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각자의 삶의 무게

제이슨 라이트먼의 최신작 <업 인 디 에어 (국내 개봉 제목 '인 디 에어')>는 그의 전작 <주노> 때문에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주노>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각본을 쓴 디아블로 코디 였지만, 어쨋든 연출을 맡은 제이슨 라이트먼의 신작은 <주노>를 매우 인상깊게 본 입장에서 몹시 기대가 되는 바였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의 캐스팅은 <주노>와는 다르게 '어른'의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나 이 '어른'의 이야기는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창, 그리고 위로가 담긴 좋은 드라마였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주인공인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해고 전문가다. 고용주가 직접 해고를 통보하지 못할 경우에 대신 사람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독특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1년중에 대부분을 비행기 출장으로 보내는 그에게 공항은 집보다(없는 집보다) 편안한 곳이며, 항공사의 마일리지는 훈장과도 같다. 그러던 그의 회사에 화상채팅을 통한 해고방식을 제안한 신참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주목을 받게 되고, 라이언은 나탈리와 함께 출장 길을 떠나게 된다.

먼저 라이언 빙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이언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다. 가족들과 멀어져서 혼자 지내지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쁜 일에 취해있고, 자신 만의 도전과제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결벽증과는 좀 다른 의미지만, 라이언에게는 자신 만의 확고한 룰이 있다. 여행 가방을 챙기는 그의 모습을 빠른 편집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라이언은 이렇듯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데에 주저없고 확고한 사람이며 그것에 얽매여 있다기 보다는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고 전문가라는 불편한 직업임에도 '장인 정신'에 가까운 직업 윤리로 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결혼과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삶은 여행용 캐리어 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런 그에게 아직 꿈 많고 열정에 차 있는 청춘의 나탈리는 알게 모르게 자극이 된다. 라이언은 나탈리의 방식과 제안에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혹은 '나도 그런 생각 안해본 것 아니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해야 될거다'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은연 중에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라이언은 받아치기 어려운 자신 만의 논리로 나탈리의 희망에 찬 청춘을 보기 좋게 꺽지만,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나탈리를 보며 동정심인지 아니면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 점점 자신의 정해진 룰 밖의 세상을 기웃거리게 된다.

