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로게이트 (Surrogates, 2009)
브루스 윌리스도 못살린 심심한 SF

반신반의하며 <써로게이트>를 보게 된 첫 번째 이유는 그래도 '브루스 윌리스'인데 하는 것과, <터미네이터 3>를 연출한 조나단 모스토우의 SF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라 할 수 있겠는데, 많은 이들이 혹평을 퍼부으며 시리즈 최악의 작품으로 꼽히곤 하는 <터미네이터 3>의 엔딩을 나름 좋아하는 편이라 조나단 모스토우라서 크게 불안한 점은 없었다(불안한 점이 없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러 갈 때 조나단 모스토우에게 알렉스 프로야스 급을 기대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 만큼 기대치를 낮췄다는 얘긴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써로게이트>는 이렇다할 새로울 것도 없고 임팩트가 부족하여 88분 밖에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도 길게만 느껴졌던 그럭저럭 SF 영화였다.



Walt Disney Studios Motion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 속 '써로게이트'의 존재와 정확히 같은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새로운 설정이라고 보긴 어려운, SF영화팬들이라면 제법 익숙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공각기동대>의 '전뇌'를  연상시키는 설정인데, 로봇도 아니고 인조인간도 아니고 마네킹에 가까운 로봇의 기체(혹은 인체)를 주인인 인간이 방안에 누워 분신처럼 조종하는, 아니 조종을 넘어서서 이 '써로게이트'가 곧 그 사람이 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설정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더라도 분명 흥미로운 설정인 것도 사실인데, 조나단 모스토우는 정말 웃음기를 싹뺀 (단 한 장면도 웃음을 유도한 장면이 없었던 것 같다) SF 암울 스릴러를 만들려고 했으나, 스릴러 다운 긴장감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긴박감은 많이 부족했고, 브루스 윌리스 역시 액션도 약하고 추리도 약한 심심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우울한 SF를 좋아하는터라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기본 줄거리를 파악한 뒤에는 조금 기대를 하기도 했었는데, 몇몇 설정들은 조금 유아스러움마저 느껴졌다. 특히 써로게이트를 반대하는 인간들의 무리를 이끄는 예언자(빙 라메즈) 캐릭터 묘사의 경우, 너무 원초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캐릭터의 모습이라 아쉬웠는데 흑인에 레게머리, 커다란 목걸이 등의 묘사는 차라리 그냥 양복 입은 회사원으로 설정하는 것보다도 수준 낮은 캐릭터 설정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의 몰입도가 부족하다면 캐릭터라도 살아나야 하는데, 아무리 브루스 윌리스가 찰랑찰랑 머리를 날리며 연기해도 뭐 이렇다할 만한 인상을 주기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브루스 윌리스 출연작들의 경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의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재미를 주는 경우와 기대하는 것과는 좀 다른 이미지를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써로게이트>는 전자라 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브루스 윌리스'가 보일 뿐이지 극 중 캐릭터인 '그리어'는 이름도 기억 못할 정도로 거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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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몇몇 장면에서는 여기서 이렇게 했으면 더 좋겠다 라고 생각되는 설정들이 많았었는데,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할 망정 그마저도 보여주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쉬웠다(이 영화는 분명 더 좋아질 만한 여지가 있다. 알렉스 프로야스가 맡았다면 좀 더 좋았을 듯 한데 아쉽다). 아예 SF액션으로 가서 <아이, 로봇>처럼 브루스 윌리스 형님이 써로게이트들과 벌이는 화끈한 액션을 선보였다거나, 아니면 더 우울한 SF스릴러로 가서 <12 몽키스>같은 분위기를 냈다면 좋았을 텐데 그 중간 지점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영화의 모습이 너무 역력하게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거지만,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바에야 욕을 시원하게 먹더라도 화끈하게 갈 때까지 가보는 영화들이 훨씬 더 나을 듯 싶다.


1. 제임스 크롬웰은 <아이, 로봇>에 이어 또 '**의 아버지'로 등장하는군요. <써로게이트>에서의 컨셉은 '병주고 약주고' 같더군요 ^^;
2. 왜 저는 여자주인공을 맡은 라다 미첼을 보면서 계속 '나타냐'라는 이름이 떠올랐던 걸까요 -_-;;
3. 그렇게 과학이 첨단으로 발달한 세계인데도, 다들 써로게이트로 활동해서인지 아무리 차 사고가 나도, 그 어떤 좋은 차도 에어백 한 번 터지는 차가 없더군요.
4. 국내에는 브루스 윌리스 = SF = 액션 = 추석대작 등으로 홍보한 듯 한데, 거의 액션이 없습니다. 액션 영화는 분명 아니에요.
5. 영등포 타임스퀘어 THX인증관에서 관람하였는데 THX 트레일러는 역시나 감동이었습니다. 예전 명보극장에서 보고 몇 년만에 보는지 모르겠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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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상영전 예고편으로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예고편을 볼 수 있었는데 온 몸에 소름돋았습니다 ㅠㅠ
7. 혹시 10월2일 영등포 CGV THX관에서 보신 분 계신가요. 화질이 너무 안좋더군요. 처음에는 의도적인 화질인가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끝까지 않좋은 화질이더군요. 분명 프린트나 상영에 문제인 것 같은데, 뭐랄까 마치 디빅 파일을 HDTV에서 TV아웃으로 보는듯한 화질이었습니다. 자막도 예전 느낌 물씬나는 흐릿한 느낌이었고, 전체적으로 뿌옇고 너무 좋지 않은 화질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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