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콜린스 (Danny Collins, 2015)

만약을 실제로 만드는 이야기



1971년 비틀즈 해체 후, 오노 요코와 함께 지내던 존 레논 영국의 신인가수 스티브 틸스턴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다.  음악에 대한 고민이 많은 그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존 레논 직접 편지를 써서 잡지사로 보낸다.  2005년 미국의 한 수집가에 의해 존 레논이 스티브 틸스턴에게 보낸 친필편지가 공개된다. 34년만에 수신인에게 도착한 존 레논의 편지  만약, 그 때 편지를 받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 영화사 제공


이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대니 콜린스'가 궁금했던 건 당연히 존 레논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존 레논의 오리지널 곡들이 무려 10곡이나 이 영화에 커버 곡이 아닌 오리지널 그대로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자체가 궁금했다기 보다는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오노 요코가 10곡이나 사용을 허락했을까'가 더 궁금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존 레논을 앞세운 홍보와는 다르게 '대니 콜린스'는 오히려 주연을 맡은 알 파치노라는 배우가 더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의 연기력 때문이 아니라 마치 그가 연기한 극 중 대니 콜린스가 알 파치노를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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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부와 성공을 거두고 노년에 이른 대니 콜린스는 우연히 자신이 데뷔할 당시 존 레논이 자신에게 두려워 하지 말고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진심으로 연락하고자 했던 내용의 편지를 썼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영화가 존 레논을 활용하는 것은 딱 여기까지다. 이 실화를 영화화 하는 방식은 아마도 두 가지가 있었을 텐데, 하나는 만약 존 레논의 편지를 그 당시 받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상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이 사실 자체를 반전으로 활용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영화처럼 자신이 이미 놓쳐버린 그 기회를 뒤 늦게 알아 버린 주인공이 현재에서 그 기회를 다시 찾고자 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일 텐데, 설정만 두고 보았을 땐 전자가 확실히 호기심이 가는 편이지만 영화가 선택한 후자의 방식은 마치 이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알 파치노, 크리스토퍼 플러머, 아네트 베닝과 같은 노년의 배우들의 모습처럼, 편안하고 은은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또 다른 매력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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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만약이라는 가정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순간에 그 만약이 지금에도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를, 영화는 과장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대니 콜린스'의 줄거리를 말로만 전해들으면 정말 재미 없는 이야기로 느껴질 테지만, 영화는 분명 은은한 맛이 있다. 마치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알 파치노는, 이 영화의 제목을 '알 파치노'로 바꿔도 자연스러울 완성도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흔히 과거의 일을 두고 '만약 그 때 그랬다면 어땠을까?'하며 후회하는 것에 그치곤 하는데, 이 영화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만약을 현실에서 실제로 만드는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어쩌면 이렇듯 철저하게 배경으로만 활용된 것이 오노 요코가 존 레논의 곡을 허락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따.



1. 멜리사 베노이스트가 출연한 것도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 중 하나였어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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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 2010)
괜찮아, 우린 모두 괜찮아요


줄리안 무어와 마크 러팔로, 그리고 아네트 베닝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은, 어떤 기사의 제목처럼 '특별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결국 이 특별해 보이는 가족조차 '평범한'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소스라면 주인공인 닉 (아네트 베닝)과 쥴스 (줄리안 무어)가 레즈비언 부부로 등장한다는 점일텐데, 이런 점에 불편한 점만 없다면 아마도 '에브리바디 올라잇'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게이나 레즈비언을 그린 영화들 가운데서도 이 작품은 아주 부담없이 즐길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확실히 이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타부시 될 때에는 좀 더 자극적이고, 이렇게 타부시하는 사회와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러워진 지금에는, 이 작품처럼 레즈비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들 꼭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다시 말해 관객들이 더 이상 주인공의 성정체성에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 것 같다. 그런면에서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특별한 듯 하지만, 참 평범해서 더 깊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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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부모를 둔 이복 남매인 조니와 레이저. 이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정자를 기증한, 친부를 찾고 싶은 궁금증에 친부인 폴 (마크 러팔로)을 만나게 되고, 폴과 이 가족은 점점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를 이어간다. 이 가족과 폴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여러가지 삶의 다양한 의미들을 짚어 간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닉은 갑자기 나타난 폴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가족을 송두리채 흔들까 두려워 그를 심하게 경계하는 한편, 닉과의 관계에서 점점 권태기를 느껴가던 쥴스는 새롭게 등장한 폴과의 만남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폴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아이에게도 다르게 나타난다. 

조니는 폴과의 만남을 통해 그 동안 집에서는 억눌려 있었던 자아를 찾는 데에 속도를 내게 되지만, 레이저는 닉과 마찬가지로 궁금하긴 했지만 폴의 등장이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반응이다. 그렇게 이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은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폴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화목한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갈등을 겪고 있던 이 가족은, 폴이라는 또 다른 가족을 통해 다시금 자신들(가족)을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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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의 이야기만 보아도 이 이야기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각각이 겪는 갈등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가부장적인 닉이 겪는 갈등, 사랑과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했던 쥴스의 갈등, 이제 막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하는 조니의 갈등 그리고 아직은 자신이 속한 이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는 레이저의 갈등까지. 영화는 별다른 큰 에피소드를 넣지 않았음에도 폴이라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등장을 통해 이 모든 갈등을 부각시키고 치유하는 것까지 성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부각이 아니라 치유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그저 하나의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가족이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은 마냥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관계 못지 않게 서로 견뎌야만 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상처받고 갈등하지만 결국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집단이라는 점을 영화는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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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원제인 'The Kids Are All Right'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 혹은 잘 모르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겉만 보고 판단하는 우려 섞인 일들이나 관계들이 사실은 그런 우려만큼 문제가 아니라는, 그래서 '우린 다 괜찮아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과연 레즈비언을 부모로 두고 있는 이복 남매인 아이들이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혹은 그들 스스로조차 내가 레즈비언인데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잘 커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이들은 조금 다를 뿐이지 그렇게 특별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것들이 편견이나 선입견이 대상이 될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이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해 특별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을 가깝게 겪어보고 난 뒤에는 이러한 편견을 갖기 않게 되곤 하는데, 이런 영화의 순기능이라면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이런 잘못된 편견을 조금이나마 지워내는 것을 들 수 있겠다. 확실히 더 극적이고 간절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나가는 편이 오히려 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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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을 보고 나면 확실히 내가 속한 가족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내 부모, 내 자식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마치 극중 쥴스의 그 뜨거운 고백처럼 말이다.


1. 아네트 베닝의 가부장적인 캐릭터 연기는 정말 놀랍더군요. 한 때 '러브 어페어'등에 출연하며 아름다운 여배우 중에 하나로 꼽혔던 그녀가, 이렇게 남성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 만으로도 흥미롭더라구요.

2.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했던 미아 바쉬이코브스카는 확실히 이런 영화에서의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 편이더군요. 앨리스 이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3. 마크 러팔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본래도 그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그는 뭐랄까, 매력을 막 줄줄 흘리고 다닌달까. 여튼 그렇습니다. 그는 분명 섹시스타에요!

4. 영화를 보고나니, 극중 마크 러팔로처럼 유기농 농장을 하나 운영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과, 극중 아네트 베닝처럼 와인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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