<인 디 에어>를 보며 초중반까지 든 생각은, 결국 자신과 다름을(틀림이 아닌) 인정하고 이해하는 가치관이었다. 라이언은 그 자체로 이런 이해가 가장 필요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남들 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과 인생이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결국 '목표' 자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목표라는 것에 경중이 없듯이 라이언의 인생 목표는 그것으로 존중 받을 이유가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 천만 마일이라는 그의 목표는 깊게 생각해보자면, 천만 마일을 날아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해고를 통보했으며, 얼마나 많은 삶의 연륜이 쌓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척도 이기도 하지만, 이런 것을 재쳐두더라도 누군가가 삶의 도전과제로 정한 목표라는 점에서 그것은 이해를 넘어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쿨한 삶의 자세를 갖은 듯한 라이언 조차, 결혼식 준비로 명소에서 찍은 듯한 사진을 대신 만들어 오라는 여동생의 부탁을, '도대체 이런걸 왜 찍는거지?'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이 미션을, 왠지 '그래도 나 한테 특별히 한 부탁이니 해줘야지 뭐'라는 식으로 억지로 완수하고나서, 드디어 동생에게 이 사진을 전달했을 때, 그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과 형편상 신혼여행을 못가서 이렇게라도 남기려고 했다는 동생의 말에, 라이언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단 라이언은 자신 만 하는 것으로 당연히 알았던 이 미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미션이라는 점에서 사뭇 당황한다. 그런데 재밌는건 가족과 친구 없이도 만나는 모든 이가 친구라서 외롭지 않다던 라이언은, '특별히' 오빠인 자신에게만 부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소외감(그러니까 자신도 결국은 수 많은 존재 중에 하나라는 것)과 동시에 서운함 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신혼여행을 대신하려는 이벤트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최고급 클래스를 도전과제로 삶고 있던 자신의 삶의 목표에 대해서도 한번 쯤 의문을 갖게 된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는 삶의 아이러니를 통해, 삶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온 라이언이 결혼식날 결혼을 망설이는 동생의 남편될 사람인 '짐'에게 결혼에 대해 설득하게 되는 점이나, 항상 타인에게 해고를 통보해오던 그가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의 입사 추천서를 쓰게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완전한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다양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에 앞서 라이언은 동생의 결혼식에 맞춰 고향을 오랜 만에 방문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항과 비행기, 그리고 각각의 호텔을 집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그에게, 자신이 자랐던 이 고향은 이런 집을 대신하는 것들이 줄 수 없었던 것을 제공한다.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에는 무엇보다 추억이 있고, 그 자신의 말처럼 그 추억 속에는 자신 혼자가 아닌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이런 변화를 겪게 되면서 라이언은 이런 추억을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이로, 관계를 맺어오던 알렉스 (베라 파미가)에게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라이언이 항상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처럼 가볍고 쿨한 관계만을 원하던 이였고, 자신을 탈출구 정도로 생각했던 알렉스의 말에 라이언은 진심으로 대꾸하지 못한다. 라이언 조차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었던 이었기에, 오히려 '왜 갑자기 나를 찾아 왔느냐'라는 알렉스의 큰 소리에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 디 에어>가 주는 끝 맛은 왠일인지 개운하지 만은 않다. 혼자서도 잘해요 였던 라이언이 결국 가족과 주변의 따스함을 알게 되었고, 화상채팅으로 누군가를 해고하는 잔인한 방식은 사고로 인해 보류가 되었지만, 공항 전광판 앞에서 자신의 앞으로 삶의 행선지를 응시해보는 라이언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 디 에어>는 마냥 선하게 '자신의 삶의 짐을 여럿이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자신의 삶은 혼자가 다 짊어져야 한다'는 아주 우울한 이야기도 아닌, 매우 현실적인 지점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그러고보면 다른 가방이나 짐은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줄 수 있지만, 결국은 각자가 끌고 가야 하는 여행용 캐리어 가방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기가막힌 소품인지도 모르겠다.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한 동안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인 조지 클루니는 이 타이틀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는(그래도 섹시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기도하지만) 캐릭터들을 연기해 왔었는데,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는 왜 그가 '모스트 원티드 섹시스트'인지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완전한 로맨스 영화 아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말끔한 수트 차림의 클루니에게서야 말로 진정한 매력이 느껴진다. 베라 파미가는 어느 덧 클루니와 커플을 이뤄 '삶의 연륜'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로 나아가 버렸는데, 커리어 우먼의 매력과 별 다른 제스처 없이 표정과 미소 만으로도 설명 가능한 알렉스 라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탈리 역의 안나 켄드릭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비하면 많이 마른 모습으로 보였는데, 이 때는 그저 주인공 친구였던 그녀가 이제는 관객의 기억에 확실히 남는 캐릭터를 연기해 낸 것을 보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보는 중간에는 너무 평범한 드라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하기도 했었는데, 보고나서 생각하면 할 수록 참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1. 라이언이 결국 기장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장면 묘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기장님의 모습이 마치 천사나 신처럼 느껴졌거든요.

2.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의 국내 제목은 '마일리지'가 될 뻔 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끔찍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의미 상으로는 제법 괜찮은 제목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3. 그런데 아예 본래 제목을 개봉하려 했다면 원제 그대로인 'Up in the Air'로 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의 엔딩 크래딧 중간에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업 인 디 에어'여야 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노래 한 곡이 등장합니다.

4. 제이슨 라이트먼의 전작 <주노>는 소박한 포크 음악들이 실린 사운드트랙이 참 인상적인 작품이라 이번 작품도 음악을 많이 기대했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관조하는 듯한 포크 음악들이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도 좋았지만요 ㅎ

5, 극중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유명한 J.K.시몬스가 자신의 딸들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시몬스의 딸들 사진이라고 하네요.

