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 (Source Code, 2011)

제목이 8분이 아니라 소스코드인 이유



'더 문 (The Moon, 2009)'을 연출했던 던칸 존스의 신작 '소스 코드'를 보았다. 확실히 이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이크 질렌할이나 베라 파미가가 아니라 던칸 존스였다. '더 문'을 통해 보여준 그의 재능과 SF적인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영화에 녹여내는 그의 방식은, '소스 코드 (Source Code)'라는 제목과 함께 또 한 번 비슷한 경험을 선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에는 '인셉션 (Inception)'이 항상 함께 했었는데, 그 의도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셉션'을 거론해도 될 만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꿈 속의 꿈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그 꿈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확장시켰지만 결국 그 안에는 주인공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매우 감성적인 러브 스토리이자 드라마였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소스 코드' 역시 평행우주론이라는 세계관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SF적인 접근 방식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접근법으로 풀어낸 같은 방법론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 The Mark Gordo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시카고행 기차안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주인공 콜터 (제이크 질렌할)는 열차 안에 있지만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심지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 그리고 곧 열차는 폭발하고 또 한 번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한 여성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열차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다시 열차로 돌아가야 하며, 8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들은 채 다시 열차 속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소스 코드'의 설정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시간여행이나 평행우주에 관해 그렸던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설정들이 자주 등장하며, 꼭 이 설정만이 아니더라도 큐브에 갇혀 만져지지 않는 다른 이의 메시지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같은 시작점의 8분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은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을 연상시키게 하는데, 놓인 구체적인 상황만 다를 뿐 극중 제이크 질렌할이 처한 전체적인 상황은 빌 머레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익숙한 재료들과 설정들을 가지고 요리했지만, 던칸 존스의 이 완성된 요리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균형이 아닐까 싶다.




ⓒ The Mark Gordo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소스 코드'에는 더 강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줄기가 여럿 존재한다. 영문도 모른 채 소스 코드 속에서 '션'으로서 세상을 구해야만 하는 콜터의 이야기, 아프칸에서 헬기 조종을 했던 군인으로서 콜터의 이야기, 소스 코드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8분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티나 (미셸 모나한)를 비롯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스 코드'는 이들 이야기 중 하나를 선택해 끝까지가는 방법 대신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정쩡하고 미지근한 것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 이야기에 (설령 그것이 오버스럽더라도) 몰두해서 극한까지 몰아가는 편을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몰고 가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것보다 조금 더 쉬운 방법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요소를 전부 껴안으려고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경우와 비교하였을 때, 던칸 존스의 '소스 코드'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아쉬움 보다는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상황에 바로 놓여져버린 주인공 콜터의 개인사는 아버지와의 짧은 인연 (정말 짧은) 정도만 묘사되고 있는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짧은 아버지와의 연관관계 만으로도 후반부 콜터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에 아주 큰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와 아버지 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고, 콜터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전화 한통으로 이런 여백을 모두 담아냈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의 숨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다른 SF영화였다면 아마도 가장 큰 이슈가 되었을 소스 코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소재 정도로만 등장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장황한 설명이나 상황 묘사 없이 '평행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역시 이 영화에 장점이라 하겠다.




