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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Anarchist from Colony, 2017)

박열, 아니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은 굉장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종의 선언이자 이 영화가 실화를 어떤 마음 가짐으로 다루고자 했는지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최대한 고증에 신경을 쓴 영화들 조차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정도로 언급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했음을 영화의 무엇보다 가장 먼저 알리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실화 속 이야기나 인물에게 깊은 감동이나 인상을 받고 그 감동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영화로 제작하게 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은 그 가운데서 그 메시지를 좀 더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또는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관객들에게 극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 허구의 장치를 정도에 따라 가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박열’은 그런 여지를 영화 스스로가 배제하고 있다. 꼭 실화를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만이 미덕은 아닐 것이나, 영화가 고증에 충실했음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이유에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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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이유를 통해 이 영화가 갖는 가치관과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마치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의 자서전의 원고를 동료에게 전하면서 절대 화려하고 포장하는 말들로 꾸미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우직할지언정 외적 요소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영화다. 바로 그것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제대로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랐던 건 ‘아니, 겨우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왜 전혀 몰랐던 거지?’하는 무지로 인한 것이었다. 실제로 일제 시대 독립운동 과정 중에 민족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인물들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잘못되거나 숨겨져 온 경우들이 적지 않은데, 대부분은 그들이 해방 이후 납북되거나 북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이들의 삶을 가리고자 했던 경우들이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찾아본 결과 박열의 경우도 해방 이후 납북되었는데, 다른 이들 (예를 들면 김원봉 같은)과는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참고로 박열은 이후 건국훈장을 받고 북에서의 죽음이 알려지자 남한에서도 사회장 수준의 추도식을 치르기도 했었다) 어찌 되었든 다른 독립 운동가들에 비해 후세에 덜 알려진 경향이 있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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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은 ‘박열’이지만 영화의 내용이나 실존 인물들의 삶을 비춰보자면 가네코 후미코의 비중이 절반, 혹은 절반 이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페미니즘 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다른 보통의 영화들에 비해 훨씬 진일보한 시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물론 여기에는 실존 인물의 삶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겠지만) 만약 성별이나 국적이 반대의 경우였다면 이 영화의 제목과 비중은 당연히 지금의 가네코 후미코가 우선되었을 정도로 후미코의 삶은 한 인간으로서, 제국주의 시대를 살던 아나키스트로서 압도적인 삶이었다.


영화 ‘박열’은 박열과 후미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일종의 로맨스로 그리고자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에 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보통의 로맨스가 아닌 그들 만이 가능했을 방식의 로맨스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대역죄인으로 억울하게 몰려 심문과 재판 과정에 놓이기 되는데, 둘을 심문하는 검사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서로의 (동지로서의) 진심을 확인하는 시퀀스는 영화적으로도 몹시 매력적이다. 또한 그저 돌아이처럼 묘사되는 과정 속에서도 그들의 자신의 논리를 정색하며 펼칠 때 순간적으로 다시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이 영화 만이 갖는 독특한 리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같으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을 어떻게 돌아이처럼 묘사할 수가 있냐고 되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고증에 충실한 영화다. 그들은 20살, 22살의 청춘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던지는 또 다른 메시지는 청춘에 관한 것이다. 조금, 아니 많이 쓰라리지만 비켜나갈 수 없는 송곳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나의 스무 살은 그만큼 뜨거웠는가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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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짧은 시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대해 찾아본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정보를 찾아보고 난 뒤 더 분명해진 점이라면 박열보다는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해방 이후 박열의 행보를 보면 아쉬운 행보가 없지 않은 것, 즉 좀 더 가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에 비해, 가네코 후미코의 삶이 주는 메시지는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싶을 정도로로 인상적인 것을 넘어 경의로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가네코 후미코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아나키스트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영화 ‘박열’이 주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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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한 최희서 배우는 ‘동주’에도 출연했고 ‘옥자’에도 잠깐 출연하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발견이네요. 다음 작품이 정말 기다려집니다. 


