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그 어느해 보다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크고 작은 영화제에도 참가해서
고전 영화들을 비롯해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었고, 개봉영화들은 액션과 볼거리가 위주인 블록버스터부터
개봉관을 찾기 힘들어 발품을 제법 팔아야만 볼 수 있었던 작은 영화들까지 가능한한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던 한해였구요.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150편 정도 올 한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렇다보니 한해를
정리하며 베스트 작품을 단 10작품으로 꼽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군요.
그리고 유난히 장르적으로 봤을 때 다큐멘터리나 음악영화가 많기도 했는데, 이를 따로 분류하여 순위를 정해볼까도
했지만, 결국 총 15편의 베스트 리스트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이지만, 아래 선택된 15편의 작품들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평가기준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 한국영화 베스트 5와 동일하게 15편 가운데 차등 순위는 없고, 개봉한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미지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블로그에 작성했던 영화의 리뷰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르비차 (Grbavica, 2005) _ 사라예보, 내 사랑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진, 사라예보에 살고 있는
작게는 한 모녀, 넓게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르바비차>입니다.
이런 소재 역시 어찌보면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줄거리일지 모르나,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든 그들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상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르바비차>는 타인이 영화적 극적 요소만 부각시켜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자신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주노 (Juno, 2007) _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주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여주인공을 연기한 엘렌 페이지 때문이긴 했습니다.
제목과 비슷한 소재 때문에 우리 영화 <제니, 주노>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로 기억되네요. 두 어린 주인공 외에 이를 둘러싼 두 부부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그려낸 시나리오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로우 파이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들로 가득했던
영화음악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원스>의 경우처럼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지는 엔딩 장면의 여운도
아직까지 남아있구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느긋하게 서스펜스를 이끄는 장인의 솜씨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요 바래 소개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들의 이름들 덕분에
일치감치 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고, 이 큰 기대를 모두 만족시켜준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이제는 정말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는 내내 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으며, 올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해, 토미 리 존스와 조쉬 브롤린의 열연도 이 영화를 아주 인상깊은 영화로 기억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구요. 







데어 윌 비 블러드 _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매그놀리아>는 에이미 만의 음악과
더불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고, 아담 샌들러와 함께 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제가 가끔 잠식당하고 마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어준 멋진 작품이었죠. 단 한 마디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정의해 보자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제가 쓴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지만 더 다양하고 깊은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시 매번 무시무시한 열연을 펼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굳이 더 거론할 필요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며,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알게 된 폴 다노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 더 정리를 위해 다시 한번 DVD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스피드 레이서 _ 눈이 부신 가족영화의 황홀경

스피드 레이서 BD _ 황홀경의 레퍼런스급 화질로 만나는 레이싱 어드벤처!


올해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이 즐거웠고 황홀했으며 내용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으나 아마도 제가 꼽은 영화들 중에
가장 다른 분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실 법한 영화가 <스피드 레이서>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맥스 상영시
2번 정도 관람하였고, 블루레이로 시청, 부산에서 열렸던 블루레이 영화제에서 또 한 번 관람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워쇼스키 형제가 얼마나 오타쿠 스럽고 원작을 21세기 스크린에 잘 표현해 냈는지 느끼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저 같은 사람이야 좋아했지만 사실 저렇게 오타쿠 스러운 작품을 헐리웃 메이저 시장에서 저 정도 규모로 만들
생각을 한 워쇼스키 형제도 형제고, 제작자인 조엘 실버도 대인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리븐>같은 레이싱을
생각하셨다면 얼른 잊으세요. <스피드 레이서>의 자동차들은 앞보단 주로 옆으로 달리고, 쿵푸도 하거든요 ^^;






