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삶의 낙으로 삼고 있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극장이란 곳은 그냥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공간적인 측면 외에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극장의 가장 큰 기능이라면 역시 좋아하는 영화를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이 것 외에도 극장은 그 자체로 (그러니까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별한 공간이 되곤 한다. 가깝게는 친구와의 약속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내 인생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추억 중 많은 조각들은 영화 혹은 극장과 연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볼 때 첫 경험을 몹시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사람은 약은 존재라 아무리 선입견을 지우려고 의식적으로 거부해도 이미 이 의식 속에는 또 다른 선입견이 생기는 것처럼,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볼 수 있는 첫 관람의 조건을 가능하면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나의 영화보기에 가장 큰 준비작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본래 의도한 바를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극장의 조건을 찾아 첫 경험을 치루곤 하는데, 필름 상영인지 디지털 상영인지, 혹은 3D상영인지 아이맥스 상영인지 등은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어찌보면 영화를 보는 대에 가장 직접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극장의 분위기는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영화를 예매할 때는 다른 요소보다 바로 이 분위기를 가장 1순위로 고려하게 되었으며, 이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실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의 에티켓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저버린지 오래다. 왜냐하면 멀티 플렉스에는 '영화'를 보러 온 사람보다는 그저 '시간'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영화를 보려는 사람만 극장에 와야 하는 것이냐 라고 반문할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제발 그래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영화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이일 뿐이니, 내 인생에서 영화보기의 중요성을 남에게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예전 재상영된 '영웅본색'을 보러 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시네마테크' 역시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인식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시네마테크'는 좀 더 영화에 애정이 있는 이들 혹은 영화 보기에 대한 인식이 높은 이들이 주로 보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반대로 얘기하자면 '시간'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 보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기 때문에) 무개념에 가까운 관람 태도는 피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점점 시네마테크에도 멀티플렉스에서나 볼 법한 관람 태도의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매우 우울해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시네마테크에서나 볼 법한 영화들을 일반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이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판권 및 상영권을 가져가는 바람에, 이런 영화들을 보려면 할 수 없이라도 멀티플렉스를 가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 이유도 들 수 있겠다 (멀티플렉스의 예술 영화 끌어 안기는 분명히 양날의 칼이다). 여기까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부분이라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는데, 앞으로 이야기할 관람 에티켓에 대해서는 사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다.




일단 극장에서 전화 받는 사람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기껏해야 2시간 정도 핸드폰과 이별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냐고 말하고 싶지만, '중요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라는 이유라면 공감은 안되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런 연락이 온 다음부터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바로 옆에 앉은 이들에게 눈치가 보여서라도 작게 이야기하거나 바로 끊고 이따 통화하자 라고 이야기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요새는 끊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이 오히려 절대 작지 않은 목소리로 계속 통화하는 이들도 여럿있는데, 이 분들은 '극장에서는 통화를 삼가해주세요'라는 기본 개념이 전혀 자리잡지 못한 탓일 것이다. 나는 누가 돈을 줄테니 한 2분만이라도 평소처럼 상영시 통화해주세요 라고 부탁을 해도 아마 주변 눈치와 내 스스로 민망해서 못할텐데, 이렇게 너무나 평온한 상태에서 오랜시간 통화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확실히 이들과 나는 절대 섞일 수 없는 부류이리라. 문자 메시지 역시 마찬가지다. 거의 영화 상영내내 핸드폰의 환한 불빛을 드러내며 문자를 주고 받는 이들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럴려면 왜 아까운 돈을 내가며 극장에 들어와서 문자를 주고 받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앞좌석을 발로 차는 것도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극장 의자와 의자와의 간격은 열악한 시설이 아니라면 다 성인을 기준으로 제작이 되어 있어서 정상적으로 앉았을 때 크게 무리가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신체구조를 지닌 것인지 앞사람을 차지 않고는 영화를 볼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평소에 잘 교육을 받지 못해서인데, 이런 이들의 평소 습관을 보면 앞좌석에 아예 발을 대고 보는 것으로 익숙한 이들도 상당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앞좌석에 사람이 없으면 아예 두발을 앞좌석에 높게 걸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여럿이 함께 왔을 때 더 대담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예 이런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뒷좌석이 없는 중간 통로좌석을 택하는 편이다. 이런 이들과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훨씬 나은 편.