2. 이 영화에서 가장 잘못된 홍보 포인트라면 이제훈 배우의 얼굴과 함께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라고 써있는 메인 포스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만 보면 일제 시대 일본에서 살았었던 좀 특이한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보이거든요. 제국주의에 맞선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아요. 실제로 그래서 못 볼뻔 했던 영화이기도 했구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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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The Portrait of A Poet, 2015)

부끄러움이 절실한 시대에 바침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륙첩방은 남으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 쉽게 쓰여진 시 中)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나라를 빼았긴 암흑과도 같았던 시절을 배경으로 애국심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행동에 대해서도 또한 일제 강점기 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한 발 물러서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동주라는 청년이 있다. 시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 그렇게 영화 '동주'는 물러설 곳이 없었던 어두운 현실 한 가운데 있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들려줌에 있어 시대 정신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인 내러티브로, 마치 윤동주의 시와 같은 쓸쓸함을 머금은 공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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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윤동주 - 자화상 中)


영화 '동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윤동주의 시 구절을 내러티브로 활용한다. 영화 속 장면과 시의 구절이 뜻하는 바가 실제로 반드시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착각이 들도록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윤동주의 시 한 구절 한 구절의 힘을 관객에게 최대한 가슴 깊이 전달하고자 한다. 문학 장르 가운데서도 '시'라는 형태는 가장 쉬운 방식인 동시에 가장 그 깊이를 다 소화하기 어려운 문학이기도 한데, 영화 '동주'를 보고나면 실제로 학창시절 별다른 생각 없이 혹은 그저 문장의 아름다움 만으로 읽었던 윤동주의 시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설령 그 구절이 영화가 만들어 낸 것과는 다른 심정으로 쓰여졌다해도 말이다. 그 지점이 영화 '동주'의 첫 번째 의미다. '시'가 죽어버린 시대에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윤동주를 다른 요소를 최대한 섞지 않고 그려내고자 한 점. 그것은 아마도 박정민이 연기한 송몽규라는 인물을 비중있게 다루게 되면서 윤동주라는 인물을 좀 더 시대의 그림자처럼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주'는 그저 시집을 내고 싶었던 청년 윤동주의 심정과 그로 인해 느껴야 했던 부끄러움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일제 시대라는 무시하려해도 할 수 없는 시대의 문제와 그 시대를 독립운동이라는 정신으로 이겨내고자 했던 이들의 숭고함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어느 한 편으로 기울었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되기는 힘들었을 영화였을 텐데, 이준익 감독은 균형점을 찾는 것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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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 서시 中)


영화 '동주'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결국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윤동주의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다시 꺼내고자 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제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힘이 없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두려워서 그저 닥친 현실과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 모른척 하거나 무시하려 자기 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동주'는 바로 그런 자들, 이런 저런 이유들을 들어 그럴 수 밖에는 없다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못 본척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뼈저린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현실에게 보내는 과거로부터의 메시지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시대에 시인이라는 작은 꿈을 꾸었던 윤동주가 거대한 시대 앞에서 죽음으로 느껴야만 했던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을 통해 과연 현재의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최소한 부끄러워는 해야 할 양심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윤동주라는 한 청년의 짧은 삶과 그가 남긴 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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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많은 것들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최소한 부끄러워 하자. 그것이 시인 윤동주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절실한 외침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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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The Throne, 2014)

이야기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력



아마 많은 이들이 사도세자 이야기가 또 한 번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이미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인데 더 할 이야기가 있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도세자 이야기는 조선왕조의 수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준익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최대한 다른 시각으로, 즉 역사적 의미나 더 정확한 역사 구현이 아닌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연으로 사도세자 이야기를 풀어냈다.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와 당시 왕이었던 영조의 역사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영조 그리고 아버지가 조선의 왕이었던 아들 세자의 이야기에 깊게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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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이야기가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로 소개되었다고는 하나 이전에 관객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감안하지 않는다 해도 '사도'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한다. 이준익의 전작 '왕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영화 '사도'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비극과 깊은 슬픔이다. 영화는 이 비극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플래시백 형태로 보여준다. 즉, 영화의 첫 장면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극적 사건을 미리 보여주고,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 지를 보여줌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시작부터 비극적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것은 영화가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의 기운이 감도는 작품이다. 또한 그 비극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걸 (굳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느끼게 함으로서, 인물들의 슬픔이 더 깊게 느껴지도록 한다. 영화가 영조와 세자, 특히 세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로움 그 자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운명에 처한 것도 애처로운데, 그가 바랐던 것이 어쩌면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로 세자를 비극적 운명을 자처했다기 보다는 선택권 없이 놓여 버린 가여운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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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그 영화의 애처로운 시각에 관한 것인데, 세자와 그를 지지하는 인물들은 물론, 그를 시기하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인물들조차 날이 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통 극 중 인물을 관객이 애처롭게 여기도록 만드는 방식으로는 주인공과 다른 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 더 가혹하게 주인공을 밀어 붙임으로서 그 효과가 더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는 대표적인 대립 구도에 서 있는 영조의 묘사 방법은 물론이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여러 가신들과 인물들에게서도 그러한 가혹함 혹은 날 섬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 '사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자에 대한 안쓰러워 하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모든 인물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함으로서, 관객들이 세자에게 더 큰 감정적 몰입과 동정의 마음을 갖도록 했고, 그것은 정확히 통했다.