ⓒ The Mark Gordo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아마도 군의 주도로 진행되는 소스 코드 프로젝트의 배경에 깔린 음모라던지, 이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성공시키기 위해 암암리에 진행되는 일들, 더 나아가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면 D.J.카루소 감독의 '이글 아이 (Eagle Eye, 2008)' 같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시스템과 배경에 관한 이야기의 개입은 소극적으로 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상상을 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딱 그 정도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 여지와 소스 코드 프로젝트를 대변하는 것은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굿 윈'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캐릭터의 묘한 비중이 '소스 코드'를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굿 윈은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 '닥터 러틀리지'와 주인공 콜터 사이에 위치한 인물로서 두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이 연결고리의 훌륭함이 (캐릭터나 베라 파미가의 연기 모두) 이 영화가 더 매력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갖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 The Mark Gordo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의 제목은 '소스 코드'보다는 오히려 '8분'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감독인 던칸 존스가 왜 '소스 코드'라고 제목을 가져갔을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전작 '더 문'을 떠올려 봤을 때, 이 작품이 진정한 SF영화로 인정 받는 이유는 SF적 설정이나 세계관을 부각시켜 드러내지 않고 완벽하게 녹여낸 채, 그 토대에서 자유롭게 다른 얘기를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소스 코드'는 평행우주라는 세계관을 그 중심에 대놓고 부각시키지는 않았지만, 그 기반 위에 완전히 녹아든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 같은 SF영화를 만들어 냈기에 '더 문'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평행우주가 도대체 뭐야?' '그게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갖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과연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것을 떠올려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SF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물론 이 영화가 과학적으로 완벽한 영화였는가에 대해서는 작은 의문들이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도 세계관을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SF영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The Mark Gordo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만약 이 영화의 제목이 '8분'이었다면 아마도 그 마지막 키스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났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마지막이라고 느꼈었다). 여기서 만약 영화가 끝났다면 감동과 여운은 더 했겠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평행우주에 대해서는 조금 미흡한 부분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끝났더라도 평행우주에 관한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던칸 존스는 자신이 결국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를 위해 감동적인 엔딩을 과감히 포기했고, 또 다른 감동의 엔딩을 선사했다. 말초적으로는 앞선 장면이 훨씬 더 감동적이긴 하지만, 영화가 선택한 엔딩도 평행우주론을 또 한 번 새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엔딩을 다 갖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1. 미리 알고 가긴 했지만, 영화가 끝나자마자 평행우주론에 대해 친절한 주석을 달아주신 홍주희씨 덕분에 아쉬움이 들더군요. 의역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주석을 번역자가 인장처럼 남기는 것은 과한 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전례가 있었죠). 설령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평행우주론'에 대해 몰랐다고해도 모르는 채로 보고 이해한 것이 잘못이 아닐텐데, 마치 '자 이런거였어'라고 가르치는 듯한 주석은 앞으로도 없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2. 저는 왜 닥터 러틀리지 역할을 맡은 제프리 라이트를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스 큐브로 생각했던 걸까요. 심지어 제프리 라이트가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아이스 큐브라고 생각하며 봤던 작품이 많네요 -_-;;

3. 결국 가장 불쌍한건 '숀'. 숀은 누가 챙겨주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Mark Gordon Company 에 있습니다.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각자의 삶의 무게

제이슨 라이트먼의 최신작 <업 인 디 에어 (국내 개봉 제목 '인 디 에어')>는 그의 전작 <주노> 때문에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주노>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각본을 쓴 디아블로 코디 였지만, 어쨋든 연출을 맡은 제이슨 라이트먼의 신작은 <주노>를 매우 인상깊게 본 입장에서 몹시 기대가 되는 바였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의 캐스팅은 <주노>와는 다르게 '어른'의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나 이 '어른'의 이야기는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창, 그리고 위로가 담긴 좋은 드라마였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주인공인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해고 전문가다. 고용주가 직접 해고를 통보하지 못할 경우에 대신 사람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독특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1년중에 대부분을 비행기 출장으로 보내는 그에게 공항은 집보다(없는 집보다) 편안한 곳이며, 항공사의 마일리지는 훈장과도 같다. 그러던 그의 회사에 화상채팅을 통한 해고방식을 제안한 신참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주목을 받게 되고, 라이언은 나탈리와 함께 출장 길을 떠나게 된다.

먼저 라이언 빙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이언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다. 가족들과 멀어져서 혼자 지내지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쁜 일에 취해있고, 자신 만의 도전과제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결벽증과는 좀 다른 의미지만, 라이언에게는 자신 만의 확고한 룰이 있다. 여행 가방을 챙기는 그의 모습을 빠른 편집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라이언은 이렇듯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데에 주저없고 확고한 사람이며 그것에 얽매여 있다기 보다는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고 전문가라는 불편한 직업임에도 '장인 정신'에 가까운 직업 윤리로 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결혼과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삶은 여행용 캐리어 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런 그에게 아직 꿈 많고 열정에 차 있는 청춘의 나탈리는 알게 모르게 자극이 된다. 라이언은 나탈리의 방식과 제안에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혹은 '나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것 아니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해야 될거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은연 중에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라이언은 받아치기 어려운 자신 만의 논리로 나탈리의 희망에 찬 청춘을 보기 좋게 꺽지만,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나탈리를 보며 동정심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 점점 자신의 정해진 룰 밖의 세상을 기웃거리게 된다.

