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이 운다 _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 

10년 전과는 달랐던 영화, 아니 관객



지난 5월 30일 토요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류승완 감독의 2005년 작 '주먹이 운다' 10주년 기념 특별상영회가 있었다. 평소 류승완 감독님과의 인연도 있고, 더군다나 감독님과 더불어 주연을 맡았던 두 배우인 최민식, 류승범 님이 참여하는 GV도 예정되었던터라 이 날의 상영과 GV는 몹시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역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실제로 최민식과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그 못지 않게 궁금했던 것은 10년 전 20대 때 극장에서 보았던 '주먹이 운다'와 지금 30대가 되어 다시 보게 되는 '주먹이 운다'는 어떤 영화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궁금함과 설레임을 담고 비가 조금씩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토요일, 상암동으로 향했다.





당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감독님이 GV때 언급했던 내용과 마찬가지로, 당시 내게도 이 영화는 너무 신파스러워 아쉽다는 느낌으로 남은 영화였다 (그래서 아마 DVD도 구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 근래야 그런 일이 없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되돌아 보니 예전에 나는 단지 '신파'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별로다 아니다를 어느 정도 평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평가 기준을 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신파스러웠던 영화 가운데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의 경우 읽는 이들이 '신파라서 아쉽다'로 오해하지 않도록 반드시 추가 설명을 덧붙일 정도로, 단순히 신파라서 재미없거나 별로라는 평가는 이제 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신파'라는 것은 일종의 스타일로, 굳이 따지자면 흔히 지루하거나 재미없음, 관객을 향한 감정의 강요 등의 실수를 할 확률이 다른 스타일에 비해 높은 경우라 하겠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신파여도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면서 강요 받는다는 느낌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10년 만에 '주먹이 운다'를 다시 보게 되며 가장 궁금했던 건 아직도 내게 이 영화가 그냥 신파여서 아쉽기만한 작품일까 하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내가 변한 탓인지 아쉬웠던 영화는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순간과 이야기들이 보여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다음 단락에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 자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보게 된 '주먹이 운다'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큰 두 가지 포인트 중 첫 째는, 결말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게 되는 영화가 아니라 2명 이상의 이야기를, 그것도 똑같은 비중으로 관객에게 소개했을 때, 더군다나 그 결말에 가서 그 둘 가운데 누군가는 패배해야만 하는 룰의 경기가 등장한다면 결국 관객은 둘 가운데 누가 마지막에 승리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먹이 운다'의 이야기는 10년 전에도 알고 있었듯이 승패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이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두 인물의 삶이 중요할 뿐. 하지만 10년 전에는,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에 있어서 명백한 승패를 나누는 것 보다는 관객이 승패를 명확하게 알 수 없도록 놔두는 것이 두 인물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바뀐 생각은, 오히려 이렇게 명확한 현실의 승패를 보여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해주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강태식 (최민식)과 유상환 (류승범)의 결투 혹은 도전은 이미 심판 판정이 나오기 전에 6라운드가 마무리 되는 순간 끝이 난다. 두 사람 모두 신인왕이 되어야만 할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지만, 영화는 두 주인공이 승패가 나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 각자의 도전을 이뤄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에는 약간은 부수적일 수 있는 실제 승패 판정 장면이 없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 간 나이를 먹은 탓인지, 현실은 영화 속 처럼 그들 스스로의 승리와는 상관 없이 승패를 끊임 없이 선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인지, 영화의 결말이 달리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 이후 강태식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라는 관객의 질문에,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최민식 배우의 대답과 이를 동조하던 감독님의 눈빛은 이런 결말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두 번째 포인트 역시 첫 번째 포인트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영화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던 점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주먹이 운다'의 강태식과 유상환의 이야기를 빌려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이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들과 실패, 잘못, 실수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혹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나 위로를 주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마음 껏 한 번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긴 시간을 들여 끝까지 달려온 원동력이라는 걸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극 중 천호진씨가 연기한 배역의 대사처럼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 사연들로 인해 쉽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마음껏 울 기회조차 없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주먹이 운다'는 그들에게 어설픈 위로를 전하기 보다는 그저 그들이 한 번 펑펑 울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렇듯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는 10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아닌 내가 변한 것일테지만.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에서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주먹이 운다'의 블루레이 정식 발매 소식이었다. 물론 오프 더 레코드로 조금 더 먼저 알고 있기는 했지만, (감독님의 코멘트를 빌려 보자면) 한국의 크라이테리언을 꿈꾸는 플레인아카이브를 통해 발매 될 예정이라 무엇보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4K리마스터링은 물론, 10주년을 맞는 작품의 블루레이 타이틀답게 새로운 부가영상 등 제작에 벌써 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날 있었던 GV 사진 몇 장을 더 추가하며 글을 마친다.

어서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1.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한국영상자료원에 무한한 감사를!

2. 플레인에서 출시될 블루레이 정말 기대됩니다.

3. 초대해주신 DP 감사드려요!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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