'사도'가 슬픔을 전하는 방식은 주인공을 사면초가로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사면초가에 운명적으로 놓여버린 인물을 애처롭게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주변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을 극대화 한 인물이자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영조의 묘사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영조라는 캐릭터를 철저하게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려 한 것이 그것이다. 즉, 겉으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심이 아니었던, 혹은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송강호라는 배우를 통해 120%로 표현해 낸다. 예전에 '색, 계'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배우의 영화 외적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겨우가 있는데, '사도' 역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인상이 영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잘 모르는 배우이거나 악당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더라면 아마 영조의 깊은 진심이 미처 다 전달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강호라는 호소력 짙은 배우가 이를 연기함으로서, 관객은 최소한 좀 더 영조의 진심을 듣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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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역시 영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배우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연기력 그 자체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인데, 유아인이 최근 작 '베테랑'에서 악역을 연기했음에도 워낙 잘 한 덕에 그 초점이 연기력으로 집중되었던 것은, '사도'를 만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유아인이 연기한 세자는 그러한 기대를 넘어서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사도 세자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거의 연달아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조태오가 아직도 생생한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짧은 시간에 완벽히 사도 세자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을 만큼 유아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만약 올해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연기력 만으로 꼽자면 이 영화 '사도'를 주저 없이 꼽을 만큼, 유아인과 송강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설득력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영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결국 이 비극적 운명에 놓여야만 했던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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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 속 이야기가 너무 슬픔과 비극을 강조할 땐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분명 비극을 감정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설사 강요라 해도 넘어가고 싶을 만큼의 힘을 가진 비극이었다. 그리고 '왕의 남자' 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때 한 명의 인물을 깊이 그리워 하게 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아인은 지금이 전성기다. 그가 만든 사도 세자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사도'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1. 전 워낙 사전 정보를 얻지 않은 터라 문근영이 나오는 줄도 몰랐어요;;; 후반부의 분장은 좀 충격;;;

2. 소지섭이 깜짝 등장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몰랐더라도 영화를 보게 되면 그가 분명 나오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정도로 닮은 아역이 나옵니다 ㅎ

3. 좀 가벼운 얘기로 영화 속 영조와 사도 세자의 이야기는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 딱 어울리는 주제라는 생각이 ㅋ

예법과 공부를 엄하게 가리켜 훌륭한 왕으로 자라길 바랐던 아버지와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간절했던 아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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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곳에 (2008)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 님은 먼곳에


본인은 의도한 바가 없다고 했지만 어쨋든 <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어 음악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는 분명 기대작이었다. 지금까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은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둔 <왕의 남자>를 굳이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황산벌>부터 <즐거운 인생>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어느 정도의 완성도와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신작에 대해서도 아주 큰 기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준익'이라면 하는 기대감이 분명 있었기에 신작 <님은 먼곳에>도 요즘같이 볼 영화와 영화제로
가득 넘치는 가운데도 개봉일날 관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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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쭈욱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3대 독자인 신랑(엄태웅)을 군대에 보낸 시골 아낙내 순이(수애)가 남편이 군대에서
사고를 쳐 월남에 가게 되자, 이에 노한 시어머니의 등살에 떠밀려 할 수 없이 월남까지 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슬쩍 보면 전쟁마저도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던 기적적인 두 남녀의 애뜻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님은 먼곳에>에는 이런 이야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랑'이 일단 없다.
상길은 부인 말고도 더 사랑하는 듯한 애인이 있으며, 면회를 온 순이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지만,
순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시어머니의 대를 이으라는 명령에 휘둘려 매달 면회를 꼬바꼬박 같지만,
아마도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로 미뤄봐도 순이와 상길 사이에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단순히 손자를 낳기 위한 시어머니의 도구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 의문이 생기는데 이 두 남녀가 어쩌다가(별로 좋아하는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정략 결혼이었는지, 아니면 처음엔 사랑했으나 애인이 생기고 소극적이고 시골처녀인
순이는 그저 이혼하면 집으로도 돌아오지 말라는 친부모의 호령이 무서워, 죽은듯이 살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의문점이 생긴다. 결론적으로 상길은 물론, 순이 역시 상길에게 특별히 사랑하는 감정이
없는데, 월남까지 상길을 만나기 위해 쫓아간다는 설정 자체의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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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좀 긍정적으로 보는 편인 내겐 다른 시각으로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전쟁이라는 시련을 겪는 두 남녀의, 혹은 한 여성이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서사적으로 다뤘다기
보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는 맞지만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눌리고 강요만 당해왔던
자아를 우연치 않은 기회에(이 역시도 강요에 의한 기회로 인해)찾게 되고, 나중에는 마치 자기 최면에 빠지듯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을 정도로, 오기가 본래 의도마저(본래 의도라는 것이
있었다면)모두 잠식해버리고 마는, 소외되고 억눌려 있던 순수한 한 여성의 원치않는 극적인 변화를 그린
하나의 무서운 여성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이는 시어머니 강요에 못이겨 월남으로 갈 방법을 찾던 중에 정만(정진영)의 도움과 꼬임에 넘어가
밴드 멤버로 월남에 가게 되고, 그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 실패와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결국 남편이 있는
호이얀으로 갈 기회를 잡게 된다. 순이는 영화의 중반부까지 거의 표정이 없는, 반응도 무척 늦는
건조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자신의 자의로 월남에 왔다기 보다는 하는 수 없이, 피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끌려오듯 오게 된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노래하는걸 그저 좋아했던 순이는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팝송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도 사라지게 된다. 이것을 '즐기게 된다'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시작이 자의로 온 것이 아니라 오기에 가깝게 시작된 것으로 본다면 '즐긴다'라기 보다는
이 역시 웃는게 웃는게 아닌 '오기'로 보는 편이 더 가깝겠다.