6. 첨엔 '아, 이 영화는 적어도 최근 실직이나 해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개인적인 이유라도 보면 안되겠다' 싶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분들이 보시면 힘이 될 영화같아요. 삶의 무게는 버겁지만 나아갈 이유가 있으니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2008년은 그 어느해 보다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크고 작은 영화제에도 참가해서
고전 영화들을 비롯해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었고, 개봉영화들은 액션과 볼거리가 위주인 블록버스터부터
개봉관을 찾기 힘들어 발품을 제법 팔아야만 볼 수 있었던 작은 영화들까지 가능한한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던 한해였구요.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150편 정도 올 한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렇다보니 한해를
정리하며 베스트 작품을 단 10작품으로 꼽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군요.
그리고 유난히 장르적으로 봤을 때 다큐멘터리나 음악영화가 많기도 했는데, 이를 따로 분류하여 순위를 정해볼까도
했지만, 결국 총 15편의 베스트 리스트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이지만, 아래 선택된 15편의 작품들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평가기준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 한국영화 베스트 5와 동일하게 15편 가운데 차등 순위는 없고, 개봉한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미지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블로그에 작성했던 영화의 리뷰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르비차 (Grbavica, 2005) _ 사라예보, 내 사랑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진, 사라예보에 살고 있는
작게는 한 모녀, 넓게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르바비차>입니다.
이런 소재 역시 어찌보면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줄거리일지 모르나,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든 그들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상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르바비차>는 타인이 영화적 극적 요소만 부각시켜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자신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주노 (Juno, 2007) _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주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여주인공을 연기한 엘렌 페이지 때문이긴 했습니다.
제목과 비슷한 소재 때문에 우리 영화 <제니, 주노>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로 기억되네요. 두 어린 주인공 외에 이를 둘러싼 두 부부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그려낸 시나리오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로우 파이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들로 가득했던
영화음악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원스>의 경우처럼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지는 엔딩 장면의 여운도
아직까지 남아있구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느긋하게 서스펜스를 이끄는 장인의 솜씨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요 바래 소개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들의 이름들 덕분에
일치감치 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고, 이 큰 기대를 모두 만족시켜준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이제는 정말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는 내내 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으며, 올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해, 토미 리 존스와 조쉬 브롤린의 열연도 이 영화를 아주 인상깊은 영화로 기억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구요. 







데어 윌 비 블러드 _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매그놀리아>는 에이미 만의 음악과
더불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고, 아담 샌들러와 함께 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제가 가끔 잠식당하고 마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어준 멋진 작품이었죠. 단 한 마디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정의해 보자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제가 쓴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지만 더 다양하고 깊은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시 매번 무시무시한 열연을 펼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굳이 더 거론할 필요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며,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알게 된 폴 다노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 더 정리를 위해 다시 한번 DVD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스피드 레이서 _ 눈이 부신 가족영화의 황홀경

스피드 레이서 BD _ 황홀경의 레퍼런스급 화질로 만나는 레이싱 어드벤처!


올해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이 즐거웠고 황홀했으며 내용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으나 아마도 제가 꼽은 영화들 중에
가장 다른 분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실 법한 영화가 <스피드 레이서>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맥스 상영시
2번 정도 관람하였고, 블루레이로 시청, 부산에서 열렸던 블루레이 영화제에서 또 한 번 관람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워쇼스키 형제가 얼마나 오타쿠 스럽고 원작을 21세기 스크린에 잘 표현해 냈는지 느끼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저 같은 사람이야 좋아했지만 사실 저렇게 오타쿠 스러운 작품을 헐리웃 메이저 시장에서 저 정도 규모로 만들
생각을 한 워쇼스키 형제도 형제고, 제작자인 조엘 실버도 대인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리븐>같은 레이싱을
생각하셨다면 얼른 잊으세요. <스피드 레이서>의 자동차들은 앞보단 주로 옆으로 달리고, 쿵푸도 하거든요 ^^;






