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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파수꾼의 추억


윤성현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파수꾼 (Bleak Night, 2012)'는 그 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영화 '파수꾼'이 개인적으로 조금 다르게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 때문이다.


* 참고로 영화에 대한 리뷰는 여기로 (파수꾼 _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이 때도 살짝 오늘 할 얘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속으로 '어? 설마?'라는 말을 내뱉게 되었는데, 바로 극 중 배경이 된 장소가 몹시 낯이 익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삼인방이 함께 야구도 하고 또 걸터앉아 담배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나오는 기차역이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있었던 탓에 확신까지는 하지 못했었으나, 영화 말미 크래딧을 보고 나서야 내 기억 속의 원릉역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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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때만 해도 철로 옆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이 장소가 내게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실제로 원릉역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자주 오가던 혹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던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원릉역을 사이에 두고 아래쪽은 성사동으로 주공아파트 단지가 위치하고 있었고 위 쪽은 주교동으로 버스 종점 정류장과 함께 주택단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원릉역에서 약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바로 약이 내다 보이는 주공아파트 단지에 당시 살고 있었다. 풀이 우거진 계단을 올라 원릉역 철로를 지나서 나오는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를 다녔더랬다. 그리고 영화 속과 비슷하게 원릉역에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기도 했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내가 살 때만 해도 이 곳은 많지는 않아도 가끔 기차가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영화 속처럼 학생들이 죽치고 담배를 피거나 철로 위에서 놀거나 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또,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릉역은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이동 통로로 활용이 잦은 위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비슷한 점이라면 실제 원릉역은 (그럼에도) 밤이 되면 불빛이 어둡고 으슥한 느낌이 있어서 무서운 형님들이 돈을 뺏거나, 혹은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일들도 가끔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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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처음 보고 긴가민가 했던 이유는 철로 옆에 높게 솟은 고층 아파트 풍경 때문이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모두 보냈지만, 20살이 넘어서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독립을 하게 되어 한 동안 가보지 못했던 터라 주공아파트가 재개발되고 신도시가 생겼다는 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말로만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철로 뒤로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지만 내가 살던 당시, 그리고 열차가 다니던 당시의 풍경은 5층짜리 주공 아파트가 늘어선 풍경이었다. 만약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이 영화가 촬영되었더라면 영화 속에서 내가 살던 주공아파트 107동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수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살았던 곳이 영화 속에 등장해서가 아니다. 잠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동네는 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공 아파트 단지 전체가 재개발되면서 동네 자체가 전혀 달라져 버렸다. 즉, 내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작은 단지들의 모습을 이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원릉역은 비록 그 경계에 있었던 중간 지점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에 추억이 남다를 수 밖에는 없었다. 여기서 참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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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교회 건물 바로 옆 빌라 반지하 집에서도 수년을 살았던 기억이...)



그렇게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던 영화 '파수꾼'을 어제 오랜만에 케이블 티비를 통해 다시 보게 되니, 나도 교복 입고 원릉역을 넘나들던 그때가 다시 떠올랐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들개 : 블루레이 리뷰 (Tinker Ticker : Blu-ray Review)