그러던 와중에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혀 굴속에서 잠시 생활하기도 하고, 다시 미군에게 구출(?)되기도 하는
곡절을 겪으면서 점차 순이의 오기는 강해진다. 그래서 구출된 미군 장교를 위해 과감히 몸을 파는
일까지 서슴치 않게 되는데, 앞서 보았듯이 남편인 상길과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던(물론 이 부분은 상길과 순이의
과거 얘기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확실치는 않지만)순이가 그 좋아하지도 않는 상길을 만나기 위해
미군 장교와 잠자리를 하게 되는 설정이야 말로, 주객이 전도되고, 왜 이러는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순이 자신의 오기가 극에 달한 장면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것보다 더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설정은 개인적으로 정만이 베트콩에게 풀려나 미군에게 구출된 뒤, 한 번만
미군들을 위해 공연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정성껏 사정하는 모습이었다. 정만은 그저 돈을 벌러 온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임이 분명한데, 설사 순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 그랬다하더라도
이 설정은 정만이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선의를 보인 이상한 장면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 전 장면에서 '님은 먼곳에'를 예쁘게가 아니라 거칠게 부르던 순이의 모습에서는 확실히 오기가 불러낸
자아의 혼란을 겪는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엔딩장면에도 있었다.
드디어 상길을 만난 순이는 달려가 포옹하거나 하지 않고, 말도 없이 상길을 뺨을 여러번 친다. 그리고
서로 눈물을 흘리며 그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얼핏 보기에 이건 전쟁이라는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드디어 만난 두 남녀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하고 흘리는 눈물이라기 보다는, 순이가 드디어 조금이나마
자신의 여기까지 오기의 일들을 떠올리며, '내가 왜 이래야 했나' 혹은 '자 봐라, 내가 이 전쟁통에도 니들이
하라는대로 다 해줬다. 됐냐?'라는 식의 회환에서 오는 자기 연민에 눈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상길의 눈물의 의미는 단순히 아파서? --;;)

결국 자신의 의견 한 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게 살아가던 한 시골 여성이,
시어머니의 강요에 못이겨 시작된 월남의 전쟁통을 겪으며, 억눌린 자아를 오기로 풀어내는
그래서 결국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고,'자 됐냐?'하며 쓸쓸히 눈물 지으며 퇴장하는
씁씁할 한 여성의 슬픈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중요한건 나중에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이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내 생각과 달라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저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여러가지 설정들이 억지스러움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칭찬하는 수애의 연기는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자체의 미스테리가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나중에 '님은 먼곳에'를 오기에 받쳐 거칠게 부르는 장면에서는 살짝 소름도 돋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준익 영화의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정만 역할의 정진영은
연기 자체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이것도 캐릭터 자체의 미묘함이 있어서 뭐라 평하기는 힘들듯.
(만약 순이의 의도가 정말 상길을 사랑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찾기 위해 월남까지 온 것이라면, 이 밴드의
남자 멤버들이 이런 순이의 갸륵함에 동화되어 나중에는 몸을 써 군인들을 막아가며 순이가 호이안으로
가게 끔 하는 행동이 살짝 이해도 가지만, 내 생각처럼 오기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밴드멤버들도
홀딱 속은 것 밖에는 되지 않겠다 ㅎ)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괜찮은 설정이 있었다면, 월남에 참전한 한국군을 그저 돈벌러 왔다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묘사한 대사와, 베트콩을 미지의 악당들이 아니라,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로 묘사한 점,
미군들의 잔혹함을 묘사한 점은, 베트남전을 침략한 가해자인 미군 위주로 그린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라 마음에 들었다.




