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 (Sicko, 2007)
이젠 더이상 딴나라 이야기가 아닐수도 있다


마이클 무어는 참 재주꾼이다. 화재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키는 그는 단순히 나서기 좋아하고 태글걸기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논리적이고 치밀한 조사와 여기에 더나아가 조롱과 반어법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는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연출가, 감독이다.
그의 2007년작 <식코 (Sicko)>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믄 화제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가 다루었던
작품들에 비해 어쩌면 가장 작은(?)음모와 사건을 그린 다큐일지는 모르나,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우리 실생활에 가장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료보험에 관한 이야기로 더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일단 전작인 <화씨 9/11>이나 <볼링 포 콜럼바인>등에 비한다면 어느 정도 구성 방향이 틀려진 점을
먼저 들 수 있겠다. 물론 다루고 있는 문제 특성상의 차이이겠지만, 기존 작품들에서는 고발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에 비해, 이번 영화는 고발과 동시에 반대의 경우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 이해못할 상황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어쩌면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돈이 없으면 잘린 두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일단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정부가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러면서 의료보험 회사들은 전부 상업화가 되어버렸고, CEO들은 억만 장자가 되었으며,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에도 가지 못하거나 원하는 약을 받지도, 필요한 조치도 받을 수가 없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게 되었다. 물론 민간의료보험이 되어버린 이상, 그들도 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니
무조건 보장하란 것도 아니다(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엔 거의 '땅파서 장사하는 급'에 복지 수준을 갖춘 유럽과
일부 나라들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이 민간의료보험 회사들이 하는 짓들에 대해
분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험회사에 자문 의사를 맡은 사람들은 보고서는 보지도 않고 복사된 싸인도장을
찍어주기 일쑤고, 사립탐정을 고용하듯 뒷조사 전문인을 고용하여 피보험인의 아주 작은 의료기록까지 뒤져내
보험금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이미 준 보험금도 나중에 찾아서 뺏어내고 만다), 아파서 약을 사려고하면
그런 약은 필요없다고, 아파서 수술하려고 하면 그런 수술은 위험하다며 허가해주지 않아 아픈 이가
제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았고 있다.

더군다나 보험회사 직원들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적게 줄 수록 보너스를 받게 되고,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치료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문도 모른채 택시에 태워
거리로 버려지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피보함자들의 입장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보험회사에서 일했던 담당직원들이나, 담당의사로 있던
이들의 이른바 '내부고발'의 입장에서도 전해들을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처절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불법을 무릅쓰고 국경을 건너 캐나다로 병원을 다니는 한 여성의 이야기도
아이러니한 미국내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예 애초부터 보험금 지급은 없다는 걸 베이스로
깔고 시작하는 보험회사에 압박에 힘없는 피보험자들은 그저 어린아이를 비롯한 가족의 건강을 포기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마이클 무어)

영화는 중반부 부터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미국내 보험회사들의 부당한 일들을 고발하는 형식을 잠시 접고,
그렇다면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나라들의 형편과 그 서비스의 질은 어떠한지 직접 나서서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의료보험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나라에서는 마이클 무어의 질문들에
그저 어이없이 웃기만 한다. 그들에게는 '병원을 가기전에 보험회사에 승인을 받았습니까?' 혹은
'입원하고 약을 받으려면 돈을 얼마나 내야 합니까?'등의 질문이 말그대로 '어이없을'정도로 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무상의료를 지원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나, 민간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인인 마이클 무어로서는 이들의 시스템이 더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이 안되게 이해가 안되는 것이
당연하다. 무언가 불편할 것이다, 의사들이 돈을 많이 못벌어 불행할 것이다, 환자들도 서비스에 만족 못
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의도적인 질문들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미칠정도로 긍정적인 말들 뿐이다.

앞서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주지 않으면 승진을 하는 미국내 보험회사의 얘기와는 정반대로,
자신이 치료한 환자가 혈압이 내려가거나, 상태가 호전되거나, 금연을 하거나 하게 되면 의사가 보너스를
받게 되어 더욱 열심히 한다는(어쩌면 이건 정말 당연한 일이 아닌가)의사의 말은, 왜 당연한 것 조차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어버렸는지를 오히려 반문하게 되어버린다.
의료보험 서비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데리고 관타나모 수용소를 들러, 쿠바에 병원에 도착한 마이클 무어
일행은 쿠바의 의료서비스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미국인들이 악으로 오랜세월 규정해왔던 이들의
의료서비스가 자신들의 서비스와는 비교도 안되게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120달러 하는 약이 쿠바에서는
단돈 5센트밖에는 안한다는 상황에서, 의사가 돈이 있냐는 각종 조건들을 물어보는 것이 보험조건에
맞는지 않맞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치료를 처방하기 위한 사전 조사라는 점에서,
의사가 편히 쉬다가 가라는 말에서,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하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미국인들에게도 굉장한 충격적인 실태를 보고한 다큐였지만,
의료보험 민영화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어쩌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어쩌면 무상의료와 민간보험의 중간 지점에 있는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의료보험 민영화가 추진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미국의 이런 심각한 민간의료보험의
폐단을 다룬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딴나라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영화였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는 항상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다. 굉장히 영화적인 구성과 흐름을 갖고 있어
자신이 갖고 있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재주꾼이다.
그의 이번 작품 <식코> 역시 적지 않은 충격과 체험으로 다가왔던 영화였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The Weinstein Company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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