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매년 상반기와 연말 혹은 연초에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들을 '좋은 영화 베스트'라는 식의 이름으로 정리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어느 덧 6월이 훌쩍 지나고 2011년 상반기를 결산해볼 시간이 다가왔다. 간단하게 총평을 해보자면 지난해 이맘 때에 비해 좋은 인상적인 영화들의 숫자가 조금은 적어진 듯 싶다. 지난해 상반기에 리스트를 꼽을 때에는 외국영화 만으로도 10작품을 쉽게 꼽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한국영화를 포함하여 딱 10작품을 선정할 수 있었다. 참고로 언제나 그렇듯이 선정 기준은 완전 개인적이며, 더 많은 좋은 영화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정리해 보았다.

(순서는 관람 순) 




1. 윈터스 본 (Winter's Bone, 2010)
소녀는 울지 않는다
http://www.realfolkblues.co.kr/1430 



제니퍼 로렌스 라는 여배우의 발견. 인생을 다 겪은 듯한 소녀의 표정과 몸짓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제목만 들어도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기억에 남는 작품.






2. 라푼젤 (Tangled, 2010)
디즈니가 가장 자신있는 마법의 세계
http://www.realfolkblues.co.kr/1440



'라푼젤'에서 보여준 디즈니의 마법은 여전했다. 디즈니는 이런 식으로 가면 된다. 픽사를 억지로 따라할 필요도, 오로지 기술적인 측면에만 매진할 필요도 없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자신들이 해왔던 방식에 근거하여 조금씩 보완해 가면 된다. 갑자기 너무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려 하기보단, 서서히 스타일 변신이 아닌 보완을 하면 될 듯.

 




3. 혜화, 동 (Re-encounter, 2010)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
http://www.realfolkblues.co.kr/1443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국내 영화 중 한 편. 스물 셋 혜화의 지난 겨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 민용근 감독과 혜화 역의 유다인 씨를 비롯한 이들의 정말 투혼에 가까운 관객과의 대화 릴레이는 올해 그 어떤 영화 마케팅 방법보다 진실되고 값진 것이었다.





4. 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극한의 백조의 호수

http://www.realfolkblues.co.kr/1447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 방식을 택한 반면,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통해 판타지에 가까운 극적 변화를 담아냈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야심작. 후반 부 백조의 호수가 시작되며 치닫는 극의 과잉된 리듬은 심장을 미치도록 요동치게 한다.

 





5. 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http://www.realfolkblues.co.kr/1451

역시 올해의 국내 영화!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은 지금까지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적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깊은 것은 물론, 과연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를 떠올려 보게 했던 올해의 발견!






6. 두만강 (Dooman River, 2009)
경계와 경유 그리고 약속
http://www.realfolkblues.co.kr/1454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전작들과는 달리 상당히 감정적이고 극적이며 떨려오기까지 하는 작품이었다.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는 올해의 카피 후보. 개인적으로는 장률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와닿았던 작품.






7. 수영장 (Pool, 2009)
꿈만 같은 치유의 슬로우 무비

http://www.realfolkblues.co.kr/1471



보는 내내 평화로움이, 보고나서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에 대해 말이 아닌 그림 같은 장면으로 보여주는 영화. 위의 저 장면은 앞으로 후반기에 어떤 영화의 명장면이 나온다 하더라도 올해의 명장면으로 이미 결정.






8.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2010)

메리를 둘러 싼 삶의 온도

http://www.realfolkblues.co.kr/1485



마이크 리의 전작 '해피 고 럭키'와 마찬가지로 마냥 행복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 안에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담은 작품. 노년에 접어든 마이크 리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깊이로 와닿는 것일까. 영화 속 메리에게서 나를 보게 되느냐, 타인의 모습을 보게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영화.





9. 슈퍼 8 (Super 8, 2011)
너무 행복했던 J.J의 스필버그 종합 선물세트

http://www.realfolkblues.co.kr/1505



스필버그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영화.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며 영화 감독을 꿈꾸었던 한 남자가 스필버그와 함께 그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남. 이것만으로도 J.J는 올해 가장 부러운 남자.






10. 일루셔니스트 (L'illusionniste, 2010)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http://www.realfolkblues.co.kr/1506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 가운데 영화라는 것으로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실뱅 쇼메의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더 이상 영화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보내는, 마법사의 쓸쓸한 여정.




