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Noah, 2014)

새로운 시작을 위한 어떤 죽음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된 바가 명확히 있었다. 달리 말해 아로노프스키가 노아의 방주라는 소재를 가지고 '2012'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건 아마 그의 전작들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전작들을 통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의 육체에 관한 퇴화 혹은 불안정함, 불안함으로 인한 그 육체를 소유한 이들의 정신 착란에 가까운 고통과 혼란을 주목해 왔었다. 그런 시도는 예전부터 그랬고, 최근 작품인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표현되었었다. 신작 '노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노아'는 자신의 뿌리와 주어진 사명 그리고 원칙을 지키기 힘든 상황에 놓여버린 주인공 노아의 지독한 심리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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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의 재난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낯선 영화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구약 성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 종교적인 영화를 기대한 이들도 마찬가지. 또한 이 영화의 구성은 마치 슈퍼 히어로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 까지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방주가 완성되고 재난이 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또한 여기까지는 구약 성서에 나온 내용과 큰 줄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디테일로 따지고 들자면 다른 측면이 많지만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방주에 타기 전까지는 크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얘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주인공의 출신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는다. 즉, 카인의 후예들은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에 대한 죄로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벌이 내려졌고, 아담의 셋째 아들이었던 셋은 태초의 주의 뜻에 따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했고 그의 후예인 노아와 그의 가족 역시 이 뜻을 받들어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카인의 자손인 두발가인은 무기를 만들고 자연을 파괴하려는 (생존을 위해) 이로 , 셋의 후예인 노아는 꽃을 꺽는 아들을 나무라는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과 공생하려는, 즉 명확한 선과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와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명확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우 이 둘 간의 대립을 그리기 위함이지만, 아로노프스키의 의도는 오히려 선으로 묘사된 노아가 그렇기 때문에 겪게 되는 갈등과 트라우마를 묘사하기 위한 사전 구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반대의 의미로 두발가인 역시 명확한 악당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은 노아가 스스로 원칙에 얽매이고 갈등을 겪게 되면서 더욱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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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노아는 일종의 선택 받은 자다. 하지만 노아가 받은 선택은 은혜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이자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까지 느껴진다. 신의 뜻을 거역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한 재난에서 무고한 동물들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노아에게는 처음부터 선택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그의 신념 때문 만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의 뿌리, 셋의 후예라는 이유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셋의 후예로서도 자신의 신념과도 일치했던 이 임무 수행이 나중에 가서는 신념은 물론, 자신이 세운(부여 받은) 원칙과도 상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아로노프스키의 비전대로 나아간다.


남여 혹은 수컷과 암컷 한 쌍으로만 가능한 방주를 두고 노아는 자신의 자식 가운데 짝이 없는 함의 짝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일라와 짝을 이루고 있는 셈의 짝 역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하는데 여기서 순간 자신 역시 스스로 이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책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내 가족의 생존에 관한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점에서 더 발전하여, 결국 이 재난을 주신 이유가 인간을 벌하기 위함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가 본인을 포함한 자신의 가족 모두도 구원 받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인해 노아는 가족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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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므두셀라의 은혜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일라가 임신하자 이 아이들이 종족번식을 할 수 있는 딸일 경우 바로 죽이겠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이는 노아와 가족들을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묘사되는 노아의 모습은 앞서 등장한, 악으로 묘사되는 두발가인 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악의 존재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로노프스키가 이 과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 선한 사람이 악한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단 '블랙 스완'의 니나 처럼 강박에 사로 잡혀 육체에 대한 제어 능력을 상실해 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는 노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후반부의 직접적인 안스러운 모습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측은하고 동정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가 방주를 만들고 이 재난을 겪게 되는 과정을 시작부터 보면, 그 스스로 결정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며 후에 가서는 정말 도구로 사용되는 것 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제어 기능, 혹은 자존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이렇게 나뉜다. 임무를 부여 받고 원칙대로 행하던 자신감 넘치는 노아와 스스로가 그 원칙의 아이러니 혹은 모순에 혼란을 겪으며 정신착란에 가까운 심리적 고통을 겪는 노아,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임무가 완료된 뒤 본인의 육체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무기력한 노아, 이렇게 각기 다른 세 가지 상태의 노아로 나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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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방향과는 조금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냥 철저하게 이 임무를 위해 도구로 활용되고 한 개인으로서는 버려지다시피 피폐해진 노아의 모습으로 쓸쓸히 마무리 되었다면 오히려 아로노프스키의 생각은 더 깊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거대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철저히 희생되어야만 했던 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다.


