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 (The Mist, 2007) _ 무서운 군중심리
스티븐 킹의 원작도 물론 읽지 않았고, 대충의 줄거리도 모른 상태에서 즐겼던 영화(좀비인지 괴물인지도
긴가민가한채로). 사실 제목에서 주는 느낌이 왠지 낚시일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드라마이자 공포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스포일러있음)
일단 이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공포는 안개 속에 숨어있는 무엇인지 모르는 괴물의 존재일 것이다.
처음에는 징그러운 촉수만 드러내고, 나중에는 홍보물에서 '익룡'이라고 표현된 괴물이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그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괴물.
하지만 <미스트>에서는 이 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그리 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괴물이 직접적으로
주는 공포보다는, 이 괴물로 인해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에 더욱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의 문을 통해 넘어왔다느니, '화살촉 프로젝트'라느니 알 수 없는 설정들이 있지만,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기 보다는 반대로 마트 안에 갇힌 이들에게 더욱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것들이 실제로 그리 궁금하게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반대로 완전히 시각을 달리하여 마트안에 사람들은 똘똘 뭉치고, 괴물의 존재의 대해 심오하게 탐구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작품도 나름 재미있을 듯 하다;;;)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는 하는 공포는 아마도 인간들이 만들어낸 군중심리가 아닐까 싶다.
서로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고, 같은 충격과 사건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무리에는 반드시 주장이 강한 리더가 생기게 되어 있고, 처음부터 리더를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 한 편,
점차 불만이 가득해져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고, 이에 새롭게 리더가 등장하여 반란 아닌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있다. <미스트>에서는 단계적으로 무리가 나뉘고 형성되며 갈등을 야기한다.
처음에는 외지인이지만 똑똑한 인물로 그려지는 노튼이 그를 따르는 무리와 함께 주인공이 주를 이루는
무리에서 벗어나 독립을 시도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주님의 이론을 설파했던 카모디(마샤 게이 하든)는, 처음에는 그저 미친 여자 정도로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더 큰 충격과 공포를 느낀 군중들은 하나 둘 그녀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하며,
결국 그녀는 이 작은 마트 속에서 교주 아닌 교주 행세를 하기까지 이른다. 나중에는 군대의 실수로 인해
발생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무리 중에 군인을 몰아세워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고, 결국에는 주인공의 아이를
제물로 바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사실 이 영화 중에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이 때가 아닐 까 싶다.
군인이 제물로 바쳐저 살해된 뒤, 이로써 오늘은 무사할 것이라는 카모디에 말에 안도의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나,
아이를 제물로 바치려고 주인공 일행을 에워싸고 칼로 위협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얼마나 쉽게 스스로 무너지는 지를 보여주고, 표면적인 괴물들 보다도
더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원작의 결말에 대한 내용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되었는데, 이를 모른 상태에서는 개인적으로
이런 우울한 결말도 나쁘지 않았다. 더군다나 헐리웃 블록버스터라는 탈을 쓴 장르에서, 주인공이 모두를
구하고 결국 승리한다는 결말보다는, 할 수 있는데까지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고 모두 포기하고
마지막을 준비하였으나, 그 때서야 모든 일이 해결되어버린, 즉 주인공이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결코 기쁘지 않은, 이런 엔딩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마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주인공 무리가
일단 차로 갈 때까지 가보자고 말했을 때 진짜 '일단'갈 때까지'만' 가보자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갈때까지 가고나면 절로 해결되는 엔딩이었겠지만, 이 영화는 결국 최선을 다하고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던 이들이 스스로 마지막을 택하고 나서야 구원의 손길이 도착한다는, 실로 암울한 상황으로
마무리하면서 공포스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나 영화의 초반 주인공과 모든 사람들의 말을 거스르고 홀로 밖으로 나간 여인이(보통 영화 같으면
이 여인은 굳이 시체를 보여줄 필요도 없이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나)유유히 군용트럭을 타고 돌아오는 장면은
주인공의 오열을 더욱 더 크게 하는 이유가 됬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관객들이 이 결말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것을 느끼는데, 뭐 이런 엔딩도 있다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엔딩에 옳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엔딩도, 저런 엔딩도 있는 것이지. 그런 면에서 이런 엔딩이 흔하지 않은 편이라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보통 모두가 '아니요'라고 하더라도 주인공이 '예'라고 하면 영화는 주인공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지만, <미스트>는 과연 주인공이 옳았나, 틀렸나를 이야기하기보단, 모든 선택이 옳을 수는 없고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배우들은 잘 모르겠으나 단연! 마샤 게이 하든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그녀의 완벽한 연기는 여러번 보아왔지만, 어쩌면 연기는 중요하지 않고 괴물이 중심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영화에서 완전히 군중들의 이야기로 중심이 옮겨지도록 한 것은 모두 다 그녀의 공이었다.
아무리 영화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잘되는 나이긴 하지만, 카모디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만약 내가
마트안에 있었다면 정말 한 대 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소름끼치도록 짜증나는 연기였다.
그녀의 조정에 따라 마치 좀비들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연기한
카모디 캐릭터가 너무나도 무섭도록 리얼했기 때문이었다.
괴물의 캐릭터에 크게 집중하지 않은 탓이라고는 하지만, 초반 소년이 촉수에 끌려갈 때의 CG는
2007년 헐리웃에서 제작된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이질감이 쉽게 느껴지는 정도였으며,
제법 큰 몸집에 '익룡'의 디테일도 매우 섬세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의
차 앞으로 지나가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의 모습은,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표현이었던 것 같다(영화를 보기 전 그냥 한국영화 '괴물' 정도 크기의 괴물을 상상해서 그런지,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 나오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존 카펜터의 <괴물>포스터가 등장하는데, 아마도 다라본드 감독이 카펜터에게 바치는
오마쥬의 형식으로 쓰인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마트를 배경으로 좀비같은 사람들이 주인공 무리를 위협하거나
할 때는 흡사 게임 '데드 라이징'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짧은 음악이 끝난 뒤, 아무런 음악도 없이 지나가는 헬기소리와
트럭 소리, 탱크 소리들로 장식한 것은 끝까지 그 길에 남겨진
주인공의 허무하고 공허한 심정을 잘 표현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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