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벌써 다녀왔어야 했는데, 처음 소식을 듣게 되었던 토요일 오전부터 일요일까지는 정말 너무 큰 충격을 받은터라 그냥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TV앞에만 멍하니 앉아있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주말이 다 지나도록 실감을 하지 못했었죠. 그래도 용기를 내어 꼭 한 번 찾아뵈어야 겠다는 생각에 출근하기 전 7시 반 즈음에 덕수궁 대한문 앞을 찾게 되었습니다. 오전에 들르게 된 이유는 조문을 위한 줄을 서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저녁에 많은 분들이 계실 때 조문을 하게 되며 울음을 참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조금 더 차분한 아침 시간을 선택에 조문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대한문 앞 분향소에 들르자마자 조문부터 드렸습니다. 아침 시간이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조문을 드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들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냥 자기 차례에 조문을 조용히 드리고 돌아서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죠.




개인적으로는 일부러 사진을 보려 하지 않았었는데, 눈 앞에서 영정사진을 뵙게 되니 정말 울컥하더라구요 ㅠ 그 동안 어렵게 어렵게 참아냈던 감정을 추스리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영정에 놓인 사진들이 대통령으로서 위엄을 갖춘 사진들이 아니라 전부 편안한 복장에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을 하고 계신 모습이라 더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누가 그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냈을까요. 좋던 싫던간에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던 분께 대한 예의가 있는 겁니다. 진보고 보수고 이념이고 지역감정이고 정당이고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예의는 지켜야죠. 그것이 사람아니겠습니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요.
'가난한 자들의 친구' '서민의 수호자' '사랑하는 노짱 보고 싶어요'






대한문 근처에는 길에 늘어트린 국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미안함과 안쓰러움, 슬픔, 분노가 담겨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메시지는 역시 미안함이었어요.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이제서야 뒤늦게 후회하게 되어버린 미안함. 담배 한 대 주지 못했던 미안함.







국민들에 메시지는 거리를 뒤 덮고 있었습니다. 이걸 보고 그들은 또 이야기하겠죠. 누가 저런 메모지를 배포하는 것이냐. 누가 국화를 조직적으로 나눠주고 있는 것이냐. 무료로 물이며 커피를 나눠주는 자들의 돈은 누가 대주는 것이냐.

그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누군가를 위해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진심으로 봉사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개인 개인이 사비를 털어 이런 것들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이해 불가일 겁니다.





내 가족을,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분노도 크지만, 내 대통령을, 내가 믿었던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 때까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 오는 분노도 무시할 수 없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차벽으로 국민의 분노를 막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가능한 것입니까. 손이 떨립니다. 노무현을 살려내세요.




개인적으로 지난해 촛불보다도 더 큰 분노와 감정의 동요를 느꼈습니다. 이건 단순히 한 사람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죽은 자가 아닌 산 자 때문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요.
당신으로 말미암아 받은 행복이 너무도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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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6일 아침. 역사의 현장 대한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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