<인 디 에어>를 보며 초중반까지 든 생각은, 결국 자신과 다름을(틀림이 아닌) 인정하고 이해하는 가치관이었다. 라이언은 그 자체로 이런 이해가 가장 필요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남들 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과 인생이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결국 '목표' 자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목표라는 것에 경중이 없듯이 라이언의 인생 목표는 그것으로 존중 받을 이유가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 천만 마일이라는 그의 목표는 깊게 생각해보자면, 천만 마일을 날아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해고를 통보했으며, 얼마나 많은 삶의 연륜이 쌓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척도 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재쳐두더라도 누군가가 삶의 도전과제로 정한 목표라는 점에서 그것은 이해를 넘어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쿨한 삶의 자세를 갖은 듯한 라이언 조차, 결혼식 준비로 명소에서 찍은 듯한 사진을 대신 만들어 오라는 여동생의 부탁을, '도대체 이런걸 왜 찍는거지?'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이 미션을, 왠지 '그래도 나 한테 특별히 한 부탁이니 해줘야지 뭐'라는 식으로 억지로 완수하고나서, 드디어 동생에게 이 사진을 전달했을 때, 그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과 형편상 신혼여행을 못가서 이렇게라도 남기려고 했다는 동생의 말에, 라이언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라이언은 자신 만 하는 것으로 당연히 알았던 이 미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에서 사뭇 당황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가족과 친구 없이도 만나는 모든 이가 친구라서 외롭지 않다던 라이언은, '특별히' 오빠인 자신에게만 부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소외감(그러니까 자신도 결국은 수 많은 존재 중에 하나라는 것)과 동시에 서운함 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신혼여행을 대신하려는 이벤트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최고급 클래스를 도전과제로 삶고 있던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해서도 한번 쯤 의문을 갖게 된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는 삶의 아이러니를 통해, 삶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온 라이언이 결혼식날 결혼을 망설이는 동생의 남편될 사람인 '짐'에게 결혼에 대해 설득하게 되는 점이나, 항상 타인에게 해고를 통보해오던 그가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의 입사 추천서를 쓰게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완전한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다양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에 앞서 라이언은 동생의 결혼식에 맞춰 고향을 오랜 만에 방문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항과 비행기, 그리고 각각의 호텔을 집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그에게, 자신이 자랐던 이 고향은 이런 집을 대신하는 것들이 줄 수 없었던 것을 제공한다.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에는 무엇보다 추억이 있고, 그 자신의 말처럼 그 추억 속에는 자신 혼자가 아닌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이런 변화를 겪게 되면서 라이언은 이런 추억을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이로, 관계를 맺어오던 알렉스 (베라 파미가)에게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라이언이 항상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처럼 가볍고 쿨한 관계만을 원하던 이였고, 자신을 탈출구 정도로 생각했던 알렉스의 말에 라이언은 진심으로 대꾸하지 못한다. 라이언 조차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던 이었기에, 오히려 '왜 갑자기 나를 찾아 왔느냐'라는 알렉스의 큰 소리에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 디 에어>가 주는 끝 맛은 왠일인지 개운하지 만은 않다. 혼자서도 잘해요 였던 라이언이 결국 가족과 주변의 따스함을 알게 되었고, 화상채팅으로 누군가를 해고하는 잔인한 방식은 사고로 인해 보류가 되었지만, 공항 전광판 앞에서 자신의 앞으로 삶의 행선지를 응시해보는 라이언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 디 에어>는 마냥 선하게 '자신의 삶의 짐을 여럿이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자신의 삶은 혼자가 다 짊어져야 한다'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도 아닌, 매우 현실적인 지점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그러고보면 다른 가방이나 짐은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줄 수 있지만, 결국은 각자가 끌고 가야 하는 여행용 캐리어 가방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기가막힌 소품인지도 모르겠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한 동안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인 조지 클루니는 이 타이틀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는(그래도 섹시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하지만) 캐릭터들을 연기해 왔었는데,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는 왜 그가 '모스트 원티드 섹시스트'인지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완전한 로맨스 영화 아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말끔한 수트 차림의 클루니에게서야 말로 진정한 매력이 느껴진다. 베라 파미가는 어느 덧 클루니와 커플을 이뤄 '삶의 연륜'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로 나아가 버렸는데, 커리어 우먼의 매력과 별 다른 제스처 없이 표정과 미소 만으로도 설명 가능한 알렉스 라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탈리 역의 안나 켄드릭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비하면 많이 마른 모습으로 보였는데, 이 때는 그저 주인공 친구였던 그녀가 이제는 관객의 기억에 확실히 남는 캐릭터를 연기해 낸 것을 보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보는 중간에는 너무 평범한 드라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하기도 했었는데, 보고나서 생각하면 할 수록 참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1. 라이언이 결국 기장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장면 묘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기장님의 모습이 마치 천사나 신처럼 느껴졌거든요.

