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각자의 삶의 무게

제이슨 라이트먼의 최신작 <업 인 디 에어 (국내 개봉 제목 '인 디 에어')>는 그의 전작 <주노> 때문에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주노>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각본을 쓴 디아블로 코디 였지만, 어쨋든 연출을 맡은 제이슨 라이트먼의 신작은 <주노>를 매우 인상깊게 본 입장에서 몹시 기대가 되는 바였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의 캐스팅은 <주노>와는 다르게 '어른'의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나 이 '어른'의 이야기는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창, 그리고 위로가 담긴 좋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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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해고 전문가다. 고용주가 직접 해고를 통보하지 못할 경우에 대신 사람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독특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1년중에 대부분을 비행기 출장으로 보내는 그에게 공항은 집보다(없는 집보다) 편안한 곳이며, 항공사의 마일리지는 훈장과도 같다. 그러던 그의 회사에 화상채팅을 통한 해고방식을 제안한 신참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주목을 받게 되고, 라이언은 나탈리와 함께 출장 길을 떠나게 된다.

먼저 라이언 빙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이언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다. 가족들과 멀어져서 혼자 지내지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쁜 일에 취해있고, 자신 만의 도전과제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결벽증과는 좀 다른 의미지만, 라이언에게는 자신 만의 확고한 룰이 있다. 여행 가방을 챙기는 그의 모습을 빠른 편집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라이언은 이렇듯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데에 주저없고 확고한 사람이며 그것에 얽매여 있다기 보다는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고 전문가라는 불편한 직업임에도 '장인 정신'에 가까운 직업 윤리로 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결혼과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삶은 여행용 캐리어 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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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아직 꿈 많고 열정에 차 있는 청춘의 나탈리는 알게 모르게 자극이 된다. 라이언은 나탈리의 방식과 제안에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혹은 '나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것 아니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해야 될거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은연 중에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라이언은 받아치기 어려운 자신 만의 논리로 나탈리의 희망에 찬 청춘을 보기 좋게 꺽지만,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나탈리를 보며 동정심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 점점 자신의 정해진 룰 밖의 세상을 기웃거리게 된다.