그래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구약 성서의 너무도 유명한 텍스트를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한 파트를 극대화시켜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바로 본인들이 믿고 있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 분이 이 영화를 자신을 모독하는 이야기라고, 그렇게 속 좁게 생각하실지 말이다.



1.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의외의 판타지적 요소도 제법 자연스러웠어요.

2. 대홍수(?)라는 재난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데미갓 퍼시잭슨을 연기했던 로건 레만이라는 점도 ㅎ

3. 개인적으론 의외로(?) 노아의 극 중 고뇌가 상당 부분 공감이 되었어요. 이런 운명에 놓여버렸다면 아마 저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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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2012)

청춘, 그 뜨거운 무한함에 대해



워낙에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2012)' 역시 여주인공 엠마 왓슨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영화였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인 로건 레먼을 어디서 봤었는지도 영화를 보는 중간에야 기억할 수 있었다 (그 영화는 나 혼자만 재미있게 본 것 같은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이었다). 그저 엠마 왓슨 주연의 풋풋한 청춘 영화인가 보다 싶었던 '월플라워'는 오랜 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청춘, 바로 청춘 영화였다. 좋은 청춘 영화는 언제나 옳다. 그리고 '월플라워'는 정말 좋은 청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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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진짜 '청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는 별로 많지 않은데, '월플라워'는 어쩌면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듯도 하지만 결국엔 보편적인 청춘의 불안함과 자유, 무한함을 잘 표현해낸 작품이었다. '월플라워'를 글로 풀어내려고 보니 그리 쓸 말이 많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무한한 감동을 받고 무언가 한 바닥을 써내려 갈 것만 같았는데 막상 정리해보니 별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닌 듯 했다. 샘과 패트릭, 찰리 그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특별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가 생겨난 계기가 되기는 하지만 영화는 그 자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서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로 표현 된 '월플라워'는 그냥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한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영화인 것만 같다. 왜 10대 시절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한 사진들에는 그 사진에 등장하고 있는 이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영화는 바로 사진 속 이들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솔직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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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가 더 흥미로운 다른 이유는 7,80년대의 히트 넘버 들 때문인데, 주인공들이 아웃사이더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극 중 등장하는 곡들은 평소 너무 좋아하는 취향의 곡 들이라 한 곡 한 곡 나올 때마다 완전히 동화 되는 느낌이었다. New Order, The Smiths, Sonic Youth는 물론이고 극 중 주인공들이 공연하는 영화 '록키 호러 픽쳐쇼'의 곡 들도 만나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영화 속 영화라 할 수 있는 '록키 호러 픽쳐쇼'는 평소에도 좋아하는 작품인데 이렇게 소품처럼 만나게 되니 더 흥미로웠다. 이런 문화를 이미 좋아해버린 탓에(?) 조금 아쉬웠던 점은 극 중 중요한 지점에 등장하는 곡의 제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주인공들이 라디오에서 듣고 무슨 곡인지 한참을 몰랐던 그 곡은 사실 너무나 유명한 데이빗 보위의 'Hero'였다. 원래 좋은 사운드트랙은 이미 유명한 곡을 삽입하였더라도 그 영화에 완전히 녹아 들도록 해 다시 금 그 노래를 듣고 싶도록 만드는데, 이제 보위의 'Hero'를 듣게 되면 '월플라워'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 이전엔 '물랑루즈'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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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 테잎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라 좋았다. 더블 데크가 유행하던 시절, 집에 사둔 테잎 들은 물론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곡 들을 녹음해 둔 것을 이용해 나만의 믹스 테잎을 여럿 만들곤 했었는데, 당시 좋아하던 이에게 늦은 밤까지 정말로 엄선에 엄선을 거친 곡들을 테잎의 양면 가득 담아, 가수와 수록곡들도 작은 글씨로 빼곡히 써서 선물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몰래 흐뭇해 졌다. 그 땐 정말 좋은 곡 한 곡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곡 들을 들었었고, 그 곡들을 나만의 콜렉션으로 만들기 위해 각각의 이름으로 명명된 믹스 테잎으로 나뉘어 담기도 했었다. 예전엔 이렇게 사라진 문화들을 보면 단순히 '그 때가 좋았었지..'하고 아쉬워하곤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런 추억과 청춘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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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샘(엠마 왓슨)이 터널을 지날 때 차 뒷 좌석에서 일어나 두 손을 양쪽으로 펼치고 나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을, 스틸컷으로만 보거나 다른 영화에서 봤다면 아마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청춘을 다룬 영화들에는 간혹 허세나 미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월플라워'에는 전혀 이러한 점이 없음에도 무한한 청춘의 에너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몹시도 우정이 그리워졌다. 내 뜨거운 청춘은 다 지나가 버렸을까? 아님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까.