아임 낫 데어 _ 밥 딜런의 몽타주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매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뮤지션을 그리게 되면
전형적인 전기 영화 형식으로 그리게 되는데 <아임 낫 데어>는 이런 정형화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그림처럼 밥 딜런이라는 사람, 뮤지션의 일대기를 조명합니다. 다른 뮤지션 같았으면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그리는데 이 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
같네요. 토드 헤인즈 감독은 단순히 밥 딜런의 인생과 주변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만의 장점을 살려
당시의 문화와 사회까지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어 냈는데, 밥 딜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에게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점에는 케이트 블랑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등 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출연하는줄 몰랐던터라 더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가 특히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플래닛 테러 _ 극장에서 즐기는 B무비에 환호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하기를 원할 텐데, <플래닛 테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각 장면 장면마다 소리내어 반응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였습니다. 일반 관객들과
다 같이 보는 환경이라면 어렵겠지만 특별히 로드리게즈의 팬들이라던가 이 영화에 팬들만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 장면 장면 하나에 소리내어 환호하고 역겨움엔 질색하며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말이죠.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정말 영화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혼자 뚝딱 해내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플래닛 테러>는 그의 B무비적
감성과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난 특별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어한 장면들이 많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신나게(?)그려내고 있으며, 최첨단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일부러 옛 것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낸 영상은,
그의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즈 맥고완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도
너무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네요.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다크나이트>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극장에서 여러 번 본 영화입니다. 정확히 몇번 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가 주는
압도감이란 대형 아이맥스 스크린과 맞물려 엄청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분위기를 한번 더, 한번 더 느껴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과연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조커가 되어버린 히스 레저의
연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며, 히스 레저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둠의 기사'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보여준 대작이었으며, 그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어서 더욱 반가웠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다크나이트>도 이렇게 짧은 몇 줄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하겠네요 ^^;







월-E _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


픽사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말을 하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천재야!!!!' <월-E>는 그 가운데서도 그 천재성이 정말 놀랍도록 발휘된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쌍안경 렌즈 속에서 저런 오묘한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겠으며,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한 감성을 이리도 잘 버무린 작품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얼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월-E>의 감동은 '우주최고'였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감정들 중에 특히 '아련함'을 좋아하는데,
이런 '아련함'을 표현함에 있어 월-E와 이브가 보여준 우주최강 애틋 러브스토리는 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군요.
한동안 입에 '이 봐~' '이브아~'를 달고 살 정도로 중독성있는 대사들과, 장난감 뽐뿌라는 엄청난 부산물들을 만들어낸
올해 최고의 러브 스토리 <월-E>였습니다.






컨트롤 _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음악영화'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컨트롤>을 꼽겠습니다.
뮤지션의 삶을 다룬 만큼 '음악영화'와 '전기영화'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컨트롤>만의
다른 시각을 꼽자면 조이 디비전의 멤버였던 이언 커티스, 즉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살았던 청년 '이언 커티스'를 조명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흑백영상으로 담겨있는데,
흑백의 질감으로 표현되는 이언 커티스의 고뇌와 혼돈, 그리고 맨체스터의 풍광들은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의 연기는 정말 이언 커티스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주었으며,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만다 모튼은, 개인적으로 그녀 필모그래피의
최고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네요. <컨트롤>영화 팜플렛은 <렛 미 인>과 더불어 제 회사 책상을 장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렛 미 인 _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지난해 <원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렛 미 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이라는 헐리웃 밖의
영화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관심과 반응을 불러낸 것 자체가 우선 반가웠으며, 뱀파이어 영화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을 맞은 북유럽의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광들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이었던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 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러브스토리가 남녀 간의 것에 국한되지 않고, 존재와 존재간의 사랑
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한 편으론 러브스토리로만 읽혀지지 않는 여백이 있어 생각해 볼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부작용이 있다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 생각하면 <판의 미로>의 메인 테마 음악이
떠오른다는 것 -_-;;;






