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 (Control, 2007)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안톤 코르빈의 첫 장편 데뷔작인 <컨트롤>은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보컬로, 23세에 짧은 인생을 살다간
이언 커티스(Ian Curtis)에 관한 영화입니다. 롤링 스톤스, U2, 메탈리카 등 밴드들의 사진과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오던
안톤 코르빈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자신이 실제로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던('Atmosphere')
조이 디비전의 이야기를 선택하였습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언 커티스'에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라
해야겠군요. 사실 뮤직비디오 연출을 주로 해오던 감독의 데뷔작을 소개하면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감성적인 영상이
돋보인다'식의 표현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따져보면 단순히 그것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을
감안했을 때, 같은 경력을 같고 있는 안톤 코르빈의 <컨트롤>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으로서의 장점은 장점대로
다 보여주면서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울림과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연출함에 있어서도
리듬을 놓치지 않는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밴드 '조이 디비전'이 아니라, 청년 '이언 커티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밴드의 결성과 공연, 음반 계약과 갈등 등 록 밴드를 다루는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구성을 보여주는 듯도 하지만,
이는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 그 이상으로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조이 디비전의 음악은 시종일관 흐르지만
'밴드' 조이 디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시선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언 커티스를 제외한 다른 밴드 멤버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밴드 조이 디비전에 관한 영화가 이미 존재하기도 했고(같은 해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조이 디비전>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답게 실제 공연 영상과 인터뷰 영상들이 수록된 작품이며,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4hour Party People'은 <컨트롤>에도 등장하는 팩토리 레이블과 토니 윌슨을 중심으로
당시의 클럽 풍경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밴드의 흥망성쇠를 주요 뼈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들이
이미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조이 디비전'보다 '이언 커티스'에 초점을 맞춘 연출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하긴 이언 커티스라는 인물이 워낙에 짧은 생을 살다가 불꽃처럼 산화해버린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밴드가 아닌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단순히 음악 영화로 그려지기 보다는 더 포괄적인
드라마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짐 모리슨처럼 시를 쓰기를 좋아하고(영화 장면에도 나오지만 실제 이언 커티스는 짐 모리슨과 데이빗 보위를
동경했었죠), 무대 위에서는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언 커티스이지만,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그가
음악만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뮤지션인가 하는 궁금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컨트롤>에 등장하는 이언 커티스의
모습에서는 흔히 이런 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만이 나를 살게 한다'식의 느낌은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뭐랄까요. 아직 어린 그의 나이처럼, 아직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낮에는 직업 상담소에서 일을 하고, 열아홉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딸을 갖고, 새로운 여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등, 그저 혼란스럽고 컨트롤되지 않는 청춘이 엿보일 뿐이죠.




그런 면에 있어서 <컨트롤>의 흑백 화면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사실 몇몇 흑백영화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흑백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반적인 컬러 영화들 보다도 오히려 더 조명에 신경을
써야하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컨트롤>의 흑백영상은 방황하는 이언 커티스의 삶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인 안톤 코르빈은 이를 굉장히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여러 장면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7,80년대 당시 맨체스터의 거리를 재현한 장면은 흑백이어서 더욱 돋보이는 장면이었고,
공연 장면은 마치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를 보는 듯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근데 재밌는건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를 본 건 컬러 버전이었다는 점이죠;).

