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카데미 시상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TV를 통해 시청한 건 이번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매번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인터넷이나 다른 중계등을 통했었는데, 이번엔 쾌적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CGV의 동시통역 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동시통역이라는 것이 본래 매끄럽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처럼 현장의 소리와 통역 소리가 거칠게 겹쳐지고, 또한 대충 들어도 빼먹는 부분이 많거나 통역사의 말투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차라리 이전처럼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듯 싶다. 내년에는 좀 늦더라도 실시간 자막으로 제공하는 편이 좋을 듯.


2. 시상식 전부터 흑인 후보가 한 명도 지명되지 않는 것을 두고 일부 보이콧 까지 벌어졌던 이번 오스카는, 이를 의식한 듯 사회자 크리스 록의 작정 멘트들과 함께 다양한 부분에서 흑인들의 배제를 역으로 이용하는 순서들이 진행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단 하나 스스로 만든 논란과 그 반대의 의견을 그 스스로의 무대에서 펼치는 것이 가능한 아카데미의 환경이 조금은 부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논란을 안만드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3. 개인적으로 촬영상과 더불어 가장 주목했던 부문이 바로 여우조연상이었는데, 다섯 작품을 모두 관람한 결과 '대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가 가장 손꼽을 만 했으나, '캐롤'의 루니 마라는 물론, '헤이트풀 8'의 제니퍼 제이슨 리와 '스티브 잡스'의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충분히 좋았고, '스포트라이트'의 레이첼 맥아담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이변이 나지는 않을까 흥미로웠던 부문이었다. 수상은 예상대로 비칸데르가 가져갔다. 루니 마라는 뭐, 칸에서 주연상도 받았는데 뭐. 차라리 주연상 후보에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동시에 올랐다면 더 흥미진진 했을 듯.


4.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매드 맥스가 아니네요'라는 수상 발표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감독상이나 작품상의 주연 부문에서는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작품성이 몹시 뛰어난 작품으로, 경쟁작들을 재치고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수상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한 편으로는 받았어야 할 작품이기도 하다.


5. 주제가상 후보로 오른 '유스'의 더 심플송의 공연이 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근데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곡이 주제가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올랐던 생각이 '과연 이 곡을 어떻게 공연할 것인가'였는데, 역시나 시간 상 공연이 어려워 취소된 것이 아쉬웠다.


6. 음악상은 쟁쟁한 후보들을 재치고 엔니오 모리꼬네가 '헤이트풀 8'로 수상했는데, 공로상을 먼저 받고 아카데미를 그 후에 수상하는 경우가 또 있었나 싶다. 레오의 남우주연상도 그렇고, 스콜세지의 감독상도 그렇고, 모리꼬네도 '헤이트풀 8'로 수상하는 건 아이러니랄까.


7.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부문은 아마 촬영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든 '레버넌트'의 촬영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혹시라도 그가 수상하지 않았더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엠마누엘 누베즈키와 만난 다른 후보들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시카리오'의 로저 디킨스는 그저 눈물 ㅠㅠ





8. 이렇게 긴장되는 시상식이 또 있을까. 아마 나중에 우리나라 배우나 감독이 아카데미의 유력 수상 후보로 올라간다 해도 이보다 더 걱정되고 긴장되지는 않을 듯 하다.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모든 예상이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점칠 때마다 '혹시...'하는 걱정은 더 커져만 갔다. 그의 팬으로서 상을 꼭 탔으면 하는 것 보다도, 빨리 이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심정이 더 컸던 것이 사실 ㅋ '레버넌트'보다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수상하는 것이 더 적절했겠지만서도. 눈물이 날 법도 한데, 초연한 듯 환경 문제에 대한 수상소감을 힘있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광마저 느껴졌다 @@ 다음 작품은 좀 덜 고생하고 가벼운,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영화 하나 했으면 좋겠다.


9. 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작품들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감독상을 누구에게 줘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는 조지 밀러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감독을 비롯한 배우, 스텝들의 영화적 야망이 아주 강렬하게 묻어난 작품이었는데, 아무래도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보다는 좀 더 아카데미 취향의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10. 맨 마지막 작품상 수상작으로 '스포트라이트'라고 모건 프리먼이 짧게 외쳤을 때, 혹시 일종의 페이크는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예상 못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의외의 결과였다. 좋은 영화였고,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극 중 마크 러팔로가 연기했던 실제 인물이 함께 자리를 한 것도 의미있었다.


11. 이렇게 이번 아카데미도 막을 내렸다. 뭐 상을 받고 못 받고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레오에게는 아닐 듯), 그보다는 인상 깊게 봤던 영화들의 장면들과 배우, 감독, 스텝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후보작들 가운데 아직 못 본 '룸'이나 '사울의 아들', '트럼보', '브루클린' 등도 어서 봐야겠다.



* 이번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주요 작품들의 리뷰들.