2.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의 국내 제목은 '마일리지'가 될 뻔 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끔찍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의미 상으로는 제법 괜찮은 제목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3. 그런데 아예 본래 제목을 개봉하려 했다면 원제 그대로인 'Up in the Air'로 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의 엔딩 크래딧 중간에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업 인 디 에어'여야 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노래 한 곡이 등장합니다.

4. 제이슨 라이트먼의 전작 <주노>는 소박한 포크 음악들이 실린 사운드트랙이 참 인상적인 작품이라 이번 작품도 음악을 많이 기대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관조하는 듯한 포크 음악들이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도 좋았지만요 ㅎ

5, 극중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유명한 J.K.시몬스가 자신의 딸들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시몬스의 딸들 사진이라고 하네요.

6. 첨엔 '아, 이 영화는 적어도 최근 실직이나 해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개인적인 이유라도 보면 안되겠다'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분들이 보시면 힘이 될 영화같아요. 삶의 무게는 버겁지만 나아갈 이유가 있으니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근래 최고의 스타일리쉬 액션스릴러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범죄에 손을 담근 주인공이나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마피아 세력, 그리고 이들의 약점을 잡아 거래를 하는 경찰 등 이런 식의 범죄 액션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어왔다. 여기에 스릴러 장르의 맛과 반전의 묘미를 추가한 액션 영화들도(결국 사건에 범인이 누구였는지 혹은 누가 배신하게 되는지 등) 최근 들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최근 이런 비슷한 유의 영화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작품 ‘러닝 스케어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턴가 스타일리쉬한 액션 영화에 개봉 홍보 문구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한 마디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영화에도 훈장처럼 타란티노의 칭찬 문구가 겉을 치장하고 있다.