1. 그런데 3대 독자이면 당시에 군대 면제가 아니었나? 이것도 의문.
2. 헬기타고 프로펠러이 바람에 셔츠가 펄럭이는 남은 사람들의 장면을 보면, 여지없이 <영웅본색 3>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더라.
3. 아무리 그래도 미군이 한국병사 1명을 찾기 위해 수색대를 특별히 조직하거나, 국군이 민간인 여성을
   작전지역에 그렇게 쉽게 데려가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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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이 눈물 나는 영화.

<왕의 남자>는 <괴물>의 천 3백만 관객 동원 기록이 있기까지, 한국영화 흥행의 역사를 새로 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었다. 원 제작비를 따져보자면 천 만을 넘어선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였을 때 훨씬 저렴(?)한 제작비로 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왕의 남자>가 어쩌면 기대 밖이었을, 아니 아마도 기대 밖이었을 큰 흥행을 거두면서 이준익 감독의 차기 작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모아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터. 이렇게 전작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경우, 차기 작에서 엄청난 부담 때문에 감독 스스로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처음부터 큰 기대와 동시에 걱정을 안고 있는 작품이었다. <왕의 남자> DVD의 서플먼트를 보면서도 느꼈고 <라디오 스타> 개봉 시에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또 한 번 느꼈던 것은, 이준익 감독은 이러한 부담감에서 어쩌면 어느 정도 초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자신의 말대로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가 이 막중한 부담감에서 초월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는 애초에 시작할 때부터 큰 흥행을 노리고 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최근 영화 소비의 주 타겟이 되고 있는 10대는 물론, 20대의 취향도 아닐 뿐더러, 그들 취향에 맞는 젊은 배우들이 주연도 아니고, 액션물은 더더욱 아닌 잔잔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에 이어 이 같이 큰 규모의 영화가 아닌 일종의 작은 영화를 선택한 순간부터, 이 선택이 잘한 선택이 되었다고 해야 될 것이다. 이런 감독의 선택은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 이후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을 때 많은 관객들이 배신 등등을 운운했던 것과는 달리, <왕의 남자>의 감동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에게도 배신의 감정 따윈 느껴지지 않을 결과를 낳았다. 물론 흥행 면에서는 왕의 남자의 거의 7분의 1에 가까운 관객 동원을 거두었지만, 감독과 배우, 스텝들이 모두 입을 모아 얘기 하듯이 천 만 부럽지 않은 180만이라는 말을 실감하듯, 거창하진 않지만 본 사람들의 마음 속엔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한 때 가수 왕 까지 할 만큼 잘나갔던 가수와 매니저가 세월이 흘러 흔히 말하는 한 물 간 스타가 된 뒤에, 우연한 계기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 하는 과정에서 가수와 매니저 간에 겪게 되는 감정, 그 감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자칫하면 뻔한 신파가 될 위험이 많은 이 영화가 특별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에 있었다. 글쎄 뭐랄까, 쉽게 말해서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는 너무 영화 같으면서도 한 편으론 실제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의 관한 이야기 같았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에 다른 두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면 그 두 배우가 아무리 초절정의 연기 고수라 할지라도 지금 같은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칠수와 만수>부터 <투캅스>를 거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이르기까지, 함께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도 많았던 이 두 배우. 하지만 최근에도 계속 꾸준히 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던 안성기 와는 달리, 한 때 한국 최고 흥행 배우였던 박중훈은, 수 많은 코미디 영화들이 점점 관객에게 흥미를 일어갈 때쯤,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고 이후에 코미디 연기를 포기하고 조나단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의 출연하고, 악역으로 출연한 <세이 예스>, 눈물의 정극 연기를 선보였던 <불후의 명작>에 이르기까지, 배우로서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였지만,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영화 속 추억의 록스타 ‘최곤’이 더 와 닿았던 것은 ‘최곤’을 ‘박중훈’이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영화계에서 거의 20년 가깝게 함께해오며 친분을 쌓고 있는 안성기와 박중훈이 동반 출연한 자체도 극 중 ‘최곤’과 ‘박민수’의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청룡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며 잔잔히 감격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젠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불러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던 박중훈의 수상 소감을 들으면서,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가 