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관객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을 보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라면 단연 홍상수와 우디 앨런을 들 수 있겠는데, 두 감독의 공통점이라면 몹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다는 것 외에 거의 매 년 영화를 발표하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포스터였는데, 그래서 끌리는 바가 적어 놓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디 앨런!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인데!'하는 마음에 보게 된 '블루 재스민'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경향과는 사뭇 다른 냉정하고 차가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굳이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가 최근 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과 유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는 관객에게마저 냉정한 시선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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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의 줄거리를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부자였던 한 여인이 금전적으로 한 순간에 몰락하며 자신의 뒤바뀐 처치를 인정하지 못해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다른 줄거리의 이야기들이 있다. 왜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겪게 되었는지와 그렇게 된 재스민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일단 첫 번째 이유를 두고 혹자들은 이 영화에 마치 '매치 포인트'나 '스쿠프' 같은 스릴러 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후반부 등장하는 일말의 사실은 반전이나 스릴러로 존재하기에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자체가 스릴러를 전혀 염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두 번째 시선인, 이 영화가 이런 상황에 놓인 재스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 저 줄거리만 보면 대충 예상되는 바가 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부에서 멀어져 버린 주인공을 통해 그저 부와 명예가 부질 없음을, 혹은 명품이나 귀족같은 삶이 일종의 허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소박한 것에 소중함을 깨닫는 전개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얼핏 보면 그녀의 변화에 주목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졌던 건 그녀의 변화가 아니라 그녀의 변화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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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스민을 묘사하는 시선에는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래서 재스민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허상과 그녀가 허상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던 사회를 동시에 다루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재스민을 두고 영화가 관객과 두고 있는 거리 혹은 메시지였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우디 앨런의 전작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이런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극 중 로베르토 베니니가 등장한 일종의 유명인에 관한 에피소드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도 동떨어져 있고, 다른 에피소드들과도 사실상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이라 아쉬움이 있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는 감독 본인을 비롯해 헐리웃으로 대표되는 영화 배우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메시지도 느껴져, 우디 앨런의 최근 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기도 했는데,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블루 재스민' 역시 이런 메시지 적인 측면이 겹쳐져 전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재스민이라는 인물을 관객과 거리를 두고 묘사하지 않고 그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관객과의 접점을 아주 자연스럽게 포착해내, 그녀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관객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극 중 재스민은 명품들에 집착하고 (그것이 그녀를 말해주는 유일한 것들이기에), 부와 돈으로 살 수 있는 세계를 동경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실제 명품 브랜드들의 이름들은 단순히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함이나 현실성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을 자극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즉,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스민과 마찬가지로 부에 대한 동경심을 무의식 속에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재스민을 동정하기도하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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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재스민의 동생 역할과 그녀의 거친 애인과 친구를 관객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극 중 재스민의 그것과 같은데, 이 상황을 정말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재스민과 관객의 시선이 옳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후반부에 등장한 또 다른 부자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는데,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이 캐릭터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아, 저 사람도 사기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걸 극장 분위기로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아마도 전형적인 줄거리였다면 그랬겠지만 우디 앨런은 관객의 이런 심리를 꼬집기라도 하듯 보기 좋게 여기서도 또 한 번 재스민을 코너로 몰았다. 


나 역시 그랬지만 부에 대한 동경, 그것이 허상이고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갖을 수 있다면 갖고 싶다는 생각(욕심)을 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영화는 이 자체를 꼬집는다기 보다는 갖을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그제서야 쿨한 척하며 '그래 그건 다 허상이지'라고 말하려 하는 관객을 한 발 물러서서 참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에 올라갈 때 마치 내 시커먼 속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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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게는 '미드나잇 파리'가 더 좋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조금은 특별한 우디 앨런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아, 배우들의 참 좋은 연기들도. 케이트 블란쳇이야 너무 많이들 얘기하니까 더할 필요 없을 것 같고,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언제나 참 자연스럽더라. 오랜만에 '해피 고 럭키'가 보고 싶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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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곳, 로마



