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好きだ,)

절제와 여백, 그리고 빛의 영화.

17세의 유(미야자키 아오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반년 전에 떠나 보낸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방과 후 강변에서 언제나 같은 소절만 연주하는 친구 요스케(에이타)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던 유는
언젠가부터 그 소절을 흥얼거리며 다닌다. 한 발짝만 다가서면 잡힐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서지 못하던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멀어지게 된다. 17년 후,
음반회사의 영업을 하고 있던 요스케(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역시 음악제작회사에서
일하던 유(나가사쿠 히로미)는 우연히 재회하게 되는데..



<좋아해>는 결론적으로 매우 절제된 표현과 영상으로 만들어진 차분한 작품이다.
 ‘17년간 하지 못했던 말….좋아해’라는 영화의 홍보 문구처럼, 오랜 시간 동안 고백하지 못했던
애틋한 마음을 극 절제된 대사와 여백을 살린 영상으로, 이야기보다는 이미지가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가 가져다 주는 재미나 감동보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솔직한 감정,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와 닿는 ‘좋아해’라는 말처럼,
 요즘 들어 우리가 너무 잊고 살고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 혹은 모두가 소년, 소녀 시절에 겪었던
그 순수한 떨림에 관해 숨김없이 그려내고 있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 못하는 이야기임에도
슬프다기보다는, 그저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는 그런 추억과도 같은 영화이다.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모든 것들이 절제 되어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17년간 좋아한단 말도 못 건넨 것처럼 대사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대신, 자연 그대로를 담은 영상으로
이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나 날씨에 따라 파랗고 어둡고, 흐리곤 하는 하늘의 모습이 다양하게 담겼는데,
하늘의 빛깔에 따라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를 엿볼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좋아해>를 보게 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은 바로 조명과 빛에 관한 영화의 표현 방법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역광을 이용한 촬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과반수 이상의 컷들이 인물들의 뒤에서
빛을 비춰 인물의 얼굴이나 모습이 어둡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역광 이외에도 대부분의 장면이 자연광을 그대로 살린 실제와 거의 흡사한 조명을 택하고 있는데,
어두운 밤 장면에서 라던지, 다른 특별한 조명이 없는 실내에서 등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영화적인 조명에 의한 빛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 완전히 어두운 밤에
자판기의 불빛만으로 비춰지는 장면이나, 해가 거의 질 무렵의 어슴프레한 빛 등은
살짝 적응이 되지 않기도 한다. 특히 이런 자연광과 인위적인 조명을 거의 쓰지 않아
 돋보인 대표적인 장면들로는, 두 소년, 소녀 주인공이 풀 밭에 앉아 있을 때 머리 위로
큰 구름이 지나가며 그늘이 졌다가 개는 장면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주인공이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이 되어 동이 틀 때의 그 빛은 우리가 실 생활에서는 흔히 겪는 조명들이지만,
영화 속에서 이렇게 효과적으로 표현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백을 표현하는 방법. CF감독 출신답게 이시카와 히로시 감독은 영화 속에 영상들을
상당히 여백을 많이 주는 방법으로 연출했는데, 포커스를 두고 있는 인물들보다 여백이 비중을
더 높이 담아 내면서 좀 더 감성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영상들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클로즈업 시에는
매우 타이트한 카메라 워크로 인물을 잡아내기도 하며 극과 극의 연출 방식을 택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촬영 방식은 영화의 절제된 감정과 어울려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여기에 칸노 요코가 담당한
애틋한 음악 또한 이 여백을 채우려고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여백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돕는
매개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여백의 파란 하늘과 빛처럼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었던 영화 <좋아해>였다.

2007.01.23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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