아임 낫 데어 _ 밥 딜런의 몽타주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매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뮤지션을 그리게 되면
전형적인 전기 영화 형식으로 그리게 되는데 <아임 낫 데어>는 이런 정형화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그림처럼 밥 딜런이라는 사람, 뮤지션의 일대기를 조명합니다. 다른 뮤지션 같았으면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그리는데 이 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
같네요. 토드 헤인즈 감독은 단순히 밥 딜런의 인생과 주변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만의 장점을 살려
당시의 문화와 사회까지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어 냈는데, 밥 딜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에게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점에는 케이트 블랑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등 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출연하는줄 몰랐던터라 더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가 특히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플래닛 테러 _ 극장에서 즐기는 B무비에 환호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하기를 원할 텐데, <플래닛 테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각 장면 장면마다 소리내어 반응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였습니다. 일반 관객들과
다 같이 보는 환경이라면 어렵겠지만 특별히 로드리게즈의 팬들이라던가 이 영화에 팬들만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 장면 장면 하나에 소리내어 환호하고 역겨움엔 질색하며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말이죠.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정말 영화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혼자 뚝딱 해내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플래닛 테러>는 그의 B무비적
감성과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난 특별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어한 장면들이 많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신나게(?)그려내고 있으며, 최첨단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일부러 옛 것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낸 영상은,
그의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즈 맥고완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도
너무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네요.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다크나이트>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극장에서 여러 번 본 영화입니다. 정확히 몇번 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가 주는
압도감이란 대형 아이맥스 스크린과 맞물려 엄청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분위기를 한번 더, 한번 더 느껴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과연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조커가 되어버린 히스 레저의
연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며, 히스 레저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둠의 기사'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보여준 대작이었으며, 그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어서 더욱 반가웠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다크나이트>도 이렇게 짧은 몇 줄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하겠네요 ^^;







월-E _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


픽사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말을 하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천재야!!!!' <월-E>는 그 가운데서도 그 천재성이 정말 놀랍도록 발휘된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쌍안경 렌즈 속에서 저런 오묘한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겠으며,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한 감성을 이리도 잘 버무린 작품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얼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월-E>의 감동은 '우주최고'였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감정들 중에 특히 '아련함'을 좋아하는데,
이런 '아련함'을 표현함에 있어 월-E와 이브가 보여준 우주최강 애틋 러브스토리는 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군요.
한동안 입에 '이 봐~' '이브아~'를 달고 살 정도로 중독성있는 대사들과, 장난감 뽐뿌라는 엄청난 부산물들을 만들어낸
올해 최고의 러브 스토리 <월-E>였습니다.






컨트롤 _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음악영화'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컨트롤>을 꼽겠습니다.
뮤지션의 삶을 다룬 만큼 '음악영화'와 '전기영화'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컨트롤>만의
다른 시각을 꼽자면 조이 디비전의 멤버였던 이언 커티스, 즉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살았던 청년 '이언 커티스'를 조명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흑백영상으로 담겨있는데,
흑백의 질감으로 표현되는 이언 커티스의 고뇌와 혼돈, 그리고 맨체스터의 풍광들은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의 연기는 정말 이언 커티스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주었으며,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만다 모튼은, 개인적으로 그녀 필모그래피의
최고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네요. <컨트롤>영화 팜플렛은 <렛 미 인>과 더불어 제 회사 책상을 장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렛 미 인 _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지난해 <원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렛 미 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이라는 헐리웃 밖의
영화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관심과 반응을 불러낸 것 자체가 우선 반가웠으며, 뱀파이어 영화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을 맞은 북유럽의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광들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이었던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 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러브스토리가 남녀 간의 것에 국한되지 않고, 존재와 존재간의 사랑
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한 편으론 러브스토리로만 읽혀지지 않는 여백이 있어 생각해 볼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부작용이 있다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 생각하면 <판의 미로>의 메인 테마 음악이
떠오른다는 것 -_-;;;