김정훈 감독의 데뷔작 '들개 (Tinker Ticker, 2013)'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그러니까 보통 현실을 담아낸다고 했을 때 흔히 선택하게 되는 보편적이고 겉 핥기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을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진짜 현실적인 이야기를,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는 사제 폭탄이라는 소제를 활용해 그려낸 수작이다 (다른 얘기로, 요즈음의 한국 사회 모습을 보면 사제 폭탄이 더이상 비현실적인 소제라고 말하기 조차 구차스럽다). 여기에 지금은 제법 알려진 스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첫 장편 출연작이거나 아직 독립 영화계에서만 이름을 알려왔던 변요한과 박정민 두 배우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마 이 작품은 이 두 배우 덕에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더 많은 조명을 받게 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들개'는 어떤 이유에서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흡수 되지 못한 20대 혹은 30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흔히들 2,30대 청년들의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청년 실업 문제를 중심으로 경제적인 불투명한 미래 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현재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김정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즉 자신이 겪었던 감정들을 그려낸 이 영화 속 박정구(변요한)의 이야기는 물론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섞이지 못한 일종의 외부인으로서 겪는 직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 외에도 정확히 이거다 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불만 혹은 답답함이 더 큰 갈등이자 문제로서 등장한다. 정구는 대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계속 면접을 보지만, 정구가 사제 폭탄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등의 일은 단순히 그가 매번 면접에 떨어져서도, 조교실에서 교수와 선배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만도 아니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정구의 이야기를 단순히 취준생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했던 현실과 감정/갈등을 다 읽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들개'에는 주인공 정구 외에 박정민이 연기한 이효민 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효민은 정구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불만을 가진, 다른 성격의 같은 인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효민이 정구에게만 존재하는 유령 같은 (혹은 악마같은)존재로 느껴졌다. 정구는 사제 폭탄을 만들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그 폭탄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탓에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을 보내 그 폭탄이 사용되기 만을 바라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아주 적합한 이가 바로 사회의 불만이 많아 보이고, 더 나아가 그 불만을 표출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효민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나란히 두고 각자 존재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효민을 정구의 욕구가 표출된 분신으로 볼 때 더 큰 매력을 갖게 된다. 정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폭탄을 사용한 정구의 행동에 표현하지는 않지만 쾌감을 느끼게 되고, 효민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면서도 그를 큰 거리낌 없이 받아 들인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정도 안정과 안식을 찾게 된 이후 위험한 존재인 효민을 멀리하고자 하지만, 효민은 결코 쉽게 정구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들개'에서 가장 소름끼치도록 들켜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순간은 죽일 정도로 미워했던 담당 교수가 결국엔 정구를 (그래도)신경 써주고 취업을 도와주게 되면서, 정구가 한 순간에 자신도 동경 혹은 멸시했던 그 사회의 일원으로 흡수되는 장면이었다. 그 전에 이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보통과는 다르게 담당 교수가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고 정구가 오해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쁜 놈인 것은 그대로인데 정구가 원했던 몇 가지를 해결해 주는 것에서만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담당교수를 향한 정구의 불만과 증오가 단순한 오해만은 아니었음에도 정구가 그렇게 원하던 취직을 해결해 주었다는 점은, 그 취직이라는 것이 오히려 정구가 멸시하던 사회로의 편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고, 정구 역시 정의와 불의의 가운데 에 있는 영화적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그래서 현실적인 주인공임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시점부터 관객은 온전히 정구의 편에 설 수 없게 된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정구의 편에 서고 싶지 않게 된다. 그건 돌려 말하면 관객 자신도 정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점을 송곳 처럼 파고드는 것이 김정훈 감독의 '들개'가 가진 가장 큰 시사점이다.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정구는 과연 살아남았나. 정구는 과연 그가 바라던 사회에 일원이 된 것인가. 처음부터 그 사회를 경멸한 것은 내가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스포일러 끝)


[들개 : 블루레이] 인상적인 데뷔작에 내려진 놀라운 축복




*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이기는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같은 타이틀을 중복으로 A/B타입 모두 구매하지 않는데, '들개'는 둘 다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A타입은 영화와 딱 떨어지는 완벽한 이미지였고, B타입은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또 다른 매력이자 취향이어서 구입하지 않을 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만약 플레인에서 '들개' 블루레이가 발매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말하자면 국내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이 푸념은 하면서도 늘 지겹고도 슬프다) '들개'같은 독립 영화가 발매 될 확률은 지극히 희미 하다는 점에서 새삼스럽지만 출시 자체가 놀라운 사건이다. 앞서 '훨씬 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라고 한 이유는 플레인 아카이브의 유명세로 인해 이 영화를 흥행 시켰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생'과 '육룡이 나르샤'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게 된 변요한과 '파수꾼'을 비롯해 최근 '동주'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 박정민 배우의 팬들이 놓칠 수도 있었던 두 배우의 뜨거운 연기가 담긴 수작 한 편이 적당한 타이밍에 블루레이로 발매된 덕에 서로를 놓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최근 뜨거워진 두 배우의 인기에 편승한 재빠른 출시가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블루레이 제작을 결정했을 시점에서는 결코 두 배우의 인지도가 지금과 같지 않았었다. 좋은 작품을 작품의 크기나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선택한 것인데 이후 두 주연 배우가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오히려 플레인 아카이브의 팬으로서 역으로 고마울 정도다. 