<인 디 에어>를 보며 초중반까지 든 생각은, 결국 자신과 다름을(틀림이 아닌) 인정하고 이해하는 가치관이었다. 라이언은 그 자체로 이런 이해가 가장 필요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남들 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과 인생이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결국 '목표' 자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목표라는 것에 경중이 없듯이 라이언의 인생 목표는 그것으로 존중 받을 이유가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 천만 마일이라는 그의 목표는 깊게 생각해보자면, 천만 마일을 날아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해고를 통보했으며, 얼마나 많은 삶의 연륜이 쌓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척도 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재쳐두더라도 누군가가 삶의 도전과제로 정한 목표라는 점에서 그것은 이해를 넘어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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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쿨한 삶의 자세를 갖은 듯한 라이언 조차, 결혼식 준비로 명소에서 찍은 듯한 사진을 대신 만들어 오라는 여동생의 부탁을, '도대체 이런걸 왜 찍는거지?'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이 미션을, 왠지 '그래도 나 한테 특별히 한 부탁이니 해줘야지 뭐'라는 식으로 억지로 완수하고나서, 드디어 동생에게 이 사진을 전달했을 때, 그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과 형편상 신혼여행을 못가서 이렇게라도 남기려고 했다는 동생의 말에, 라이언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라이언은 자신 만 하는 것으로 당연히 알았던 이 미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에서 사뭇 당황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가족과 친구 없이도 만나는 모든 이가 친구라서 외롭지 않다던 라이언은, '특별히' 오빠인 자신에게만 부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소외감(그러니까 자신도 결국은 수 많은 존재 중에 하나라는 것)과 동시에 서운함 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신혼여행을 대신하려는 이벤트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최고급 클래스를 도전과제로 삶고 있던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해서도 한번 쯤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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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는 삶의 아이러니를 통해, 삶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온 라이언이 결혼식날 결혼을 망설이는 동생의 남편될 사람인 '짐'에게 결혼에 대해 설득하게 되는 점이나, 항상 타인에게 해고를 통보해오던 그가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의 입사 추천서를 쓰게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완전한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다양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에 앞서 라이언은 동생의 결혼식에 맞춰 고향을 오랜 만에 방문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항과 비행기, 그리고 각각의 호텔을 집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그에게, 자신이 자랐던 이 고향은 이런 집을 대신하는 것들이 줄 수 없었던 것을 제공한다.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에는 무엇보다 추억이 있고, 그 자신의 말처럼 그 추억 속에는 자신 혼자가 아닌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이런 변화를 겪게 되면서 라이언은 이런 추억을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이로, 관계를 맺어오던 알렉스 (베라 파미가)에게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라이언이 항상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처럼 가볍고 쿨한 관계만을 원하던 이였고, 자신을 탈출구 정도로 생각했던 알렉스의 말에 라이언은 진심으로 대꾸하지 못한다. 라이언 조차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던 이었기에, 오히려 '왜 갑자기 나를 찾아 왔느냐'라는 알렉스의 큰 소리에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 디 에어>가 주는 끝 맛은 왠일인지 개운하지 만은 않다. 혼자서도 잘해요 였던 라이언이 결국 가족과 주변의 따스함을 알게 되었고, 화상채팅으로 누군가를 해고하는 잔인한 방식은 사고로 인해 보류가 되었지만, 공항 전광판 앞에서 자신의 앞으로 삶의 행선지를 응시해보는 라이언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 디 에어>는 마냥 선하게 '자신의 삶의 짐을 여럿이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자신의 삶은 혼자가 다 짊어져야 한다'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도 아닌, 매우 현실적인 지점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그러고보면 다른 가방이나 짐은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줄 수 있지만, 결국은 각자가 끌고 가야 하는 여행용 캐리어 가방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기가막힌 소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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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인 조지 클루니는 이 타이틀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는(그래도 섹시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하지만) 캐릭터들을 연기해 왔었는데,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는 왜 그가 '모스트 원티드 섹시스트'인지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완전한 로맨스 영화 아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말끔한 수트 차림의 클루니에게서야 말로 진정한 매력이 느껴진다. 베라 파미가는 어느 덧 클루니와 커플을 이뤄 '삶의 연륜'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로 나아가 버렸는데, 커리어 우먼의 매력과 별 다른 제스처 없이 표정과 미소 만으로도 설명 가능한 알렉스 라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탈리 역의 안나 켄드릭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비하면 많이 마른 모습으로 보였는데, 이 때는 그저 주인공 친구였던 그녀가 이제는 관객의 기억에 확실히 남는 캐릭터를 연기해 낸 것을 보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보는 중간에는 너무 평범한 드라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하기도 했었는데, 보고나서 생각하면 할 수록 참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1. 라이언이 결국 기장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장면 묘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기장님의 모습이 마치 천사나 신처럼 느껴졌거든요.

2.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의 국내 제목은 '마일리지'가 될 뻔 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끔찍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의미 상으로는 제법 괜찮은 제목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3. 그런데 아예 본래 제목을 개봉하려 했다면 원제 그대로인 'Up in the Air'로 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의 엔딩 크래딧 중간에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업 인 디 에어'여야 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노래 한 곡이 등장합니다.

4. 제이슨 라이트먼의 전작 <주노>는 소박한 포크 음악들이 실린 사운드트랙이 참 인상적인 작품이라 이번 작품도 음악을 많이 기대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관조하는 듯한 포크 음악들이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도 좋았지만요 ㅎ

5, 극중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유명한 J.K.시몬스가 자신의 딸들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시몬스의 딸들 사진이라고 하네요.

6. 첨엔 '아, 이 영화는 적어도 최근 실직이나 해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개인적인 이유라도 보면 안되겠다'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분들이 보시면 힘이 될 영화같아요. 삶의 무게는 버겁지만 나아갈 이유가 있으니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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