적인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어쩔 수 없는 의심스러움을 결국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구실들을 만들어가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왔던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녀가 수녀가 된 것은 어쩌면 이런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도피 행동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실체없는 의심에 가득차 있는 그녀에게 절대자인 '종교적 믿음'은 분명히 편안한 도피처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만큼 <다우트>의 강점은 연기력에 근거한 전개 방식에 있다. 그런 이유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작품에 비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언성을 높여가며 열연을 펼치는 장면은, 마치 액션영화의 '듀얼'신을 보는 듯한  치열함과 임팩트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으며, 아무런 영화적 장치없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압도당하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다. 극중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맡은 메릴 스트립을 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이지만 마치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처음부터 맡기위해 정해진 배우처럼 또 한번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를 보면서 객석 여기저기서 너무도 동요된 나머지 혀를 차거나 탄성을 내질렀을 정도로 (마치 아주머니들이 일일연속극 속 나쁜 역할로 출연하는 배우를 실제 나쁜 사람인걸로 오해하는 것처럼),  어찌보면 그저 이상하게만 보일 수 있었던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은 깊은 연기 내공을 그야말로 '시전'하고 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서두에 얘기했듯이 대중들에게 늦게 인정받았을 뿐이지, 이미 최고의 연기를 여러 번 보여주었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능글맞게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 역시 그 답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도 선과 악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마스크와 연기력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배우라고 생각되는데, 의심을 받고 있어 관객조차 이것이 의심인지 진실인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플린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워낙에 쟁쟁한 두 배우 덕에 조금 소외된 듯한 경향도 있지만, <다우트>에서 에이미 아담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가 영화 속 제임스 수녀를 통해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녀의 순수한 표정 연기와  두 거대한 주장들 속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는 캐릭터를 떨리는 눈동자와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포스터 이미지나 영화의 내용적인 면들에서도 은유적을 표현되듯이 <다우트>는 삼각관계 혹은 삼위일체의 구성을 담고 있는 영화이고, 그 축의 당당한 하나는 바로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라 할 수 있겠다.

혹자는 '마법의 10분'이라고도 표현했듯이 극중 도널드의 엄마 역할 출연한 비올라 데이비스가 메릴 스트립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비올라의 연기는 이 영화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에이미 아담스와 함께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다우트>는 군더더기 없이 훌륭한 연기를 통한 생각해 볼 거리에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중견 배우들의 최고 수준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고도 넘치며,  무엇보다 관계와 갈등, 과정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한줄평 : 최고 연기 내공의 고수들이 펼치는 의심과 확신의 나홀로 줄다리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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