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니즈 조디악 (十二生肖 12, Chinese Zodiac Heads, 2012)

여전하면서도 애잔한 용형호제 3



개봉하면 무조건 보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팬심으로만 이야기하자면 단연 성룡 영화를 꼽을 수 있겠다. 즉, 반대로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영화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아도 무조건 보게 되는 영화라는 얘긴데, 최근 성룡 영화가 (아쉽지만) 그래왔다는 점에서 이 작품 '차이니즈 조디악'도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차이니즈 조디악'이라는 영어 제목으로 개봉한 이 작품은 '용형호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텐데, '용형호제' 시절에 보여주던 스펙터클과 아기자기한 액션 구성, 코미디까지 여전하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점점 약해져가는 성룡을 영화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기도 한 애잔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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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성룡 영화의 팬들이라면 다들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겠지만 '차이니즈 조디악'은 최대한 그 예전의 느낌, '용형호제' 시리즈로서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플롯과 배경 역시 거의 동일한데, 대 부분은 바로 그 동일함 혹은 그리움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일 터이니 이러한 점에 아쉬움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차이니즈 조디악'이 '용형호제'와 크게 달라진 점들이 있는데 바로 성룡 이라는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의 변화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전에 '취권'같이 술먹고 싸우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텐데 말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인터뷰 말고도 성룡은 전 세계의 형님으로 불릴 만큼 자선사업과 기부 등 좋은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다. 즉, 배우로서의 마인드 자체도 이러한 마인드를 기반으로 조금씩 변화해 왔다는 얘기다. 그런 마인드의 변화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 '차이니즈 조디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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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대형 범죄조직 등에 맞서서 유물을 얻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그리는 것에만 매진했을 테지만, 현재의 성룡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런 전 세계의 유물들이 암거래 시장, 경매 시장의 영향 때문에 본국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예전 '용형호제' 시리즈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지만 후반부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성룡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자 다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적어도 '차이니즈 조디악'은 이러한 메시지와 재미의 측면을 분리하고 있어서 차라리 괜찮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만약 메시지가 전반부 부터 강렬한 작품이었다면 아마 예전의 '용형호제'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팬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작품이 되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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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차이니즈 조디악'으로 느껴지는 성룡의 변화라면, 세간에서 얘기하는 '늙었다' '이젠 성룡도...' 등등의 평가가 아닌 본인 스스로가 어느 정도 '성룡 영화'를 계속 한 편 한 편 이어간다는 것에 쉽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는 듯한 점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기존처럼 NG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이 장면들이 지나가고 난 뒤 삽입곡의 내레이션 형태로 성룡의 음성이 들려온다. 액션, 스턴트 장면들을 촬영할 때 마다 두렵다. 체력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성룡 영화를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힘을 낸다. 라는 식의 내레이션이 두 번에 나뉘어 흐르는데, 이 장면에서 팬으로서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룡 영화'라는 장르를 이어가기 위한 고통이 그대로 묻어나는 동시에, 스스로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팬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함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애잔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더 찡했던 다른 이유, 다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등장한 그의 실제 부인의 출연 장면이었다. 정말 잠깐 출연하지만 마치 이 장면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실제 성룡의 인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찡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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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고 예전 홍콩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썰렁한 유머나 과도한 몸짓, 캐릭터 등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성룡 영화'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성룡 영화'로 만나뵙길 바라며.



1. 일반 관객들에게 추천하기는 애매하지만 성룡 형님의 팬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일 것 같네요.

2. 유승준의 출연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더 안습인건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가 선글라스를 벗기 전까지 아무도 몰라봤다는 거죠. 여튼 이 작품에서는 카리스마도 없이 완전히 코믹 캐릭터로 등장하는 터라 더 아쉽더군요.

3. 서기도 깜짝 까메오로 등장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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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병소장 (大兵小將, Little Big Soldier, 2010)
성룡 후기 작품의 시작일지도