그리고 또 하나 불편한 관람태도라면, 사사건건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이들이다. 마치 이 곳이 자신들의 안방인냥 영화를 보는 내내 작지 않은 소리로 '저건 왜저래?' '저 사람 죽은거야?' '뭐야 유치하게' 등등 보통 사람들은 나 혼자 머릿 속에서 하곤 하는 생각들을 별도의 여과장치 없이 입밖으로 내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에 따라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니 그걸 궁금해하는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이걸 굳이 그 자리에서 옆사람에게 '큰소리로' 확인하는 걸 보면 과연 내가 옆에 있는 것이 보이질 않는 것인지를 '정말로'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정말 잡담이 멈추질 않길래 정말정말 참다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저, 혹시요. 저 안보이세요?' 

말이 나온 김에 관객들 외에 극장 측의 에티켓도 이야기하고 싶다. 멀티 플렉스에서는 상영시간이 정시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이미 일반화 되었다. 그래서인지 멀티플렉스를 주로 다니던 관객들은 시네마테크에 왔을 때 영화가 정시에 시작하면 오히려 당황하기까지 하더라. 이것은 분명히 극장이 관객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럴 거면 차라리 영화의 정시를 뒤로 늦출 것이지 정시는 그대로 표기하되 그 이후까지 한참이나 광고를 상영하는 것은 분명 '불법'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러 간 것이지 광고를 보러 간 것이 아닌데, 이 수준이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상영시간 이후에 10분 가까이 광고를 하는 것은 진짜 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엔딩 크래딧에 대한 것은 누누히 지적했지만 분명 극장의 100% 잘못에 가깝다. 요새도 간혹 끝까지 틀지 않고 관객이 있음에도 꺼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건 뭐 논란의 여지가 없는 극장의 잘못이지만 실제로 크래딧을 중간에 끊지 않더라도 남아있는 관객을 극장 직원들이 계속 눈치주는 것에 불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어떤 청소 아주머니는 매우 친절하게 '이거 끝나고 아무것도 안나오니 빨리 나가요'라고 가르쳐주기시도 하시던데, 다른 사람들은 뭐 추가 장면이 있나 해서 남아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추가 장면이 있건 없건 크래딧을 끝까지 감상하며 스탭들 이름도 확인하고 영화에 삽입된 수록곡들도 보고 무엇보다 스코어를 만끽하기 때문에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순간은  아직 영화 감상의 연장선에 있단 말이다. 그런데 극장의 직원들은 '쟤가 도대체 왜 안나가고 있나' 엄청나게 눈치를 준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직원들과 이런 밀고 당기기를 하게 되었는데, 도대체 내가 내 돈 주고 영화를 보면서 왜 이런 억울한 대우를 당해야하는지 아직까지도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냥 내가 유독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슬픈 뿐이다.




어쨌든 극장은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인데,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기 위해 고려해야할 영화 외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아졌다. '내 뒷 사람은 왜 이렇게 계속 찰까', '쟤는 왜 저렇게 전화통화를 하는 걸까', '저 사람은 계속 말이 많던데 이 장면에서 또 한 마디 하겠네', '직원이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군' 등등 직간접적으로 영화 한 편 보는데 너무 고려해야할 것들이 많아진 탓에 정작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지금의 티켓값에 2~3배를 지불할 용이가 있으니 이런 프리미엄 상영관(현재 멀티플렉스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상영관과는 다른 개념의)이 있다면 아마도 굳이 사람들이 비싼 돈 주고 들어오진 않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비싼 돈 주고 영화를 봐야할까 하는 억울한 마음도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정말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관람환경이 주어진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냥 '제발' 극장에서는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다. 왜 이런 당연한 사실을 '제발'을 붙여가며 바래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극장에서는 오롯이 영화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영화 팬으로서의 정말 최소한의 바람이다.


2010.08.30. pm. 03:25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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