* 올 하반기에도 더 많은 인상적인 좋은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여러분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두만강 (Dooman River, 2009)
경계와 경유 그리고 약속


장률 감독의 신작 '두만강'을 보았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 메마르고 황폐하고 남겨진 인물과 장소를 통해 자신 만의 인장을 깊게 새겨왔었다. 항상 장소에 국한되는, 혹은 그곳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장률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두만강'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완성했으며, 이 곳은 감독 자신이 자란 곳이기도 헀다. 어쩔 수 없이, 아니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겪고 느꼈던 과거가 담길 수 밖에 없었던 '두만강'은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그저 상황에 인물들을 던져두고 멀리서 지켜보거나, 상황에 처한 인물들 역시 처연하게 일들을 겪어가는 인상을 깊게 남겼던 전작들과는 달리, 조금은 더 감정적인 동요가 일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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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변의 한 작은 마을. 이 곳은 북한 함경도에서 탈북해오는 북한 주민들이 경유하는 곳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리적 배경에 놓인 곳이다. 장률 감독은 바로 이 민감한 두만강 변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비유를 들어 관객들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한 편, 정 반대로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이 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 (아이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가 특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어른들로 대변되는 외부의 요인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어떻게 잠식해 가는 지에 대한 과정을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게 그려낸다. 

결국 '두만강'의 일들은 '경계'와 '경유'의 의미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 경계 넘어의 곳인 동시에 돌아가기 위한 경유지였으나 예전에는 존재했던 경계 간의 다리가 사라지면서 결국 그대로 남겨지게 된 두만강 변의 마을. 삶과 죽음의 거리 역시 그 어느 곳보다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 곳은 마치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연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난 때문이기는 하지만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항상 같은 옷을 입는 모양새, 배고픔에 경계를 넘어온 아이들 중 하나가 죽어도 '숨이 없어'라고 덤덤히 말하고는 그냥 갈 길을 가는 아이들의 뒷 모습, 그리고 영화 내내 드리워진 겨울의 차가운 공기까지. 마치 이 마을은 어떤 외부의 힘도 깨기 어려운 철옹성이라기 보다는, 조금만 물들여도 쉽게 물들고 마는 순백의 편견없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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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탈북자들의 문제가 점점 커지면서 이 마을의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편에 서서 탈북자들을 공안에 신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을의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감정적으로 전달되고, 아이들의 세상 역시 어른들의 그것으로 물들어 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음'으로 이해되는 부분, 그러니까 누구하나 쉽게 단정지을 정도의 절대적 악한은 등장하지 않는다. 순희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는 무릎 꿇고 감사를 표시하던 탈북자의 행동은 거짓이 아니었으며, 그가 순희에게 범한 일은 물론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그 역시 가해자라기 보다는 피해자로서 볼 수 있는 면이 분명 존재하며, 탈북자들을 도왔던 같은 마을 사람을 신고한 다른 마을 사람들의 행동도 보상금을 타려고 한 일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메시지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장률 감독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애써 피해가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서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보편적인 가치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조건에 있다. 두만강 건너 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건너 편에서 바라보게 되는 시선 말이다. 상영 후 가졌던 대담에서 장률 감독이 했던 얘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살고 있는 중국이나 연변에서 두만강 건너 편을 바라보면 전혀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데, 남한에 와서 두만강 쪽을 바라보면 경계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역시 남한이라는 정치적, 지리적 공간에 살고 있는 이들로서 또 다른 경계와 맞닿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떨쳐내려해도 결국 단순하게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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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속의 의미. 이 영화를 아이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그린 이유는 아주 미약한 희망 때문이거나 혹은 그 미약한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더 큰 슬픔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어린 창호와 정진은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결국 이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어른들과 현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룰에 따라 상처를 받게 된다. 정진은 위험을 무릎쓰고 창호와의 약속을 지켰고, 창호 역시 자신 만의 방식, 아니 아무것도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정진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이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아이들이 지켜낸 약속의 의미는 결코 희망적이지 만은 않다. 상상 속의 다리가 희망을 꿈꾸게 하기 보다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씁쓸함을 안기는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지켜낸 이 약속의 방식은 더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맨 처음 '두만강'을 장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면서 몹시 감정적으로 '극적'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정말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극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치장된 영화들에 못지 않은 감정적인 떨림이 있었다. 실제로 너무 심장이 뛰는 나머지 가슴을 부여잡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동요가 있었는데, 장률 감독의 작품에서 이런 극적인 떨림을 겪게 될 줄은 사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큰 인상을 주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포스터에 새겨진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라는 문구를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보고 나니 이 문구에 담긴 정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두만강'에는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





1. 영화가 끝나고 장률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함께한 대담은 정말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장률 감독에 작품 세계와 '두만강'에 대한 깊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공감되고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가득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와의 친분에서 오는 '까페 느와르' 농담들과 더불어 정말로 '재미'있는 얘기들도 많았구요.

2. 이번 '두만강' 시사회는 장률 감독특별전을 통해 상영되는 방식이었는데, 그래서 인지 시네마테크를 찾은 관객들의 대부분이 장률 감독의 팬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질문들의 깊이가 결코 가볍지 않아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3. 장률 감독의 전작들을 인상깊게 본 분들은 물론, 그렇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조심스레 추천하고픈 작품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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