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Breathless, 2008)
폭력의 역사를 통한 가족의 탄생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는 그 제목 덕분에 일단 관심을 갖게 되었던 영화였다. 제목에 흥미를 갖게 되었을 때쯤 해외 유수 영화제의 수상 소식들도 부수적으로 들려왔는데, 그것이 이 영화를 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까지는 할 수 없겠으나(오히려 이유라면 지인들과 취향이 비슷한 평론가들의 칭찬들이랄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연출과 주연을 맡은 양익준 감독은 이번이 장편 데뷔작이기는 하지만 인디 영화계에서 감독보다는 배우로서 더 인지도가 있던 인물이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 <똥파리>에 대한 매우 소극적인 정보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단순히 폭력에 관한 이야기 일 줄로만 알았다. 메이저 영화에서는 잘 다루지 못하는 인디 영화만의 에너지와 이야기가 담긴 제법 괜찮은 영화일 줄로만 알았었는데, 막상 뚜겅을 열어보니 <똥파리>는 참으로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많은 작품이자 폭력과 가족에 대해 깊은 성찰이 담긴 영화였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여자를 때리는 남자와 이후 이 남자를 때리는 상훈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오프닝 장면은 영화에 대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집약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처음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만으로는 단순히 '폭력'에 관한 것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 가해자가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에 폭력에 의해 피해자가 되는 상황은 단순히 '폭력'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폭력의 되물림'과 '폭력의 역사'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똥파리>가 단순히 폭력 그 자체만을 다룬 영화였다면 그저 용역 깡패로 살아가는 상훈의 일상적 에피소드를 전면에 배치해도 좋았을테지만,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는 그 자체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똥파리>는 크로넨버그의 영화처럼 폭력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어져왔고, 인간 내면에서 살아왔는지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폭력의 역사를 통한 가족의 이야기,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저 문구는 참으로 멋지다.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보통 영화가 관심을 갖고 관객들이 호기심을 갖는 부분은 '세상은 엿같고'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을텐데, 사실 <똥파리>를 보고 나니 그간 이 '엿같은 세상'을 사는 인물들을 그려낸 영화들이 초라하게 보일 만큼 그 자체로서는 적어도 이보다는 더 큰 의미를 갖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라는건 왠지 빠져나갈 수 없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엿같은 세상은 아무리 엿같아도 본인이 하기에 따라 즐길 수도 뛰쳐나갈 수도 있지만, 더럽게 아픈 핏줄은 어떻게 한다고해서 바꿀 수 있거나 탈출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양익준 감독이 만든 <똥파리>에서 이 더럽게 아픈 핏줄을 극복하거나 수용하는 방법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폭력의 역사'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현실들이다. 부모들의 싸움, 술먹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그로 인해 생긴 결손 가정. 그리고 나라에서 동원되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 세대가 겪는 아픔,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그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하는 현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긴 가난한 현실 역시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국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영화의 시작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폭력 자체에서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내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상훈이 이 가족을 복원하기 위해 벌이는 피눈물나는 여정이며 결국 이뤘는지 이루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만한 여정이다.

가난과 폭력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폭력으로 말미암아 생긴 가난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는 것이 폭력이다. 영화 속 상훈은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 속에서 자라 결국 가난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되었지만, 그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직업으로 갖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용역 깡패, 즉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해 돈을 버는 일이다. 이런 관계는 영재에게서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는 그 피해로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고 어머니는 이미 죽어버린 이 가정 속에서, 영재는 마치 상훈이 그랬던 것처럼 폭력으로서 세상에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상훈도 그렇고 영재도 그렇고 이 과정을 단순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상훈이나 영재가 이렇게 폭력을 몸에 지니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가해졌던 폭력들 때문이며 자신 역시 폭력만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법 밖에는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에 후반부 영재가 상훈에게 폭력을 가해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깊다. 영재가 상훈을 공격했던 것은 단순히 돈을 훔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그저 혼내주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적당히 때렸어도 되었을터. 하지만 영재는 상훈이 죽음에 이르도록 폭력을 가하는데 이는 상훈에게로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정에 대한 분노에로 향하는 폭력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영재가 상훈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과 동일한 메시지를 준다. 절대적인 폭력의 존재로만 보였던 상훈을 아직 미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영재가 공격하는 장면은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결국 아버지 세대에서 가해진 폭력이 그 다음, 그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의 마지막, 연희가 우연히 상훈과 똑같이 용역 깡패로서 활동하는 영재의 모습에서 상훈의 모습을 겹쳐보는 것은 굉장히 노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폭력의 되물림과 악순환. 아마도 상훈처럼 나중에야 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 겠다고 깨울칠 영재의 모습. 영화는 다 끝났다고 생각된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되물림에 관한 아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따뜻하다'라고 느꼈던건 바로 주인공 상훈의 행동들 때문이었다. 상훈은 앞서 언급한 '엿같은 세상'을 그냥 막살고 말려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표현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되물림된 폭력의 사슬을 끊고, 이 모든 것을 잉태한 가족의 아픔을 다시금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서 치유하고자 하는 인물에 가깝다.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 대사의 80%는 거의 욕설들로 채워져있다. 개인적으로는 욕설에 대한 상당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에도 잠시 머뭇거려지기도 했었는데, 영화 속 상훈의 대사는 분명 입에 담기 힘든 욕설들이기는 하지만 '똥파리'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가 내뱉는 욕설은 단지 표현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마치 외국어나 사투리 등과 다르게 생각할 것이 없는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영화 초반 상훈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때에는 그가 내뱉는 욕설에 관객으로서 불편하고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점차 그를 알게 되면서 그의 욕설들은 대화 그 이상의 의미는 주지 않는다. 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에서 주인공과 이탈리아계 이발소 주인이 나누는 대화가 욕설로만 느껴지지는 않듯이, 상훈의 욕설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일반적인 자존심 정도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일종의 필요악인 것이다.