아주 가끔이지만 간혹 영화에 비해 과한 패키지로 출시 된다거나 혹은 굳이 블루레이로 발매될 정도의 영화가 아닌데 (이건 국내의 특수한 시장상황 때문이지 결코 보편적인 이유는 아니다) 급작스럽게 블루레이로 발매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다. 물론 출시 되지 않은 것 보다야 훨씬 더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많은 좋은 영화들이 제대로 된 타이틀로 발매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상황에서 상대적인 아쉬움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적어도 '들개'는 그 놀라운 축복을 받을 자격은 충분히 있었던 좋은 데뷔작 임엔 틀림 없다. 저예산의 규모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영리한 구성과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 그리고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대규모 상업영화들과 견주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긴장감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다시 블루레이 패키지 이야기로 돌아와 플레인 아카이브 넘버링 #021 타이틀로 출시된 블루레이는 역시 플레인 답게 디자인과 패키지의 구성에서 또 한 번 만족감을 주는데,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무릎을 탁!하고 칠 만한 기막힌 아웃케이스(A타입)가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속 수제 폭탄 박스 이미지를 최대한 실제처럼 구현한 이 아웃케이스 이미지는 진짜 '딱'이다. 여기에 청테이프의 질감을 살린 플레인 아카이브 한정판 스티커는, 새삼스럽지만 하나의 블루레이 패키지를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주먹구구식이 아닌 하나의 큰 기획 아래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 디테일!



* 디테일이다!!



*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 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 (CD)


부가영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블루레이 독점으로 수록된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최초는 아니지만 해외 타이틀에 로컬 음성해설을 별도로 제작해 수록하기도 했던 플레인은 (최초는 블루레이는 아니지만 아마도 예전 스펙트럼 DVD 시절에 쇼브라더스 타이틀에 수록되었던 로컬 음성해설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별도로 발매되지 않은 영화의 스코어를 블루레이 만을 위해 독점으로 수록하는 또 한 번의 과한(?) 정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취향에 따라 스코어 음반은 누군가에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취향을 떠나서라도 어찌되었든 '들개'라는 영화와 블루레이 타이틀의 소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화와 관련 된 자료 혹은 정보를 최대한 끌어 담으려한 시도는 그 자체 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이다. 스코어의 독점 수록은 새로운 시도였는데 추후에도 국내 영화 출시시에는 유사한 시도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영화 만큼이나 만족스러웠던 것이 블루레이 부가영상이었다. 혹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잘 살펴보면 부가영상으로 수록 된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 및 삭제 장면, NG 장면 등이 사전에 영화 홍보를 위해 일률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블루레이 수록을 위해 진행되거나 염두에 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 타이틀의 경우 아직까지도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화질이나 음질 보다도 양적으로 부족하거나 질적으로 평범한 부가영상들인데, 애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DVD나 블루레이가 고려되지 않거나 고려되었다 하더라도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뻔한 인터뷰나 그 인터뷰 내용이 중복된 제작영상이 수록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들개'는 당연히 사전에 블루레이 제작을 염두에 둘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제작이 결정 된 이후 갖게 된 상영회 등에서 블루레이 수록 만을 위해 별도로 인터뷰나 관련 코멘트 등을 추가한 점이, 질적으로 확실히 느껴지는 점이라 만족스러웠다.





김정훈 감독과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도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어 볼 만한 트랙이다. 김정훈 감독에게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두 배우가 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보니 흥미롭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아마도)상상마당에서 상영회 후 진행 된 듯한 두 배우의 인터뷰 영상도 진지함이 묻어나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듣게 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 된 관객과의 대화 영상 역시 불필요한 내용 없이 영화의 메시지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전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외에 삭제 장면, NG장면, 또 다른 엔딩, 오디션 영상 등이 수록되었는데 이들 영상이 좋았던 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냥 늘어 놓기 식의 정보성 영상이 아니라, 감독의 코멘트가 텍스트로 제공되어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이해가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확실히 그냥 별다른 설명없이 수록되었을 때보다 해당 영상들을 더 주목해서 끝까지 감상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 이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서 더 의미있는 부가영상이었다.