로큰롤 인생 _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사실 15편을 선정하면서 이 작품 <로큰롤 인생>과 <존 레논 컨피덴셜>을 두고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 어느 해 보다 많이 극장에서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 좋은 다큐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 중 한 작품을 꼽으라면 <로큰롤 인생>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올해의 다큐 영화랄까요.
처음 보기 전에는 그냥 인간극장 스타일의 다큐일줄로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닉유스를 노래한다'라는
사실은 그런 화제성 다큐로 만들어지기가 쉽거든요(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로큰롤 인생>은 그들이 노래하는 자체가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노인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두시간 남짓을 알았던 것 뿐인데, 극 중 인물에
죽음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들의 인생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늙고 싶다'도 좋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가 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올해의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고 있었던 영화이기도 한데, 크로넨버그의 전작이었던 <폭력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 봐야할
그 만의 깊은 연구가 담긴 하나의 결과물 같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더불어 매우 드물게 리뷰의
소재목을 따로 정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며(그만큼 먹먹함이 오래갔죠), 비고 모르텐슨과 뱅상 카셀의 연기에
감탄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비고 모르텐슨의 경우야 다들 혀를 내두르고 칭찬을 하시는터라 제가 더 거들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뱅상 카셀의 연기는 그가 연기한 '키릴'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를
고려해 봤을 때, 그의 나름 팬으로서 정말 훌륭하고(어쩌면 비고 보다 더) 멋진 연기를 펼쳤다고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비고가 연기한 니콜라이가 주인공이지만,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뱅상 카셀이 연기한 '키릴'이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인 동시에,
타셈 싱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그 행위에 대한 행복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감상 전 다른 분들의 평에서는 이야기는 허술하나 볼거리는 대단하다 라는 것이 대세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그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4년 간의 고생을 하며 볼거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곳이 실제 지구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답고 웅장한 미관을 자랑하는 영상미는 물론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의 이야기(화자와 청자가)가 뒤섞여 버무려지는 이야기 구조는 <더 폴>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순간인지를 은연중에 느끼게 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이스턴 프라미스>의 경우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먹먹함이 심해져 별도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경우였지만,
이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경우는, 이 제목 만으로도 대부분이 설명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다 설명이
되기 때문에 추가로 제목을 달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제목 뿐 아니라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대사나 나레이션 등을
통해 제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겨있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내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다큐멘터리스런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일본이 사법제도만을 문제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법이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카세 료는 정말 일본 남자 배우들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 만한 연기를 펼쳤으며,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과연 <쉘 위 댄스>같은 코미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인가 싶을 정도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5작품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로는 <존 레논 컨피덴셜> <에반게리온 : 서> <마법에 걸린 사랑> <쿵푸팬더>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한해는 위의 15편 영화들을 비롯해 제가 본 150편 넘는 영화들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영화를 보는 순간 만큼은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다른 생각하지 않고,
행복해 했던 것 같구요.

2009년에도 더 좋은 영화들과 조우하기를 바래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Juno O.S.T.

01 . All I Want Is You - Barry Louis Polisar
02 . Rollercoaster - Kimya Dawson
03 . A Well Respected Man - The Kinks
04 . Dearest - Buddy Holly
05 . Up The Spout - Mateo Messina
06 . Tire Swing - Kimya Dawson
07 . Pizza, New York Catcher - Belle & Sebastian
08 . Loose Lips - Kimya Dawson
09 . Superstar - Sonic Youth
10 . Sleep Instrumental - Kimya Dawson
11 . Expectations - Belle & Sebastian
12 . All The Young Dudes - Mott The Hoople
13 . So Nice So Smart - Kimya Dawson
14 . Sea of Love - Cat Power
15 . Tree Hugger - Antsy Pants
16 . I’m Sticking With You - Velvet Underground
17 . Anyone Else But You - The Moldy Peaches
18 . Vampire - Antsy Pants
19 . Anyone Else But You - Michael Cera & Elle Page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랜만에 바로 구매하게 된 사운드 트랙!
영화도 물론 너무 좋았지만, 포크와 로우 파이 스타일의 곡들이 가득 수록되어 있어
그냥 음반만 들어도 매우 만족스러운 듯.

