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이라니, 일단 제목은 그럴싸 했다. 폴란스키라는 이름과 대학살이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느껴지는 조합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라일리라는 출연진은, 어지간해서는 실망하기 어렵겠다는 안전성마저 느끼게 해주었기에 주저없이 극장을 찾게 되었다. 사실 전혀 영화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보자는 주의라 이번에도 감독과 배우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코미디라는 점도,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몰랐는데, 역시나 몰랐던 것이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연극을 보았거나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았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이 네 명의 주인공이 처음 현관까지 나갔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아, 이 영화 이 공간 안에서 끝을 보겠구나!'하며 더 흥미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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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랄 것도 없고 줄거리랄 것도 없는 것이 이건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이자 스포일러인 영화다. 각자의 직업으로 대변되는 점을 좀 더 부각하여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 그냥, 배울 만큼 배운 어른들 네 명의 아웅다웅 정도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그 '아웅다웅'이 어찌나 현실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흥미진진한지! '대학살의 신'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그럴싸하게 느껴질 정도의 티격태격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주 심플한 인트로로 시작된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작은 다툼이 일어나는데, 이 배경으로 스쳐지나쳐도 좋을 일이 얼마나 큰 (하지만 쓸데없는) 어른들의 일을 야기시키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면 역시나 '문명의 대학살'까지 운운한 어른들의 싸움과는 달리 아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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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위의 포스터 이미지와 같이 방안에 각각 위치한 네 명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이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와 심리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동작과 표정을 취하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의 변화를 보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아, 이건 아닌데'하는 지점에 빠져버릴 때가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본인 스스로를 완벽히 컨트롤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일 수록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도 될텐데, '대학살의 신'은 바로 그 점, 사회적으로 성숙한 계급 아닌 계급에 살고 있는 어른들을 아주 작은 아이들의 일로 모이게 해 놓고, 정말 유치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과정을 숨김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더 재미있는 이유는 그냥 멀쩡하게 생긴 캐릭터들이 유치한 말과 행동들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 가운데 나도 종종 살면서 범하는 실수들이 담겨 있어서 순간순간 섬짓 했기 때문이었다. 이 네 명의 대화 가운데는 짧지만 우리가 쉽게 범하곤 하는 삶의 작은 실수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뭐랄까, '내가 저런 실수를 했을 때 저렇게 하찮게 보였겠구나'라며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랄까. 정말 우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진짜 나도 별일 아닌 거 가지고 저렇게 유치하게 덤빈 적도 있었는데...'하며 웃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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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벽한 유치함을 완성하는 데에는 역시 네 명의 배우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정말 캐스팅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인데, 헐리웃에서도 지적인 이미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조디 포스터가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이 지지 않으려고 정말 목에 핏대를 세우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주장을 펼칠 때에는 코미디 이상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여기에는 조디 포스터의 연기력도 물론 한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조디 포스터라는 배우의 이미지 자체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라면 역시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캐릭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조디 포스터 못지 않은 반전 연기는 물론 무엇보다 그 '몸연기'! 선반에 기대거나 벽에 기댄 모습, 그리고 방바닥에 정말 초라하게 웅크리고 앉은 그 몸연기는 올해의 연기 후보에 올려도 좋을 정도로 참~ 볼품 없었다 (과찬임 ㅋ). 존 C.라일리 역시 나머지 세 명과는 조금 다르게 능청을 부리며 이 셋을 비꼬는 듯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도 극도로 유치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했으며, 케이트 윈슬렛은 의도치 않은 한 방(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그 것!)과 더불어 세련됨과 정제됨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 지를 정말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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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이 네 명의 배우가 유치찬란한 연기를 멋지게 연기했는지, 이제는 스틸컷 속 이들의 얼굴만 보아도 절로 '큭큭'하며 웃음이 날 정도다. 영화의 러닝타임과 영화 속 리얼타임이 동일하고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네 명의 '어른'들 밖에는 없지만, 무언가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를 만난 듯한 그런 영화였다.



1. 처음 원작에 대해서 몰랐을 때에는 폴란스키가 홍상수 영화를 찍었구나 싶었어요 ㅋ

2. 아, 홍상수 영화와의 차이점이라면 배우의 수는 비슷하지만 스텝의 수는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점

3. '다즐링'은 최소한 저에게는 유행되었습니다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BS Productions 에 있습니다.


 





