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2009)
죽은 자의 동화



앨리스 시볼드의 2002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한 <러블리 본즈>는 피터 잭슨이 메가폰을 잡은 이유만으로 관심을 끌게 된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포스터나 흘러나오는 분위기만 보아도 피터 잭슨이 최근 작들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잔잔한 작품일 것 같아 오히려 좀 더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평소처럼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는 조금 의외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CG를 통한 월페이퍼 스러운 영상들이 많은 한 편, 판타지와 스릴러에 가족 드라마를 섞은 묘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그리 반응이 좋은 편은 아니고, 피터 잭슨이라는 이름만 믿고 극장을 찾는 이들이라면 더욱 실망할 확률이 높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속에서도 흥미로운 몇 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WingNut Films.DreamWorks SKG.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이 소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영화 초기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죽음이라는 영화적 사건을 서두에 언급하였다는 것은 이 죽음이 포인트가 아니라는 것을 일단 알려준다. 소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죽음을 통해 벌어지는 가족의 이야기와 소녀가 겪는 여정을 그린다는 것인데, 그래서 인지 영화의 주인공인 수지(시얼샤 로넌)는 영화 내내 죽음이라는 범주안에 있지만 영화 자체는 별로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있지는 않는다.

일단 수지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갑작스러워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 때문인 것도 조금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대해 큰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지는 그저 지난 번 한 좋아하는 남자아이와의 약속에 나가야 하는데 못나가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는 아빠에 대한 걱정 그리고 커가는 동생에 대한 부러움 뿐이다. '뿐이다'라기 보다는 포커스가 '죽음' 그 자체라기 보다는 이렇게 개인적인 것에 더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영화 <러블리 본즈>는 죽음이라는 설정을 아주 가깝게 끌어 안고 있음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거의 드리워져 있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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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는 분명 여러 토끼를 잡으려 한 흔적이 느껴진다. 사후세계를 떠도는 수지의 이야기, 그리고 수지를 떠나보내고 남게 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수지를 죽인 살인자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버무려내게 되면서 영화는 판타지와 스릴러 그리고 가족 영화와 소녀의 성장영화에 이르는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이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시 소녀의 로맨스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 버금가게 이성을 좋아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죽음을 그리지만 어둡지 않은 이야기가 되는데에 한 몫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 부분에 할당량은 차라리 판타지에 가까운 사후세계로 더 보충했었더라면 조금 더 집중력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극초반 설명 정도로 그친 소녀의 로맨스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는 모티브로 등장하면서 중간중간 영화는 힘을 잃기도 했고, 더불어 판타지 세상에서 뛰어노는 수지의 모습이 쌩뚱맞음과 어울려, 관객으로 하여금 중심을 잡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 역시 그저 애타게 수지를 찾는, 수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가족의 이야기 정도라면 힘을 얻었을 텐데, 부부 간의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이 역시 조금은 거추장 스러운 부분이 되어버렸다(이런 느낌을 받은데에는 엄마 역할의 배우가 무려 레이첼 와이즈 였다는 점도 한 몫 톡톡히 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이야기가 구심점은 있지만 (수지의 죽음) 완벽한 조화는 이루지 못하면서 진행에 조금씩은 더딘 느낌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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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가 그럭저럭 좋았던 것은 <네버엔딩 스토리>를 연상케 하는 판타지적인 사후 세계관과 이외로 스릴러 적인 매력이었다. 이 작품은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언급하게 되는 CG영상의 경우, 분명 조금 과한 감은 있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의도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와 떠올려보면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사후 세계의 분위기를 이리도 아름답고 판타지적인 세계로 그린 것은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의 자식이 죽어서 가게 되는 세계가 무섭고 어두운 곳이 아니라 영화 속 처럼, 죽음을 인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뛰어 놀고만 싶은 아름다운 세계였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말이다(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슴이 찡해졌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에서는 살인범이 잘 살아가고 있는 어두운 세계가 펼쳐진다. 후반부 살인자의 집에서 펼쳐지는 추격씬을 비롯해 그가 등장할 때는 굉장한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이 장면에서는 피터 잭슨이 연출력을 십분 느껴볼 수 있었다. 판타지적인 느낌을 지우고 이 부분에만 집중했더라도 제법 괜찮은 범죄 스릴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조디악>이나 <양들의 침묵>을 문득 문득 떠올리게 되는 흥미로운 스릴러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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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바로 이 시네마스코프의 적극적인 활용이라 하겠다)

<러블리 본즈>가 흥미로웠던 또 다른 점은, 이 영화가 시네마스코프 (2.35:1)의 화면비를 갖고 있다는 점, 아니 이 화면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위의 스냅샷처럼 시네마스코프의 화면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들이 매우 많다. 위의 장면에서는 남자와 수지 사이의 엄청난 거리가 느껴지는데, 이런 거리는 무언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하는데, 즉 캐릭터나 이야기보다도 저 '간격'이 더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네마스코프는 화려한 사후세계를 그리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간격을 그리는데에 탁월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굉장히 빈번하고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거리 외에 피터 잭슨은 '외로움'을 표현하는데에 이 화면비를 또 한번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와이드한 화면비의 중심에 캐릭터를 두어 좌우 여백을 십분 활용하여, 넓은 배경 속에 외로이 남은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다. 광활한 사후 세계에 홀로 남은 수지와 딸을 잃고 방황하는 아빠 잭 (마크 월버그)이 더욱 외로워 보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네마스코프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는 이 화면비만의 장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는데, <러블리 본즈>의 피터 잭슨은 이 화면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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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톤먼트>의 이후가 궁금했던 시얼사 로넌은 그 때의 영롱했던 눈빛은 그대로 간직한 채 좀 더 성숙한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으며, 마크 월버그의 '아빠' 연기도 수긍이 되는 부분이었다. 레이첼 와이즈는 비중 자체가 마크 월버그에게 쏠리는 바람에 큰 활약을 펼칠 여지는 부족했으며, 수잔 서렌든은 등장은 제법 하지만 비중은 카메오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조지 하비' 역할을 맡은 스탠리 투치의 연기는 이 영화를 잠시나마 스릴러로 오해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연기였다.


1. 피터 잭슨이 역시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사진관에서의 연기는 너무 티났어요 ㅎㅎ
2. 피터 잭슨과 그의 아내인 프란 윌시는 각본과 제작을 이번에도 겸하고 있습니다.
3. 극장에서는 찾지 못했는데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피터 잭슨의 아들이 카메오로 출연했군요.
4. 음악은 브라이언 이노가 맡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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