사실 나는 변요한, 박정민 두 배우의 팬이자 플레인의 팬이라서 엎친데 덮친 격이라 '들개' 블루레이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여서인지는 몰라도, 영화도 타이틀도 만족스럽게 빠진 것이 이렇게 글을 부러 쓰게 되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아마 '들개' 블루레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는 더 소장 가치가 높아지는 타이틀이 될 것이다. 변요한의 데뷔작, 박정민의 초기작이 더 의미있어 질 때, '들개' 블루레이의 가치는 지금보다도 더 크게 빛날 것이다. (두 개 사길 잘했어.)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플레인 아카이브 에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미처 소개 못한 스크린샷 몇 장 추가~








동주 (The Portrait of A Poet, 2015)

부끄러움이 절실한 시대에 바침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륙첩방은 남으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 쉽게 쓰여진 시 中)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나라를 빼았긴 암흑과도 같았던 시절을 배경으로 애국심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행동에 대해서도 또한 일제 강점기 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한 발 물러서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동주라는 청년이 있다. 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 그렇게 영화 '동주'는 물러설 곳이 없었던 어두운 현실 한 가운데 있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들려줌에 있어 시대 정신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인 내러티브로, 마치 윤동주의 시와 같은 쓸쓸함을 머금은 공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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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윤동주 - 자화상 中)


영화 '동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윤동주의 시 구절을 내러티브로 활용한다. 영화 속 장면과 시의 구절이 뜻하는 바가 실제로 반드시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착각이 들도록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윤동주의 시 한 구절 한 구절의 힘을 관객에게 최대한 가슴 깊이 전달하고자 한다. 문학 장르 가운데서도 '시'라는 형태는 가장 쉬운 방식인 동시에 가장 그 깊이를 다 소화하기 어려운 문학이기도 한데, 영화 '동주'를 보고나면 실제로 학창시절 별다른 생각 없이 혹은 그저 문장의 아름다움 만으로 읽었던 윤동주의 시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설령 그 구절이 영화가 만들어 낸 것과는 다른 심정으로 쓰여졌다해도 말이다. 그 지점이 영화 '동주'의 첫 번째 의미다.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윤동주를 다른 요소를 최대한 섞지 않고 그려내고자 한 점. 그것은 아마도 박정민이 연기한 송몽규라는 인물을 비중있게 다루게 되면서 윤동주라는 인물을 좀 더 시대의 그림자처럼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주'는 그저 시집을 내고 싶었던 청년 윤동주의 심정과 그로 인해 느껴야 했던 부끄러움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일제 시대라는 무시하려해도 할 수 없는 시대의 문제와 그 시대를 독립운동이라는 정신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이들의 숭고함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어느 한 편으로 기울었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되기는 힘들었을 영화였을 텐데, 이준익 감독은 균형점을 찾는 것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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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 서시 中)


