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톤먼트 (Atonement, 2007)
오해와 거짓말의 나비효과

올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분 작품상과 아카데미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았었던 <어톤먼트>를 오늘에야
관람할 수 있었다. 예전에 포스터만 보고서는 그저 전쟁통에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예전 <브릭>을 리뷰할 때 선댄스 영화들은 다르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확실히 워킹 타이틀의 영화 역시
그 이름만으로도 믿고 관람할 수 있는 브랜드인 듯 하다. 워킹 타이틀의 영화들이 그러하였듯이 <어톤먼트>역시
훌륭한 이야기 구성과 높은 영화적 완성도를 보여준 수준급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2002년 출판된 이완 맥이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소설의 팬들이 이 미묘한 심리 묘사들을 과연 어떻게 영화화 할 수 있을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인물들이 겪는 무거운 마음들을 매끄럽게 묘사한 좋은 작품이었다.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도, 전쟁도 아니다.
바로 한 사람의 거짓말과 이로 인한 오해가 가져온 무수한 일들. 거짓말을 할 때에는 이런 일이 생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이로 인해 오해를 받은 인물들의 평생을 좌지우지할 엄청난 결과가 생겨버리게 되는,
소녀의 거짓말이 이들 세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버렸는지를 조용하지만 무섭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목인 <어톤먼트>(속죄, 참회)가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로비를 사랑했던 10대 소녀 브라이오니는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가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난 뒤, 그 날 밤 저택 부근에서 있었던 강간 사건의 범인을 보았음에도 범인이 아닌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이로 인해 로비는 감옥에 가게 되고, 감옥에서 징병이 되어 전쟁에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고,
세실리아 역시 로비를 찾아 간호사로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브라이오니는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의 거짓말이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깨닫고, 뒤늦게 속죄하지만 이미 이 둘에게는 그 속죄의
뜻을 전할 수 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브라이오니는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마지막 소설로
남기는데, 자신의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로비와 세실리아가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상상의 이야기를 수록하지만,
이것은 말그대로 상상의 이야기일 뿐, 브라이오니의 속죄는 이미 너무나도 늦어버린 뒤였고,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현재를 보여주고 몇 일 전,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방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브라이오니의 속죄로 돌이킬 수는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고 깊은 인상을 주기 시작했던 것은, 브라이오니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한 순간 부터였는데,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처참한 고통을 당하는 군인들의
모습들도 등장하지만 그 무엇보다 안타깝고 슬펐던 것은, 브라이오니가 속죄를 해도 이미 모든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는 마지막 인터뷰 장면이었다.

이 마지막이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노년의 브라이오니 역할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연기가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예전 주디 덴치가 가장 짧은 러닝 타임만을 출연하고도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했던 것처럼
영화의 마지막 안타까운 속죄의 마음을 전하는 브라이오니의 인터뷰 장면에서의 레드그레이브의 연기는,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슬픈 영화가 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션 임파서블>의
'맥스'역할로 익숙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연기는 어린 브라이오니 역할을 맡은 시얼샤 로넌의 연기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물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도 좋았지만,
<어톤먼트>를 보고나면 가장 큰 인상이 남는 것은 바로 어린 브라이오니 역할을 맡은 시얼샤 로넌의
그 연기와 표정일 것이다. 흡사 공포영화에서 볼 법한 시얼샤 로넌의 차가운 마스크는 그 새침한 단발 머리와
맞물려 이 모든 일들을 있게한 브라이오니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어톤먼트>로 인해 가장 주목을 받게 된 영화인이라면 아마도 어린 이 소녀가 되야 할 것이며,
앞으로는 또 어떤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무한 기대가 되는 바이다.

마릴린 먼로의 그 유명한 치마폭을 감싸 앉는 장면에서 등장했던 의상을 물리치고, 당당히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의상으로 선정되었다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녹색 드레스는, 이미 이렇듯 화제가 된 바를 알고 가서
인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에 반해 너무 짧은 시간 등장한 것 같아 아쉬웠다.
아, 그리고 주인공인 제임스 맥어보이.
분명히 어디서 본 듯은 한데, 영화를 보는 내내 잘 기억이 나질 않았었는데, 집에와서 찾아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나니아 연대기>에서 톰 누스 역할로 출연을 했었기 때문.
분장을 지운 멀쩡한 얼굴을 보니 본듯은 하지만 확실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
그 역시 이 불쌍하고 기고한 운명에 처해진 로비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낸 듯 하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것처럼, 이 영화의 음악은 굉장히 창조적이면서도 감동적인 면을 동시에 들려주고
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타이핑 소리를 음악의 소스로 사용한 것은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으며,
세 인물의 기고한 운명을 음악으로 극대화 시키는데 공헌을 하고 있다.
아, 그리고 촬영기법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데, 두 주인공의 서재에서의 키스씬은 거의 얼굴만을
클로즈업 하고 있지만 마치 <색. 계>의 배드씬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감각적인 촬영기법이었으며,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대사없이 단 한 번에 모두 설명해 내는 아주 긴 롱테이크 샷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준비에 의해 만들어진 장면이 아닌가 싶다.

굉장히 고전적인 배경과 스타일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세련되게 뽑아낸 것은 아무래도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조 라이트 감독의 전작 <오만과 편견>은 개인적으로 아직 보질 못했는데,
확실히 꼭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운명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잔인한,
하나의 거짓말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에 관한 슬픈 이야기,
어톤먼트 였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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