'미드나잇 인 파리'에 이은 우디 앨런의 또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로마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를 보았다. 사실 2010년에 발표한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부터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세 작품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여러 명의 인물들이 한 곳을 배경으로 다른 듯 같은 이야기를 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형식의 영화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역시 '미드나잇 인 파리'인 것 같다. '로마 위드 러브'는 각기 다른 인물 (혹은 커플)들의 이야기를 로마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들려주는데, 조금은 완전히 동화 되지 못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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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마 위드 러브'를 보러 갈 땐 편한 마음으로 우디 앨런이 들려주는 농담과 삶에 대한 경험 들을 듣고자 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마냥 편안하게 즐기기만 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일단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우디 앨런이 오랜 만에 자신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의 수준급 메소드 연기를 보는 것도 충분히 즐겁지만, 그가 직접 출연한다는 사실은 그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극 중 우디 앨런은 보수적이고 고집 센 할아버지로 등장하는데, 그가 이 캐릭터를 통해 내 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가 이 작품의 감독이다 보니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었다. 마치 홍상수 영화 속 감독 캐릭터를 그냥 영화 속 캐릭터라고 보기 힘든 것과 같은 경우였는데, 워낙 이런 면에 솔직하고 거침없는 우디 앨런이다보니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에게 콕콕 꽂히는 느낌이었다. 홍상수의 경우도 그렇지만, 우디 앨런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평가나 이야기들에 대해 억울함보다는 초연 한 자세로 '난 상관없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꺼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그의 팬들은 아마도 그와 그의 작품을 더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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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그랬고 좀 더 앞선 작품을 들자면 '스쿠프 (Scoop, 2006)'에서도 그랬었는데, 우디 앨런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배경과 이야기 속에서 자신 만의 판타지를 표현하곤 했었다. 장르 적인 판타지를 말하는 것인데, 사후 세계가 등장 한다 거나 유령과도 같은 인물이 섞여 있거나 하는 등이 그것이다.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알렉 볼드윈이 맡은 역할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텐데, 그가 유령인지 아닌지 가 하나도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 우디 앨런 영화 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렇게 나 불쑥 끼어들고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그 나름의 재미를 주며, 자신의 이야기가 없이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의 표현도 거추장스럽지 않다. 뭐랄까, 우디 앨런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영화 속에 또 다른 화자 혹은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지점이 최근 우디 앨런 영화에서 묘한 매력을 주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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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끊임 없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테마 중 하나가 바로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노장은 아직도 신선한 감각으로 젊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또 다른 남녀 간의 미묘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이번 작품은 좀 더 풍자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도시로 온 두 남녀가 겪게 되는 의외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들이 평소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욕망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제시 아이젠버그와 엘렌 페이지가 연기한 커플의 이야기도 자신의 자존심 혹은 자존감에 근거한 이들의 미묘한 감정 교류를 보여준다. 그리고 로베르토 베니니가 연기한 캐릭터의 에피소드는 어쩌면 이 쇼 비지니스의 세계를 살고 있는 모든 배우들을 향한 우디 앨런의 메시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로마 위드 러브'의 아쉬운 점이라면 이렇듯 여러가지 이야기가 좀 뒤섞여 있다는 점이었는데, 하나의 이야기와 흐름에 완벽히 녹아든 '미드나잇 파리'나 '환상의 그대'에 비하자면 조금은 에피소드 별 주제가 달라 하나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차라리 완전히 에피소드 화 화여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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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은 러닝 타임 내내 각각의 이야기를 쏟아내고는 마지막에 가서, 이건 그냥 수 많은 이야기 중 하나 일 뿐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 드릴 께요 라고 마무리한다. 사실 '로마 위드 러브'는 정작 로마에 가고 싶어지는 생각은 덜 드는 작품이었는데, 이 마지막을 보니 한 번 쯤 가보고 싶어졌다. 로마의 무엇이 그리도 우디 앨런에게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샘솟게 했는지 궁금해져서 말이다.