레버넌트 _ 생존 그 자체에 대한 경외 (http://www.realfolkblues.co.kr/2063)

빅쇼트 _ 안일한 자본주의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68)

스파이 브릿지 _ 신념을 지켜낸 자들의 우화 혹은 실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38)

마션 _ 다시 우주를 꿈꾸게 만드는 휴먼드라마 (http://www.realfolkblues.co.kr/2017)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_ 여성은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http://www.realfolkblues.co.kr/1971)

스포트라이트 _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77)

스티브 잡스 _ 전기 영화 아닌 치열한 캐릭터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6)

대니쉬 걸 _ 진짜 나를 찾아줘 (http://www.realfolkblues.co.kr/2076)

캐롤 _ 아름답고 확고한 사랑의 이름 (http://www.realfolkblues.co.kr/2071)

헤이트풀 8 _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http://www.realfolkblues.co.kr/2062)

인사이드 아웃 _ 부모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미안함 (http://www.realfolkblues.co.kr/1985)

시카리오 _ 범죄와 현실의 가운데서 (http://www.realfolkblues.co.kr/2049)

침묵의 시선 _ 악마와 얼굴을 마주하다 (http://www.realfolkblues.co.kr/2010)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_ 새로운 삼부작의 시작 (http://www.realfolkblues.co.kr/2054)

007 스펙터 _ 어쩌면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마지막 (http://www.realfolkblues.co.kr/2041)

엑스마키나 _ 인공지능에 관한 깊은 반복의 결과물 (http://www.realfolkblues.co.kr/1988)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자 (The Revenant, 2015)

생존, 그 자체의 대한 경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신작 '레버넌트 (망령, The Revenant, 2015)'는 생존에 관한 경외심을 한껏 담아낸 영화다. 네러티브 상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 휴 글래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족을 잃고 살인자를 쫓게 되는 과정은 복수극으로 볼 수 있지만, '레버넌트'는 복수극이라기 보다는 생존이라는 의미, 즉 환경과 인간 누구도 100%를 의도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상황과 극복에 대한 긴 여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아니, 한 번 죽음에 닿았던 것이나 다름 없는 글래스는 생존이라는 대 서사의 앞에 놓인게 되고, 영화는 바로 그 과정을 최대한 가까이서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한다.



ⓒ (주)20세기폭스코리아 . All rights reserved


주인공 휴 글래스는 곰과의 사투로 사경을 해매기 이전 부터 이미 생존이라는 싸움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피 사업을 하기 위해 원주민과 거래하거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다른 백인들과도, 그리고 원주민과도 다른 조금은 특별한 존재다. 원주민과 정을 나누어 아들인 호크와 함께 하게 된 글래스 부자는 원주민의 무리에도 그렇다고 백인들 무리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경계에 놓인 존재다. 이것이 글래스가 이미 영화의 시작 전 시점부터 생존이라는 고독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느 한 편에 서지 못하고 (한 편에 서지 못한 이유 또한 일종의 물리적 생존을 위한 처신이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견뎌왔던 글래스는 곰에게 습격을 받는 사고와 그 이후 벌어진 일들로 인해 실제적인 생존의 경계에 놓이게 되면서 견디는 것 이상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죽다 살아난 글래스의 앞에 펼쳐지는 한겨울 매서운 산과 대지라는 자연은, 그의 생존을 돕기도 또 더 힘들게도 한다.


이 생존의 과정 속에 만나게 되는 자연의 범주에는 동물과 원주민, 인간들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단순한 복수극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글래스가 기여코 살아 남게 된 과정 속에는 단순히 아들을 죽인자를 찾아 복수하겠다는 일념의 에너지가 아니라 (오히려 복수극으로 본다면 이 복수심은 미약하게 그려지는 수준이다), 복합적인 생존이라는 싸움과 생존해야만 한다는 한 인간의 의지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거대한 자연과 순리의 현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냐리투는 생존이라는 것이 어떠한 인간의 노력과 의지 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들까지 작용하는 더 경외로운 개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허무함이나 무력함이 아니라 경외로움으로서의 생존. 그것이 이냐리투가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이 시대와 계절 속으로 카메라를 가져갔던 이유가 아닐까.



ⓒ (주)20세기폭스코리아 . All rights reserved


영화 내용 외적인 측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엠마누엘 누베즈키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영상이었다. 이미 전작 '버드맨'을 통해 이냐리투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엠마누엘 누베즈키 촬영 감독은 이번 '레버넌트'를 통해 경지에 이른 촬영을 선보인다. '버드맨'을 통해서도 인물의 심리에 맞춰 아주 가깝게 바로 뒤에서 쫓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어 마치 현실과 영화를 넘나드는 듯한 카메라워크를 보여주었었는데, 이번 '레버넌트'에서는 이보다 더 진일보한 경지의 압도적인 촬영을 보여준다. 최대한 컷을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과 눈 앞에 펼쳐진 현장의 거리와 분위기를 실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대자연의 풍광에서 경외로움을 덜어내지 않고 담아내는 기술은 가히 압도적이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이냐리투의 연출도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모두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엠마누엘 누베즈키의 촬영이다.



1. 레오의 팬으로서 이제 더이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캐릭터는 최소한 한동안은 그만 했으면 ㅠ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캐릭터로 좀 환기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


2. 또 한 번 디카프리오 얘기. 아무래도 그의 연기는 아카데미 수상을 안 떠올릴 수가 없게 만드는데, 그래서 더 안쓰럽달까. 워낙 영화 속에서 고생 고생 상고생을 하다보니 마치 그런 글래스의 모습에서 아카데미를 향한 레오의 고생 고생 상고생이 연상되기도 해서 흑;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주)20세기폭스코리아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