유령작가 (The Ghost Writer, 2010)
고전미 넘치는 폴란스키의 스릴러



사실 개인적으로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들을 다른 감독들에 비해 유달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이번 그의 신작 '유령작가'가 크게 기대되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완 맥그리거도 나오겠다 안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극장을 찾았다.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유명 정치인의 대필작가에 관한(의한) 이야기를 다룬 '유령작가'는 (처음엔 단순히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고스트 라이더'와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쓴 우리말 제목이 아닐까 싶었지만, 보고 나니 '유령'작가라는 제목이 썩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최근 극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그래서 그것이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되버리는, 매우 고전적인 방식의 스릴러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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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는 어쩌보면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닐지 모른다. 반전이 주가 되곤 하는 스릴러 장르에서 이야기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니, 이것은 '유령작가'를 단정 짓는 가장 큰 잣대가 될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분명히 커다란 줄거리에서 서서히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등장하고, 그 가운데 약간의 속도감을 주기도 하고, 누구를 정녕 믿어야 할지 관객들로 하여금 한 편을 선택하게도 하지만, 이 모두가 극적이거나 과장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과장이 안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도 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커다란 반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반전 자체의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반전 자체를 묘사함에 있어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큰 임팩트를 일부러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단서를 얻게 되고 의심을 갖게 되는 장면들 역시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에 비하면 훨씬 불친절한 동시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불친절 하다는 것은 반전이나 미스테리를 위해 반드시 관객이 인지해야만 할 정보들이 나오는 장면에서조차, 이것을 보여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유령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은 정치적인 메시지였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이 영화가 겉으로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너무 단순하다. 반전의 임팩트가 부족하듯 여기까지 이끌어 온 정치적인 음모들은 기존 우리가 봐왔던 정치적인 영화들에 비해 너무 간단하고, 그 뒤에 숨어있는 메시지조차 큰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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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는 온갖 자극적인 것들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의 관객들에게 보내는 폴란스키의 작가주의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폴란스키는 못해서 안했다기 보다는 일부러 갈 수 있는 길을 피해가면서, 최근 자극적인 스릴러에 (자극적인 스릴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무언가 더 나올 것 만 같은,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만 살짝 주면서 결국 그 이상은 보여주지 않는, 좀 '다른' 스릴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며 최근 보았던 임상수의 '하녀'가 문득 떠올랐다. 극중 이완 맥그리거가 대필작가로 활동하게 되는 섬과 아담 랭 (피어스 브로스넌)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요새와 같은 곳의 미장센은, 세련되었지만 매우 고전적이고 1층과 2층, 방과 방, 방안에서 밖의 인물들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구조 등, 은근히 이 공간과 구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인물들의 의상들도 그렇고, 비바람이 새차게 부는 날씨도 그렇고, 영화를 보고 나면 전체적으로 '회색'의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유령 (Ghost)'이라는 것과 회색의 느낌으로 가득한 작품의 분위기는 관객에게 무언가 메시지 그 이상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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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의 영국식 억양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는데, 최근 '언 애듀케이션'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올리비아 윌리엄스의 연기도 매우 인상깊었다. 외모가 꼭 닮아서도 아니었는데, '유령작가'에서 올리비아의 연기는 마치 샬롯 램플링을 보는 듯 했다. 언제나 맡은 역할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톰 윌킨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아멜리아 역의 킴 캐트럴은 얼굴을 보고도 끝까지 과연 내가 아는 그 킴 캐트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라 잘 적응이 안되더라. '섹스 앤 시티'를 열심히/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지나가다 스쳐본 기억과는 다르게 너무 진지한 캐릭터와 연기라 많이 놀랐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RP Films. 판시네마에 있습니다.





전운이 감돌던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은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폴란드의 국보급 천재 음악가다.
스필만은 여느 때와 같이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데, 바로 그 순간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고 스필만은 자신의 연주를 완전히 끝내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나치는 폴란드 안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유대계인 스필만의 가족들은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강제로 실린다. 피아니스트인 자신을 알아보는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스필만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나치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들게 되는데....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역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블라디슬로프 스필만(Wladyslaw Szpilman)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중요 표적이 되었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주인공인 스필만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배경의 이야기를 로만 폴란스키만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배경에 있다.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는 그 역시 유태인이며, 스필만과 같이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였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를 잃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꼭 이 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폴란스키는, 스필만의 저서를 읽는 순간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물론 폴란스키 감독은 스필만처럼 처절한 생존의 상황에 내버려 지지는 않았었지만, 적어도 스필만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가 이 전쟁을 영화화 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추억하고 되새긴다기보다는,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전쟁이라는 것의 무의미함과 참혹성을 알려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이었을 것이다. 타성에 젖을 수도 있었던 폴란스키는, 그러나 상황을 냉정하고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데 성공하였고, 그의 여러 영화 가운데서도 스스로에게나 관객들에게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가 가장 하려는 이야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영화는 종종 같은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와 비교가 되곤 하는데, 이 같은 시각이 [쉰들러 리스트]와 가장 구별되는 점이다. 스필버그는 그의 영화 답지 않게 어두운 분위기와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쉰들러 리스트]는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고, [피아니스트]는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군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들이 기분이 좋지 않다거나 심심풀이로 유태인들에 머리에 총을 겨누었고,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없이 그저 참혹하게 처형당하고 말았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느꼈던 폴란스키의 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독일 군 역할을 맡아 출연한 배우들은 촬영을 하면서도 분노가 일정도로 나쁜 놈처럼 보였지만, 카메라가 멈추었을 때에는 그저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로 돌아온 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처참한 전쟁의 가운데에는 착한 독일인들도 있었고, 반대로 폴란드인들 중에는 악한 폴란드인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절대 악이란 ‘전쟁’ 자체였으며, 절대 선으로 하여금 악으로의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전쟁이란 것이다. 결국 모두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이 전쟁이고, 폐허와 악몽만이 남는 것이 전쟁일 것이다. 다음에 사실은 이러한 전쟁의 사실적인 내용을 보탬 없이 그대로 들려준다.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The Warsaw Ghetto).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 나치의 첫 번째 목표지역 중 하나는 바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였다. 바르샤바는 독일의 민족적, 경제적, 기타 다양한 이유로 시작한 전쟁에 있어 중요한 요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에 집중적인 공중폭격을 가한 뒤 1939년 9월 16일, 전면적으로 이 도시를 침공했다. 스테판 스타진스키 시장과 줄리앙 롬멜과 같은 인사들을 필두로 용감한 저항이 시도되었으나 독일은 그들의 전력과 수력 공급 로를 차단했다. 결국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는 대가로 저항을 포기해야만 했다. 독일군은 10월 1일 도시를 완전 점령했다. 12일에 히틀러 정권은 철조망으로 403 헥타르의 게토 지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16일, 독일군은 도시 인구의 30%가까이 되는 36만 명의 유대인들을 이 지역에 강제 거주시키기에 이른다. 점차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보내지고 곧 50만 명이 넘게 된다. 10만 명의 유대인은 이곳에서 기아와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다.