로큰롤 인생 _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사실 15편을 선정하면서 이 작품 <로큰롤 인생>과 <존 레논 컨피덴셜>을 두고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 어느 해 보다 많이 극장에서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 좋은 다큐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 중 한 작품을 꼽으라면 <로큰롤 인생>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올해의 다큐 영화랄까요.
처음 보기 전에는 그냥 인간극장 스타일의 다큐일줄로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닉유스를 노래한다'라는
사실은 그런 화제성 다큐로 만들어지기가 쉽거든요(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로큰롤 인생>은 그들이 노래하는 자체가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노인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두시간 남짓을 알았던 것 뿐인데, 극 중 인물에
죽음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들의 인생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늙고 싶다'도 좋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가 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올해의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고 있었던 영화이기도 한데, 크로넨버그의 전작이었던 <폭력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 봐야할
그 만의 깊은 연구가 담긴 하나의 결과물 같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더불어 매우 드물게 리뷰의
소재목을 따로 정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며(그만큼 먹먹함이 오래갔죠), 비고 모르텐슨과 뱅상 카셀의 연기에
감탄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비고 모르텐슨의 경우야 다들 혀를 내두르고 칭찬을 하시는터라 제가 더 거들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뱅상 카셀의 연기는 그가 연기한 '키릴'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를
고려해 봤을 때, 그의 나름 팬으로서 정말 훌륭하고(어쩌면 비고 보다 더) 멋진 연기를 펼쳤다고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비고가 연기한 니콜라이가 주인공이지만,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뱅상 카셀이 연기한 '키릴'이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인 동시에,
타셈 싱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그 행위에 대한 행복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감상 전 다른 분들의 평에서는 이야기는 허술하나 볼거리는 대단하다 라는 것이 대세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그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4년 간의 고생을 하며 볼거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곳이 실제 지구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답고 웅장한 미관을 자랑하는 영상미는 물론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의 이야기(화자와 청자가)가 뒤섞여 버무려지는 이야기 구조는 <더 폴>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순간인지를 은연중에 느끼게 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이스턴 프라미스>의 경우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먹먹함이 심해져 별도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경우였지만,
이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경우는, 이 제목 만으로도 대부분이 설명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다 설명이
되기 때문에 추가로 제목을 달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제목 뿐 아니라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대사나 나레이션 등을
통해 제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겨있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내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다큐멘터리스런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일본이 사법제도만을 문제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법이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카세 료는 정말 일본 남자 배우들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 만한 연기를 펼쳤으며,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과연 <쉘 위 댄스>같은 코미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인가 싶을 정도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5작품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로는 <존 레논 컨피덴셜> <에반게리온 : 서> <마법에 걸린 사랑> <쿵푸팬더>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한해는 위의 15편 영화들을 비롯해 제가 본 150편 넘는 영화들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영화를 보는 순간 만큼은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다른 생각하지 않고,
행복해 했던 것 같구요.

