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언 레시피 (ホノカアボーイ Honokaa Boy, 2008)

멈춰버린 그 곳에서 찾아낸 빈자리



이 영화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거의 모든 영화를 예매를 통해 보는 나로서는 우발적으로 영화를 보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할 수 있었는데, 어느 더운 여름 날. 휴가답지 않은 휴가를 내고 무작정 삼청동을 거닐 던 중, 의도치 않게 발견하게 된 한 장의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사실 평소 일본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는 점에 볼 것 없이 티켓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정말 백만년 만에 현매로 산 영화표였다), 스포일러랄 것도 없지만 아오이 유우는 우정 출연이었고, 영화도 포스터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문구와는 다르게 (포스터의 문구에서 풍기는 느낌은 마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우연치 않게 귀농을 하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 일 것만 같았다) 무언가 애잔하면서도 평화로운 작품이었다.



ⓒ 영화사 진진. All rights reserved


하와이언 레시피 (ホノカアボーイ Honokaa Boy, 2008)는 무언가 묘한 정서가 있다. 즉, 요즘 흔히들 말하는 '힐링영화'와는 조금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얼핏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이지만 (심심하면서 안락감을 주는)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장소나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모두에 아픈 구석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우연히 하와이의 시골 마을에서 지내게 된 레오 (오카다 마사키)가 그 곳의 사람들과 만나고, 그 중에 자신에게 우연히 식사를 대접해준 비이 (바이쇼 치에코)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1차적으로 비이와 레오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는데, 남녀 간의 관계로 설정해도 어색하지 않은 로맨스가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호노카아 마을에 오랫동안 홀로 남아있던 비이와 이 곳에 우연히 남게 된 젊은 레오가 서로에게 남녀가 아닌 존재 대 존재로서 관계를 맺는 방식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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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는 레오가 호노카아에서 보낸 시간들을 통해 깨닫게 된 것들 때문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었는데, 글을 쓰려 좀 더 생각해보니 레오보다는 호노카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더 떠올랐다. 이 영화를 처음 포스터만으로 예상했었을 때처럼, 그저 한적하고 고민거리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마을의 일상을 통해 슬로우 라이프를 떠올려보게 되는 것 정도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호노카아에서 만난 비이와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곳에 멈춰버린 더 나아가 고립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영화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20세기 초 많은 일본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하였고 그 결과 1920년 대에는 전체 하와이의 인구 가운데 43%가 일본인일 정도로 많아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근거하여 생각해보니 더더욱 영화 속, 그러니까 하와이를 사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노인들 만이 남아 매일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또' 살아가고 있는 현실. 하지만 벗어나려고 해도 이제는 벗어나는 것에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현실. 그 가운데 어쩌면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의 등장이 이 영화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비이와 레오의 묘한 관계에서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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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언 레시피'는 무언가 빈자리가 짙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나 반복되고 별다를 것 없었던 인물과 장소들이 갑자기 빈자리로 느껴졌을 때 겪게 되는 쓸쓸함과 후회를 통해, 마치 꿈을 꾼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것은 치유라기 보다는 회상이나 후회에 가깝다. 40도에 육박하는 이 무더위 속에서도 가슴에 깊게 남을 빈자리에 여운을 남긴. 그 쓸쓸함에 대해.



1. 아오이 유우에 낚여서 보게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이어서인지 더 좋았던 영화였어요. 이것도 보고나서 알게 된 건데 2008년 작품이 올해 국내개봉한거였네요;;


2. 개인적으로는 정말 휴가 아닌 휴가 기간 동안, 정말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로 무더운 대낮에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였는데, 그 짧은 휴가 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3. '비이'역할을 맡은 바이쇼 치에코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목소리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했던 소피 목소리였어요! 어쩐지 목소리에서 편안함이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영화사 진진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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