어쩌면 이를 보고 즐긴 관객들보다도 이 두 배우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감동을 준 작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 스타>는 가수와 매니저 사이의 관계에 집중이 된 나머지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상당히 음악에 신경을 쓴 영화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한국 록 음악 계보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같은 마음은 영화 음악과 삽입곡들에 고스란히 반영이 되었는데, ‘유 앤 미 블루’출신의 방준석이 영화 음악을 맡은 것은 물론이요, 신중현의 ‘미인’ ‘아름다운 강산’ ‘빗 속의 여인’ 등을 비롯하여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물론,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에 이르기까지 간단하지만 한국 록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신중현부터 노브레인까지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고 있다. 노브레인의 캐스팅 역시 단순히 그들의 이미지나 캐릭터 때문에 캐스팅 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한국 록 의 계보를 따지던 중 막내 격인(물론 그들도 어느덧 데뷔 10년 차이긴 하지만)노브레인을 출연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캐스팅 했다고 한다. 노브레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극중 이스트 리버가 그들의 캐릭터와 닮아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종일관 떠들며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스트 리버가 미워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처음 연기를 하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에는 아주 괜찮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라디오 스타>는 극장에서는 크게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후에 입 소문을 타고 좋은 영화라는 평이 나돌았기 때문에, 극장에서 놓친 관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DVD출시를 기다렸을 텐데,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제법 빠른 시일 내에 DVD가 출시가 되었다. 2장의 디스크와 1장의 O.S.T를 포함한 패키지는 ‘비와 당신’을 비롯한 영화 속의 수록 곡들을 인상 깊게 들었던 터라 무척이나 반갑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근 출시된 타이틀답게 올해 출시된 한국영화 타이틀 가운데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우수한 화질을 보여준다. 특히 밝은 부분에서는 이렇다 할 문제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고, HD급의 TV로 시청하여도 큰 화질저하를 느끼지 못할 만큼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인물들의 클로즈 업에서는 물론, 동강과 영월 시내를 훑어가는 와이드 샷에서도 화질의 우수성을 만나볼 수 있다.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극중 이스트 리버의 공연 장면에서는 우퍼 스피커의 활용도가 늘어나며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며, 감동적인 스코어 역시 깔끔하면서도 스케일있게 전달된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두 개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트랙에는 이준익 감독과 안성기, 박중훈, 그리고 정승혜 대표와 최석환 작가가 참여하였고, 두 번째 트랙에는 이준익 감독과 음악감독 방준석, 그리고 노브레인이 참여하였다. 첫 번째 트랙에서는 안성기와 박중훈의 관계가 묻어나듯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음성해설이 이어지는 한 편, 감독과 제작자, 작가의 참여를 통해 촬영장의 에피소드는 물론, 본래 의도하려 했던 바와 스크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제작 뒷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두 번째 트랙에서는 노브레인의 참여하여 재미를 더하는 한 편, 방준석 음악 감독이 함께 하여 영화의 전반 적인 음악에 관련한 이야기를 좀 더 세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서플먼트는 예전 LP를 회상하게 하듯 Side A와 Side B로 나뉘어 담겨있는데, 주로 배우들과 감독, 스텝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이후 <라디오 스타>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주고,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 역시 이 영화를 통해, 혹은 이번 인터뷰 기회를 통해 그 동안 못했었던 진솔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번 영화에 감초 역학을 톡톡히 한 노브레인에 관한 스페셜도 수록되었으며, 방준석 음악감독의 인터뷰와 O.S.T 녹음 현장의 모습도 수록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던 좋은 영화.
<라디오 스타>였다.

2006.12.26
글 / ashitaka


즐거운 인생 (2007)

영화를 보기로는 일찌감치 맘을 먹었었지만,
막상 보기로 한 날이 되자 조금은 두려워지게 되었다.
과연 이 뻔한 이야기가 감동이 될까? 하는것 때문이었다.
'즐거운 인생' 이라는 제목과 네 명의 주인공들만 보아도
힘들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남편 혹은 가장들이,
하루하루 살기 위해 잊고 지냈던 꿈을 결국엔 즐겁게 펼쳐낼것이라는
보기좋은 드라마는, 어쩌면 너무도 진부한 것이라 겁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극장을 찾게 된 이유에는 역시
이준익 감독의 전작 <라디오 스타>의 영향이 컸다.
이 영화 역시 특별할것없는 신파의 시놉시스이지만,
그 속에서 소소한 감동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 '즐거운 인생'은
'즐겁지'만은 않은 인생을 그리고 있다.