2009년에도 더 좋은 영화들과 조우하기를 바래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스포일러 있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작품은 몇 작품 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전작 <매그놀리아>와 <펀치 드렁크 러브>는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영화들 중 하나로,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의 작품을 지금까지도 계속 기다리게 하는 원인이 된 영화들이었다.
그가 2002년 <펀치 드렁크 러브>를 연출한 뒤, 5년이라는 제법 긴 텀을 두고 지난해 선보인 영화가
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데어 윌 비 블러드>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로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작곡상, 촬영상 등을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드디어
3월에 이르러서야 소규모 단위의 개봉관에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사실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작품들은 흔히 기대 만큼이나 걱정도 하게 마련인데,
폴 토마스 앤더슨 만은 걱정하지 않았었다.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분명 '장인'의 분위기를
갖고 있음을 적은 연출작에서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 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무거운 주제를 깊은 성찰과 통찰력으로 풀어낸 또 하나의 수작이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 석유 개발이 아메리칸 드림으로 자리잡던 이 시기를
배경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와 종교의 폭력성과 모순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일단 석유개발자인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 라는 캐릭터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그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서 유전을 발견한 뒤
특유의 사업수단으로 이 유전사업을 무섭게 번창해 나간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가길 원하는데, 유전 개발 중 목숨을 잃은 동료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면서,
사람들에게 가족이 중심이 되는 경영전략을 이해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 하지만 아들 H.W가 불의의 사고로
청력을 잃게 되면서 다니엘은 H.W를 버리듯이 다른 곳에 보내고 만다. 이후 자신의 이복 동생이라는 헨리가
등장하는데, 그 동안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다니엘은, 헨리를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고
중요한 일들을 함께 하게 된다. 초반에는 완벽하게 헨리를 믿는 듯 하지만, 나중에 헨리가 결국 거짓말을
한 것을 실토하기 전에도, 다니엘은 헨리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결국은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성공을 공유할 수 없고, 나 외에는 모두 적이라는 그의 논리에 있어서는 가족조차(이복 동생이긴 하지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니엘은 자신을 속인 헨리를 결국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기에 이르고, 자신의 일을 계속 방해하는
선교사 일라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그의 이런 행동에는 기본적으로 경제논리, 즉
자본주의의 이념이 깔려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서 그 성공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한다는 의미의 행동들이지, 이것이 그가 본래 나쁜 사람이라던가 폭력적인 성향을 갖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모순점이라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풀어가고,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시되며, 경쟁에서 성공하는 소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이 인정이 되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이 영화는 무섭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그저 석유개발이 성행했던 시대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과 자본주의의 모순만을 그렸다면
(뭐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멋진 작품이 되었을 듯 싶지만), 아마도 이 영화가 이 정도로 무섭고 처절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준 영화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더불어 종교의 모순을 함께 포함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다니엘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 바로
선교사 일라이의 역할이다. 개척교의 예언자이자 선교사로 등장하는 일라이 선데이는, 처음부터 다니엘에게
매우 호전적이다. 왜냐하면 점점 세를 불려나가길 원하는 그의 교회에는 자본이 필요하고, 그 자본은
바로 다니엘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중반까지 일라이의 모습은 그저 광신도 정도로만 그려진다.
퇴마의식을 갖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모습이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에게서
다니엘 만큼의 폭력성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반으로 갈 수록, 일라이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댓가를 치르지 않는(금전적으로) 다니엘에게 계속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직접, 간접적인 대결 구도는 매우 흥미롭다. 흔히 등장하는 선악 구도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도, 혹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경쟁관계로서 두 모순된 가치관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의 대결구도는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오래전 석유 개발을 위해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교회에 가서 일라이에게 무릎을 꿇고,
뺨을 맞아가며 자신의 죄를 소리 높여 크게 외쳤던 다니엘은, 자본이 궁해 자신을 찾아온 일라이에게
자신이 예전 당했던 그 모욕을 그대로 돌려줄 기회를 맞는다. 다니엘이 교회에서 '나는 죄인이다'라고
목청 높여 소리지르기를 강요당하던 장면이 자본주의의 무섭고도 처절한 면을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일라이가 '나는 거짓 예언자다'라고 크게 말하길 강요당하는 장면에서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퇴색되어 버린 종교의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두 장면은 이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최근 본 영화를 통틀어서도 가장 무서운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의 제목을 우리말로 해석해보자면
'피를 부를 것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이 제목은 이 영화의 의도를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
순수함과 정의를 잃은 폭력적인 자본주의와 종교는 결국 피를 부르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원작자와 감독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나의 왼발>도 그렇고,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그랬고, 특히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연기를 보여준다. 흔히들 배우들이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되어 버린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아마도 이런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닐까 싶다.
얼핏 보면 감정이 고조된 장면에서 단순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하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 연기를 보면서 느끼는 공포감이 단순히 윽박지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콧수염 만큼이나 진한 눈섭과 그보다 더 깊은 눈에서 쏘아내는
검은 광선은 웃으면서 얘기할 때에도 폭력성이 느껴질 정도로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만큼이나 인상깊었던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바로 일라이 선데이와 폴 선데이 역할을 맡은 폴 다노 였다. 개인적으로 2006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침묵 수행을 하는 역할로 등장했던 폴 다노는(아이러니하게도 두 배우 모두
자신의 본명과 같은 이름의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 무서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겨뤄도 주눅들지 않을 만큼 신인으로서는 해내기 힘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와 평화로운 표정 속에 퇴색된 인간성을 드러내야 하는 일라이 역할을
소화해낸 것도 대단하지만, 그 무서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내며,
연기를 주고 받은 것 만으로도 그로서는 대단한 경험과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도 중요한 영화가 될 듯 싶다
(이런 것에 비해서 상에 있어서는 너무 외면을 당한 것이 개인적으론 아쉽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 받는 것은 바로 음악인데,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맡은 음악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날카로움을 들려주며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불안함과
불편함을 조성하게 한다. 극적인 부분에서도 보통 우리가 들어왔던 방식으로 감정을 고조시키기 보다는,
약간은 어긋나는 음들과 강한 악기의 사용으로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좀 더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영화를 딱 보고나서는 이 영화가 쉽게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배우들의 무서운 열연과 무거운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느껴지긴 했었지만,
단번에 느껴지는 걸작은 아니었는데, 감상기를 쓰며 영화를 되돌이켜보고, 곱씹어 볼수록
참 무섭도록 깊은 통찰력과 연출력이 만들어낸 걸작이 아니었나 싶다.



* / 영화의 마지막 부분,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나고 말미에
'이 영화를 로버트 알트만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로버트 알트만 감독에게 얼마나 영향을 받았고,
그 존경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마지막 문구였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Miramax Films and Paradmount Vantage에 있습니다.



 2007/11/21 - [BD/DVD Review] - Punch-Drunk Love - 당신 없이는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아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