엘렌 페이지가 직접 적극 추천했다는 뉴욕 출신의 10대 밴드 'The Moldy Peaches'의
'Anyone Else But You'를 비롯하여, Cat Power, Sonic Youth, Belle & Sebastian, Kimya Dawson 등
포근하고 단백한 포크/록 음악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마지막 트랙에는 영화의 인상적이었던
엔딩 장면에서 엘렌 페이지와 마이클 세라가 함께 부른 'Anyone Else But You'가 수록된 것도 반갑다.

영화의 인트로 부분을 장식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속지 디자인도 멋지고,
영화의 여운을 즐기기에 충분히 만족스런 사운드 트랙!





Anyone Else But You - Michael Cera & Elle Page



2008/02/22 - [Moive] - 주노 (Juno, 2007) _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주노 (Juno, 2007)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배부른 엘렌 페이지의 모습도 나름 인상적이었지만, 뭔가 모호하고 독특한 인상을 주는 '주노 (Juno)'라는
이름이 갖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영화를 보면 알게 되지만, 영화 속 '주노'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 신의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 제우스의 부인은 주노가 아니라는 -_-;; ). 그래서 인지 그냥 10대 미혼모가 겪는 해프닝을 그린 드라마 혹은 코미디 보다는
무언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극장을 찾게 되었었다.
국내 포스터에 보면 홍보 문구로 '할리우드가 웃고 전세계가 놀랐다!!!' '세상을 발칵 뒤집은 '주노'가 온다!' 등등의
홍보 문구들이 가득한데, 이런 문구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하다.
<주노>는 포스터와 알려진 줄거리에서 쉽게 엿볼 수 있듯이, 10대에 아기를 갖게 되어 겪는 일들을 통해,
16세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가족과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를 10대의 젊은 감각이 묻어난 음악들과, 유머로
유쾌하면서 아름답게 그려낸 성장 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주노는 친한 남자친구 '블리커'와 관계를 갖고 아이를 갖게 되는데, 일찌감치 자신이 아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입양부모를 찾게 되고, 그 와중에 바네사(제니퍼 가너)와 마크 부부를 만나게 된다.
사실 이 설정이 이 영화가 조금은 특별한 첫 번째 설정이 될 수 있겠다. 보통의 이런 10대 미혼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면, 입양부모로 등장하는 이 부부의 비중이 거의 까메오 급으로 등장할 수 있겠으나, <주노>에서는
이들의 비중이 상당하다(그래서 일부러 포스터도 엘렌 페이지가 단독으로 나온 포스터가 아니라, 등장 인물이
여럿 등장한 포스터를 골랐다). 이 부부가 비중있게 그려지면서 영화는 좀 더 얘기를 다양하고 깊게 끌고 가는데,
단순히 화목해만 보였던 이들 부부에게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10대인 주노는 혼란을 겪게 된다.