얼핏보면 실직하고 이혼당하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들이 록밴드로서도 크게 성공하며 앞으로도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한 발 물러서서 살펴보자면
김윤석이 맡은 성욱은 여전히 퀵서비스와 대리운전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며,
김상호가 맡은 혁수는 결국 아내에게 이혼당한채 홀로 외롭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극중 대사처럼
'하고 싶으니까' '하고 싶은거 하고 살아'하고 이야기하는것 같지만,
물론 그것이 말하고 싶은 논지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아주 큰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걸 인정해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희생없이 다 잘 풀려서 하고 싶은 밴드도 하게되고 이런게 아니라
결국 이혼을 통보한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고,

앞으로 밴드만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는 것이 현실인것이다.

뭐 여차저차하고 밴드 음악을 극장의 빵빵한 사운드로 즐길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제법 의미있는 시간이었음

그리고 다시금 밴드하고싶은 생각도 들었고;; ㄷㄷㄷ


즐거운 인생
즐겁지만은 않더라

이것이 결론.

 
글 / ashitaka


<라디오 스타>

사실 처음에는 <라디오 스타>라는 작품이 <왕의 남자>의 엄청난 성공에 힙입은
이준익 감독의 거품 가득한 영화일 줄로 생각했다.
사실 국내영화는 이런 경우가 많았고 특히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관객들의 기대치가 워낙에 높다보니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사실 이준익 감독이 단순히 <왕의 남자> 한 작품 만으로 얘기할 수 있는 감독은 물론 아니지만,
그의 이번 작품은 <왕의 남자>라는 타이틀을 태생적으로 거론할 수 밖에는 없을 영화였으리라.
 
하지만 감독 이준익은 이러한 기대를 자연스레 즐겨가면서 부담감을 떨쳐내며
전혀 다른 소박한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내놓았다.
 
줄거리도 사실상 특별할 것이 없는 잔잔한 드라마.
왕년에 대스타가 시골 촌 지역 방송국 라디오 DJ를 맡아
전혀 잘 될 것 같지 않았던 방송도 대박이 나고 대스타도 그 동안 미처 해보지 못했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다는 큰 줄거리.
 
뭐 요즘 한국 관객들이 특히나 기대하는 반전도 없고 엄청난 코미디도 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에는 부족했던 여운이 있었다.
 
말 그대로 여운.
<라디오 스타>로 인해 무언가 굉장한 화두에 대해 고민하거나 되새기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극장을 나오고 가끔 영화 포스터를 보게 될 때, 무언가 쓴 웃음 내지는
말 없이 살짝 미소짓게 되는 정도의 무엇.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후반부 박민수 역의 안성기가 짠 하고 최곤 앞에
나타났을 때 울컥하거나 감동이 북받치는 듯한 것은 없었지만,
그 전에 버스안에서 최곤에 돌아오라는 눈물의 방송을 들으며 아내의 돌아가라는 말에
입안 가득 든 김밥을 웅얼거리며 '나 김밥 장사할거야('팔거야'였나 --;)' 하는
대사가 백만배 더 슬프게 다가왔다.
 
이 영화에 가장 큰 불안요소는 어쩌면 안성기와 박중훈 두 배우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이긴 하지만, 사실 박중훈은 <투캅스>이후 비슷한 류의 코미디 연기가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될 만큼 <세이 예스>의 어색한 사이코 범죄자나
코믹사이에서 괜히 진지함까지 담으려 했던 <천군>에 이르기까지 점점 작품에서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잃어가고 있는 중이였고,
안성기 역시 연예인들의 성대모사에 주 소재가 될 뿐,
배우로서 연기가 뛰어났다고 생각되었던 최근의 영화는 사실 없었다.

그래서 두 배우의 연기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한간에서 <칠수와 만수>의 얘기가 다시 끄집어나오는 것 처럼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연기력에 상당한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영화이다.
앞서 언급했던 성대모사 투의 대사톤을 버리고 조금은 가볍고 오바스런 투의
캐릭터의 안성기와 왕년에 대스타로 거만한 최곤 역의 박중훈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자신들의 현 위치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된다.
 
