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작가 (The Ghost Writer, 2010)
고전미 넘치는 폴란스키의 스릴러



사실 개인적으로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들을 다른 감독들에 비해 유달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이번 그의 신작 '유령작가'가 크게 기대되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완 맥그리거도 나오겠다 안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극장을 찾았다.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유명 정치인의 대필작가에 관한(의한) 이야기를 다룬 '유령작가'는 (처음엔 단순히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고스트 라이더'와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쓴 우리말 제목이 아닐까 싶었지만, 보고 나니 '유령'작가라는 제목이 썩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최근 극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그래서 그것이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되버리는, 매우 고전적인 방식의 스릴러 작품이었다.



 
 RP Films. 판시네마. All rights reserved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는 어쩌보면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닐지 모른다. 반전이 주가 되곤 하는 스릴러 장르에서 이야기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니, 이것은 '유령작가'를 단정 짓는 가장 큰 잣대가 될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분명히 커다란 줄거리에서 서서히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등장하고, 그 가운데 약간의 속도감을 주기도 하고, 누구를 정녕 믿어야 할지 관객들로 하여금 한 편을 선택하게도 하지만, 이 모두가 극적이거나 과장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과장이 안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도 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커다란 반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반전 자체의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반전 자체를 묘사함에 있어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큰 임팩트를 일부러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단서를 얻게 되고 의심을 갖게 되는 장면들 역시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에 비하면 훨씬 불친절한 동시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불친절 하다는 것은 반전이나 미스테리를 위해 반드시 관객이 인지해야만 할 정보들이 나오는 장면에서조차, 이것을 보여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유령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은 정치적인 메시지였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이 영화가 겉으로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너무 단순하다. 반전의 임팩트가 부족하듯 여기까지 이끌어 온 정치적인 음모들은 기존 우리가 봐왔던 정치적인 영화들에 비해 너무 간단하고, 그 뒤에 숨어있는 메시지조차 큰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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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는 온갖 자극적인 것들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의 관객들에게 보내는 폴란스키의 작가주의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폴란스키는 못해서 안했다기 보다는 일부러 갈 수 있는 길을 피해가면서, 최근 자극적인 스릴러에 (자극적인 스릴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무언가 더 나올 것 만 같은,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만 살짝 주면서 결국 그 이상은 보여주지 않는, 좀 '다른' 스릴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며 최근 보았던 임상수의 '하녀'가 문득 떠올랐다. 극중 이완 맥그리거가 대필작가로 활동하게 되는 섬과 아담 랭 (피어스 브로스넌)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요새와 같은 곳의 미장센은, 세련되었지만 매우 고전적이고 1층과 2층, 방과 방, 방안에서 밖의 인물들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구조 등, 은근히 이 공간과 구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인물들의 의상들도 그렇고, 비바람이 새차게 부는 날씨도 그렇고, 영화를 보고 나면 전체적으로 '회색'의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더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유령 (Ghost)'이라는 것과 회색의 느낌으로 가득한 작품의 분위기는 관객에게 무언가 메시지 그 이상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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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의 영국식 억양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는데, 최근 '언 애듀케이션'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올리비아 윌리엄스의 연기도 매우 인상깊었다. 외모가 꼭 닮아서도 아니었는데, '유령작가'에서 올리비아의 연기는 마치 샬롯 램플링을 보는 듯 했다. 언제나 맡은 역할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톰 윌킨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아멜리아 역의 킴 캐트럴은 얼굴을 보고도 끝까지 과연 내가 아는 그 킴 캐트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라 잘 적응이 안되더라. '섹스 앤 시티'를 열심히/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지나가다 스쳐본 기억과는 다르게 너무 진지한 캐릭터와 연기라 많이 놀랐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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