1.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보게 된 배우는 알렉 볼드윈이었어요. 최근 좀 우스운 역할로 자주 출연 해서인지 예전 꽃미남 시절의 알렉 볼드윈을 떠올리게 할 만한 매력은 엿볼 수 없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진짜 배우의 매력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더군요. 이 다음에는 코엔 형제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웨스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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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오는 것 만으로도 황홀한 작품이죠. 엘렌 페이지, 페넬로페 크루즈, 앨리슨 필, 로베르토 베니니, 제시 아이젠버그 등. 특히 페넬로페의 출연은 그냥 관객에 대한 일종의 선물 같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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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Woody Allen, a Documentary, 2012)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우디 앨런



예전에는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좋아진 감독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라면 국내에는 홍상수 감독이요, 국외에서는 우디 앨런 감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디 앨런의 예전 영화들은 몇몇 보아왔지만 사실 그의 많은 작품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작품만을 보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디 앨런 영화의 재미를 본격적으로 느낀 것은 어쩌면 2005년 작 '매치 포인트 (Match Point)' 부터 인 것 같다 (덜 우디 앨런스러운 영화부터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함정). 여튼 그 전까지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의 영화들은,  그 이후 '스쿠프'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환상의 그대'를 지나 '미드나잇 파리'에 이르면서, 이제는 정말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시기적인 타이밍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거의 제대로 못 본 상태에서 이미 팬이 되어버린 경우라, 그의 전작들과 그의 과거에 대해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작품 '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만나면서 좀 더 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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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디 앨런의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정말로 다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의 경우 어느 한 시기나 사건에 고정되거나, 혹은 시작은 모두 다루지만 현재까지는 다루지 않고 있어서 조금은 아쉬운 점들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로 현재 시점, 그러니까 '미드나잇 파리'를 마치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투 롬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더 느껴졌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이 현실감 혹은 동시간대를 느낄 수 있도록 늦지 않게 국내 개봉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 몰랐던 그의 초창기 활동들 즉, 영화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스탠딩 코미디언과 코미디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비교적 자세히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가 본명인 앨런 스튜어트 코닉스버그 대신 어떻게 '우디 앨런'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는지 (알고 보면 별 것 없지만;), 작은 지역 신문에 코미디를 기고하던 이가 어떻게 더 큰 무대로 나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당시의 우디 앨런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당시의 귀한 자료들을 보니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미국인들만 웃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인지 분간은 안되어 덜 웃긴 개그들도 있었지만, 지금봐도 우스운 장면들이 많았을 정도로 영화 감독이 아닌 코미디언으로서의 우디 앨런도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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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가 왜 영화 판에 뛰어들었고 더 나아가 왜 영화 감독이 되려 했는지부터, 그렇게 시작한 영화 감독으로서의 활동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직접 연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심층 깊게 만나볼 수 있는데, 우디 앨런이 쿨한 사람이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런가 그의 대한 이야기들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들로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런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지나치는 것들이 그 인물에 대한 단점이나 약점 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디 앨런에게 커리어의 끝을 예상했을 정도의 스캔들이었던 양녀 '순이'와의 결혼에 대해서도 감정적인 측면보다 사실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 다른 이유는, 제 3자들로 인해 소개되는 우디 앨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소개하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라는 점이다. 우디 앨런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관련된 과거들, 그리고 자신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함에 있어서 코멘트가 필요한 적제적소에 등장해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이렇듯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개봉 제목처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알려주는 동시에 제법 '잘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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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고나면 누구나 그의 전작들이 너무도 보고 싶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극장을 나와 집으로 오자마자 집에 DVD랙을 뒤져서 그의 전작들의 소장여부를 확인하는 동시에 미처 소장하지 못한 작품들의 DVD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쇼핑몰을 전전하기에 이르렀다. 1935년 생으로 올해 80이 다되어가는 이 감독은, 노장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아직도 정력적으로 작품들을 매년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작품들은 심지어 더 좋아지고 더 젊음과 노련함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그의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우디 앨런은 과거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작 '투 롬 위드 러브'도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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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전작 가운데서 현재 가장 보고 싶은건 '애니홀'과 '젤리그', '슬리퍼' 그리고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요. 그 가운데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일 것 같네요 ㅎㅎ