특히 안성기 같은 배우가 갑자기 그간의 이미지를 벗고 확 다른 가벼운
캐릭터를 맡게 되면 몰입도에 있어서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인데, <라디오 스타>역시 초반에는 조금 적응안되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결국엔 동화되고 말 정도의 연기였다.
박중훈 역시, 첫 장면 무대 위에서 록 스타로서 열창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그간
그가 버라이어티 쇼에서 보여주었던 분장 립싱크 쇼가 떠올라 우스운 생각이 먼저
들었었지만, 나중엔 긴 머리나 록 스타로서의 복장이 그리 우습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사실 까메오 정도일줄 알았던 노브레인의 활약상은 단연 발군.
이스트 리버(동강)라는 밴드로 출연한 노브레인은 보컬 이상욱은 물론이요
다른 멤버들도 첫 출연치고는 상당히 물오른 연기를 선보이며 극의 재미를 선사했다.
사실 '넌 내게 반했어~'가 나올땐 사람들이 '아 저 노래..'하며 알아들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직도 그들을 모르고, 그저 재미있는 신인 연기자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좀 아쉽기도 했다 ㅋ
 
그리고 중국집 주방장으로 까메오 등장한 이준익 감독은
역시 <왕의 남자>로 매스컴을 많이 탄 탓인지 제법 많은 관객들이 알아보기도 ㅋ
 
<왕의 남자>처럼 엄청난 관심을 모으게 된 작품의 다음 작품으로서는
이 정도의 영화가 괜찮았다는 생각이다.
극 중 최곤 이라는 캐릭터 처럼, 왕년에 대스타였던 안성기, 박중훈 이라는
두 배우에게도 다시 한번 더 많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 / ashitaka

p.s/1. 김장훈의 연기는 사실상 홍경민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긴급조치19호>보다는
나아졌으나,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자연스럽지 못했던 대사처리로 아쉬움을 ㅋ
홍경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김국장 실에서 김국장에게 자신들 프로도 짤릴 판이라며
얘기를 건네던 직원은 홍경민의 친형.

 

왕의 남자


왕의 남자를 알게 된 처음에는 예고편과 스틸컷만 보고서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뭐 그저 그런 영화가 틈 사이에 나와서 태풍에 밀려 망하겠구나 생각했었다.


이후 개봉 직전후로 해서는 태풍 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준기라는 검색어 1위의 배우 덕에 엄청난 국민적인기를 끌고 있는 거품이 많이

가미된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극장을 나설때의 기분은 사뭇 달랐다.

이준기가 맡은 역할인 '공길'역할은 물론 내용상으로 매우 중요했지만,

밖으로 새어나온 거품처럼 단순히 이준기의 예쁘장한 미모만이 볼거리가 되는 영화는 아니었으며

감우성과 정진영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탁월한 작품이었다.

오히려 이준기의 발성이 조금 배우답지 못한것이 걸렸을뿐...(공길 캐릭터에 특성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다만...)


일단 영화는 큰 틀에서 보았을때 연산군 시절에 내용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큰 사건은 그저 배경일 뿐,

이 속에서 연산군과 장생, 공길의 삼각관계를 비중있게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영화내내 연산군이 공길에 대한 감정은 분명히 느낄 수 있으나

장생이 공길에 대한 감정은 연민인지 사랑인지 확실히 구분하긴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약간 모호함으로 놔두었던 것이 더 괜찮았던 것 같다.


왕의 남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극이면서도 텍스트는 굉장히 현대적이라는 점인데,

아주 현대적이여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사용하여 현실적인 감을

한층 실어주는 장치가 된 것 같다.


이병우 맡은 영화음악은 매우 높은 싱크로율로서 영화음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알맞은 조화였던것 같다.

이병우 맡은 영화음악은 매우 높은 싱크로율로서 영화음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알맞은 조화였던것 같다.


감우성의 연기는 초반에는 '뭐뭐 하는구나~' '뭐뭐 말이냐..'하는 식에 말투가

약간 어색하기는 하였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올때에는 나도 모르게

'예끼 이놈아'가 입에 붙었을 정도로 찰지게 소화해 내고 있다.

또한 간큰 가족에서 배운 줄타기 실력을 이번엔 제대로 뽐내고 있기도 하다 ㅋ


장진영에 변태 연산군 연기도 매우 훌륭했으며(내 뒷자석에 앉은 사람은 연산군이 변태짓을

할때마다, ..'또 저러네' '쯧쯧쯧' 등 짜증섞인 감정을 내뱉곤했다), 광대 3총사들의

연기는 극에 재미를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에 반해 강성연에 연기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긴 했지만, 너무 언급이 없다는데에 본인에게는 조금 아쉽게

느껴질 듯 하다.


웰메이드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왕의 남자는 틀림없는 웰메이드 영화이며,

내가 극장에서본 사극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듯 하다.

특히 마지막 장생이 줄 타는 시퀀스는 여운이 남는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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