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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타카의 레드필]

파수꾼의 추억


윤성현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파수꾼 (Bleak Night, 2012)'는 그 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영화 '파수꾼'이 개인적으로 조금 다르게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 때문이다.


* 참고로 영화에 대한 리뷰는 여기로 (파수꾼 _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이 때도 살짝 오늘 할 얘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속으로 '어? 설마?'라는 말을 내뱉게 되었는데, 바로 극 중 배경이 된 장소가 몹시 낯이 익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삼인방이 함께 야구도 하고 또 걸터앉아 담배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나오는 기차역이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있었던 탓에 확신까지는 하지 못했었으나, 영화 말미 크래딧을 보고 나서야 내 기억 속의 원릉역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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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때만 해도 철로 옆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이 장소가 내게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실제로 원릉역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자주 오가던 혹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던 아주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원릉역을 사이에 두고 아래쪽은 성사동으로 주공아파트 단지가 위치하고 있었고 위 쪽은 주교동으로 버스 종점 정류장과 함께 주택단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원릉역에서 약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바로 약이 내다 보이는 주공아파트 단지에 당시 살고 있었다. 풀이 우거진 계단을 올라 원릉역 철로를 지나서 나오는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를 다녔더랬다. 그리고 영화 속과 비슷하게 원릉역에서 친구들과 자주 만나기도 했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내가 살 때만 해도 이 곳은 많지는 않아도 가끔 기차가 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에 영화 속처럼 학생들이 죽치고 담배를 피거나 철로 위에서 놀거나 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또,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릉역은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이동 통로로 활용이 잦은 위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비슷한 점이라면 실제 원릉역은 (그럼에도) 밤이 되면 불빛이 어둡고 으슥한 느낌이 있어서 무서운 형님들이 돈을 뺏거나, 혹은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일들도 가끔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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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처음 보고 긴가민가 했던 이유는 철로 옆에 높게 솟은 고층 아파트 풍경 때문이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모두 보냈지만, 20살이 넘어서 얼마 되지 않아 서울로 독립을 하게 되어 한 동안 가보지 못했던 터라 주공아파트가 재개발되고 신도시가 생겼다는 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말로만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철로 뒤로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지만 내가 살던 당시, 그리고 열차가 다니던 당시의 풍경은 5층짜리 주공 아파트가 늘어선 풍경이었다. 만약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이 영화가 촬영되었더라면 영화 속에서 내가 살던 주공아파트 107동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수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살았던 곳이 영화 속에 등장해서가 아니다. 잠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동네는 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공 아파트 단지 전체가 재개발되면서 동네 자체가 전혀 달라져 버렸다. 즉, 내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작은 단지들의 모습을 이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원릉역은 비록 그 경계에 있었던 중간 지점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에 추억이 남다를 수 밖에는 없었다. 여기서 참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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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교회 건물 바로 옆 빌라 반지하 집에서도 수년을 살았던 기억이...)



그렇게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던 영화 '파수꾼'을 어제 오랜만에 케이블 티비를 통해 다시 보게 되니, 나도 교복 입고 원릉역을 넘나들던 그때가 다시 떠올랐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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