영화 '동주'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결국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윤동주의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다시 꺼내고자 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힘이 없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두려워서 그저 닥친 현실과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 모른척 하거나 무시하려 자기 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동주'는 바로 그런 자들, 이런 저런 이유들을 들어 그럴 수 밖에는 없다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못 본척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뼈저린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현실에게 보내는 과거로부터의 메시지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시대에 시인이라는 작은 꿈을 꾸었던 윤동주가 거대한 시대 앞에서 죽음으로 느껴야만 했던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을 통해 과연 현재의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최소한 부끄러워는 해야 할 양심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윤동주라는 한 청년의 짧은 삶과 그가 남긴 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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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많은 것들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최소한 부끄러워 하자. 그것이 시인 윤동주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절실한 외침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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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단도직입,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은 포스터 맨 위에 문구처럼 올해의 발견이자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 할 수 있겠다. 윤성현 감독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어린 나이에 정말 멋진 데뷔작을 만들어 냈는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 등을 살펴보자면 더더욱 놀라운 데뷔작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영화는 미스테리의 방식으로 한 남자가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기태의 아버지이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점이 있어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수소문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는데, 이 이후에도 이 미스테리 방식은 계속 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미스테리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전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시간의 재배열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사실 관계 등은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다. 아, 한 편으론 미스테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파수꾼'은 학창시절 그 누구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던 우정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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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기태와 희준, 동윤, 이 세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 이전에 '파수꾼'은 소년과 학교 그리고 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흔히 가곤 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표면적인 폭력과 사춘기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폭력을 권력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사실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파수꾼'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조금은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일단 이 영화가 폭력을 그리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 보다 가해자(피해자인 동시에)를 묘사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극중 기태(이제훈)는 학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무리를 거느린 일종의 권력자다. 항상 같이 다니는 무리들 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섭게 그리고 상대가 무력화되도록 겁을 주곤 하는 존재다. 그러던 기태가 어느 날 역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희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이 일로 인해 희준은 큰 상처를 입고 기태를 멀리하려 한다. 

이 영화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기태가 사과를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바로 폭력의 주체였던 기태조차 자신의 저지른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몰랐던 것은 물론, 결국 그 결과와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어디서 잘못되었고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기태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그것처럼 처음부터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잠깐의 실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로 인해 가해진 상처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게 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비슷한 (혹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훈이 연기한 기태가 그 상황을 맞닥들이는 장면의 전율에 가까운 떨림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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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평범하지 않은 동시에 더 섬세함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묘사를 들 수 있을텐데, 일단은 기태와 희준, 동윤이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우정을 나눈 친구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기태 역시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의 이런 면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기태는 분명 미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추억과도 같다. 일단 영화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단서로 그의 아버지와 가족을 들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태의 아버지는 죽음 이후 기태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궁금한 점들 혹은 의심되는 점들을 찾아가고 있다. 기태 아버지의 여정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속죄의 여정에 가깝다. 어머니의 부제와 존재는 했지만 곁에 있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 이로 인해 외로움과 결핍을 겪어야 했던 기태는 주목 받기 위한 삶을 자연스레 택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기태의 자리를 몇 번 그대로 포갠듯이 묘사한다. 영화의 시작, 위 층에서 들리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친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 상처를 받은 기태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지고, 동윤이는 같은 장소에서 기태와 기태 아버지를 모두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아버지의 속죄의 여정이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속죄는 없다.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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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가장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에 대한 감정 묘사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섬세한 감정묘사가 단순히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장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스테리일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세 친구의 우정과 그 헤어짐을 통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걸까에 대한 물음이자, 아니 묻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아니 그렇게 밖에는 못했던 수 많은 관계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극 중 주인공들의 대화를 보면 핵심이 없다. '뭐' '그래서' '그래서 왜' '뭐가 어쨌는데'라는 식의 서로를 방어하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식의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자아가 만들어져 가는 시기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이들은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이내 마음을 닫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야기는 핵심없이 겉돌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차 서로 알지 못한 채 안타까운 해체를 맞게 되는 것이다.

'파수꾼'은 세 친구에게 똑같은 애정을 쏟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기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크게 묻어나고 있다. 결국 희준과 동윤이 역시 기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과연 더 현명한 우정으로 이 간극을 극복할 수는 없었는지. 영화가 이 안타까움을 그리는 라스트 씬에서는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영화적 기운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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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보고나서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 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1. 기태 역의 이제훈씨를 비롯해 서준영, 박정민 이 세 사람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기태의 그 흔들리는 눈동자와 불안하고 당황한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2.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더 개인적인 다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된 기차역이, 바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아는 곳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엔딩 크래딧에 원능역이 있는 걸 보고나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저 기차길에서는 불량한 형들을 비롯해 학생들이 자주 놀 던 곳이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걸터 앉아 놀던 기억이 있어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기차길 바로 앞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메일 학교가려면 그 기차길을 지나야 했거든요.

3. 윤성현 감독과 세 배우의 앞날이 모두 너무나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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