마침내 도시의 모든 유대인은 이 강제거주지로 몰린다. 그들은 파란별이 그려진 흰색완장을 반드시 착용해야했다. 또한 노역을 당해야했고 식량은 아주 조금씩 배급되었다. 나치군은 자기 기분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처럼 공포에 휩싸인 환경 속에서도 강제거주지역, 즉 게토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게토 내에서 그들은 학교를 다녔고 정치적 활동도 조심스레 진행되었다. 1942년 7월, 8월에 거대한 이송이 시작되었다. 31만 명에 가까운 게토의 유대인들은 트럭 혹은 배로 이동, 대부분이 트레블링카 실험 캠프로 옮겨졌다. 1943년 3월, 히틀러는 남아있는 유대인 처형을 위해 나치 군을 보냈다. 같은 해 4월, 나치의 학살계획이 확실해지면서 처형당하는 자들은 급속히 늘어났다. 게토 지역은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사회주의자이자 시오니스트 운동의 지도자 모데하이 아닐레빅이 이끈 폭동에 4만 명의 유대인이 참가했다. 그들 중 무장된 이들은 단지 200명뿐이었다. 이 처참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5월 16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주민들은 탱크와 화력을 앞세운 독일 군에 강력하게 대항하였다. 이 싸움은 폴란드 저항군이나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의 도움 없이 진행되었다. 이 전투에서 7천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고 3만 명의 생존자는 강제 이송되었다. 독일이 바르샤바를 포기한 1945년 1월, 이 도시에 살아남은 유대인은 불과 20여 명뿐이었다. (보도자료)



[피아니스트]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여과 없이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과 생존에 관한 것이다. 실제 스필만은 영화 속처럼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과 배고픔, 추위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살아남았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폴란스키 역시 스필만이 역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돌아온 스필만이 연주회를 여는 장면으로도 알 수 있다.

또한 스필만의 생존의 이유가 그가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에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연주로 인해 독일 군 장교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Wilm Hosenfeld‘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독일 군 장교는, 폐인에 모습을 하고 있던 스필만 으로부터 연주를 들을 후에 독일 군과 유태인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전쟁을 초월한 인류애적인 입장에 서서 그를 돕게 된다. 사실 많은 헐리우드의 영화들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만 있으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었다. [피아니스트]역시 따지고 보자면, 그러한 입장에 서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둘 간의 분명한 차이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스필만의 연주가 사치스럽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러한 모든 생각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동의하게 때문일 것이다.



일단 타이틀은 3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져 있다. 본 편을 담은 첫 번째 디스크와 서플먼트 만을 수록한 두 번째 디스크, 그리고 초판 한정으로만 수록되어 있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디스크가 세 번째 디스크로 수록되어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가운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사실적인 배경 묘사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는데, 타이틀의 화질은 그때의 전장의 비극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고 있는데, 총소리나 폭발음에 포커스를 맞춘 사운드는 아니기에 이러한 소리들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레퍼런스 급의 사운드를 지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폐허가 된 건물 안에서 스필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반드시 볼륨을 키우고 감상해 볼만한 장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영어 더빙 외에 프랑스어 더빙도 지원하고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갖가지 서플먼트가 담겨있는데, 무엇보다도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감독인 폴란스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A Story of Survivor'가 눈길을 끈다. 다른 타이틀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들보다는, 좀더 숙연하고 조심스레 접근한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다 하지 못했던 폴란스키의 얘기와 그가 표현하려 했던 의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여기에는 주연 배우인 애드리언 브로디와 독일 군 장교역할을 맡았던 토마스 크래츠만의 인터뷰도 들을 수 있다. 이외에 각종 예고편들과 골든 글로브와 칸 영화제 스케치, 포스터 모음, 포토 갤러리, 보너스 오디오 트랙, 스필만을 비롯해 스텝들과 배우들의 소개 또한 담고 있다.

2003.06.26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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