1. OST가 너무 좋아요. 국내에도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는데 안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2. 곧 퍼시 잭슨 2가 개봉 예정인데, 이젠 퍼시 잭슨으로 분한 로건 레만이 더 어색할 것 같네요.3

3. 엠마 왓슨의 매력을 다시 보게 된 영화였어요. 헤르미온느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마법 없이도 매력적인 그녀. 역시 최고의 머글이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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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My Week with Marilyn, 2011)

이해에 닿기 위한 온도의 차이



마릴린 먼로라는 배우에게 '세기의 섹스 심볼'이라는 수식어 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더 있을 것이라고, 재평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는 갖고 있었지만 이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My Week with Marilyn, 2011)'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미셸 윌리엄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목 자체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마릴린 먼로의 숨겨진 실제 로맨스를 다른 시각에서 소소하게 그린 작품이 아닐까 했던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리, 최대한 마릴린 먼로라는 한 여자이자 배우를 부각하면서도 보편화가 가능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만약 마릴린 먼로만을 위한 내용이었다면 그녀의 팬들이라던가 당시 그녀의 작품들에 추억을 갖고 있는 영화팬들만을 위한 영화가 되었을 테지만,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마릴린 먼로라는 누구나 다 아는 배우의 이야기를 빗대어 역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해'의 대한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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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릴린 먼로가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왕자와 무희'의 출연하기 위해 낯선 영국 땅에 도착하여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최근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고전 '클레오파트라'의 뒷 이야기를 블루레이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된 것처럼, 예전 영화를 촬영하던 과정에는 무언가 시스템이 정착하기 이전이어서인지 스타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 영화 전체가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상당했었고, 이런 스타 배우들과 감독들의 기싸움들도 직간접적으로 있어서 이런 촬영장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영화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를 '왕자와 무희'의 촬영장 뒷 이야기 정도로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 점들이 많다.


마릴린 먼로 역할을 맡은 미셸 윌리엄스는 누구보다 그녀를 고증하는데에 상당한 노력을 한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억양이며 말투에서 벌써 달랐다), 다른 배우들 역시 당시의 실존 인물들을 연기하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방향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마릴린 먼로의 에피소드를 들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화두인 '이해'의 이야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이 영화가 이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영화가 마릴린을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그리는 전개 방식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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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중반에 이르기까지 극중 마릴린 먼로의 행동은 사실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오히려 자신도 스타 배우이자 감독이면서도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마릴린 먼로에게 최대한 맞춰주려는 로렌스 올리비에 (캐네스 브레너)의 고민이 더 공감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 이해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영화는 작은 배려의 틈을 열어둔다. 일단 중요한 건 처음부터 영화가 마릴린의 편에 서 있는 상태로 시작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해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다는 점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아주 작은 이해의 가능성으로 시작해 조금씩 이 이해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릴린 먼로의 행동과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한데, 극중 콜린 (에디 레드메인)과 마릴린의 러브 스토리는 물론 '노팅 힐'처럼 스타와 일반인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끝까지 마릴린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콜린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해의 노력이 반드시 인간 대 인간의 것이라기 보다는 스타를 향한 사랑에 감정이기도 하지만, 콜린 역시 이 짧고 강렬한 사랑을 겪고 서는 그녀에게 필요한 건 이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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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이 사랑의 감정이 섞인 이해라고 한다면 극 중 주디 덴치가 연기한 '시빌'의 경우는 거의 무한 이해의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렇게 영화는 마릴린 먼로를 둘러싼 이해의 온도가 다른 여러 캐릭터를 통해, 처해진 상황과 사람에 따라 이해가 닿기 위한 필요 거리가 다름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렇게 닿게 된 이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도 그녀의 경우를 들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제서야 영화는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의 무비 스타 마릴린 먼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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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셸 윌리엄스만 믿고 보게 된 영화였는데 캐스팅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주디 덴치, 캐네스 브레너, 엠마 왓슨(!!!), 줄리아 오몬드(!!!!), 도미닉 쿠퍼, 데렉 자코비까지.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어? 어?하며 보는 재미가 ^^


2. 미셸 윌리엄스의 마릴린 먼로 재현 역시 대단했어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먼로의 모습을 재현하는 동시에 우리가 잘 모르는 그녀의 내면까지 표현해야 했는데, 둘 다 성공한 것 같네요.