적어도 성룡 영화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영화팬으로서 성룡 '형님'의 영화는 영화의 좋고 나쁨, 완성도를 떠나서 팬으로서 챙겨보는 몇 안되는 장르이기도 하다('성룡 영화'는 그 스스로 하나의 장르다). 그래서 최근 다른 이유로 말이 많은 작품 <대병소장>도 놓칠 수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이 작품을 단순히 불편한 감정이 있는 유승준의 출연 사실 만으로 거르기에는 제법 의미있는 성룡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성룡 영화의 초기, 중기 등을 넘어서 본격적인 후기 작품의 시작이라고 볼 만한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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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병소장>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요소라면, 성룡 영화들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긴 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성룡의 영향력이 영화 외적으로 가미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크레딧을 보면 감독 외에는 거의 모든 주요 스텝을 성룡이 맡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로듀서, 치프 프로듀서(?), 오리지널 스토리, 주연 등 영화의 전반에 걸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사실 타이틀롤 맨 처음에 이름이 언급될 만큼, 성룡이 맡은 캐릭터가 주연은 아니라고 영화 내내 생각했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을 보니 이 캐릭터가 맨 처음 이름을 올린 이유가 단지 성룡이라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대병소장>은 오리지널 스토리를 비롯해 성룡이 상당히 예전부터 기획해온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이야기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롤을 따져보니 단순히 넘길 일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만 제외한다면 위나라 장군 역할을 맡은 왕리홍이 주연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비중은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연'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분명 주인공은 왕리홍이고 성룡이 맡은 양나라 병사는 이 버디무비 아닌 버디무비에서 어쨋든 조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이 맡은 캐릭터는 기존 성룡 영화 속 성룡 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는 마치 <놈놈놈>의 송강호 처럼(그런데 <놈놈놈>의 주연은 분명 송강호다 ㅎ) 익살스럽고 양념 같은 이미지인 것에 반해, 왕리홍은 주연 다운 자신 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위나라 장군인 왕리홍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롯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캐릭터이지만, 성룡이 맡은 캐릭터는 이 큰 줄거리에 우연히 휘말리게 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화 내내 성룡이 맡은 캐릭터는 왕리홍이 맡은 캐릭터를 알게 모르게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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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이 이렇게 자신의 영화에서 한 발 물러나서인지, 우리가 흔히 성룡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대병소장>에서는 기대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18:1이 되었어도 혼자 만의 실력으로 모두를 제압했을테지만(적어도 날쌔게 약올리며 도망은 갔을테지만), <대병소장>에서 그런 성룡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다수의 적에게는 싸워볼 생각도 못한채 순순히 잡힌 다던가, 상대에게 무술로서 압도하는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머가 가미되기는 했었지만 항상 자신의 영화에서 수 많은 악당들을 일당백으로 무찌르던 성룡의 모습에 익숙한 팬들 입장에서는 이런 성룡의 변화가 낯설고 한편으론 쓸쓸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 영화라면 꼭 등장하던 아크로바틱한 액션 시퀀스라던가, 도구나 장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액션 시퀀스도 그리 많지 않다(나오긴 한다). 이런 점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팬으로서 아쉬운 점이지만, 그 밖에 전체적인 이야기가 갖는 힘이 약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유머는 등장하지만 예전 같은 임팩트는 아니었고 무언가 드라마로 이끌려는 시도는 알겠으나 전체적으로 진부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성룡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나중에 가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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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냥 심심하기만 하다라도 느꼈던 영화가 한순간에 바뀐 것은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이야기의 반전 때문이 아니라 '아, 성룡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메시지보다는 영화가 주는 즐거움에 포커스를 두었던 그의 영화에 비춰봤을 때, 이번 <대병소장>은 이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러닝타임을 끌고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마치 당의 지원을 받으며 작품 세계가 '소박'에서 '대의'로 변해버린 장예모의 작품들을 보고 당황했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런 당황스러움과는 종류가 약간 달랐지만 성룡 역시 무언가 '대의'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특히 그 일부러 마지막에 보여주려고 숨긴 티가 너무 났던 그 문구를 공개하는 장면은, 장예모의 <영웅>의 마지막이 그대로 연상되었다). 그러고보니 이 작품은 장예모의 <영웅>과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 마지막 시퀀스를 대하는 관객들의 평가는 아마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성룡 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성룡이 더욱 마음에 들지만, 그가 꾸는 꿈이 이런 꿈이라면 좀 더 팬으로서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이렇게 이야기하고나면 장예모의 그것과 완전히 같다고 이야기하는것 같은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병소장>은 '대의'와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소시민 영웅이라는 기존의 모티브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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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의 연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채로운 점이라면 자신의 실제 목소리로 중국어 연기를 한다는 점이었는데, 캐릭터 자체가 살짝 모호한 감은 있었지만 그럭저럭이었던 것 같다(하지만 캐릭터의 무술 실력에 비해 그 마지막의 '팔뚝'은 좀 과했다 ㅎ). 의외로 비중있는 여자 캐릭터가 없다는 것도 이채로웠다, 두 명의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긴 하는데 좋고 나쁨을 논하기엔 비중이 너무 적다.

성룡 팬이라면 재미 여부를 떠나서 꼭 봐야할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후 성룡 작품들(자신이 감독하고 각본쓰고 주연을 맡게 될 작품들)의 여부에 따라 중요한 지점이 될 작품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1. 국내에 들어온 필름 상태가 너무 좋지 못하더군요. 디지털 상영으로 높아진 눈이 오랜만에 불편을 겪었습니다. 중간에 화면 톤이 아예 나가버리는가 하면, 톤이 나가면서 포커스도 나가버려서 마치 캠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주더군요. 사실 좀 욱하는 분들이라면 환불도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되네요.

2. 상영관 자체도 너무 없었지만 관객들도 정말 없더군요. 오랜만에 상영관을 통째로 빌려서 관람했습니다. 정말 유승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성룡 형님 영화인데 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도 ㅠ

3. 역시 성룡 영화 답게 엔딩 크래딧에 NG장면이 수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임팩트는 확실히 이전보단 떨어지는것 같아요.

4. 연륜이 쌓이면서 다른 배우를 보조해주는 캐릭터로 물러나는 것도 좋지만, '성룡'은 계속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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