그가 가족을 이루려는 노력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배다른 누나의 아들인 형인을 아들같이 챙기면서 돈도 주고 아버지 노릇도 하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만약 일반적인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인물이었다면 이런 노력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폭력을 되물림한 아버지에 대한 연을 끝네 끊지 못하는 심정도 그러하며, 연희와의 관계를 맺는 장면도 그러하다. 영화 속 상훈과 연희의 관계는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연인관계는 물론 아닐 뿐더러 단순한 남매같은 관계로 보기도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이 둘은 서로에게서 서로가 원하는 이상향을 발견한 듯 하다. 서로 모두 벗어나고만 싶은 현실에 놓인 이 둘은,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 눈을 가졌으며 이 눈은 서로의 진심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이 둘은 지옥같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순간에 가장 떠오르는 존재가 되었으며 표현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가 된다.




영화 속에서 이 둘을 그리는 묘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보통 치정극이나 영화에서라면 가만 두지 않았을 설정을 보기 좋게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연희의 가정이 더 어려워지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인 연희 어머니의 죽음은 바로 상훈이 저지른 것이며, 상훈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것은 다름아닌 연희의 동생 영재다. 보통 같았으면 이같은 관계설정을 영화 막판에 터뜨리면서 다시 또 하나의 갈등을 야기시켰을 테지만, <똥파리>는 이것에 집중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이렇게 얽혀버린 각자의 아픈 역사 속에서 상훈과 연희를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처마저 남기기엔 두 주인공의 현실과 짐이 너무 크게 느껴졌을 감독의 배려랄까(이런 점 또한 이 영화가 따뜻한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는 끝내 이런 사실을 주인공들에게 알리지 않은채 끝을 맺는다.

연희로 인해 조금씩 변화를 겪던 상훈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자살기도를 통해 자신의 숨겨왔던 진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앞선 과정들만 본다면 상훈은 자신에게 되물림된 폭력에 분노하여 어떻게든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이를 쏟아내려는 듯한 측면만 노출이 되지만, 사실 그는 이 더럽게 아픈 핏줄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었고 자신은 이 폭력의 역사를 되물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와중에도 연희를 찾아간 상훈은 아무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냥 울기만 한다. 이것은 연희라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상훈이 맺는 결말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용역깡패를 그만 두고 자신이 꿈꾸던 가족을 이뤄 정착하려고 드디어 마음을 먹은 상훈에게 이는 허락되지 않는다. 형인이 다니는 유치원 재롱잔치에 상훈의 누나와 연희, 그리고 용역회사의 사장이자 친구인 만식, 그리고 상훈이 초대된 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상훈이 꿈꾸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었으며 자신의 대에서 끝내고 싶었던 폭력없는 가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훈은 여기에 오지 못한다. 또 다른 폭력의 되물림에 희생자인 영재가 가한 폭력에 사그라들고 만다.




그런데 인상적인건 이제부터다. 상훈이 죽고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 벌어지는 장면들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만식의 고깃집 오픈을 기념하려 모인 상훈의 아버지와 연희, 상훈의 누나와 형인의 모습 어디에서도 상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훈의 죽음에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플래쉬백으로 스쳐 지나갈 뿐 고깃집에 모인 이들의 표정에서는 그 어디도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인상깊게 볼 또 하나는 상훈의 아버지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폭력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1세대이자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상훈의 아버지가 놓여있다. 이는 상훈과 상훈의 아버지는 결국 공존할 수 없음을 은연 중에 말하고 있는 듯하며 감독은 상훈의 아버지를 선택, 새롭게 탄생한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상훈이 스스로 자신 없는 가족을 꿈꿨다고 하기엔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정말 슬픈 영화일듯)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상훈은 분명 상훈이 아버지가 있는 자리에 본인이 있고 싶었던 것이고, 그것이 자신이 꿈꾸던 폭력의 역사가 지워진 새로운 가족이었을 것이다(상훈이 피범벅이 되어서도 조카 유치원에 가야된다고 중얼거렸던 것은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새롭게 태어난 가족에게는 여전히 불안요소가 있다. 영재는 이 가족에 직접적으로 속하지는 않았지만 상훈과 같은 폭력적인 전처를 그대로 밟고 있으며, 연희도 분식집 아르바이트로 생활이 갑자기 나아질리 없으며, 아버지의 언어폭력과 문제들은 여전할 것이다. 또한 상훈의 아버지 역시 완전히 죄를 뉘우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만약 그 자리에 상훈이 있었다면 좀 더 희망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관객이 바라는 장면일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 지겨운 폭력의 역사는 '똥파리(상훈)'가 사라지는 것으로 잠시 멈추었으며, 그가 꿈꾸었을지도 모를 새로운 가족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올해 지금까지 본 영화들 가운데 올해의 '대화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위의 사진 속 장면을 꼽겠다!)


1. 영화를 보고 리뷰를 다 쓰고나서 여기저기 리뷰를 읽어보니 감독의 개인적인 인생사가 많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그는 어떤 인생을 또 겪었을지 더 궁금해지네요.

2. 영화를 보고나서 고맙게도 무대인사자리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독님과 주연배우분들도 직접 뵐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똥파리 - 무대인사 사진 (2009.04.25, 아트하우스 모모)

3. 최근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할 얘기가 많았던 영화였어요. 진짜 위 장면처럼 포장마차에서 양익준 감독님과 밤새 얘기하고 싶을 정도로!!

4. 제 취향은 역시 <워낭소리>보다는 <똥파리>인것 같습니다 ^^; (왠지 어감이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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