스타일리쉬 하다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영상, 그 중에서도 카메라웍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웍에 있어서 ‘러닝 스케어드’는 동일 장르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영상을 선사한다. 감독 중에는 한 장면을 여러 대의 카메라의 동원하여 촬영한 뒤 편집 시에 가장 좋은 영상을 본편에 수록하는 경우와(최근의 경향) 카메라 한 대로 원하는 영상만을 롱 테이크로 촬영하는 경우가(고전적인 방식) 있는데, 보통의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담은 영화에서는 전자의 경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전환이 빠르고 더 많은 양의 영상과 좋은 구도를 담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조합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닝 스케어드’의 감독인 웨인 크레머는 고전적인 방식을 선택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멋진 영상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이런 방식으로도 긴박감 넘치고 ‘때깔’나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촬영 자체의 기술 못지않게 시나리오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영화가 한 대의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는 촬영 방식을 사용했음에도 멋진 영상을 만들어낸 데에는, 감독인 웨인 크레머가 연출 뿐 아니라 시나리오도 직접 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장면 장면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구도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매우 세밀한 카메라웍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영화 초반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빠져들게 만드는 좁은 방에서의 총격 씬은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카메라웍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멋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러닝 타임 거의 내내 등장하는 멋진 차를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멋진 차를 더욱 멋지게 그려낸다. 그리고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거리에 어스름한 불빛과 네온 사인 등 조명의 효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충격적인 내용만큼이나 인상 깊은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식스센스’ 이후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이른바 ‘반전’ 영화들 덕택에 요즘 관객들은 여느 반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와일드씽’처럼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치를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영화들도 등장하는 한 편, 영화의 10분만 보고도 반전을 눈치 챌 수 있는 영화도 생겼고, 마침내 반전이 공개되었을 때에도 놀라움 보다는 아쉬움이 드는 영화들도 속출했다. 사실 이런 경향이 팽배한 최근에는 ‘반전’이라는 홍보 문구만 봐도 기대와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러닝 스케어드’는 이 같은 기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기 보다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통해 엄청난 반전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극의 연결과 해결이 적당히 자연스러울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소소한 트릭들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반전에 실망한 이들의 아쉬움마저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패스트 앤 퓨리어스’ 시리즈를 통해 빈 디젤과는 또 다른 멋진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폴 워커는 ‘러닝 스케어드’를 통해 단순히 멋진 몸을 위주로 한 액션만이 아니라 극 연기에도 훌륭한 재능이 있음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여전히 액션이 많은 스릴러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단연 폴 워커의 실감나는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 마치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조이’의 캐릭터는 폴 워커의 남성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극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역시 폴 워커에게는 ‘에이트 빌로우’처럼 가족영화가 아닌 이런 고생하는 영화가 어울린다). ‘갓센드’를 통해 할리조엘 오스먼드와는 또 다른 공포물의 아역 캐릭터를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던 카메론 브라이트 연기도 인상적이다. ‘갓센드’의 공포스러움이 연상되는 신비하면서도 공포스런 표정의 ‘올렉’ 역할을 맡은 카메론 브라이트는, 그 특유의 표정만으로도 이 영화에 스릴러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하게 했다. 이 밖에도 부패한 경찰 역할로 멋진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체즈 팰민테리와 이 영화를 통해 인상적인 연기력과 매력을 알게 된 테레사 역할의 베라 파미가의 연기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듯.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러닝 스케어드' DVD는 1장으로 출시된 것에 비하며 비교적 영양가 있는 서플먼트와 스펙을 수록한 타이틀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답게 수준급의 화질을 담고 있는데, 어두운 조명에 장면이 많았으나 암부 표현 정도도 수준급이어서 시청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DTS-ES 6.1채널의 사운드는 레퍼런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준급이다. 특히 영화 초반 총격 씬에서의 채널 분리도는 근래 본 타이틀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다 채널을 활용하고 있는 장면으로 여겨진다. 총 소리와 차 엔진 소리 등은 우퍼 스피커를 통해 더욱 묵직하게 전달되며, 큰 소리에 가려모르고 지나치는 미세한 생활 소음들도 매우 세세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을 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표현력이 우수하다. 아무래도 돌비디지털 5.1채널 보다는 DTS-ES 6.1채널이 더욱 긴박하고 박진감있는 본편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서플먼트로는 감독인 웨인 크라이머의 음성해설과 메이킹 필름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타이틀 치고는 불필요한 서플이 없이 알찬 영상들을 담고 있다. 특히 감독의 음성해설에서는 70,80년대 유행했던 범죄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와 더불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존 웨인을 숭배하는 계부 캐릭터를 위해 실제 존 웨인의 아들에게 허락을 받기도 했다는 에피소드 같이 음성해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정보들도 가득하다. ‘거울을 통해 본 모습’이라는 제목의 메이킹 영상에서는 주 조연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 특히 이 메이킹 영상은 와이드스크린으로 수록되어 있어 더욱 반갑다 (감독의 인터뷰 장면에서는 본편과도 같은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이 밖에 한국과 미국 버전의 예고편이 각각 수록되었다. 메이킹 영상만 수록된 서플먼트가 조금 아쉽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비교적 짜임새 있는 메이킹 영상과 더욱 흥미로운 음성해설은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에 충분할 듯 하다 (참고로 영화가 끝난 뒤,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일러스트로 요약하여 펼쳐지는 엔딩크래딧을 놓치지 말 것).
 
2003.06.27
글 / ashitak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