겉으로봐서는, 자신과 음악적, 영화적 취미가 같은 마크와 아이를 너무도 원하는 바네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마크는 다양한 취미만큼이나 딱딱하고 안정적인 삶 만을 원하는 바네사에게 잡혀살기 보다는
아직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며, 바네사는 아이를 갖고 싶은 애정이 너무 깊어 여기에만 온 정성을
쏟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부부의 관계가 좋지 않게 흘러갔는데도, 주노는 자신의 아이를
바네사에게 건네기로 하는데, 이는 바네사라는 인물을 단순히 아이만을 원하는 나쁜 이미지로 그리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부부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이른바 '어른'들이
흔히 겪는 현실의 문제이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수한 주노의 눈을 통해, '왜 평생 함께 하지 못하느냐'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새삼 깨닫도록 전하고 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주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를 낳고 예정했던 대로 바네사에게 아이를 건네게 되는데, 아마도 이들 부부가 깨지고,
주노도 아이를 직접 낳는 고통을 겪게 되면서 모성애가 깊어져 결국에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게 되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았다. 주노는 이 특별한 성장통을 겪고 나서 부른 배도 다시 돌아오고, 자신의 아이도 없는,
다시 10대 소녀로 돌아온다는 결말인데,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줄거리를 선택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미워보이지
않고 쿨하고, 유쾌하게 그려낸 시나리오는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의미를 깨달았다면, 남자친구인 '블리커'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또 한 번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지, 그리고 이를 깨닫도록 확신 시켜주는 것이 자신의 배속의 아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의미를 또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이 영화는 분명히 성장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운동장에서 주노가 뱃 속의 아이를 빗 대어 블리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여느 러브 스토리 못지
않은 감동적인 멜로 장면이었다.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함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으며,
이 둘의 대화는 물론, 주노가 극중에서 가족,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들을 통해, 현재 미국의 10대들이
갖고 있는 유머와 말투 등을 엿 볼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의미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가 하나 빠졌는데,
주노의 새 엄마가 약간 딱딱하게 얘기하는 초음파 담당자에게 딴소리 못할 정도로 매몰차게 말로 제압하는
짧은 시퀀스를 통해, 넓은 의미에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또 한 번 얘기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음악이었다.
로우 파이 (Lo-fi)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이 시종일관 흐르고 있는데, 주연 배우인 엘렌 페이지가 적극
추천했다는 뉴욕 출신의 10대 밴드 몰디 피치스를 비롯하여, 소닉 유스, 캣 파워, 킴야 도슨,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이 영화의 인디적인 감각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단백한 음악들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다.
음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극중에서 주노와 마크는 음악과 영화에 있어 상당한 매니아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나누는 대화 장면은 그래서 매우 흥미로웠다. 역시 개인적으로도 팬이기 때문에, 깁슨의 레스폴 기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나, 록 음악의 전성기가 언제냐를 서로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슬래셔 무비를
보면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을 논하는 등, 이 분야의 관심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잠시나마 이 대화에
깊게 개입할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주연을 맡은 엘렌 페이지의 연기에 대해 아니말할 수 없는데,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서 귀여운 모습을
선보여 여러 삼춘 팬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던 그녀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엘렌 페이지 아닌 주노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싱크로율을 선보인다. 뭐랄까 앞으로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그리고 엘렌 페이지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주노'만큼 엘렌 페이지 스러운 캐릭터는 앞으로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옷 입은 것만 보면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가 떠오르긴 하지만, 블리커 라는 캐릭터의
풋풋함을 잘 살린 마이클 세라의 연기도 좋았고, 오랜만에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제니퍼 가너와 <스파이더 맨>으로 익숙한 J.K. 시몬스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은 마치 <원스>가 그랬던 것 처럼, 서서히 멀어지는 카메라가 인상적이었는데,
몰디 피치스의 'Anyone Else But You'를 두 주인공이 함께 부르는 이 마지막 장면은, 성장통을 잘 겪어낸
주노가 그래서 '어른'이 되었다기 보다는 '소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나조차도 아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던 영화였는데, 보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했을 영화였다.




1. 바네사와 마크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록의 팬인 마크가 샀거나 구했을 'Alice In Chains'가 새겨진 티셔츠를 페인트 작업을 위해 바네사가
입고 있는 이 장면을 통해, 이 두 사람의 간극이 얼마나 벌어져 있나를 짧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분명 알고 이렇게 설정한 것이겠지 ^^;

2.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해못할 설정이 있었다면, 16세 소녀가 임신을 했다고 부모에게 처음
이야기하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화 한 번 안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미국사회 전체를 반영한다기 보단 이 가족내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봐야할 듯.

3. 음악 정말 참 좋다! 바로 O.S.T 질렀음!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폭스 서치라이트사에 있습니다.


2008/02/25 - [Music] - 주노 (Juno) _ O.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