2. '미드나잇 파리'도 꼭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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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s Paris, 2011)

우디 앨런의 엑설런트 어드벤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감독 중 한 명인 우디 앨런의 신작이었기에 심히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나온 오웬 윌슨의 영화 포스터만 보고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만 보고는 워낙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우디 앨런이라 파리에 대해 흠뻑빠진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작품이 아닐까라고만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미 '스쿠프 (Scoop, 2006)' 같은 작품을 통해 재치를 보여주었었던 그는, '사랑해, 파리' 연작이 아닐까 싶었던 영화를 또 한 번 우디 앨런다운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자신감있게 만들어냈다. 보는 내내 큭큭 거리고 흐뭇하게도 되었던 '미드나잇 인 파리'는 마치 우디 앨런이 쓴 '엑설런트 어드벤처' 같았다.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했던 바로 그 '엑설런트 어드벤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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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는 좁게 보자면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넓게 보자면 개개인의 느끼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가장 앞선 생각은 오웬 윌슨이 연기한 주인공 '길'이 너무도 부러웠다는 점이다. 나도 종종 그런 꿈을, 내가 평소 동경하는 인물들과 친구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하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작가, 예술가 들을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게 되는 '길'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해볼 수 있었다.


극중 '길'은 소설을 한 편 쓰고 있는데, 주변 얘기를 빌리자면 돈 되는 것과는 무관한 그리고 대중들의 취향과도 좀 멀어져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 근거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현실에서 이렇게 냉대를 당하던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로 부터 영감을 받는 것은 물론, 좋은 반응을 듣게 된다. 앞서 이 영화가 좁게는 작가에 대한 넓게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작가로서 '길'이 갖고 있는 평소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길'이 사건을 겪고 변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 갖고 있었던 자신의 생각을 의심없이 믿게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 얘기는 곧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작가인 '길'의 이야기는 감독인 우디 앨런과 겹쳐질 수 밖에는 없는데,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구성 자체에서도 바로 그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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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 많은 예술가들의 면면은 매우 흥미롭지만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사실상 100% 소화하기는 어려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극 중 등장하는 헤밍웨이, 피카소, 스콧 피트제럴드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분명 유명한 예술가로서 등장하는 것 같기는 한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고, 영화는 기존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던 영화들과는 달리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인만을 등장시키지도, 이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반대로 얘기해서 만약 영화가 이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그건 정말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길'의 이야기고 '길'에게 이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은 바로 자신이 동경하는 이들에 대해 아는 만큼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풀어놓았다. 대사 하나 하나에도 깨알 같은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조크들을 배치했는데, 쉽게 얘기해서 아는 사람만 웃어도 좋다는 식이었다. 물론 우디 앨런 쯤 되니 이런 자신감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극 중 '길'이 깨달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글을 쓸 때 이러한 자신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을 쓸 때 무엇인가를 100% 설명하려다보면 오히려 내가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차라리 누구나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 정수를 깨닫고 있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글이 결국은 더 많은 '누구나'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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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결국 누구나 동경하는 바가 다르고, 호불호가 갈리고, 만족도가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에 근거해 지금(현실)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오히려 과감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위해 그 세계에 남기로 한 아드리아나(마리온 꼬띨라르)의 이야기가 '길'의 선택 만큼이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들에 대해 100%를 던질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겪고, 최근 더 절실하게 겪고 있는 문제인데 영화 속 '길'과 아드리아나의 이야기가 전한 작지만 임팩트 있는 깨달음은, 파리의 그 아름다운 풍경들 보다도 더 깊게 남았다. 뭐 그래도 파리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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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에도 있지만 극 중 등장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더 있었더라면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물론 이것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죠;;


2.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역시 배우들 보는 재미죠. 너무 많은 배우들이 등장해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톰 히들스톤, 마이클 쉰은 물론이요 에드리언 브로디와 앨리슨 필의 출연도 몹시 반가웠어요. 아,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4'에 나왔던 그 바바리 언니 레아 세이두를 보게 된 것도 큰 반가움이었구요.