개인적으로 <컨트롤>은 보면서 속으로 '와!'하고 탄성을 질렀던 장면이 여럿 있었는데, 그것은 감독인 안톤 코르빈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감독이어서 라기 보다는,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영화의 스틸 컷들이나 정지된 장면들을 보면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작품 사진을
찍기 위해 기획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정도로, 흑백의 질감이나 조명의 세팅이 놀랍도록 아름답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물론(물론!) 음악도 아주 좋았지만, 흑백의 영상도 음악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영화가 바로 <컨트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컨트롤>은 이언 커티스가 쓴 곡들의 가사들처럼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건조한 방식으로 전개가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구성이 아님에도 영화의 마지막 이언 커티스가 결국 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이
등장했을 때에 달해서는 완전히 그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갑작스러울 수 있었던 그의 죽음이었지만,
그가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그래,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하는거야'하는 답답함과 함께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혼란과
제어(Control)되지 않은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공감이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또 하나 이상했던 것은, 요절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 가운데 이언 커티스의 경우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만으로 보자면)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공감을 얻을 만한 부분이 극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과 삶에 대해
더 큰 연민이 느껴지더군요. 영화 <컨트롤>은 실제 이언 커티스의 삶이 어땠느냐를 재쳐두고 보더라도, 전혀 그의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고 조용하게 조명하고 있을 뿐이죠.
극적인 감정 묘사보다는 조이 디비전의 음악과 그가 쓴 가사들로 이를 대체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를 이해하는데
더 큰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화법이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관객과의 괴리감을 가져올지 모른다해도,
<컨트롤>과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 사이에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이언 커티스 역할을 맡은 샘 라일리의 연기는 발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레이>에서 레이 찰스를 완벽하게 연기한
제이미 폭스와는 또 다르게,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는 얼핏 보면 단순히 이언 커티스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가 조이 디비전의 보컬인 이언 커티스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기에, 
오히려 그의 연기력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고 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 클립을 다시 보아도, <컨트롤>에서 샘 라일리가 보여준 이언 커티스는 실제와는 또 다른 이언 커티스였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영화 팜플렛에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니 앞서 언급했던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4hour party people'에 출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하루 속히 이 작품을 눈으로 확인해봐야 겠군요).
샘 라일리의 저 고독한 표정이 짙게 드리워진 <컨트롤>의 포스터는 한 동안 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자리잡을 것 같네요.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데보라 커티스 역할을 맡은 사만다 모튼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것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지자로 출연하였을 때였고, <코드 46>을 보기도 했었지만 전작의
이미지가 워낙에 강했었는데 <컨트롤>에서 그녀의 모습은 과연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몸무게가 늘은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마치 <브로크백 마운틴>의 미셸 윌리엄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캐릭터와 연기는, 앞으로 적어도 제 기억속에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그녀가 아닌 <컨트롤>의 그녀로
기억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컨트롤>은 샘 라일리라는 배우의 발견이 있었다면(사실 이런 전기 영화의 경우
워낙에 강한 캐릭터 때문에 배우 자체를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샘 라일리는 다른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사만다 모튼의 재발견 또한 더 큰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워낙에 캐릭터가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억양을 잘 눈치챌 수 없었는데, 영국 출신인
그녀의 독특한 영어 억양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이 밖에 더 기억나는 배우를 꼽으라면 '아닉 오노레'역할을 맡은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도 꼽을 수 있겠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통해 만났었던 조 앤더슨을 더 꼽을 수 있겠네요.




확실히 데이빗 보위,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 록시 뮤직 등 이런 류의 음악들을 배경으로 당시를 그린 영화들은
대부분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시대가 한편으론 암울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얼마나 황금기였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처음 <컨트롤>이라는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물론 큰 기대가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율마저 느낄 수 있었던 인상적인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 첨언하자면, 극중 이언 커티스처럼 불안한 심리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영화를 보면서 이언 커티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던 것처럼, 힘들게 지속해온 오랜 싸움을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거든요.



1. 이 영화는 이언 커티스의 아내인 데보라 커티스가 지은 그의 전기 'Touching from a Distance'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Touching from a Distance'

2. 극중 아닉이 이언에게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묻는데, 그가 '맨시티 블루'라고 하죠. 
   영화에서 가끔 접하는 것이지만 확실히 맨체스터 내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의 골수팬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3. 영화에 삽입된 대부분이 곡을 배우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주했더군요. 여기에는 조이 디비전의 전 멤버였던
   뉴 오더(New Order)멤버들의 조언과 도움이 컸다고 하구요.

4. <맘마미아!> 사운드트랙도 어찌어찌 참았었는데, <컨트롤> 사운드트랙은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데이빗 보위를 비롯해 이런 음악을 워낙해 좋아해서 말이죠.

5. 영화 속에서 조이 디비전의 공연 전에 밥 딜런을 닮은 한 사람이 나와서 랩에 가까운 이상한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John Cooper Clarke라는 펑크시인이더군요. 이 분은 실제로 맨체스터 지방에서 당시부터 유명한
   펑크시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조이 디비전 공연에 서포팅 공연을 하기도 했더군요. 영화에 등장하는 이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John Cooper Clarke 본인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John Cooper Clarke

6. 실제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언 커티스의 보컬도 인상적이지만, 피터 후크의 베이스 라인이 상당히
인상적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요새 한동안 이 두 곡만 듣고 있습니다.
 

transmission & she's lost control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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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디비전(Joy Division)에 대해서 알게 된 지는 제법 오래되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어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싶네요. 스쳐가듯 듣거나 이안 커티스(Ian Curtis)에 관한 이야기가 회자될 때
들어본 적은 있지만, 한 곡 한 곡을 들어보기만 했었지 '앨범'을 들어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오랜만이자 처음으로 조이 디비전의 음악을 들어봐야 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바로 곧 개봉될 영화 <컨트롤>때문이라
할 수 있겠는데, 조이 디비전과 이안 커티스의 관한 이야기들 다룬 <컨트롤>을 보기 전에 그들의 음악을 좀 더
제대로 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더라구요.

사실 데쓰메탈을 제외하면 가려듣는 음악이 없는 저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음악을 그리 예전처럼 자주 접하지는
못하는 탓에 그저 히트하거나 유명하거나, 아니면 인디 포크음반들만 선택해서 듣게 되고 말았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제대로 된 록 스피릿 충만한 록 음악을 들으니 쉽게 말해 '살 것 같더라구요'.

조이 디비전의 음악이 그저 단순하기만 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기교보다는 정신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이들의 록 음악을 듣고 있자니, 과장해서 말하면 무언가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록에는 설명이 구차합니다. 그저 공감하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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