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 관한, 우리를 위한 영화


1994년 르완다 수도 키갈리.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두 부족의 공존을 위해 평화 협정에 동의하면서 수십 년간 이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평화 협정의 진행을 돕기 위해 UN군이 파견되었고,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이 역사적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르완다로 몰려들었다.

르완다의 최고급 호텔 ‘밀 콜린스’의 호텔 지배인인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는 평화 협정과 관련하여 밀려드는 취재 기자와 외교관들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랑 받는 가장이자 지배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폴은 하루빨리 협정이 체결돼 르완다가 안정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르완다의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르완다의 상황은 악화된다. 후투족 자치군은 대통령 살해의 책임을 빌미로 아이들까지 투치족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고, 온건파 후투족까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위협을 느낀 폴은 투치족 아내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호텔로 피신한다. 이후 그곳으로 수천명의 피난민들이 모여드는데...



영화 <호텔 르완다>는 이처럼 실존 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이다. 이 작품은 흔히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와 비교되곤 하는데, 이미 여러 영화와 매체에서 소개되었던 유태인 학살과는 달리 <호텔 르완다>에 등장하는 1994년 르완다 내전에 관한 이야기는,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역사적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덜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알지 못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영화 내용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르완다 내전 사건은 수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학살당했던 참극이었지만, 르완다에는 미국이, UN이, 전 세계가 이득을 얻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석유나 금 같은 자원은 물론 지리적으로도 강대국들에게 의미가 없는 곳이었으며, 있는 것이라고는 커피와 차가 전부인 나라였기 때문에)누구도 이 참극에 개입하기를 꺼려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죽어가는 르완다 인들은 그냥 놔둔 채 자국의 국민들만을 빼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이 와중에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이었던 폴 루세사바기나는 자신의 인맥과 호텔을 이용해 1천 2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에서 지켜내게 된다. <호텔 르완다>는 참혹하기만 했던 르완다 내전 속에서 호텔 지배인이었던 한 남자 ‘폴 루세사바기나’를 중심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하트의 전쟁>의 공동 각본을 썼던 테리 조지가 감독을 맡았는데, 테리 조지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실제 주인공인 폴 루세사바기나를 만나 영화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그와 함께 르완다 현지에 들러 참혹했던 사건의 현장을 보며 눈물짓기도 했다. 그는 이 사건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에서 영화화를 결심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너무 현실적인 다큐멘터리스럽지도, 또 너무 영화적이지도 않은 명작을 만들어냈다. <호텔 르완다>는 분명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인해 절로 눈물이 흐르거나 영화 속 사건에 의해 분노가 치밀거나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한 편으론 너무 신파나 감성에 기대지 않고 또 한 편으론 극 사실적이거나 잔인한 표현은 배재하며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실화를 바탕으로 스필버그 특유의 영화적 감성을 더한 <쉰들러 리스트>와 극 사실주의로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던 <블러디 선데이>와 비교해 봤을 때 <호텔 르완다>는 실제 있었던 사건과는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는 인간애에 의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조화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는 내용이 가진 의의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력을 따지는 것 자체가 다른 영화에 비해 무의미하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주연을 맡은 돈 치들의 연기는 절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200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서 아쉽게 <레이>의 제이미 폭스에게 수상을 넘겼지만,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결코 어느 한 쪽을 쉽게 손들어주지 못할 만큼 돈 치들의 연기는 현실과 감동을 모두 느끼게 하는 열연이었다. 테리 조지 감독이 영화의 준비를 위해 실존인물을 만나고 자료조사를 하고 있을 때, 캐스팅이 확정되기 전 돈 치들에게 미리 언지를 주었었는데 돈 치들은 자신의 캐스팅 여부에 상관없이 이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르완다 내전으로 고통 받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도 하였다. 영화 자체가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유명한 배우들이 몇몇 출연하고 있는데, 주연인 돈 치들을 비롯하여 UN군의 올리버 중령 역에는 닉 놀테가 열연하고 있고(닉 놀테의 대사 처리는 언제 봐도 열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장 르노와 호아킨 피닉스도 짧은 분량이지만 얼굴을 비추고 있으며 <이온 플럭스>에서 강렬한 액션을 펼쳤던 소피 오코네도가 폴 루세사바기나의 부인역할을 맡아 역시 열연하고 있다.



대형 블록 버스터 영화가 아닌 탓에 국내에서는 개봉은 했으나 매우 짧은 시간 만에 상영을 마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기회를 놓쳤었는데, 다행히 DVD는 빠른 시일 내에 출시되어 아쉬움을 덜해주고 있다. 2장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시된 <호텔 르완다 SE>는 최근작답게 수준급의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콘트라스트비와 샤프니스가 강한 선명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으며, 클로즈업에서는 물론이고 군중 씬에서도 우수한 해상력을 보이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총 소리, 폭발음 소리도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센터 스피커에 또렷한 대사는 물론, 일반적인 소음들도 채널 분리도와 함께 매우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서플먼트로는 먼저 첫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는데, 감독 테리 조지와 음악을 맡은 'Fugees'출신의 뮤지션 와이클리프 장, 그리고 영화 속 실존인물인 폴 루세사바기나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 감독이나 배우, 스텝들이 참여하거나 혹은 영화에 관련된 사건이나 내용에 관해 전문적 지식이 있는 이들이 간혹 참여하는 음성해설은 있었지만, 실화를 다룬 영화에서 그 실존 인물이 직접 참여한 음성해설은 아마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 만큼 이 음성해설 트랙은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이 될 것이다. 폴 루세사바기나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영화와 부가 영상에 수록된 이야기들 외에 장면 장면을 통해 좀 더 자세한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다양한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Selected Scenes Commentary Don Cheadle'에서는 돈 치들의 음성해설과 함께 중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으며, 'Making Hotel Rwanda'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폴 루세사바기나의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있다. 그리고 'Return to Rwanda'에서는 사건이 있은 후 처음으로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르완다와 호텔을 방문한 폴 루세사바기나가 당시에 사건을 함께 겪었던 호텔 직원들, 주방장 등을 만나는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그대로 간직한 기념관 방문 영상도 수록되어 있다.



<호텔 르완다>는 영화 속 르완다의 모습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지만, 영화적으로는 물론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에 비춰봤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영화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바람을 갖을 것이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최근 정세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통 받는 소수 민족, 약소국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다시금 되새기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마땅히 분노를 느껴야할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호텔 르완다>는 그들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영화이다.


2006.10.26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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