3. 이 영화를 다 보고나니 자연스럽게 '왕자와 무희 (the prince and the showgirl, 1957)가 보고 싶더군요. 올레TV에 있던데 이 작품도 바로 연결해서 봐야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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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혼혈왕자 (Harry Potter And The Half-Blood Prince, IMAX DMR 3D, 2009)
마지막 '준비'에 충실한 작품


개인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좋아하는 순서를 꼽으라면 정확히 시리즈의 역순이 될 것 같다. 사실 1,2편이 개봉했을 때만 해도 극장에서 물론 다 꼭꼭 챙겨보기는 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경쟁을 했었던 <반지의 제왕>시리즈의 영향력을 제외하더라도, '아이들'에 촛점이 맞춰진 이 시리즈에 별로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해리와 아이들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나이보다도 더 무서운 속도로 노화(?)가 진행되었고, 한 편에선 '과연 이 아이들이 완벽한 어른이 되기전에 시리즈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새로운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어두워졌고,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소년, 소녀의 성장이야기로 변해갔으며, 그런 점들은 더더욱 이 시리즈를 마음에 드는 시리즈로 탈바꿈 시키게 되었다.

시리즈의 6번째 작품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잘 알려졌다시피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Harry Potter :
Deathly Hallows)>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파트 1,2로 나뉘어 개봉할 예정이며 각각 2010, 2011년 개봉될 예정이다). 그 말은 고로, 만약 이러한 '준비'의 성격을 어느 정도 미리 알고 있거나 혹은 받아들이게 된다면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는 조금 당황스런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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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을 전혀 읽지 않은, 흔치 않은 순수(?)한 영화 관객으로서 해리포터 시리즈는 영화로서도 갈수록 매력적으로 변모하는 시리즈라고 생각된다(아, 아까 시리즈의 선호도를 얘기하면서 정확히 역순이라고 했었는데,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했던 <아즈카반의 죄수>도 성장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한 시리즈로서 썩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 시리즈가 갈수록 매력적인 이유는 해리가 구사할 줄 아는 마법이 늘었기 때문이라던가, 헤르미온느의 외모가 점점 훈훈하게 성장해 간다던가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물론 훈훈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 아이들이 점점 소년, 소녀로 성장해가고 시리즈를 관통하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점점 어두워지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판타지를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갈 수록 해리의 얼굴에서 귀여움 보다는 그늘이 발견되는 이야기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며 다른 한 편으론 아이였던 해리가 소년이 되는 과정을 통해 아이였던 관객들이 함께 소년으로 성장해 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더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는 성장영화 측면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울 정도로 유머러스한 면이 부각되었고 현실적인 사춘기의 감정을 잘 담아낸 동시에, 볼드모트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음에도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기도 했다. 일단 유머러스한 부분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춘기를 넘어서서 거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설정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살짝 더 나아간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이외의 이야기는 상당히 어둡기 때문에 론을 중심으로한 사춘기를 그린 이야기는 좀 더 밝게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로맨스의 핵심이 론이기 때문인지 론의 비중이 그 어느 시리즈보다 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그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해리보다 더 훈남이 되고 있는 사실도 작용된 것이 아닐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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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의 개그와 활약을 즐기는 것은 이번 작품에 또 다른 재미!)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에서 이들 삼총사 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는 바로 말포이였다(기존에는 거의 '말포이'라고 90%이상 사용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유난히 그의 성이 아닌 이름 '드레이코'가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이전 시리즈에서는 그냥 얄미운 넘 정도로 묘사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쩌면 해리보다도 더 고뇌하고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 시종일관 우울하고 고통받는 표정을 연기했다. 이런 말포이의 모습과 학생시절 볼드모트의 모습을 한 작품에 등장시키면서 볼드모트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우회적으로 하는 것은 물론, 말포이 역시 동등한 비중으로 설명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 영화를 통해 미뤄 짐작했던 말포이의 모습과는 달리 볼드모트의 선택에 마냥 기뻐하지 않고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은 오히려 불쌍해보이기 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얼굴이라면 울듯 말듯 고통받는 말포이의 표정이랄까.