3. 아직 파리는 못 가봤지만 이제 가게 된다면 꼭 들러야할 명소가 한 군데 더 생겼네요. 12시되면 이제 그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제법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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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
환상 속에 사는 그대들을 위해



우디 앨런의 신작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는 극중 등장하는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연애와 삶에 대해, 노련한 시각으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극을 이끌어가는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유쾌하고 리듬감이 넘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유쾌하지만 (그래서 '연애소동극'이란 문구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유쾌하지 만은 않은 씁쓸한 인생의 뒷 맛을 전하는 작품이다. 극중 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인생의 탈출구 (희망)를 꿈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늙은 아내와 이혼하고 딸보다도 젊은 여성과 재혼하여 더 젊고 생기 넘치는 웰빙 라이프를 꿈꾸는 알피 (안소니 홉킨스). 남편과의 이혼 이후 점쟁이에게 모든 삶을 의지하다시피 하는 헬레나 (젬마 존스). 이 둘의 딸인 헬레나 (나오미 왓츠)는 데뷔 이후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 남편 로이 (조쉬 브롤린)와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 만의 갤러리를 갖고자 하며, 멋진 직장 상사인 그렉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게 된다. 남편인 로이 역시 출판사에 보낸 새 원고에 대해 소식이 없어 불안해 하던 중, 길 건너 창밖의 여자 디아 (프리다 핀토)에게 마음을 빼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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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등장하는 대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한 마디를 꼽으라면 '인생은 때론 신경안정제보다 환상이 필요하다'를 들 수 있을텐데, 우디 앨런이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그래서 환상을 갖고 살아야 한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라기 보다는, 환상에 잠시 몸을 맡겼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환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삶은 역시 삶이다'라는 냉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냉소적이라고 하니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날카롭거나 어둡게 진행될 거라 생각하면 아직도 우디 앨런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스크린에 드리우는 그 따스한 색감처럼 시종일관 생기와 유쾌함으로 가득차 있다. 냉소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을 보면서, 혹은 집에 돌아와 이 작품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될 때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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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극중 인물들이 빠져들게 되는 환상에 관객들도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노장에 영화 기술도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어쩜 이렇게 적지 않은 나이에 감독이 (쉽게 말해 할아버지가), 연애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넘쳐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소름돋을 정도로 현실적인 것일까 라는 점이다. 사랑 뿐만 아니라 연애를 하게 되면서 갖게 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 묘사를 거추장 스럽지 않으면서도 현실감 있게 써내려가는 기술이야 말로 우디 앨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환상의 그대'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사실 이렇다할 새로울 것도 없고, 어쩌면 과장 섞인 감정이 필요할 듯한 익숙한 전개에 놓이기도 하지만, 우디 앨런은 최소한이자 최선의 감정 묘사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감정선을 묘사해 낸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는 참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없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순전히 그 표현 방법을 통해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영화 장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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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에 서두에는 우디 앨런이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인용된다.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고,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 작품은 일상에서 환상을 꿈꾸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래서 조금의 환상이 삶에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노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환상이 나쁘다거나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갖을 수 밖에는 없는 삶의 구조이지만 그 환상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 라는, 한 차원 물러서서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극중 리듬감 넘치던 내레이션 음성은 왠지 더 초월한 듯 담담하게 느껴졌다. 환상에 흠뻑 빠져도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매력 넘치는 인물들과 이야기를 펼쳐 놓고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하다니. 이거야 말로 정말 냉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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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아' 역할로 나온 프리다 핀토는 정말 '환상' 그 자체더군요. 물론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시간이 좀 흐른 탓도 있겠지만, 이 작품 속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니 보일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21세기 여신으로 급부상한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2. 그리고 로이 역할로 나온 조쉬 브롤린은 보는 내내 마치 홍상수 영화의 김상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나온 배 하며, 대충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라니. 진짜 홍상수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김상경이 안겹쳐질 수가 없는 모습이더군요.

3. 아직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반해, 나오미 왓츠는 확실히 나이가 이제 느껴지는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느껴지는 동시에 예전 나오미 왓츠에게서 느꼈던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다섯 손가락에 드는 페이보릿 여배우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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