이렇게 얘기가 흘러가고 보니, 이렇다면 볼드모트를 그리는 방식이 마치 다스베이더(아나킨 스카이워커)와 같은 방식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물론 원작을 다 읽은 입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이미 훤히 알고 있겠지만(제발 스포만은 말아주세요 ㅠㅠ),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를 통해 드러난 볼드모트와 말포이의 묘사는 분명 지금까지 이들을 그려왔던 것과는 다르게 본래 악한 존재가 아니라 해리처럼 선택받은 자였지만 너무 뛰어난 재능 탓에 악에 유혹에 빠지고만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기대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자신이 혼혈왕자임을 밝힌 스네이프 역시 막판에 가서는 다시 한번 해리의 편에 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해보게 되었다. 마치 <제다이의 귀환>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보통 같으면 이 같은 예상들이 하나에 재미있는 '설'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해리포터의 경우는 이미 소설이 완결된 터라 다 아는 입장에서 본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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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코 말포이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그의 눈빛에선 슬픔마저 느껴진다.)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지만 아마도 더 어두워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비중은 둔 듯한 사춘기 로맨스의 분량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굉장히 현실적인 사춘기의 감정들에 대한 묘사들은 마음에 들었지만 차라리 이쪽 비중을 조금 더 줄이고 말포이나 불사조 기사단의 비중을 높였다면 더 '내 취향'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아마도 더 어두울 마지막 2편의 작품에 대한 부담도 높아질 것이고, 직접적으로는 이번 작품에 흥행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는 부제목에 남긴 것처럼 상당히 '준비'에 철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렇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클라이맥스나 임팩트가 부족한 편인 것도 사실이다. 해리와 덤블도어가 호크룩스를 가져오는 장면이 뒷부분에 포인트라면 포인트일텐데 그 분량이나 임팩트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덤블도어의 모습은 너무도 간달프 스러웠다 ㅎ). 3D 아이맥스로 펼쳐지는 첫 액션 시퀀스가 오히려 임팩트 면에서는 더 크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 두 시퀀스보다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바로 위즐리의 집이 공격 당하는 장면이었다. 갈대 숲을 배경으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감을 주는 이 장면만 놓고 보자면 호러 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을 연출로 이 장면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갈대 숲을 누비다가 해리와 기사단이 가운데 모이게 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장면에서의 조명과 카메라 워킹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의 최고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이 장면을 주저없이 꼽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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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간달프)

적당한 시간대가 일산 CGV 밖에는 없어서 일부러 찾아가 아이맥스로 관람하였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3D를 지원하는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예전 <슈퍼맨 리턴즈>도 비슷한 방식이었는데,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중간 중간 3D 장면을 지원했던 <슈퍼맨 리턴즈>와는 달리 이 작품은 초반 20여분 정도에 3D 장면이 모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극장에 온 많은 관객들은 아마도 조금은 당황했을 싶다(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3D상영작과 동일한 가격을 책정한 티켓 가격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3D 시퀀스는 입체감을 더 만끽할 수 있을 만한 장면들로 채워져있었는데, 거리를 빠르게 누비는 연출은 마치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실감이 났다. 개인적으로 초반 20분에만 3D 시퀀스가 몰려 있는것에 큰 불만은 없지만, 퀴디치 장면 같은 것도 3D로 즐길 수 있었다면 좀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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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부턴가 해리보다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론 위즐리 역할의 루퍼트 그린트는 본격 로맨틱 코미디 물의 주인공이나 아니면 아예 '히어로즈' 같은 SF미드물에 출연해도 어울릴 듯한 모습으로 자라 준 듯 하다. 반대로 해리 역의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그럭저럭 평균적인 연기를 보여주다가 '행운 충만한' 그 장면에서는 오랜만에 객석을 빵터트릴 정도의 재미있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왠지 다니엘에게는 멋있는 모습보다 이런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엠마 왓슨은 전작들 보다는 아주 살짝 비중이 줄긴 했지만(그 비중은 고스란히 론에게;) 깜짝 드레스 장면으로 2시간 반의 대장정에 졸음으로 대처했던 많은 남성 관객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으며, 다른 한편으론 '론이 뭐가 좋다고'하는 원성을 듣기도 했다 ^^;

헬레나 본햄 카터는 참~ 이런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 걸 짧은 분량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고, 슬러그 혼 역할의 짐 브로드벤트는 역시 연기 잘하는 배우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으며, 루나 러브굿 역할의 이반나 린치는 그 사자탈 쓰고 나온 장면 만으로도 제 역할은 다 수행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1. 안봐도 시리즈의 마지막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part 1,2>는 가장 좋아하게될 시리즈의 작품이 될 것이 거의 확정적이네요.

2.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인데 '혼혈왕자'에 대한 이야기가 양념처럼 등장합니다.

3. 아마도 이 작품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공개되고 나면 좀 더 가치가 높아질 작품이 아닐까도 생각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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